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의 일이다. 옆에 앉은 젊은 부부와 아이들을 보며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니는구나 하는 부러운 마음과 아이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뒤쪽에는 요즘 유행한다는 임신한 아내와 태교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우리 때의 태교는 임신하면 아무리 얕은 담이라도 함부로 넘지 마라. 길을 갈 때 다른 사람보다 항상 한 발 물러서서 걸어라. 자극적인 음식도 먹지마라. 등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시고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지키는 것이 태교였다. 언감생심(焉敢生心) 태교여행은 고사하고 멀리 버스를 타고 가는 일조차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얼마쯤 갔을까 어린 여자 아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아빠가 엄마와 자리를 바꾸고 앞으로 와서 아이를 달래며 쩔쩔 매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엄마는 칭얼대는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쉬었다. 물론 젊은 엄마의 사정을 모르는 상황이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에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40여 년 전 아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을 잡고 그리고 큰애더러 둘째 손을 같이 잡으라고 닦달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젊은 여자가 오버랩이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나 때는 말이야” 하고 말하면 꼰대라고 지칭하면서 어느 먼 별나라에서 온 것 같은 취급을 한다는데... 물론 격세지감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그리 오래지 않은 동안에 상당히 많이 달라져서 전혀 다른 세상 혹은 다른 세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쓰는 고사성어이다.
나는 코로나가 오기 바로 전 이집트여행을 갔었다. 마지막 일정인 후르가다에서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렸을 때 해녀인 엄마를 따라 잠수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홍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서 잠수를 해 보고 싶었다. 제주에 가서 해녀로 사는 것이 꿈인 가이드는 내가 어렸을 때 해녀였다는 얘기를 듣고 구명조끼를 입으면 잠수하기 힘들다며 오리발만 하고 입수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홍해의 푸른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순간 본능이 살아나 오색 물고기들과 바다 속을 유영하였다. 큰 트럼펫피쉬를 만나 따라 가다 물을 먹긴 했지만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번 괌에서는 허리에 납덩이를 차고 산소통을 매고 스킨스쿠버를 하며 수심 3미터까지 내려갔는데 귀가 아파서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통증을 이기지 못해 그냥 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역시 몸이 느끼는 격세지감이었다. 몸은 3년 사이에 많이 변해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날 딸에게 넌지시 패들보트를 타 볼까 하는 말을 했다. “그래 엄마 한번 타봐 엄마는 탈 수 있을 거야” 라며 용기를 주었다. 호텔 앞 비치로 내려가 사장님께 패들보트를 타고 싶다고 했다. 사장님은 누가 탈것이냐고 물었고 딸은 엄마가 탈것이라고 하자 페달보트를 가리켰다. 내가 빠르게 “노우”라고 말하자 고개를 갸웃 등하며 패들보트를 들고 와서 친절하게 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물론 서툴긴 했지만 성공했다.
언젠가 TV에서 제주바다 석양 속으로 패들보트를 저어가던 모연예인이 멋진 모습을 보며 나도 기회가 된다면 패들보트를 타고 석양 속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다행인 것은 패들보트 위에 일어서서 석양은 아니더라도 남태평양의 아름답고 푸른 바다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올 때서야 패들보트와 페달보트를 혼동하게 했던 것은 영어가 아니라 내 나이였음을 알아차리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하고 나오는 나를 향해 사장님은 엄지 척까지 해주셨다. 과거의 나와 변해가는 나 사이 심리적 격세지감을 인정했다. 노을을 향해 서 있는 나의 현주소. 그러나 하면 된다는 마음의 다짐을 해보았다.
격세지감이란 눈에 보이는 현상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의미인 인간의 내적 감정이나 사고방식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즉 현 시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라는 수많은 질문 앞에서 “나 때는 말이야”를 계속 고집하면서 소통의 부재를 실감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뒤로 밀어놓고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 마음을 열고 보이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며 다른 세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을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사단법인]시와산문문학회 회장.
시집『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