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피붙이의 소중함
윤 경 희
2014년의 끝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휴대폰의 대화방--카톡에서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인들의 연락이려니’ 짐작을 하고 열어보니 대부분이 그런 인사였는데, 그 중에 하나, 화들짝 반가운 문자가 눈에 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이질녀--언니의 딸--의 연락인데 “오랜만에 가족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이모가 꼭 보고싶다” 며 서울에 올라올 수 있느냐? 는 문자이다. 언니는 결혼이후 쭈-욱 서울에서 살았고 3남매를 뒀는데, 특히 막내인 이 녀석이 유난히 살갑고 다정스러워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결혼을 한 이후 시댁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얼굴을 못 본지 몇 년이 된지라, 두 말없이 “올라 가겠다” 라고 회신을 보냈다. 페이스 북으로 어느 정도, 근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얼굴을 본 지는 오랜만이라 훌쩍 자란 아이들도 보고싶고 이질녀 내외의 모습도 궁금했다.
다행히 집에서 신정을 쇠지않는 관계로 대충 정리를 한 이후, 서울에 가니, 질녀내외와 아이 남매, 4식구가 와 있고 집안이 들썩이는데 이질녀는 반가워서 내 목을 끌어안고 “키모, 키모” 릍 외치며, 반가워서 펄쩍펄쩍뛴다. 언니네 아이들이 부르는 내 호칭은 “키모” 인데, 어렸을 때, 나는 큰 이모, 동생은 작은 이모로 구별하도록 가르쳤지만 큰 이모라는 발음이 힘들어 어느 순간부터 “키모” 로 바뀌었고 몇 십년을 그렇게 불리우고 있다. 더 재미있는 호칭은 이 녀석의 아이 남매가 부르는 내 호칭이 “똥파리 할머니” 이다. 5년 전쯤, 이 가족이 들렸을 때도 올라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루해할 때 가르쳐 준 재미있는 노래와 동작이 있었는데,
갈대밭에는 갈대가--“바람님, 간지러워요”
부뚜막에는 고등어--“아이 뜨거워, 돌아누워야지”
화장실에는 똥파리--“나는 봤다. 나는 봤다” 라는 단순한 노랫말과 귀여운 동작을 가르쳐주니 아이들이 열광을 한 이후 내 호칭이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미국에 가서도, 늘 나는 그렇게 불리웠단다. 정작 나는 세월이 흘러 이 노래와 동작을 다 잊어버렸는데, 아이들에게 이번에 다시 배웠다.
모처럼 귀국한 이 아이들, 모국을 다시 느끼고자, 다음날은 북촌에 있는 한국의 古家들과 미술관을 둘러보고, 전통한식으로 식사를 하는데, 비지찌개와 초당부두를 얼마나 맛있게들 먹어대는지??? 역시 핏줄은 외면할 수가 없나? 보다. 다음 날은 내가 추천한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시회를 관람하고 옆 건물의 우리 나라 역사관을 둘러보며 현재 3학년인 열렬한 내 팬인 이종손녀(?}에게 나라사랑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했다. 주말에 한글학교엘 보내고 집에선 우리말을 사용해서,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는 젊은 부부에게 당연하지만 고맙기도 한 마음이다. 영어배우기에 올인을 하는 국내의 형편을 생각하면 失笑가 나오기도 하고...
주말에 “가족들끼리 강원도쪽으로 스키여행을 간다” 며 동행을 요청하는 이질녀에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내려가야 한다” 는 내 말에 이종손녀는 “할머니, 미워” 를 연발했지만, 그런 아이를 보며, ‘피붙이의 당김이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下邱를 했지만 뒷꼭지가 당기기는 했다. 자주 만나서 情을 나누는 것도 소중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정겨운 사연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피붙이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주변을 돌아보고 베풀 수 있는 마음가짐들을 가지면 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룰 수가 있지 않을까?
경제적인 발달과 사회적인 성과는 이루었지만 인간다운 품성과 정다움을 잃어가는 각박한 사회를 돌아보는 시각을 회복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동방의 예의지국” 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느 새, 바뀌어 버린 2015년, 매스컴에서는 새해의 계획발표와 정책구상으로 요란하지만 정작 되찾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새로운 해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2015 . 1. 3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이질녀들이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면 더욱 즐거운 만남이 될것입니다.
답글이 늦었네요. 왕성한 활동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