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 –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Daum카페/ 알수 없어요-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이놈들아 뛰지 마라.”
사내가 손을 휘저으며 아이들을 말렸다. 도서관 로비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사내와 아이의 실랑이를 구경했다. 사내는 행색이 남루했다. 아이들은 금새 잊어버렸다. 사내는 도서관 현관에 붙은 좁은 관리실에 있었다. 사내가 뛰어나올 때마다 사내의 허수아비 같은 손짓도 반복됐다. 그것은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금암동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갔다. 금암동 골목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면 언덕 위에 도서관이 있었다. 올망졸망하게 자리한 산동네 세간살이가 도서관 앞에서 훤히 보였다. 도서관 2층 휴게실에서 파는 200원짜리 라면이 맛있었다. 나는 주로 열람실 책상에 문제집을 펴놓고 1층 정기 간행물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각종 사보와 몇 종 되지 않는 잡지를 보고 또 보았다. 간행물을 오가며 허수아비 사내를 자주 보았다. 그는 가끔 술 냄새를 풍겼는데 그럴 때면 목소리가 제법 커졌다. 한번은 상급자인 듯한 젊은 직원에게 지적받는 것을 보았다. 1층 로비의 지배자였던 사내의 작고 추레한 몰골이 더 주눅 들어 보였다.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본 적은 도서관 1층 로비에서였다. 액자에 표구되어 간행물실 옆 복도에 걸려 있었다.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이라는 문장에 매료됐다. 나는 실제로 “떨어지는 오동잎”의 고요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린봉 아래 마당재에서 살 때였다. 내 방 창 앞에 벽오동 두 그루가 있었다. 벽오동은 2층 집 높이보다 컸다. 그 방에서 나는 여름엔 오동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가을이면 정적 사이로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을 볼 수 있었다.
처음 한용운의 시를 보고서 나는 까닭 모를 슬픔을 느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이란 걸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 시를 보고서 오동잎이 수많은 낙엽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동잎 떨어지는 장면이 사진처럼 내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졌던 것이다. 도서관 로비에 서서 시를 넋 놓고 보고 있으려니, 오동잎은 내 방 창문 밖, 허공에 정지한 듯,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허수아비 사내’가 어느 결에 다가왔다. 그는 말을 걸었다. ‘어떤 학교인지’, ‘무슨 의미인 줄 아는지’ 무엇을 물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열람실로 들어와버렸다.
열람실에서 문제집을 보고 있어도 오동잎은 내 마음에 파문을 내며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시를 노트에 적기로 했다. 사내가 의식되었기에 액자 앞을 다람쥐처럼 오가며 한 문장씩 외워서 썼다. 시 제목처럼 내가 왜 베껴 쓰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문장을 적을 때마다 시의 아름다움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시를 베껴 쓴 후로 오동잎에 관심이 더 갔다. 비가 오면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을 세우고 창문틀에 쪼그리고 앉았다. 비가 오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비틀어 아프도록 올려다보았다. 휴일엔 아버지와 뒷산인 기린봉에 약수를 뜨러 갔는데 그때도 “옛탑에 잔뜩 올라온 푸른 이끼”를 만져보며 도서관 로비에 걸려있던 「알 수 없어요」를 떠올렸다. 나는 오동나무를 사랑하였다.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는 사춘기의 ‘알 수 없는 고독’을 같이 앓아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처럼 전주를 떠나 알 수 없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었던 것일까.
이 시는 자연에서 만나는 현상의 아름다움이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문장도 좋지만 자연의 변화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이 자연스럽다. 오동잎은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과 함께 시내로 이어지고, 바다로 흘러들어가 온 하늘을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과 만난다. 나는 땅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 불타오르는 지점을 상상하면서 황홀해했다. 그것은 사춘기를 앓는 고독한 자에게 주는 위로였다.
시상의 전개도 좋다. 경어체와 질문 형태여서 시를 읽다 보면 사리 깊은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은유를 품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동잎과 발자취’, ‘푸른 하늘과 님의 얼굴’, ‘알 수 없는 향기와 님의 입김’, ‘시내와 님의 노래’, ‘저녁놀과 시’, ‘나의 가슴과 약한 등불’의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 마치 시인의 임무라는 듯이 시인이 만든 은유의 묶음은 세상을 거대한 은유의 덩어리도 만든다. 그리하여 시인이 펼쳐놓은 은유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오동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저녁놀을 만나 하늘로 돌아가는 긴 여정의 처음임을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어디론가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마치 “타다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어쩌면 나는 그때 도서관 로비에서 ‘시의 비밀’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한용운의 시를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잘 알지 못했지만 좋았다. 좋은 시는 그냥 좋은 것이다. 그때 넋 놓고 시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감정이 싹을 틔웠는지 시간이 지나서 나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내가 시립도서관 로비에서 만난 ‘허수아비 사내’가 시인 박봉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전선」의 시인 박봉우는 서울살이에 지쳐있던 차에 당시 전주 시장이었던 고교 동창이 시립도서관 촉탁직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전주에서 생활의 안정을 찾았던 것도 잠시, 시인은 시대와 불화하며 자주 술을 마셨다. 분단을 괴로워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에 취해 있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1980년 광주를 피로 진압한 전두환의 시대였다.
광주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봉우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기자 시절 집단 폭행을 당한 후유증이 도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설상가상 시인이 병원에 있을 때 시인의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 전주천변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내였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시인은 아내의 영정사진을 붙들고 오열했다. 내가 중학생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술에 취한 시인을 보았을 때, 그는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앞에 서 있는 어린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 누구의 밤을 지킬 수 없는 “약한 등불”이었던 시인은 1990년 3월2일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타고 남은 재는 다시 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운 아내 곁으로 떠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봉우 시인이 세상을 떠난 날, 나는 대학 신입생이 되어 문학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내 영혼을 뒤흔든 41편의 시(이종민, 모악, 2021.)’에서 옮겨 적음. (2024. 1.31. 화룡이) >
첫댓글 중학교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 시를 그때는 아무뜻도 모르고 외웠습니다.
오늘 아침 다시 읽으니
알수 없는 무언가가 밀려옵니다.
도서관 문학창작교실 단톡방에
퍼 주었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감동받아
써 보는 수필 저도 이런 수필 항 편을 써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편의 시 속에도
사색의 흔적은 물론
개인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시던
그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물론 생활 수필도 다르지 않을 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