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생산, 판매하는 앞바퀴굴림의 고급 준대형세단. 1986년에 출시했고, 현재까지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용한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1세대와 2세대는 명실공히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쉽 모델이다. 대한민국의 부유층, 최상류층들이 타는 쇼퍼 드리븐 카의 대명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했던 지존파도 그랜저를 탄 사람들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1996년에 고급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다이너스티가 출시되고, 뉴그랜저를 이을 새로운 플래그쉽 모델로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중이었던 에쿠스 때문에 기존 2세대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1998년 출시된 3세대 XG는 오너 드리븐카로 급을 다소 낮추어졌다. 마르샤의 후속 베이스로 갈아탔으며, 다이너스티와 비교해도 차체가 약간 짧은 것을 제외하면 엔진 라인업 및 편의사양 부문에서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로 기존 2세대 뉴그랜저의 위상을 유지한 모델이었다. 1999년 에쿠스의 출시 이후 다이너스티는 3.5리터 모델이 단종되었기에 사실상 그랜저 XG와 엔진 라인업이 다를 게 없었다. 2005년 출시된 4세대 TG 부터는 사실상 쏘나타와 패밀리 룩을 이루게 되면서 이미지가 겹치기 시작하였고 2008년 윗급인 현대 제네시스의 등장으로 과거보다 고급 세단으로서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져 버렸다.
그랜저가 옛날에 비해 많이 대중화 되었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그랜저를 타고 유지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그랜저의 이름값은 아직까지 영향이 있다 보니 상류층 중에서도 그랜저를 선호하며 직접 타고다니거나 기사를 쓰면서 쇼퍼드리븐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국회의원중 검은색 그랜저를 타고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기업 임원들에게 법인 명의로 나오는 차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하위 임원직인 상무급을 중심으로만 사용 중이다. 법인 차량은 보통 현대 에쿠스, 기아 K9, 현대 제네시스 등의 대형 럭셔리 세단 위주로 도입되고 있다. 아슬란은 빼자관련기사
1세대 모델(통칭 '각그랜저')은 미쓰비시 자동차와 공동 개발하였다. 디자인은 현대자동차, 설계는 미쓰비시가 담당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현대자동차 그랜저,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데보네어-V로 출시했다. 여기서 "V"는 세대를 뜻하지 않는다.[1] " 브이" 라고 읽는다. 세대를 따지면 이 차는 데보니어의 2세대 모델. 등장하자마자 대우 로얄살롱 슈퍼를 밀어내고 대형차 시장의 왕좌를 차지했다. 초기 사양은 MPI 방식의 120마력 2.0리터 시리우스SOHC 엔진만 탑재한 사양이었으나 이후 2.4리터로 배기량을 올리면서 대우의 로얄 시리즈에게 역공을 했다. 기함 주제에 초창기에는 5단 수동변속기만 있었다가 얼마 뒤에, 국산차 최초로 록업 클러치가 장착한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를 선보인다.어찌보면 기함으로서는 당연한 게 이런 차는 '기사'가 몰지 '사장'이 몰지는 않으니까 본래 2.4리터에만 있다가 이후 2.0리터로 확대하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현재 일반적인 차량들이 사용하는, 구동계의 전반적인 전자 제어장치들을 당시엔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며 제시하게 된 국산차 중에서 당대 가장 현대적인 국산차라 할 수 있겠다. 아웃사이드 미러도 밖에서 수동으로 접는 방식이었다. 실내에서 스위치를 눌러서 접는 아웃사이드 미러(락폴딩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먼저 선보였다.
절정기에는 164마력 V6 3.0리터 SOHC사이클론 엔진을 단 "그랜저 V6 3.0" 까지 내놓았다. 이 차는 이전 그랜저보다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격자그릴에 투톤까지 적용하여 훨씬 중후해졌으며 편의사양도 대폭 늘려서 주목을 받았다. 그간 4기통 제한 조치로 인해 현대자동차에서는 쏘나타가 되었건 스텔라가 되었건 6기통 엔진을 쓸 수 없었으나 4기통 제한 조치가 풀리게 되자 현대로써는 그야말로 봉인하고 있던 능력을 푸는 기회가 되었다. 게다가 4기통 제한 해제 후 현대는 라이벌인 대우보다도 좀더 6기통 엔진 개발에 활발했다. 대우 임페리얼을 내놓기 전까지 17년 이상 6기통은 만져보지도 못했던 대우랑은 달리, 현대는 과거에도 포드 20M과 그라나다를 조립 생산하며 나름 6기통 개발과 생산에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후함과 고급성에 어울리지 않게, 로고가 휠 허브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새겨진 삐딱로고 휠을 신어서 어색하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형태의 휠은 미쓰비시에는 없던 모양새[2]였고 되레 닛산 세드릭 Y31과 흡사한 형태의 휠이다. 결정적인 옥의 티로써 이런 모양은 럭셔리와는 거리가 있었지만,[3]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는 유행이었는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로고가 삐딱하게 새겨진 휠이나 휠캡이 달린 중형급 이상의 세단들이 적지 않았다. 일례로 쏘나타 Y2만 봐도 휠이 그모양이었고 닛산 세드릭이나 아우디100 등이 그런 휠을 지녔다.[4]
하여간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이 모델은 그랜저의 명성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켰다. 출시 몇 달 전에 등장한 대우 임페리얼과의 격투에서도 KO승을 기록하고, 명성을 꾸준히 이어갔다. 대우 로얄에 가려진 고급 세그먼트의 명성을 다시 회복한 의미있는 모델이다. 또한 장착한 옵션들 중에선 국산차 최초로 풀 전자제어 인젝션 방식(MPI) 엔진과, ABS, 차고 조절이 가능한 에어스프링 방식인 ECS를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등장 당시에는 국산차 중 최고급 모델로 인식되었다. 당시 지존파는 그랜저 타는 놈들을 다 잡아 죽이려 했다는 발언을 했다. 그랜저 보유자=부자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뜻이다. 쏘나타 2세대 모델과 플랫폼을 공용했는데, 뱀발로 삐딱로고휠까지 공유 이 전륜구동 플랫폼은 1983년에 등장한 미쓰비시 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중형차인 갤랑 Σ의 것을 공유한 것이다. 원체 각그랜저의 일본판 모델인 미쓰비시 데보니어V 자체가 갤랑 Σ의 플랫폼을 늘여 만들었으니, 현대 그랜저와 쏘나타까지 계보를 확대해 보면 맞는 말인 것.
미쓰비시 데보네어 각그랜저의 베이스 모델이다. 1세대 모델이 1964년에 출시되어 각그랜저(2세대 데보네어)가 출시하던 시절까지 22년간 풀 체인지 없이 페이스리프트만 단행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달리는 실러캔스"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세대 모델 역시 미쓰비시 데보네어 2를 베이스로 개발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뉴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으며, 최초 출시 당시 2.0리터/2.4리터 시리우스 엔진과 V6 3.0리터 사이클론 엔진을 장착한 트림들로 구성되었다. 그 중 2.4 시리우스 엔진은 중간에 V6 2.5리터 사이클론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각그랜저'라고 불리던 직선투성이의 1세대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곡선을 대거 채용한 디자인과, 더욱 커진 실내공간 덕분에, 국내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판매량이 커졌다. 3세대 쏘나타와 함께 현대자동차를 먹여 살리는 간판급 모델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전 세대처럼 2세대 그랜저도 3세대 쏘나타에게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 전륜구동 플랫폼 역시도 이전 세대의 그랜져/데보네어 처럼 미쓰비시 디아망테 (갤랑Σ의 후속차종)의 것을 공유하였다.
또다시 국산차 최초로 화려한 편의장비를 잔뜩 달아 선보였다. 에어백과, TCS, 열선시트와 쿨링박스, 네비게이션과, 초음파로 노면상태를 파악, 미리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제어하는(!) 첨단 ECS, 뒷좌석 이지 엑서스 등이었다.1994년 V6 3.2리터 엔진이 탑재된 대우 아카디아가 등장하며 배기량에서 우위를 보이자, 이에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에서 전년도에 갓 출시한 V6 3.5리터 사이클론 엔진을 도입하였다. 뉴그랜저 최고급형 트림에 장착해 판매한 덕분에 국산 승용차 엔진들 중 최대 배기량을 갈아치우며 국산 대형차 시장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1996년 5월 내장재를 고급화하고 페이스리프트한 모델인 다이너스티가 출시되었다. 그랜저는 라인업의 간섭을 없애고자 V6 3,500cc 엔진이 장착된 최고급형 모델이 단종되었다. 게다가 다이너스티는, 롱 휠베이스 버전인 리무진 모델까지 출시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다이너스티는 그랜저와 보디를 비롯한 대부분이 똑같았다. 이는 대우 프린스와 브로엄과의 관계, 쏘나타 Y3와 말샤의 관계, 2세대 SM5와 1세대 SM7의 관계와 동일하다. 그랜저에서 외형을 조금만 바꾸면 그랜저를 다이너스티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이렇게 만든 차가 현재까지도 일부 존재한다 카더라. 일명 그랜다이저. 참고로 다이너스티는 후에 현대 정주영 회장의 마지막 자동차가 된다.
1996년에 뉴 그랜저의 부분 변경 모델인 다이너스티가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쉽으로 등장하게 된다. 기존 뉴 그랜저는 어중간한 신세가 되었고, 게다가 미쓰비시 자동차와 공동 개발하여 다이너스티보다 배기량 및 차체가 커진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인 에쿠스가 출시될 예정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현대자동차 내부적으로 그랜저 브랜드는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중형차인 쏘나타와 이들 대형차 사이의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중간급 모델로 시판 중이던 마르샤가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자 후속모델로 기획했던 가칭 마르샤 XG의 출시도 불투명해졌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대형급 쇼퍼 드리븐 카로 설계된 전작들과 달리 마르샤 후속 모델을 베이스로 한 준대형급 오너 드리븐 카로 그랜저 브랜드의 포지션을 변경한다. 그렇게그래도 투스타에게는 운전병 드리븐그랜저 XG (eXtra Glory의 줄임말로 최고의 영광을 의미) 라는 이름의 3세대 그랜저를 1998년 10월 1일에 출시하게 된다.
V6 2.5리터 델타엔진과 V6 3.0리터 시그마 엔진을 얹은 고급형 세단 라인업으로 최초 출시되었다. 이후 1999년 10월 V6 2.0리터 델타 엔진이 탑재된 보급형 모델이, 2001년 7월에는 택시, 장애인, 렌트카 용도로 V6 2.7리터 델타 엔진이 탑재된 LPG 모델[5]이 추가로 출시되었다. 그랜저 중 유일하게 전 모델에 4기통 엔진이 없고 V6 엔진들로만 라인업이 구성되었다. 그래서 5세대 그랜저는 3,000cc부터 6기통 엔진이 쓰이지만 XG는 2L 모델조차도 6기통이다. 같은 세대의 중형차인 EF쏘나타 / 옵티마가 4기통 시리우스 엔진을 썼던 점을 생각하면 준대형차의 프리미엄을 유지시킨 셈이다.
미쓰비시 자동차와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내놓은 첫 준대형차이다. 고려청자를 어딜봐서? 모티브로 디자인한 차체에 당시 국내에서 스포츠카 이외에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6] 프레임리스 도어[7]를 채용하였다. 준대형 모델의 포지셔닝이라 할 수 있는 오너 드라이빙 카로서 고급스러움외에 스포티한 느낌도 함께 살리는 적절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다만 초기모델 한정으로 이 프레임리스 도어의 방수성 및 내구성이 문제가 되어 이후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보완되었다. 출시 당시에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가 상당히 호평을 이루던 덕분에, 싼타모의 후속으로 기획되었던 신차 모델을 그랜저 XG 및 EF 쏘나타의 플랫폼으로 설계하여 XG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덧씌워 현대 트라제 XG로 출시하기도 했을 정도이다.(1세대 싼타페도 같은 플랫폼이다.) 하지만 마르샤와 통합 후속으로 내놓는 바람에 저가형 모델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저가형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한때는 국내 최고급 차라고 자부하던 그랜저의 네임밸류를 떨어뜨렸다는 소리도 듣었다. 그랜저 XG 이후로 현대는 V6 2,000cc 엔진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V6 2,000cc 엔진이 들어간 마지막 현대차이다.
이 때 현대자동차는 이미 그랜저 후속으로 현대 다이너스티를, 그 상위급으로는 현대 에쿠스를 1999년에 준비했었다. 쏘나타와 다이너스티의 중간을 메울 마르샤가 실패하자 마르샤 대신 어차피 없어질 그랜저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이다. 게다가 시기도 시의적절하게 IMF가 터지던 판국이었으니, 더 말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2014년 이후 다이너스티의 자리에 현대 아슬란이 들어갔다.
1998년 대형차 계열 국산 독자 모델로는 최초로 유럽, 중동 등지로 수출을 하게 되었다. 1999년 당시 한류 붐을 제대로 타고 있던 대만에 현지 라이센스 조립생산 방식으로 수출되었다. 이후 EF 쏘나타와 함께 북미 지역에 3.0리터 시그마 엔진을 탑재한 XG300을 출시했으며 해외에서 출력 부족을 호소해 에쿠스에 얹는 3.5리터 시그마 엔진을 얹어 XG350이라는 모델명으로 수출되었다. 당시 수출명은 그냥 XG였다. EF 쏘나타와 플랫폼을 같이한 이후 나오는 NF쏘나타와 YF쏘나타도 그랜저와 플랫폼을 공유했다.
그랜저가 스타일링을 참조했던 미쓰비시 디아망테 데뷔 초 인터넷에서는 미쓰비시 디아망테 혹은 갤랑의 플랫폼을 들여와 개발한 차로도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8] XG는 EF쏘나타의 플랫폼을 기본으로 독자 개발한 승용차이다. 다만 스타일과 패키지에 있어서 먼저 출시한 미쓰비시 디아망테를 참조하였다. 날렵한 프론트의 인상과 고급차로서는 진보적이고 시험적인 스타일의 프레임리스 도어, 플래그 타입의 사이드미러를 그대로 카피했으며 깔끔하게 떨어지는 도어라인과 리어램프, 기어노브, 계기판의 디자인, 디아망테 특유의 호박색 방향지시등을 흉내냈다. 당시에 현대는 처음 세그먼트에 진입하는 모델은 미쓰비의 스타일과 패키지를 그대로 흉내냈다. 혹자는 요새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혹평도 한다. 그러나 당시 미쓰비시와 현대차는 밀접한 관계이다보니 나름의 면죄부는 주어지는 셈. 리어는 에쿠스가 더 닮은거같은데
오히려 닛산 로렐 C35가 그랜저XG와 많은 부분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로렐이 그랜저XG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주장하는 차덕후들도 꽤 있다. 앞부분도 거의 70% 비슷하고 하드탑 도어에 라인까지 비슷한 건 분명 사실이다.[9] 하지만 닛산 로렐은 아예 뒷바퀴굴림이기에 앞바퀴굴림인 그랜저XG와는 다른 구동계이고, 이런 점 때문에 원체 현대측도 그랜저 XG 개발시에 닛산 로렐은 참고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현대가 이전에 닛산 쪽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들을 초빙해서 배우거나 한 적이 잠깐 있기에[10] 그 와중에 닛산측 디자이너들이 도움을 주고 갔다거나 아니면 그때 조금 배워서 닛산 로렐의 스타일을 그랜저XG에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닛산쪽 인사들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다른 기술과 관련된 것이었을 것이다. 닛산 로렐과 그랜저 XG의 관계는 어쩌다 만들다 보니 비슷해진 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수렴진화
2001년 방향지시등 색상을 비롯한 전면 디자인을 약간 수정한 모델이 출시된다. 2002년 3월에는 전면과 후면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진 뉴 그랜저 XG를 출시했다. 이 모델은 ㄴ 형태의 기묘한 테일램프 디자인이 말이 많았다. "벤츠 E클래스(W210)과 비슷한 리어램프가 좋지 않겠어?" 란 정몽구의 한 마디로 이루어졌다 카더라. 이와 관련되어 회장인 본인이 말 한 마디 했다고 진짜로 바꾸는 놈들이 어디있냐고 대노했더라는 카더라 소식이 또한 있다. 높으신 분이 바꾸라면 바꿔야지. 실제로 ㄴ형 후미등을 단 XG가 야간에 달릴 경우 W210벤츠와 유사하게 보일 정도로 비슷하다. 체어맨W 한편 미국 딜러들은 이 새로운 형태의 후미등을 장착하면 판매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구형 모델을 달라고 요구하며 ㄴ형 모델의 도입을 거부하였다.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식변경을 통해 ㅣ 형태의 후미등으로 변경하였다. 인수를 거부하는 미주 딜러 때문에 수출용 모델에 한해 초기 모델과 흡사한 테일램프로 후미 디자인을 급수정하는 돈지랄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이 수정된 디자인을 수출용 모델에만 적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자들로 부터 "우리는 봉이냐?"며 집중 포화를 맞았다. 결국 2003년 7월 수출용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페이스리프트된 2004년형 내수용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조기 출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통 자동차 업계에서 익년도 모델을 출시하면 최소한 그 해 하반기에서 중반은 넘겨 공개하는 것에 반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였다. 이로서 2002년 3월에 출시된 1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욕만 더럽게 먹고 출시된지 겨우 1년 4개월 만에 단종되는 비운의 모델이 되었다.
내가 이끌어가는 세상.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4강신화를 달성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전원에게 현대자동차가 특별 선물로 지급된 차량으로 알려진다. 김남일은 이 선물받은 그랜저XG를 본인이 타지 않고 그 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큰형에게 주었다고 한다.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는 격에 맞게끔 현대 에쿠스를 선물받았다. 하지만 괴악한 디자인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선물해 준 게 이미 에러대한민국 국군에서 소장(★★)에게 제공되는 성판이 달린 관용 승용차로도 유명하다. 운전병 드리븐
4세대 모델인 TG는 전대 그랜저에 비해 한층 커진 차체와 좋아진 주행성능이 장점이다. 초기에는 2.7리터 뮤엔진과 3.3리터 람다엔진을 얹었고, 이후 3.8리터 람다 엔진과 2.4리터 세타 엔진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유럽 수출용 모델에는 2.2리터 커먼레일 디젤 엔진도 장착되었다.
2006년 3월에는 3.8리터 V6 람다엔진을 탑재한 스페셜 모델인 S380을 추가 출시하기도 했었다. 2005년 5월 3.3리터 람다엔진을 탑재한 NF쏘나타의 최고급형 스페셜 모델인 V33의 출시로 망가진 그랜저만의 프리미엄을 회복하고자[11] 구색 맞추기 식으로 내놓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판매량도 정작 100대도 팔지 못한 가슴아픈 실적을 올리고 결국 2009년 페이스리프트 이후 단종되었다. 사장님들은 풀사이즈 최고급 세단인 에쿠스,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로,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BMW 3시리즈나 BMW 5시리즈같은 젊어보이는 준중형,중형 고급 외제차로 가게 되는 애매한 포지셔닝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모든 원흉은 NF쏘나타 3.3리터 스페셜 모델 출시 부터다. 정말 쏘나타의 고급형 수요를 잡고 싶었다면 차라리 2.7리터 엔진으로 출시하는게 나았을 거다.
출시 초기에는 그랜저 XG처럼 후드 탑 마크가 장착되고 라디에이터 그릴에 현대 엠블럼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5세대 쏘나타(NF)와의 패밀리룩 완성을 위해 출시로부터 불과 2개월 뒤인 2005년 7월부터 후드 탑 마크를 제거하고, 대신 라디에이터 그릴에 현대 엠블럼을 붙인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보는 전면부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다.
소비자들로부터 그랜저XG보다 편의사양이 되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세대인 그랜저 XG는 쏘나타의 주력모델과 배기량은 비슷했지만 직렬 4기통이 아닌 V형 6기통 형식의 엔진을 탑재하며 쏘나타와 차별화를 두었다. 편의사양도 다이너스티와 비교될 정도로 구성도 충실했다. 그러나 TG는 후드탑까지 제거하며 패밀리룩으로 쏘나타와 외관도 비슷해졌다. 이 시기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개발 중이였다. 제네시스의 포지셔닝 때문에 그랜저 브랜드를 하향화했다는 추정도 있다.
출시초기 조립실수로 인해 냉각수가 오용되는 바람에 부동액의 포함된 인산염에 반응하여 침전되는 이른바 엔진 물미역 사건이 발생하여 신뢰성이 중요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이는 세타엔진과 람다 엔진 항목을 참조.
TG그랜저와 쏘나타의 엔진 차이는 이랬다. 쏘나타의 고급형 모델로 V6 3.3리터 람다엔진을 탑재한 스페셜 모델과, 4기통 2.4리터 세타엔진을 탑재한 그랜저 저가형 모델이 함께 등장하였다. 실질적으로 둘 사이의 차급 서열이 깨졌다는 것. XG 시절에도 EF쏘나타의 2.5리터 모델이 있긴 했으나 이것은 TG로 치면 2.7리터 중급 모델에 탑재되는 라인업에 해당하기에 서열 간섭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NF쏘나타에 최고급형으로 탑재된 3.3리터 람다엔진은 그랜저의 최고급형 주력모델에 탑재되는 것이었다. 이는 브랜드 프리미엄 측면에 있어서 사실상 그랜저와 동급 수준으로 간섭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2009년 12월에 편의사양을 추가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그랜저 더 럭셔리를 출시하였다. 기아자동차에서 K7을 출시했는데, 멋진 디자인으로 밀어붙인 K7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에 재빠르게 페이스리프트를 했지만 L자 후미등 뉴그랜저XG를 제치고 최악의 디자인이 되는 병크를 저지르고 만다.하지만 북미에서는 XG와 다르게 판매가 이루어졌다.
북미에는 아제라 (Azera)라는 이름으로 판매. 유럽수출형에는 2.2리터 디젤 엔진 사양도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에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라는 광고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광고다. "그랜저같은 대형 세단을 타고 다닐 정도면 좀 산다." 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당연한 인식이 드러난다. 물질주의적 시각인 광고라는 비판도 있었다. 교과서에서 다뤘을 정도. 그리고 차량 포지션에 비해 과도하게 포장을 하였다는[12] 평가도 있다. 이것은 2015년 폭스바겐 질투 광고로 또 되풀이 되었다.
2011년1월 13일 5세대 그랜저(HG)가 출시되었다. 앞 세대보다 배기량을 줄인 2.4리터 세타 GDi와 3.0리터 람다 GDi, 3.0리터 람다 LPI로 라인업을 변경하였다. 웹상에서는 현대차 특유의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적용되어경쟁차종에 비해 디자인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 지못미 알페온SM7
한편 2.4리터 GDi 모델이 6세대 쏘나타 2.4리터 GDi 모델과 겹쳐서 쏘나타를 팀킬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는 평이 있었다. 2011년 7월부터 YF 쏘나타 2.4리터 모델을 271마력 2.0리터 터보 모델로 대체하면서 이 논란은 사라졌다. 그러나 2014년 LF 쏘나타가 출시되면서 다시 그랜저 HG 240 모델과 똑같은 2.4 GDI엔진이 장착되다가 2015년 7월 2일에 단종되었다.
당신은 다른 심장을 가졌는가?
2011년 8월 '그랜저 셀러브리티'라는 이름으로 3.3리터 모델을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되는 첨단장비가 대거 적용되었다. 반면 3.3 셀레브리티는 역시 과거에 내놓은 S380처럼 거의 팔리지 않아 결국 페이스리프트 때 삭제되고 그랜저를 베이스로 한 차인 아슬란으로 대체된다.[13]
또한 2.4리터 GDI 엔진의 결함인지 고객의 과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엔진 피스톤이 엔진을 뚫고 나온 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다 사실 판매량을 생각하면 지극히 낮은 확률이다. 정말 유의미한 확률로 발생 가능한 결함이면 지금껏 본 위키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도로에서 실린더 돌파 그랜저를 여러차례 보았을 것이다. 수십만 대 중에 3대 결함으로 도매금하자면 쉐보레 크루즈는 전부 불자동차냐 같은 플랫폼과 엔진을 쓰는 기아 K7에서는 아직 이런 일이 보고되지 않았고 되려 쌍둥이 동생 K5에게서 일어났다.#
NEW & ORIGINAL.
2012년 12월 3일부터는 2013년형 모델이 출시되었다. 그랜저 HG는 외형이 YF 쏘나타와 너무 닮아 혼동된다는 그랜저 오너들의 불만 사항 때문인지, 전면 그릴을 YF 쏘나타와 동형의 삼엽충 그릴에서 고전적인 세로선 그릴로 변경하였고 그외 일부 사양이 강화되었다.
27년 그랜저의 혁신, 하이브리드로 이어가다.
2013년 12월 16일에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출시하였다. 2.4L 세타 엔진을 기반으로 한 현대자동차 최초의 준대형 하이브리드 차량이 된다. HG 하이브리드의 2.4리터 엔진은 미국에 수출하는 쏘나타 하이브리드에 장착되는 앳킨슨 사이클 엔진이다. 이 무렵부터 V6 3.3 GDI는 삭제되고, 이후에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나오는 아슬란으로 이관된다.
2014년 5월, 부산국제모터쇼를 통해 디젤 트림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휘발유 트림과 함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하위급 차종인 LF 쏘나타에 적용되었던 풀 언더커버가 2015년형으로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그랜저에도 적용되다. 기존에는 풀 언더커버가 아닌 부분적으로 언더커버가 있었다. 그랜저 상위차종인 제네시스도 2세대 이전 모델은 마찬가지로 풀 언더커버가 없었다. 싼타페와 쏘렌토에 얹히는 2.2리터 R E-VGT 엔진을 탑재하여 202마력, 45kgf의 평균 이상의 파워트레인 성능을 가지며, 연비도 싼타페, 쏘렌토와 동일한 수준으로 수입차 대비 경쟁력을 가지도록 하였다. 기존 R 엔진의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본래 유로5 대응 엔진이었는데 그랜저 탑재형은 유로6 기준까지도 대응이 된다고 한다.
가격은 3,250만원(무옵션)부터 시작한다. 이는 한 체급 아래의 말리부 디젤의 최상위 트림인 LT디럭스팩 구입가격에 비해 높은 가격이지만 이를 상쇄할 그랜저가 말리부보다 더 고급차라는점과 좀 더 큰 배기량과 기본 옵션을 더함으로써 현대차의 지속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판매전략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4년 6월 10일 출시되었다.
배기가스가 차 안으로 새는 결함도 많이 보이고 있다. 한 방송에서 수치를 재어보았는데 질식(!)할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대는 그런거 당연히 신경을 안쓰고 꿋꿋하게 판매 중.
2014년 12월 8일에 그랜저 하이브리드 2015년형이 출시되었다. 2015년형 그랜저와 같이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휠은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것과 같은 17인치 에어로 다이나믹 휠이 장착되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관련 문제로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가 있는 서울 공항동 사무실에 출두해 공개 사과를 할때 타고온 차량이 검은색 2013년형 그랜저였다.
2012년 4월에 출고한 그랜저 HG의 TPMS 오류. 디지털 트립 컴퓨터에서는 운전석쪽 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하다고 뜬 것을 확인하고 살펴보니 운전석 쪽 타이어는 멀쩡하고 조수석 쪽 타이어가 펑크난 것(...) "어차피 타이어 펑크 난 거 맞으니 저거 가셔야 겠네요 고갱님" 생각이 났다면 당신은 독한 현까 내지 독한 현빠
2014년 3월 26일에 차량등록한 그랜저 HG를 몰고 농촌에서 성묘를 하는 도중 엔진룸 화재로 엔진룸이 완전 전소된 사건. 현대차는 이 전소차량을 자사의 정비소라고 읽고 조작소라고 씁니다에 옮기길 원했지만 차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입고하는 현명한 선택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조사 결론의 대부분은 99% 원인불명이라고 결론낼 공산이 크다고. 그래도 '대놓고 정상입니다. 고갱님이 잘못했으니 님 책임이에염~'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바에야 원인 불명이라고 듣는게 정신건강에 그나마 낫습니다
2005년 11월에 생산된 그랜저 TG의 하체부식으로 타이어 축이 파열된 사건. 정말 다행스럽게도 '운전 중'이 아닌 '정차 중'에 일어난지라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증기간이 지나도 훨씬 지났기 때문에 현대 차한테는 손해될 일이 없으니 어찌보면 없는 일 셈 칠 수도 있다
[1] 그도 그럴 것이 데보네어 1세대는 1966년부터 1984년까지 생산되었고, 이 모델은 2세대이기 때문이다.[2] 당시 미쓰비시는 삐딱로고 휠을 가진 차가 없었으며 각그랜저의 일본형인 데보니어-V에도 저런 휠은 없었다.[3] 이런 로고가 삐딱스런 휠의 경우 호불호가 갈리는데, 럭셔리한 모양새에는 좀 거리가 있다고 한다. 몇몇 이런 휠을 싫어하는 평론가들은 "양복 입은 신사가 고무신이나 운동화 신은 격" 이라고도 한다(...)[4] 하지만 Y2 쏘나타가 저런 삐딱로고 휠을 달고 등장하고 대박을 치자 대우 에스페로와 대우 프린스, 기아 콩코드와 기아 캐피탈의 휠과 휠캡도 삐딱로고 휠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계도 내외장은 은근히 유행을 따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삐딱로고 휠들과 반대되는 것이 현재의 롤스로이스로써, 롤스로이스는 BMW가 인수한 후 전 차종이 달리는 상태에서도 휠 마크가 정자세를 유지하도록 베어링과 무게추를 달았다고 한다.[5] 이때 등장한 LPG용 V6 2.7리터 델타 LPI 엔진은, 액체로 저장된 LPG 가스를 기체로 기화하여 공기와 혼합, 폭발을 일으키던 종래의 기화기식 LPG엔진과 달리 액화된 LPG가스를 기화하지 않고 분사하여, 가스차의 고질적 힘딸림과 겨울철 시동성을 크게 개선시켜 이후 국내 LPG차량 대부분이 LPI 시스템으로 바뀌게 될 만큼 커다란 성능 개선을 이룬 엔진이었다.[6] 국내 최고급 세단 최초로 시도된 모델은 기아 엔터프라이즈이기는 한데, 이건 마쯔다 센티아를 거의 뱃지 엔지니어링 수준으로 그대로 베낀 모델이라 큰 의미는 없다.[7] 여닫이 창문 위쪽에 고정 프레임이 없는 도어로, 스포티한 느낌과 깔끔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마찬가지로 프레임리스 도어를 가진 미츠비시 디아망테를 두고 그랜저 XG의 모체가 아니냐는 소리가 15년이 흐른 2014년에도 종종 나오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8] 비슷한 예로 현대 스타렉스 1세대, 그랜드 스타렉스, 현대 카운티 버스가 있다.[9]물론 후면은 비슷하지 않다.[10] 그 때에 많이 돌았던 말로는 당시 초빙된 닛산 엔지니어가 현대자동차 사내 강연때 앞바퀴구동 굴림계가 많은 현대자동차에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길지 않다. 앞바퀴굴림으로 스포츠카나 쿠페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물론 이 말이 사실이엇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자세한 경황은 위키러들의 추가바람.[11] NF쏘나타에 최고급형으로 탑재된 3.3리터 람다엔진은 당시 그랜저TG의 최고급형 주력모델인 Q330 및 L330에 탑재되는 것이었기에, 판매량과는 상관없이 쏘나타가 사실상 그랜저의 출시 초기부터 브랜드 프리미엄에 측면에 있어서 동급 수준으로 간섭을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거기에 그랜저는 쏘나타의 2.4리터 세타엔진을 탑재한 저가형 모델까지 추가로 내놓았으니(...)[12] 이미 플래그쉽은 에쿠스에게 빼앗긴지 오래이고, 후륜이고 상위급의 차량인 제네시스의 등장과 한때 강남 쏘나타로 불렀던 렉서스 ES나 BMW 5시리즈등이 많이 흔해지던 시기였다.[13] 실제로 아슬란은 그랜저와 시트, 도어트림, 도어, 사이드미러등 많은 부품이 완벽하게 똑같다.
각그랜저.. 다음 그랜저는 진짜 부자구나.. 그런차였지요.. 지금 그랜저는 이전에 쏘나타만 못하지만요.. 20년전 각그랜저에 모모리시트와 전용시트였네 저두 궁금해서 25년전 각그랜저 의자에 안아서 찍은 사진보니.. 전동버튼이 있네요..ㅋㅋㅋ 그리고보면 진짜 좋은차였네요..
첫댓글 X마크는 동영상인데 링크가 따라오지는 못했네요 원본자료는
https://namu.wiki/w/%ED%98%84%EB%8C%80%20%EA%B7%B8%EB%9E%9C%EC%A0%80
에서 보시면 됩니다
와 대단하네요 각그랜저 훗 어린시절 부의 상징 이였는데
각그랜저.. 다음 그랜저는 진짜 부자구나.. 그런차였지요..
지금 그랜저는 이전에 쏘나타만 못하지만요..
20년전 각그랜저에 모모리시트와 전용시트였네 저두 궁금해서 25년전 각그랜저 의자에 안아서 찍은 사진보니.. 전동버튼이 있네요..ㅋㅋㅋ
그리고보면 진짜 좋은차였네요..
부의상징 각 그랜져~ㅎㅎ
그렇죠..
대학때 친구아버님차 몰래가지고 야타하러 간적이 있습니다
동성로 뒷편이 예전에 야타골목이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