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남주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나를 깨워 사립문 밖으로 내 몰았다
"남주야 해가 중천에 뜨겄다 일어나 깔 비러
가거라"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학교에 늦을까봐 아침밥 뜨는 둥 마는 둥
책보 메고 집을 나서면
내 뒤통수에 대고 냅다 고함을 쳤다
"너 핵교 파하면 핑 와서 소 띧겨야 한다
길가에서 놀았다만 봐라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놓을 팅께"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방학 때라 내가 툇마루에서 낮잠 한숨 붙이고 있으면
작대기로 마룻장을 두드리며 재촉했다
"아야 해 다 넘어가겄다 빨랑 일어나 나무하러 가거라"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저녁 먹고 등잔불 밑에서 숙제 좀 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숨 자고 일어나 다그쳤다
"아직 안 자냐 색유 닳아진다 어서 불 끄고
자거라"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소가 병이 나면 어성교로 약을 사러 간다
읍내로 수의사를 부르러 간다 허둥지둥 몸둘
바를 몰랐으되
횟배를 앓으며 내가 죽을 상을 쓰면 건성으로 한마디 뱉을 뿐이었다
"거시기 뭐드라 거 뒤안에 가서 감나무 뿌리나 한두 개 캐다가 델여 멕여"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공책이란 공책은 다 찢어 담배말이종이로
태워버렸다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아따 그놈의 종이때기 하나 빳빳해 좋다"면서
씨앗 봉지를 만들어 횃대에다 매달아놓았다
그는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는 무식쟁이였다
그는 밭 한 뙈기 없는 남의 집 머슴이었다
그는 나이 서른에 애꾸눈 각시 하나 얻었으되
그것은 보리 서너 말 얹혀 떠맡긴 주인집 딸이었다
그는 지푸라기 하나 헛반 데 쓰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 내가 그릇에 밥태기 한 톨 남기면
죽일 듯 눈알을 부라렸다
그는 내가 커서 어서어서 커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농사꾼은 그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뺑돌이의자에 앉아 펜대만 까딱까딱하고도
먹을 것 걱정 안 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못 되도 내가 면서기쯤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자기도 면에 가면 누구 아버지 오셨냐며
인사도 받고 사람 대접을 받는다 했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금판사가 되면 돈을 갈퀴질한다고 늘상 말해왔다
금판사가 아니라 검판사라고 내가 고쳐 일러주면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금판사가 되면 장롱에 금싸라기가 그득그득 쌓일 거라고 부러워했다
그는 죽었다 홧병으로
내가 자본과 권력의 모가지에 칼을 들이대고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었을 때
식구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그는 손을 더듬거리고 나를 찾았다 한다.
"옛 마을을 지나며, 김남주서정시집,"문학동네,1999"
첫댓글 어떤 사람은 시에서 아버지를 죽였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 했는데
시가 자아 투영을 떠나 아버지 적나라하게 들어내기가 쉽지 않지요.
시인의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지라도 시인의 아버지로 생각할 테니까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오래도록 남아 어두운 시대를
건너온 시인의 숭고함을 지울수 없기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