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극장가의 진정한 빅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양한 영화들이 각축을 벌일 한여름 극장가. 선선한 추석이 오기 직전까지 우리를 찾아올 여름 영화들을 만난다.
몬스터 & 로봇 주식회사 <반헬싱> vs. <아이, 로봇>
<투모로우>와 <슈렉 2>, 그리고 <스파이더맨 2>로 불붙은 여름 블록버스터 대전은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거쳐 이제 같은 날 개봉하는 <반헬싱>과 <아이, 로봇>의 대결로 정점을 이룰 참이다. '뱀파이어 헌터' 반 헬싱과 2035년의 로봇 추적 형사 델 스푸너, 이것은 바로 과거와 미래의 한판 대결이자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이다. <반헬싱>의 스티븐 소머즈 감독이 <미이라>(1999~) 시리즈 등 과거 시제의 현란한 스펙터클에 유독 강점을 보여 왔다면, <아이, 로봇>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크로우>(1994)와 <다크 시티>(1998)로 음울한 고딕풍의 미래 사회를 그려내는 데 발군의 실력을 과시해 왔다. 두 영화는 올해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 가장 시간 차가 큰 영화들이기도 하다. 주연 배우 휴 잭먼과 윌 스미스의 상반된 매력 또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반 헬싱(휴 잭먼)은 악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 신의 이름으로 처단을 내리는 신의 사제다. 늘 살인자라 비난받으며 숨어 지내야 하는 것은 그에게 내린 저주다. 그러나 왜 이런 운명을 타고났는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에게 7년 이전의 기억은 없다. 어느 날, 바티칸 성당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그는 트란실바니아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드라큘라 백작이 400년 만의 부활이라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반 헬싱은 안나 공주(케이트 베킨세일)를 만난다. 그녀는 가문의 명예를 걸고 드라큘라와 전쟁을 해온 발레리우스가의 마지막 후예다. <미이라> 시리즈의 법도 질서도 없는 스펙터클과 키치적인 매력은 <반헬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드라큘라뿐 아니라 늑대 인간과 프랑켄슈타인 등 온갖 서구의 괴물이란 괴물은 모두 <반헬싱>에서 재림한다. <케이트 & 레오폴드>(2001)의 댄디한 백작 휴 잭먼이 이제 시커먼 망토를 둘러쓰고 사냥에 나선다. 애초에 스티븐 소머즈의 목표가 <젠틀맨 리그>(2003)와 <언더월드>(2003)의 업그레이드였다 할 정도로 <반헬싱>은 ILM의 특수 효과를 등에 업고 시종일관 숨가쁜 스펙터클로 돌진한다.
2035년, 인간은 지능을 갖춘 로봇에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봇 3원칙'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인간을 위해 요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삶의 동반자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용 개인 로봇 NS-5의 창시자인 래닝 박사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카고 경찰 델 스푸너(윌 스미스)는 로봇 심리학자 수전 캘빌 박사(브리짓 모나한)와 함께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 안전하다고 믿었던 로봇에 의한 범죄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스푸너는 로봇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아이, 로봇>을 신뢰할 수 있는 두 가지는 바로 윌 스미스와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다. 총제작을 맡은 윌 스미스는 SF영화의 흑인 주인공이라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 주고, 알렉스 프로야스는 SF 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방대한 원작 <로봇>에 새로운 해석과 미래형 비주얼을 더한다. 하나 더, 미래의 비밀의 쥐고 있는 로봇이자 100% 디지털 캐릭터 '써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골룸의 아성에 도전한다.
사면초가에 빠진 톰 행크스와 맷 데이먼
<터미널> vs. <본 슈프리머시>
<터미널>과 <본 슈프리머시>는 모두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그린다. 그런데 대결의 양상이 무척 흥미롭다. <터미널>이 의심할 바 없는 할리우드 최고의 파워맨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라면, <본 슈프리머시>는 놀랍게도 북아일랜드 사태를 다룬 <블러디 선데이>(2002)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폴 그린그래스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거치며 완숙한 장인의 경지에 다다랐고, 폴 그린그래스 또한 누구보다 탁월한 연출가다. 더욱 눈여겨 비교해볼 것은 바로 배우들이다. <터미널>의 주인공이 미국의 '국민 배우'라 칭해도 아깝지 않을 톰 행크스라면, <본 슈프리머시>의 주인공은 인디와 메이저를 자유로이 오가는 영원한 아이돌 맷 데이먼이다.
빅터 나보르스키(톰 행크스)는 부푼 꿈을 안고 동유럽의 가상 국가 크라코치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다. 하지만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조국 크라코치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공식적으로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으로 입국하지도 못하고 조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빅터는 공항 터미널에서 생활해야 하는 눈물겨운 처지에 직면한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서도 그는 공항 직원들과 가까워지고 여승무원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터미널>은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 간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현실의 문제를 초월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흡수해 버리는 빅터의 유머와 훈훈한 인간성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속편과도 같은 느낌의 작품.
전직 CIA 암살 요원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전편 <본 아이덴티티>에서의 모든 악몽을 끝내고 연인 마리(프랭카 포텐테)와 그리스의 한 섬에서 조용히 지낸다. 그러나 CIA는 제이슨 본과 관련된 사건이 터지자 그를 다시 영입한다. 거기엔 전편보다 더 숨막히는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고>의 덕 리만이 연출한 <본 아이덴티티>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향후 이 시리즈의 롱런을 위해 폴 그린그래스에게 연출을 맡긴 것은 의미심장한 선택이다. <블러디 선데이>에서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을 능가하는 리얼리티와 박력을 느꼈다면 <본 슈프리머시>또한 최고의 기대작이 될 것이다.
악당마저 압도하는 기괴한 카리스마
<헬보이> vs.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
헬보이와 리딕은 올여름 찾아올 할리우드 주인공들 중 가장 무지막지한 존재들이다. 악당마저 외모로 제압할 정도로 '한 인상'하는 이들은 한편으로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이기도 하다. <헬보이>의 주인공 론 펄먼은 이미 네안데르탈인을 연상케 하는 기괴한 외모로 기억되는 배우이고,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하 <리딕>)의 빈 디젤은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 등 '대머리 양아치' 이미지로 너무나도 찬반 양론이 격렬한 컬트 스타다. 흥미로운 사실은 <헬보이>의 주인공으로 처음 거론된 배우가 바로 빈 디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 극장가에 다소 낯선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흥행의 귀추가 주목되는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에서 수세에 몰린 나치는 러시아의 흑마술사 라스푸틴을 고용, 지옥의 악마를 불러와 전세를 역전시킬 음모를 꾸민다. 이때 간발의 차이로 지옥에서 지구로 불려온 헬보이(론 펄먼)는 브룸 박사(존 허트)에게 인도되어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닌 동료들과 함께 악에 맞서는 전사로 성장한다. 마이너급 만화 출판사인 다크호스코믹스에서 출판된 동명의 만화 '헬보이'는 독특하고도 암울한 분위기로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크로노스> <미믹> <블레이드 2> 등으로 이미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보여 준 바 있다.
<리딕>은 전편 <에이리언 2020>으로부터 5년 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잔악하기 이를 데 없는 네크로몬거족은 평화로운 헬리온 행성을 다음 표적으로 삼는다. 위기에 처한 헬리온 행성의 지도자 애리온(주디 덴치)은 우주 최고의 범죄자 리딕(빈 디젤)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한다. 할리우드의 '논스톱 킬링 타임' 무비의 영웅 빈 디젤의 이미지는 바로 <리딕>의 전편인 <에이리언 2020>으로부터 시작됐다. B급 액션 스타의 이미지가 여전한 그에게 <리딕>은 가공할 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다.
누가 누가 더 세나?
<프레디 VS 제이슨> vs.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영화 팬들의 하나 마나한 질문들.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리고 프레디와 제이슨 중 누가 더 무서울까? 그런데 올여름 우리는 이러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레디 VS 제이슨>에서는 <13일의 금요일>(1980~) 시리즈의 살인마 제이슨과 <나이트메어>(1981~) 시리즈의 칼날 살인마 프레디가 함께 살인을 일삼다 결국 결투를 벌이고,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역시 에이리언과 프레데터 사이에 얽힌 오래된 비밀을 들려준다.
프레디 크루거(로버트 잉글런드)는 하키 마스크를 쓴 킬러 제이슨(켄 커징거)을 부활시켜 엘름가로 보낸다. 프레디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안 제이슨은 분노하게 되고, 마침내 두 살인마의 혈투가 꿈과 현실을 오가며 계속된다. <백발마녀전>(1993)의 우인태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 후 <처키의 신부>(1998) 등을 만들며 주목받던 중, 결말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조건에 감독직을 수락했다. 프레디 역을 도맡았던 로버트 잉글런드가 이번에도 반갑게 등장하지만, 제이슨 역은 '원조' 케인 호더 대신 <13일의 금요일 8>에서 스턴트 코디네이터를 했던 켄 커징거에게 돌아갔다.
비숍(랜스 헨릭슨)이 이끄는 탐험대는 남극 빙하 밑에 잠겨 있던 피라미드를 발견한다. 각종 유물을 발굴하던 중 그들은 시계와 비슷하게 생긴 장치가 부착된 석관을 발견한다. 그들은 호기심에 석관에 부착된 장치를 작동시키다 관문을 열게 된다. 그곳은 바로 에이리언과 프레데터, 두 외계 생물체 간에 끔찍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할리우드 진출 이후 <이벤트 호라이즌>(1997)과 <레지던트 이블>(2002) 등 SF 호러 장르에 일가견을 보여 온 폴 앤더슨 감독이 엄청난 모험에 뛰어들었다. 거대한 피라미드 세트장은 영화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참고로 랜스 헨릭슨은 <에이리언>(1979)에서도 사이보그 비숍을 연기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슈퍼스타 감사용> vs. <바람의 파이터>
한국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이 차례차례 스크린에 불려 나오고 있다. 장진영이 연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청연>), 몸무게를 23kg이나 불린 설경구가 연기하는 일본에 귀화한 조선인인자 일본 프로 레슬링의 전설 역도산(<역도산>) 등, 그들은 우리가 미처 잊고 지내던 이름들이다. 올여름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올 영화들은 바로 <슈퍼스타 감사용>과 <바람의 파이터>다. 한 명은 하루하루 패배가 삶이었던 무기력한 운동 선수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세계를 돌며 무수한 시합을 벌이면서도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다혈질의 무도가였다. 이들 영화는 복고주의 유행의 연장이기도 하면서 '기록'과 '해석'의 역사가 드물었던 한국 영화계에 의미심장한 시도로도 기억될 것이다.
프로 야구 원년이던 1982년, 감사용(이범수)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가 된다. 삼미는 개막하자마자 꼴찌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고, 감사용 역시 선발 등판 한번 하지 못하고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낙인찍힌다. 팀에 패색이 짙어지면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마무리 투수. 상대팀은 감사용이 나오면 감사해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최강팀 OB 베어스와의 시합, 그것은 OB의 간판 스타 박철순이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였다. 누가 봐도 질 게 뻔하기에 서로 등판을 미루던 가운데 기회(?)는 감사용에게 넘어온다. 드디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사용은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에는 단 한 명의 슈퍼스타도 없었다. 키 170cm에 볼품없는 체격, 12연패라는 불멸의 기록을 가진 감사용은 5년 동안 1승 15패 1세이브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겼다. 현재 47세인 실제 감사용은 자랑할 만한 경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뜻 영화화를 승낙했고, 어릴 적 열혈 OB 팬이었던 신인 김종현 감독의 머릿속에는 박철순과의 대결이 불현듯 클라이맥스로 떠올랐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바로 세상의 모든 꼴찌들에게 바치는 가슴 따뜻한 만가다.
1935년 전북 김제. 열두 살 소년 최배달(양동근)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위로를 받으며 견뎌 낸다. 그러나 선생님은 호국근로대로 징집당하고 연모의 편지를 건네려던 배달은 목을 매고 자살한 선생님의 시체를 목격한다. 청년으로 성장한 최배달은 일본으로 건너간다. 부당한 차별 속에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아름다운 게이샤 요우코(히라야마 아야)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조선인 학교 건립을 꿈꾸던 그는 범수(정두홍) 등 친구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산에 들어간다. 살인적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배달은 일본 유수의 가라테 도장들을 하나씩 격파해 나간다. <바람의 파이터>는 바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 동안 스포츠지를 통해 연재됐던 방학기 작가의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최배달은 일제시대 일본에서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로 일본 무술계를 제패했던 실존 인물이다. <넘버 3>에서 조필(송강호)의 그 유명한 대사 "너 소냐? 나... 나... 나, 최영의야!"에 등장하는,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았다던 전설의 최영의가 바로 최배달이다. 당초 가수 비와 유민이 남녀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으나 영화 제작 지연으로 인해 중도 하차하고, 양동근과 <워터보이즈>의 일본 여배우 히라야마 아야로 교체됐다.
이병헌과 권상우, '몸짱'의 대결
<누구나 비밀은 있다> vs. <신부수업>
충무로의 대표 '몸짱'들이 대결을 벌인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이병헌과 <신부수업>의 권상우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대결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이병헌이 타고난 매력을 발산하며 세 '프리티 우먼'의 사랑에 둘러싸인 남자라면, 권상우는 딱딱하고 정갈한 유니폼에 금욕적인 생활로 신부 서품을 앞두고 있는 모범 신학생이다. 마음껏 욕망을 분출하는 남자와 참고 또 참는 남자, 이들의 변신 아래 충무로 로맨틱 코미디는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여 줄까?
매력남 수현(이병헌)을 둘러싸고 유부녀인 첫째 진영(추상미), 학구파인 둘째 선영(최지우), 자유 연애주의자인 셋째 미영(김효진), 이렇게 세 자매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인다. 막내의 애인으로 시작했던 수현은 이제 세 자매와 비밀스런 애정 행각을 벌이게 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영국 워킹 타이틀 영화사의 <어바웃 아담>(2000)을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게임의 법칙> <라이방> 등 주로 남성적인 색채가 뚜렷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장현수 감독은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통해 변신을 꾀한다. 워킹 타이틀표 로맨틱 코미디는 충무로의 새로운 유행이 될 수 있을까?
일등급 신학생 규식(권상우)은 여름만 지나면 신부 수업이 끝날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교황이 성축한 '성작'을 깨뜨리는 대형 사고를 친 규식은 날라리 신학생 선달(김인권)과 함께 치욕스런 영성 강화 훈련의 주인공이 된다. 급기야 성당에서 술 취해 잠든 여자 봉희(하지원)를 쫓으려다 첫키스를 빼앗기고 만다. 규식에겐 봉희에게 세례를 받게 하라는 임무 또한 주어진다. <신부수업>은 권상우와 하지원의 만남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다. 거기에 천변만화하는 성당 주변 인물들이 그들의 사랑에 끼어든다. 지난달 운명을 달리한 배우 김일우가 항암 치료를 받으며 출연한 유작이기도 하다.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의 공포
<분신사바> vs. <알포인트>
<분신사바>와 <알포인트>가 전하는 공포는 바로 '공간'에서 비롯된다. 올여름 찾아올 한국 공포영화들 중에서 이들 영화는 특정 공간이 영화 속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분신사바>의 음산한 학교 건물과 <알포인트>의 정글 속 쇠락한 프랑스 저택은 인물들을 끊임없이 옥죄어 온다. 누구나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학교와 저택 모두 버림받은 영혼들로 가득 찬 죽음의 블랙홀이다.
서울에서 전학온 유진(이세은)은 아이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해 영혼을 부르는 죽음의 주문 '분신사바'를 외운다. 그러나 주문은 현실이 되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같은 반 친구들이 한 명씩 죽어나간다. 게다가 새로 부임온 미술 교사 은주(김규리)의 눈에만 존재하지 않는 29번 학생 인숙(이유리)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병기 감독은 <가위>(2000)와 <폰>(2002) 단 두 편만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공포 친화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분신사바'는 바로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공포 놀이다. 한국 사회의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로부터 공포를 끌어내는 안병기 감독의 재능은 <분신사바>를 단연 주목하게 만든다.
베트남전쟁의 막바지,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부대원들 중 혼자 살아남아 격한 괴로움에 시달린다. 설상가상으로 본대 복귀 요청은 거절되고 부대장은 그에게 비밀 수색 명령을 내린다.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알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 대원들로부터 계속 구조 요청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최중위를 포함한 생존 병사 9명은 실종된 병사들의 흔적을 찾아 알포인트에 들어간다. <알포인트>는 밀림 속 대저택을 중심으로 극한의 고립감을 다룬다. 그것은 전쟁 상황 속에서 공포 이전에 절실한 생존의 문제기도 하다. <하얀전쟁> <텔 미 썸딩>의 시나리오를 썼던 공수창 작가가 험난한 감독 신고식을 치른다.
임은경 vs. 임은경
<인형사> vs. <시실리 2Km>
임은경의 이미지에는 이상하게도 현실감이 없다. CF를 통해 빚어진 '신비 소녀' 이미지에는 현실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견고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임은경의 비현실감을 웃음 혹은 공포의 수단으로 차용하는 영화 두 편이 올 여름 우리를 찾아온다. <인형사>에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마다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소녀로, <시실리 2Km>에는 애꿎은 죽음을 당한 원귀로 출연한다. 역시 임은경의 존재 자체가 영화 속의 장애물이자 열쇠인 영화들이다.
조각가 해미(김유미)와 영하(옥지영) 등 인형 마니아들이 외딴 숲 속의 인형 미술관으로 초대된다. 이 다섯 사람을 불러들인 미술관 최관장(천호진)은 이들을 모델로 마치 산 사람처럼 움직이는 구체관절인형을 만들 심산이다. 하지만 단 하룻밤을 머물며 모델이 돼주기로 했던 이들은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미술관 주변을 배회하는 미지의 소녀 미나(임은경)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다. <인형사>는 버림받은 인형들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인형들이 공포의 증인이 되어 인간들을 에워싼다. 아마도 구체관절인형이 된 임은경의 섬뜩한 모습은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들 중 자신의 인공적 이미지에 가장 잘 들어맞는 듯하다.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를 들고 도망친 석태(권오중)는 교통사고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실리에 불시착한다.마을 사람들의 환대 속에 석태는 시실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확인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어이없이 낙상해 질식사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마을 주민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인 누명이 두려워 어딘가에 묻기로 결의한다. 한편, 석태의 배신에 그를 쫓던 양이(임창정)가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시실리에 도착하게 된다. 코믹 호러를 표방하고 있는 <시실리 2Km>에서 임은경은 어처구니없게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귀신이다. 임은경은 <시실리 2Km>에서 가장 야심적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또한 가장 코믹한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임은경은 <인형사>와 <시실리 2Km>를 통해 과연 자신의 욕심처럼 올해의 '호러 퀸'이 될 수 있을까? |
첫댓글 우와~ 진짜 많다 ㅋㅋㅋㅋ 임은경 너무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