1. 안동-하회마을 |
6. 단양-고수동굴 |
2. 안동-탈 박물관 |
7. 진안-마이산 겨울 풍경 |
3. 정선-아우라지 |
8. 영덕-강구에서 축산까지 |
4. 태백-석탄 박물관 |
9. 영덕-일출및 강구항 |
5. 서산-간월암 일몰 풍경 |
10. 서산-천수만의 철새 |
1.안동-하회마을 전경
풍산유씨(豊山柳氏)의 동족부락(同族部落)로 유운룡(柳雲龍)(1539년-1601년, 이황문인(李滉門人)·유성룡(柳成龍)(1542년-1607년,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영의정(領議政) 형제대(兄弟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씨(柳氏)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허씨(許氏) 터전에 안씨(安氏 문전(門前)에 유씨(柳氏) 배판 ”이란 말이 구전(口傳)되어 오는 것으로 보아 허씨(許氏), 안씨(安氏)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유의 하회 별신(別神)굿 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크게 남촌(南村)과 북촌(北村)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養眞堂,보물 제306호), 충효당(忠孝堂,보물 제414호), 북촌택(北村宅,중요민속자료 제84호), 남촌택(南村宅,중요민속자료 제90호), 옥연정사(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제88호), 겸암정사(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제89호)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2.안동-탈 박물관
하회동 탈방은 하회탈 전문제작 장인(匠人)인 김동표(金東表) 선생이 1981년 4월, 안동 하회마을에 설립한 하회탈 전문제작 및 연구실이다. 그는 1976년도부터 서울에서 전문가로부터 목공예와 목조각 그리고 뎃상 수업을 받은 후 개인 공방을 꾸려오던 중, 1981년도에 안동 군청 관계자의 권유와 하회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고향의 이웃마을인 하회마을에 정착하여 하회탈 전문제작 공방을 개설하게 된다.
초기엔 하회마을의 부용대(芙蓉臺)의 이름을 따서 부용탈방이라 하였으나 1985년도부터 지금의 이름인 하회동 탈방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동안 만든 하회탈은 공보처의 해외 공보관에 전시용으로 공급되어 오고 있는 중이다.
특히, 1999년 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 때에는 안동시의 의뢰로 제작하게 된 선생의 하회탈이 안동시의 대표선물로 여왕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지난, 1995년, 사립 전문박물관인 "하회동 탈 박물관"을 설립하여 하회탈의 고장에 한국 탈은 물론 세계의 탈을 수집, 전시하여 하회마을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의 가면문화(假面(文化)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3.정선-아우라지
오대산 줄기에서 발원(發源)하여 노추산 밑을 흐르는 구절천(九切川: 일명 송천)과 태백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임계면을 두루 돌면서 유유히 흘러내리는 골지천(骨只川: 일명 임계천)이 만나는곳. 두 물줄기가 어우러진다는 뜻에서 아우라지로 발전했다한다. 여기서 만난 강줄기는 조양강(朝陽江)을 이루고,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의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과거 물줄기의 만나는 곳이라 이 부근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었다는 이곳.
지금은 관광객들만 북적거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나라에서 아리랑을 노래한지가 그 언제인지 모르지만 유래의 발상지(發祥地)를 찾아서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이곳에 가면 아우라지 라는 강이 있는데....
옛날에 이강의 나룻배가 뒤집혀 남편을 잃은 여인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서 남편을 그리워하며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흥얼거림이 입으로 전해지며 부르던 노래가 정선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강가에는 여인의 넋을 위로하기위하여 쌓아놓은 돌탑들이 많이 있다.
4.태백-석탄 박물관
태백시 소도동 위치한 태백 석탄 박물관은 탄전지대(炭田地帶)의 본산인 태백이 석탄산업(石炭産業) 합리화에 의해 40개가 넘는 탄광(炭鑛) 등이 모두 문을 닫고 겨우 한 두 개만 남게 되자 국가기간산업(國家基幹産業)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의 역할과 그 역사적 사실들을 한 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전시 연출하여 역사적 교육의 학습장으로 활용하며, 아울러 우리들에게 잊혀져가는 석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고 석탄산업(石炭産業)의 쇠퇴로 인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국내 최대의 석탄(石炭) 박물관(博物館)을 건립하여 1997년 5월에 개관했다
5.서산-간월암 일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홍성 IC로 빠진다. 614번 지방도와 40번 국도를 따라 서해안A지구 방조제로 들어선다. 방조제를 통과하면 왼쪽에 간월암(間月庵)이 있다
이름 그대로 달 보는 절, 간월암(間月庵)은 밤이면 밤바다에 달이 뜨고 달빛이 흐르는 곳이다. 충남 지역에서 달맞이 명소로 첫손에 꼽힌다. 간월도(間月島)는 서산방조제 옆에 위치한 아담한 바위섬이다. 썰물이 질 때면 외로운 간월암(間月庵)은 비로소 육지에 몸을 댄다.
그래서 간월암은 물이 가득차면 한 송이의 연꽃이 떠 있는듯 하다고 해서 연화대(蓮花臺)로 불리기도 했다. 평소 이곳은 매우 조용하다. 속세의 어느 것 하나 방해하는 것이 없다.
매월 보름이면 오로지 물 위에 떠 있는 보름달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간월도(間月島)의 바다에서 달맞이와 일몰을 관람 관광객도 많지만 간월암(間月庵)에서 바라보는 풍경만 못하다.
주변의 어느 것 하나 걸림돌 없이 조용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밝은 달을 감상하는 데 초청된 손님일 뿐이다. 달빛은 바다 위에 비쳐 또 하나의 보름달을 만들어낸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바다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이 밤바다를 비춘다. 특히 간월암(間月庵)에서 바라보는 천수만의 낙조(落照)는 숨막힐듯하다. 물결 위에서 붉은 태양이 바다까지 물들여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낼 정도로 아름답다.
6.단양-고수동굴
단양읍 고수리에 위치한 고수동굴은 5억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받은 국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치 있는 문화재 동굴이다.
동굴의 존재는 옛날부터 널리 알려져 왔는데 입구 부근에서 타제석기와 마제석기 등이 발굴된 점으로 보아 선사시대의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었음을 알 수 있다.
1976년에 한국동굴학회 주관으로 일본동굴학회와 합동조사가 실시된 후 학술적, 관광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 확인되어 1976년 학교법인 유신학원에 의하여 석회암 동굴의 자연관찰 현장학습장으로 개발되어 이용되고 있다.
7.진안-마이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지점에 있는 두 바위산.
높이는 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으며, 동봉과 서봉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水系)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水系)의 발원지(發源地)다.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馬耳山)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동봉은 오를 수 없다.
또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8.영덕 강구에서 축산(청정 해안도로 40km 드라이브 코스,사진은 축산의 죽산도)
영덕 강구에서 축산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길을 정말 몇 번이고 가도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해안절벽(海岸絶壁)을 타고 넘는 드라이브코스로 중간에 해맞이 공원(公園)이 잘 조성되어있다. 파도가 심한 날 해안절벽(海岸絶壁)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도는 장관이고, 날이 맑은 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는 것 또한 멋진 곳으로 어떤 날씨에도 좋은 드라이브코스가 되는 곳이다.
강구항이 영덕대게로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강구항으로 진입하는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서 강구항 입구를 지나 해안도로(海岸道路)로 이어진다. 이곳을 따라 해안을 따라가면, 풍력 발전소의 풍차들과 어우러진 해맞이공원을 지나서 축산항에 이른다.
9.강구항의 일출
새해 일출로 유명한 해맞이 공원이 있고, 즐겨볼 수 있는 강구항의 대게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도 소문난 강구항은 근처에 있는 삼사해상공원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10.서산-천수만의 철새들
천수만은 충남 서산해안과 안면도 사이에 형성된 골 깊은 바다로 1980년대 천수만 한가운데 대규모 간척지사업(干拓地事業)이 조성되면서 4,700여만 평에 이르는 바다가 농지(農地)와 담수(湛水)로 변했다.
천수만에는 매년 300여종 하루 최대 40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태관과 철새 영상관을 관람하고서 시간이 남는다면 간월도(間月島)에 있는 간월암(間月庵)을 둘러보기를 권장합니다.
11. 부안-채석강 |
12. 진부-오대산 |
13. 청송-주왕산 설경 |
14. 신안-다도해의 보석 |
15. 원주-치악산 설경 |
16. 완도-청산도 |
17. 울릉도-유람선 |
18. 울릉도-내륙 |
19. 공주-계룡산 동학사 |
20. 강진-다산초당 |
11. 부안 채석강
전북 부안에서 30km, 변산반도 국립공원내의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위치한 채석강은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7천만년전)에 퇴적한 해식단애(海蝕斷崖)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은 것과 같은 와층을 이루고 있는데 옛날 중국의 시성(詩聖) 이태백(李太白)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위의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採石江)과 흡사하다 하여 채석강(彩石江)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롱한 색체를 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해식단애(海蝕斷崖)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한 섭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12. 진부 오대산 설경
강원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m), 호령봉(1,560m), 상왕봉(1,485m), 두로봉(1,421m), 동대산(1,432m)등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의 오대산지구(월정사지구), 그리고 노인봉 (1,338m)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오대산은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환상적이다. 장엄한 산세에 어울리게 오대산의 단풍은 중후한 세련미까지 느끼게 한다. 단풍의 절정은 10월 중순 경, 일시에 불타오르는 듯한 것이 일품이며 색상이 뚜렷하고 진한 점이 특징 이다.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7km의 계곡과 비로봉 산행은 오대산 최고의 단풍코스다. 상원사를 지나 왼쪽 계곡 길로 들어서면 걷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는 단풍 천지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의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에 핀 눈꽃이 절경이다.
오대산은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위시해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 유적이 즐비 하다.오대산국립공원의 제1관문격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있고 진입로 2㎞ 구간에 전개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은 매우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3. 청송 주왕산 설경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높이 720m의 주왕산(周王山)!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 한곳인 주왕산(周王山)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렀다.
주왕산(周王山)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周王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周王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려 있는 산이다. 주왕周王은 중국 당(唐)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秦)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唐)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石屛山) 까지 쫓기어 왔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 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신라장군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주왕산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천년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폭포와 굴이 있으며, 주왕산(720m), 가메봉(882m) 등의 산봉우리가 있습니다. 또한 달기약수터와 아름다운 주산지(主山地)가 자리 잡고 있다.
14. 다도해의 보석 홍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 해질녘에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 하여 ‘홍도(紅島)’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본섬을 비롯해 20여개의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전설과 기묘한 형상을 간직한 기암, 그리고 섬 주위에 펼쳐진 크고 작은 무인도와 깎아지른 절벽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로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의 조화가 절묘해서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리 우며, 물이 맑고 투명하여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다 밑의 신비로운 경관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홍도 관광의 진수는 ‘홍도(紅島) 33경’으로 주로 유람선을 이용하는데, 남문바위,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 여, 일곱 남매바위 등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답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경 뿐 아니라 바위틈에 빽빽이 자라는 나무들 또한 마치 정성스럽게 분재를 해놓은 양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또한, 홍도(紅島)의 절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홍도(紅島)의 낙조(落照)’이다. 이 광경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해를 등지고 진홍빛으로 타는 홍도(紅島)를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장관이다.
15. 원주 치악산 설경
치악산(雉岳山)은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대봉과 매화산 등 1천여 미터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고 곳곳에 산성(금대산성, 영원산성, 해미산성)과 사찰(구룡사·상원사·석경사·국향사·보문사·입석사), 사적지가 산재하고 있다. 1973년 3월 15일에 도립공원으로, 1988년에 국립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
16. 완도군 청산면 당리마을
이곳은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서편제(西便制)가 촬영된 곳이다. 남도의 여러 곳이 촬영지였지만 이곳이 유명한 것은 유봉일가가 황토 길을 내려오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30초에 걸친 롱-테이크가 촬영된 곳이다.
바로 옆에는 송화가 득음(得音)을 위하여 피눈물 나게 소리공부를 하던 초가가 복원되어 있다. 원래 영화에서는 당리마을의 초가집을 이용했으나 현재는 군에서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복원해 놓았다.
<영화 서편제 줄거리>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 동호(김규철 분)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리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갓집 잔치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은 그 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신새길 분)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오정혜 분)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수리품을 파는 틈틈히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줄고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던 중 동호는 어미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자 유봉은 송화가 그 뒤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일을 사죄하고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와 만난다. 북채를 잡는 동호는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아비와 그 똑같은 북장단 솜씨로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헤어짐의 길을 떠난다.
17. 울릉도 유람선으로 둘러보기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서 137km,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217km 떨어져 있다. 오징어의 주산지로 유명하며, 해상 국민관광지로서 새로운 발전이 기대된다. 울릉읍·서면·북면 등 1개 읍 2개 면 9개 동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울릉읍 도동리.
울릉도는 신생대 제3~4기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섬으로서, 주도인 울릉도를 비롯해 깍새섬[觀音島]·죽도(竹島)·독도(獨島 : 동도·서도로 되어 있음) 등의 부속도와 삼선암·공암(구멍바위)·죽암단바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각형으로 된 섬으로, 동서 길이 약 12km, 남북 길이 약 10km이며, 해안선 길이는 56.5km이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성인봉(聖人峰 : 984m)이 있다.
18. 울릉도 내륙관광
울릉군지역은 6세기초까지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나, 512년(지증왕 13)에 신라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인 이사부(異斯夫)를 파견해 정복하면서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때는 울릉도가 우산국(于山國)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 무릉(武陵)·우릉(羽陵)·우산(芋山)·우릉(芋陵)·무릉(茂陵)·울릉(蔚陵)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고려초인 930년(태조 13)에 울릉도에서 백길(白吉)·토두(土豆)를 파견해 그 지방의 산물을 바치고, 1018년(현종 9)에 동여진(東女眞)의 침입을 받아 농업이 거의 황폐해진 이곳에 이원구(李元龜) 등을 보내 농기구를 전해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본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와 지지 등에는 현재 독도라 불리는 우산도(于山島)가 울릉도와 함께 기록되어 있어 독도에 대한 분명한 영토의식이 나타나 있다. 1614년(광해군 6)에 일본이 울릉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해 두 나라 사이에 분쟁이 야기되었다. 그러나 1693년(숙종 19)에 동래 사람 안용복(安龍福)이 일본에서 활약하여, 결국 1697년 일본에게서 울릉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실히 인정받아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19. 공주 계룡산 동학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절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사찰이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다.
1394년 고려의 유신 길재(吉再)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1457년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東鶴寺)라고 사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20. 강진 다산초당
전남 강진군(康津郡) 도암면(道岩面) 만덕리(萬德里) 소재.
유적의 중심이 되는 다산초당(茶山草堂)은 5칸 도리단층의 기와집으로, 측면 2칸은 뒤가 거실이며, 앞이 마루로 된 소박한 남향집인데, 처마 밑에는 원판이 없어져 뒤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茶山草堂>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만덕산(萬德山)에 자리 잡고 강진만을 한눈으로 굽어보는 이 다산초당은 다산이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유배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1년간을 이곳에서 유배생활 하시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성함으로써 문화재로서 빛을 더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초당은 붕괴되어 1958년에 강진의 다산유적보존회가 주선하여 원래의 주초(柱礎) 위에 현재의 초당을 중건하였다.
또, 정석(丁石) ·다조(茶竈) ·약천(藥泉) ·연지(蓮池) 등 이른바 <다산사경(茶山四景)>이 있는데, 정석은 다산이 석벽에 친히 글씨를 새긴 것이고, 다조는 뒷담 밑 약천의 석간수(石澗水)를 손수 떠다가 앞뜰에서 차를 달이던 청석(靑石)이며, 연지는 초당 동쪽 앞에 수양을 늘어뜨린 아담한 못으로, 그 안에 몇 개의 괴석을 쌓아 석가산(石假山)을 쌓았다.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유배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1년간을 유배생활 하시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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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이산에 돌탑과 절 풍경이 너무 좋아 보였어 언제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여기에 홍보를 해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