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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운탄고도 5길 트레킹 후기
일시: 2023. 04. 16
참석: 109명 (25회 10명)
산행: 10 Km (3시간)
운탄고도 1330 트레킹 길
황사가 심한 날, 5년만에 정선의 만항재를 찾아 운탄고도 5길을 걸었다.
운탄고도(運炭高道)는 원래 ‘석탄을 나르던 높은 길’이라는 뜻이지만, 구름도 머물다 가는 1100∼1300m 고원지대라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린 고원의 길’ 이라는 의미로 운탄고도(雲坦高道) 라고도 불린다. 최근에 강원도가 관광용으로 붙여준 이름이라 멋지고 낭만적이지만 석탄을 캐던 그 시절엔 막장 광부들의 절박한 삶의 터전이었다.
민둥산에 사방공사와 산림녹화 사업을 벌이고 낙엽 긁는 것도 단속하던 시골 국민학교 시절 1960 년대부터 대학졸업후 직장생활 하며 서민 주택에 살던 1980년대까지는 연탄이 국민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운탄고도는 그 시절 연탄 원료인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트럭이 다니던 길이었다.
이 길은 5.16구테타 후 석탄을 탄광에서 함백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2,000여명의 국토건설단을 동원하여 삽과 곡괭이로 1962년에 만들었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일대의 탄광이 폐광되면서 이 길도 버려졌다. 사람의 발길이 없으니 수많은 야생화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제는 이 길을 사람들이 힐링 하기 위해 찾아와서 걷는다. 강원도가 탄광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지역을 개발해 관광명소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중 하나가 ‘운탄고도1330’ 트레킹 길이다. 전체 길 중 가장 높은 만항재의 높이 1330m를 ‘운탄고도 1330’ 이름 속에 표현했다.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는다’는 영월의 청령포에서 정선, 태백을 거쳐 삼척의 소망탑까지 한때 그 지역과 국가 산업부흥을 이끌었던 폐광지역 4 군데의 석탄 운송길, 관광명소와 자연 숲길 등을 연결한 트레킹 길로 평균 고도는 546m, 전체 길이는 173.2 Km에 달한다. 폐광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고, 강원도 산의 웅장한 모습과 원시 숲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 길은 총 9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모든 코스를 걷으려면 8박 9일이 걸린다.
오늘은 운탄고도 9길중 가장 높고 멋있다는 5길을 3분의 1정도 걷고 원점 회귀하였다.
구불구불 산으로 파고든 길숲에는 봄물이 오른 낙엽송, 신갈나무 등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고, 정암산 능선에 줄지어 서있는 100m 높이의 풍력발전기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 고도에서 발 아래로 깔리는 구름 한 점, 산 하나 못 보고 약수터에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결국 약수터를 지나 시야가 트인 곳까지 갔다 오고야 말았다. 황사가 하늘을 뒤덮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의 특유의 산골짜기와 웅장한 산 모습, 그리고 정암산 능선에 우뚝 솟은 풍력발전기들의 또다른 멋진 모습을 즐겼다.
화절령까지 완주는 못하였지만 지난날 국토건설단이 흘린 땀과 눈물 위로 검은 먼지 날리며 트럭들이 달렸던 길이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와 걸기를 통해 힐링 하는 길, 운탄고도로 완전히 탈바꿈되었음을 실감하였다.
누군가는 외국의 명품길을 차용해 ‘한국의 차마고도’ 혹은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고 말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강원도가 고심 끝에 붙여준 멋진 이름, ‘운탄고도1330’이라고 제대로 부르자. 그리고, 시간이 나면 다른 길도 찾아가 걷고 힐링 하자.
정선 만항재로 가는 길
서울에서 운탄고도의 길목인 정선의 만항재로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7시 20분, 강변역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의 치악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제천IC에서 빠져나가 38번 국도로 영월, 사북을 거쳐 고한으로 가야 했다. 4월 중순, 세상은 온통 황사가 뒤덮혔지만 버스 창문 밖 도로는 연두색 신록으로 가득했고, 강원 산골은 이제야 벚꽃, 복사꽃 등이 피어 화사한 꽃무리가 여기저기 보였다.
5년만에 산골 도시인 사북, 고한을 지나며 보니 강원랜드 카지노, 하이원 스키장 쪽은 여전한데 읍내는 많이 바뀌었다. 새로 길도 뚫리고 공사중이었던 고층아파트, 호텔들은 멋지게 완공되었고, 또 새로운 호텔이 건설중이었다.
버스는 고한읍내 끝자락 태백선수촌 안내판과 정암사 안내 비석이 서있는 상갈래 교차로를 지나 414번 지방도를 따라 만항재를 향해 올라갔다. 414번 지방도는 고한의 상갈래 교차로와 태백의 화방재를 잇는 ‘하늘 아래 첫 고갯길’로 전국에서 제일 높은 구곡양장 드라이브 코스이다.
상갈래 교차로를 지나서는 도로와 철로가 섞여 있어 여러 개의 굴다리를 우로 돌고 좌로 돌고 또 우로 돌아 지나갔다. 여전히 첫번째 굴다리 벽에는 오래된 볼거리 그림이 있다. 414 지방도 주변에는 삼탄아트마인, 정암사, 만항재 등 볼거리가 많이 있다.
삼탄아트마인에 다가서면서 우측 산중턱에 우뚝 솟은 수갱타워가 보였다. 옛삼척탄좌의 승강시설로 삼탄아트마인의 상징이 되었다. 삼탄아트마인은 옛삼척탄좌 시설을 복원하고 예술과 스토리를 접목시켜서 새로운 전시장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입구의 빨간 문이 특이하게 생겼다.
정암사는 삼탄아트마인 입구를 지나 건너편에 있다. 버스에서는 정암사 일주문, 건물 지붕과 담, 그리고 길가의 정암사 표지석, 그 뒤로 산중턱에 높이 솟은 국보인 수마노탑 일부가 보였다. 정암사는 국내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만항마을의 도로변 담벼락의 야생화 그림이 이제는 없어졌다. 폐광촌 만항마을이 야생화마을로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15년전부터 개최한 함백산 야생화축제의 성공 때문이다. 이 마을의 야생화만큼 또 유명한 것이 토종닭 음식과 옥수수엿 술이다. 마을이 해발 1100 m 고지대에 있는데 어느 평범한 산골마을 같다.
만항재 전설과 산상의 화원
만항마을 지나 큰 굽이를 돌고, 낙엽송 단지 작은 굽이를 돌아 오르면 만항재이다.
강변역을 출발하여 3시간 10분만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서울과 다른 시원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만항재 휴게소, ‘백두대간 만항재’ 표지석과 ‘산상의 화원 만항재’ 입간판이 보이고, 높다랗게 달려있는 강원도 도로관리사업소 태백지소 간판이 제대로 알려준다.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 만항재 정상입니다. 해발 1330 m’
만항재는 태백산(1567m) 줄기가 함백산(1573m)으로 뻗어 오르다 힘에 부쳐 살짝 주저앉았다가 힘 모아 함백산을 넘어서 두문동재로 빠져나가는 백두대간의 그 살짝 주저앉은 곳, 해발 1330 m에 위치한다.
휴게소는 정선, 화장실은 영월, 함백산 자락은 태백 땅인 것처럼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백두대간의 길목이고, 운탄고도 5길의 종착지이자 6길의 출발지이다. 함백산이 지척이라 함백산 산행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만항재는 멸망한 고려 충신들이 함백산 기슭 두문동에 은거하여 두문불출 생을 보내다 이곳에 와서 개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담긴 고개다. 망향이 발음하기 쉬운 만항으로 변했다는 설과 원래 이름인 ‘늦은 목이’를 한지로 표기해서 늦을만(晩), 목항(項)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만항재 일대는 높은 고도에 비해 비교적 평평하고 넓었다.
정선군에서는 이미 낙엽송이 조림되어 있던 만항재 일대에 추가로 ‘천상의 화원’과 ‘하늘숲 공원’을 조성해 엄청나게 많은 야생화를 심었다. '천상의 화원'은 만항재 표지석 뒤의 숲속에 있고, '하늘숲 공원'은 도로 건너편의 숲속에 있다.
만항마을의 야생화공원부터 이들 산상의 화원 일대는 곰배령, 금대봉에 버금가는 국내 최대규모의 야생화 군락지이다. 정선군에서 함백산 야생화축제를 위해 인공적으로 관리하는 편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300여종의 야생화가 끊임없이 피고 진다.
만항재 야생화 안내를 보면, 이른 봄 복수초, 선괭이눈, 봄엔 바람꽃, 얼레지, 한계령풀이 피고, 여름에는 노루오줌, 이질풀, 동자꽃, 꼬리풀, 모시대 등이 흐드러지고, 가을 무렵에 부처꽃, 오이풀 등이 핀다. 만항재의 야생화는 7~8월이 절정이라, 7월말 8월초 한여름에 ‘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만항재의 기온은 평지보다 약 5도 정도 낮다. 그 때문에 백두대간 솔바람 맞으며 낙엽송 숲속의 탐방로를 따라 만발한 야생화를 즐기는 한여름 피서지로 적격이다. 겨울에는 눈꽃과 상고대가 피고, 또 눈이 쌓이면 천상의 화원과 운탄고도는 신나는 눈썰매장이 되어 한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운탄고도 5길에 들어서다
만항재 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 선택한 코스별로 트레킹에 나섰다.
거리가 15.5 Km인 운탄고도 5길을 화절령에서 출발하면 거의 오르막이고, 역으로 만항재에서 출발하면 대체로 내리막이라 힘이 덜 든다. 현명한 산악회 집행부가 원정산행에서 시간을 단축하고자 다양한 4가지 선택코스와 함께 만항재를 출발지로 정했다.
A조는 운탄고도 5길 완주, B조는 약수터에서 원점회귀, C조는 야생화단지 탐방, D조는 함백산 산행이다.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게 한 것은 이번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 최고의 묘수였다. 25회는 C조인 인자를 제외하고 모두 B조이다.
운탄고도 5길의 입구에는 이정표와 안내판이 즐비하다. 백두대간 만항재 야생화탐방로 돌비석, 야생화공원과 운탄길 방향표시, 바람개비 달린 화절령 이정표, 올림픽 트랙로드 자작나무코스 안내판과 리본장착소 간판이 있고, 길 건너편에 혜선사 안내간판도 있다.
화절령까지 완주하는 동문들은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고, 우린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갔다.
출발부터 좌우에 시원하게 쭉쭉 뻗어 오른 낙엽송들이 보였다.
이 낙엽송의 원래 이름은 일본잎갈나무이다. 침엽수인데 잎은 가을에 붉게 단풍이 들었다가 낙엽이 된다. 탄광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갱목의 재료로 쓰였던 이 나무는 만항재, 운탄고도 곳곳에 엄청나게 많이 조림되어 있다. 수많은 낙엽송 속에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도 꼽사리 끼듯 섞여 있다.
운탄고도는 트럭 한 대 다닐 수 있는 임도인 줄 알았는데 2차선 도로만큼 널찍하였다. 무척 오랜만에 걷는 비포장도로라 어린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골 장터에 가던 고향의 옛 미루나무 신작로가 생각났다. 이 길은 포장하지 말고 계속 이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낙엽송 단지가 끝나고는 참나무 중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서식하는 신갈나무와 여러 활엽수 잡목들이 보였다. 봄물이 오른 일본잎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싹을 틔우려 준비중이다. 버들강아지는 밍크 솜털 터졌고, 생강나무는 꽃 지고 잎이 나왔고, 활엽수 나무는 갈색 여린 잎을 보였다. 서울에서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모두 진 4월 중순이지만 운탄고도에는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드문드문 나무 가지에 혜선사에서 매단 연등이 걸려있어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멋진 풍력발전기에 눈호강
길모퉁이를 왼쪽으로 크게 돌아서자 멀리 풍력발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비에 패인건지 눈에 패인건지는 몰라도 길의 반쪽이 패여 물이 고인 웅덩이에 나무들과 풍력발전기의 그림자가 아롱거리는 것은 비포장도로만이 가지는 멋으로 느껴졌다. 첫번째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걷다가 그 입구를 지나서는 두번째, 세번째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걸었다. 날개가 셋 달린 풍력발전기들이 한동안 눈호강을 시켜 주었다.
첫번째 풍력발전기의 입구에 기존의 이정표와 다른 ‘운탄고도 1330’ 만의 사각기둥 이정표가 서있다. 사각기둥의 초록색 판에는 길 번호, 방향과 거리, 9개의 길 표시와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다’가 써있다. 이런 이정표는 운탄고도 전구간에 세워져 있다.
바람을 맞아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합주하듯 ‘쉬이익 쉬이잉’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어찌 들으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 두번째 풍력발전기는 길가에 바짝 붙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 옆에서는 멀리 광활한 정암산 능선에 우뚝 서있는 풍력발전기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황사 탓이다.
풍력발전기를 옆에서 가까이 보기는 선자령 이후 두번째다. 높이가 100 m이고, 날개 하나 길이는 55 m로 풍력발전기 한 기에서 2.3 Mw의 전력을 얻을 수 있다. 정암 풍력발전단지에는 14기 있으니, 총 발전량은 32.2 Mw로 2만 2,000 가구에 일년동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세번째 풍력발전기를 왼쪽으로 돌아 지나가니 혜선사와 정암 풍력발전기 갈림길이다.
정암 풍력발전단지 갈림길
정암 풍력발전단지 갈림길에는 빨간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커다란 주황색판이 서있다. 새로 만들어 세워 놓았다.
운탄고도는 혜선사 방향의 숲길이다. 갈림길의 우측 안쪽에는 낙엽송보다 더 높이 우뚝 솟은 네번째 풍력발전기가 서있고, 그 뒤로 능선을 따라서 여러 개의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있다. 정비를 위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풍력발전기 옆으로 길게 이어졌다. 관계자 외는 출입금지이다.
‘언젠가 한 번 저 길을 걸어 봐야지!’ 5년전 함백산 정상에서 횡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와 풍력발전기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던 ‘저 길’은 운탄고도가 아니라 풍력발전기 정비를 위한 도로였다. 등산객들이 걸어갈 수 없는 길인데 헛물만 켜고 있었다!
갈림길 앞에서 장용이 벌써 짐 하나를 줄이려는듯, 달콤한 딸기 한 상자를 꺼내서 동기들, 가까이 있는 동문들과 나누어 먹었다.
혜선사 방향으로 들어섰다. 두위봉임도라 차량과 자전거는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우측 이정표 뒤로 지난 겨울까지 차박, 백패킹을 하던 공간이 사라졌다. 야영을 하며 야밤에 별과 은하수를 보고 하던 곳인데, 차도 사람도 못들어 가게 나무를 심어 놓았다.
혜선사 입구 약수터 가는 길
정암 풍력발전단지 갈림길을 지나서도 계속되는 내리막 숲길이다.
힘은 덜 들어 좋긴 한데 내려온 만큼 다시 만항재로 되돌아 올라갈 생각에 허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길은 정암산 능선을 우측에 두고 7∼8부 능선 숲속으로 구불구불 파고들며 길게 이어졌다.
이정표 옆이나 근처에는 항상 하이원리조트에서 세운 리본장착소와 시를 적어 논 간판이 있다. 시 간판은 드문드문 길가에 홀로도 서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하이원리조트에서 이 길을 트레킹 코스인 ‘올림픽 트랙로드’로 개발하면서 만들어 세운 것들이다. 시들을 모두 읽고 가기에는 갈 길이 바빴다.
사각기둥 이정표와 다른 운탄고도만의 상징 표식이 나타났다. 주황색 뚜껑의 짙은 초록색 원기둥에는 산과 한글, 영어가 어우러진 로고와 탄층을 형상화한 5개의 세로 줄이 있다. 제주 올레길과 차별화하여 강원도가 정성을 들인 깔끔하고 멋진 디자인이다.
운탄고도 5길은 홀로 사색하거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비포장도로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번갈아 나오고, 셀 수 없이 수많은 굽이를 구불구불 돌아갔다. 한 굽이가 끝났을까 싶으면 또다른 굽이가 바로 이어졌고, 어느 굽이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길가에는 지난 가을 낙엽송의 붉은 낙엽들이 양탄자 같이 덮혀 있었다.
계속 걸어도 시야가 트인 곳은 없고, 비슷비슷한 모습의 굽이 길이라 약간 단조로웠다. 숲 사이로 가끔 능선과 하늘이 보이며 숨통이 트였지만 대부분은 숲에 덮여 있었다. 아직 갈색에 머무른 숲속에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들, 하얀 자작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연두색 싹을 틔운 활엽수 나무들의 신록향기가 가끔 코끝에 맴돌았지만, 그 속에 봄꽃 향기는 없었다.
길가의 숲도 길만큼이나 자주 바뀌었다.
가지를 늘어뜨리며 쭉 뻗어 솟은 낙엽송 숲,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숲, 성냥갑처럼 빼곡히 들어선 자작나무 숲, 자유스럽게 자라는 신갈나무 숲과 뒤엉켜 자라는 잡목 숲, 순서도 없었다. 낙엽송은 거의 전구간에 걸쳐 보였다.
운탄고도 숲의 아름다움은 어울림에 있는 것 같다. 인공 조림된 낙엽송, 자작나무들 사이에 푸른 잣나무, 활엽수 잡목들이 섞여 있고, 무성한 신갈나무, 활엽수 잡목 숲에도 커다란 낙엽송, 잣나무, 자작나무들이 자란다. 수많은 인종갈등을 겪고 있는 인간 세상보다 자연은 스스로 조화롭게 잘 어울리며 사는 것 같다.
폐광에서 흘러 나오는 물인가? 길가에는 배터리도 있는 수문과 물이 고여 있는 도랑, 습지처럼 변한 숲도 보였다.
횡으로 길게 뻗은 정암산 능선이 보이면서 비교적 넓은 예전의 사거리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는 탄광길은 막아 놓았고, 왼쪽 옛 마을길은 아직 열려있다. 계속 직진하다가 굽이를 거의 90도 돌아 발아래로 혜선사로 가는 도로가 보이는 곳의 진달래 꽃들을 보며 내려가서 좌로 꺾으니 곧 약수터이다.
혜선사 입구 약수터
약수터는 운탄고도 5길의 가장 낮고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혜선사는 약수터에서 300 m 아래에 있다.
혜선사는 옛날 봉암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절이다. 그로 볼 때, 그 일대에는 제법 큰 탄광 마을이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만항재부터 톡톡히 길잡이 노릇을 하던 혜선사 표지판과 연등도 약수터가 마지막이었다.
아라리 고갯길 만항재에서 3.7 Km, 한 시간이 걸렸다. 화절령까지는 11.8 Km,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약수터까지 바쁘게 걸어와 숨 한번 돌리고 이정표의 화절령을 보니, 언젠가 들었던 정선 아리랑 한 구절이 생각났다. 탄광이 있던 곳, 석탄 운반 길이었던 이곳에서 호구지 탄광은 어디인지는 몰라도 정선 아리랑 속에 담겨있는 광부의 아내 사랑 만큼은 제대로 느껴졌다. 탄광 갱입구에서는 휘파람도 안분다!
꽃은 피나 안 피나 정선 화절령이요 ~, 꺽으나 안 꺾으나 영월 고갯길이라 ~,
호구지 탄광 갱입구에 휘파람 불지 말아라 ~, 꽃 같은 우리 님이 생과부 된다 ~ 아리랑 ~
약수터는 쉼터를 겸하여 멋지게 만들어졌다.
물 나오는 부분에 나무 뿌리를 다듬은 작품을 놓아 두었고, 물받이도 통나무를 파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약수는 음용이 불가다. 물받이통의 바닥 자갈과 약수터 옆의 정비된 도랑이 온통 붉은 갈색으로 변한 것을 보면서 약수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붉은 갈색의 도랑 앞으로 멀리 황사에 덮힌 장산의 정상부분이 칙칙하게 보이고, 왼쪽으로 혜선사 가는 시멘트 포장길에 연등이 보였다. 가고 오고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이곳에서 유일한 화장실은 혜선사에 있는 것 뿐이다.
약수터에는 24회 선배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뒤에 오는 많은 동문들은 다른 곳을 찾아 쉬어야 했다.
시야가 열린 지점에서 반환
쉴 자리를 찾아 약수터를 지나갔다.
먼저 온 21회 애수 선배, 30회 후배들과 일승이가 약수터 위쪽 길바닥에 자리를 잡으려고 앉았다가 내가 '전망 좋은 곳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자' 말하고 뒤에서 같이 올라왔던 친구들과 앞으로 나아가니, 30회 승호가 일어서며 한마디 했다.
"전망은 무슨 전망! 그냥 길바닥에서 먹읍시다! 힘들어 죽겠어요!"
솔직히 제일 높다는 운탄고도 5길에서 발아래 깔리는 구름 한 점, 산 하나 못 보고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웠다. 약수터부터는 왼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완만한 오르막 길이다. 약수터에서 5분거리에서 바로 시야가 트였다. 황사로 선명하지는 못해도 장산과 정암산 능선 쪽으로 시야는 트였다. 산중턱에 아담한 혜선사가 보이고, 그 옆으로 여러 길이 나있는 공터인 탄광마을터도 보였다.
우리나라 오지에 사람들이 살다가 떠나 빈집으로 방치된 마을은 많아도, 강원도의 폐광마을처럼 20~30년 단기간 영화를 누리고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인생이 그러하듯 이곳의 지나간 시간은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으로만 남을 뿐 절대 되돌려지지는 않는다.
돌비석 옆에 자리를 깔고 술 한 잔 나누며 간식을 먹었다.
간식만 먹고 슬그머니 먼저 일어나 혼자 조금 더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왔다.
오른쪽 가까운 산자락에도 지그재그 길들이 보이고 경사진 널찍한 빈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큰 마을이 있었던 곳 같았다. 산허리에 횡으로 길게 난 길은 이곳에서 계속 이어지는 운탄고도이다. 한때는 검은 석탄을 나르며 돈이 흐르던 길, 또 한때는 폐광으로 버려져 검은 어둠이 흐르던 길이 이렇게 힐링을 위한 트레킹 길로 변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줄이야!
'바람'이란 시 간판이 있는 곳이 또 조망장소이다. 강원도 특유의 산골짜기와 함께 거대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4년전 25회 이장용의 600번째 등산을 기념하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서 올랐던 장산(1409m)이 바로 눈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하산길의 급경사 내리막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산 아래 능선에도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 만항재에서 정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따라 줄지어 서있는 풍력발전기도 한층 멋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능선 가운데 뒤로 영산인 태백산의 머리부분이 살짝 보였다. 하늘의 구름까지도 멀리 보이는 것은 선명하지가 않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뒤덮고 있는 황사가 원망스러웠다.
자리를 정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는 재빨리 뒤돌아서 만항재로 향했다.
약수터의 위 아래 길가에서 많은 동문들이 흩어져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20회 선배들은 약수터와 우리들 자리 중간, 36회 후배들은 약수터 전의 길가, 24회와 35회 집행부는 약수터에 있다가 함께 만항재로 향했다. 한 번 지나왔던 길이지만 거꾸로 다시 걸으니 새로웠다. 내려올 때와는 반대로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 길이라 처음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허리가 부담이어서 갈수록 천천히 걷게되고 결국에는 제일 뒤로 쳐졌다.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으며 맨 뒤에서 천천히 홀로 걷다가 문득 ‘우리 인생길도 산길 걷는 것과 같구나!’라는 생각도 하였다.
평탄한 길도 있고, 질척이는 진흙탕 길과 험한 바윗길도 있고,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도 있고, 한 굽이 돌면 또다른 굽이 나오고 ---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좋은 친구들과 등산길도 인생길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비록 3분의 1밖에 안 걸었지만 운탄고도 5길은 길 자체로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지리산처럼 웅장한 맛, 설악산처럼 아기자기 빼어난 절경은 없지만, 정암산 어깨 숲속을 파고든 구불구불 넓은 길을 편안하게 걷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운탄고도 5길의 매력의 포인트는 쭉쭉 뻗어 솟은 낙엽송이다.
운탄고도 5길에서 봄 야생화는 아주 작은 꽃들 몇 종류만 만날 수 있었다.
황사도 있고, 구름도 껴서 야생화 찍기에는 광선이 안 좋았지만 혹시나 얼레지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길가 숲속을 눈여겨 보며 걸었다. 엘레지는 하나도 못보고 민들레 꽃과 산괴불은 많이 보았다.
뒤늦게 만항재에 도착하니 화장실 간 사람들과 아직 도착 못한 20회 선배도 있었는데 버스가 막 떠나갔다.
황당해 하고 있는데 사북읍 식당에 갔다가 사람들 내려 놓고 다시 온단다. 만항재 산상 화원과 주변들을 구경하며 한참을 기다려서 다시 올라온 버스를 타고 고한읍을 거쳐 사북읍 사북파출소 앞에 있는 황소실비식당으로 갔다.
갈비탕을 맛있게 먹고, 1호자는 먼저 떠났다. 답사를 2번이나 하면서 좋은 식당을 선택한 35회 후배들의 노력이 참 대단하다.
원래의 B코스 인원중 일부가 갑자기 A코스로 가는 바람에 A코스 총인원이 만차좌석을 넘었다. 그래서, 화절령에 먼저 도착한 3명을 승용차로 데려와 식사를 마치자마자 2호차에 태워 출발시켰다. 비상 상황에 집행부의 빠른 판단과 조치 덕분에 모두가 편안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해지기 전에 도착하여 25회 동기들은 간만에 맥주 한 잔 하였다. 산악회장도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30회 후배들과 같이 한 잔 하였다. 3호차도 강변역에 8시 30분경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다양한 산행코스와 맛있는 갈비탕을 준비하고 비상대처를 잘해준 35회 집행부 후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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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이런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감사하고 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승환 올림.
작고 소중한 들 꽃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운탄고도 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운탄고도 1330 트레깅 길을 완주 해 보고 싶다는 희망과 계획을 세워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