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산골을 떠나기로 한 이유무주 산골 생활이 방송된 이튿날부터 부부는 실로 방송의 위력을 실감했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외딴 산골까지 얼굴 보겠다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고와 잘 살라는 격려가 고마웠지만 점점 힘겨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이미 마당에 사람들이 두런대고 있다가 얼굴을 들이밀고 안방에까지 들어와 일어날 줄 몰랐다. 잠시 외출이라도 하고 오면 부러 찾아왔는데 기다리게 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밭일도 미뤄야 했고, 한가롭게 차 한 잔 마시는 작은 여유도 사라졌다. 어떤 때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조용하던 산골 생활이 흔들렸다. 적막하기만 하던 마을이 술렁거리자 주민들께도 죄송했다. 나뭇잎 하나만 팔랑 떨어져도 ‘까르르’ 웃던 부부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던 부부는 어느 날 마주 보고 앉았다. ‘앞으로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선 무주에서 계속 사는 것을 고려해보았다. 많은 불편과 사람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무주 산골 생활은 여전히 그들에게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불편을 감수하기에는 사는 집이 너무 옹색했다. 그래서 집을 개조하거나, 아예 사서 새로 짓는 것은 어떨까 하여 집주인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곤란하다고 했다. 근처의 집과 땅을 수소문하였지만 이 또한 마땅치 않았다. 한동안 고심하던 부부는 이것을 계기로 다음 단계의 삶을 꾸려보자고 결심했다.
“처음 하는 농사일, 산골 생활은 서바이벌 전투장 같은 ‘생존의 장’이었어요. 그렇게 2년을 살다 보니 생계라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됐죠. 텃밭을 일구는 것도 아내와 둘이서 먹기에 딱 알맞은 정도일 뿐 돈 되는 것은 아니었고, 제가 번역과 글을 기고해 버는 원고료 역시 넉넉하진 않았어요. 이러한 현실이 이주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예요.”
방송 후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이들이 지쳐 있으며 일종의 탈출구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이 좋아서 사는 삶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자고, 이제 소통하며 살자는 데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한때 흔들리던 방황 끝, 깊은 어둠을 조용히 밝히는 새벽빛처럼 부부는 ‘바람처럼 살아보자’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주는 여행하는 것보다는 살기 좋은 곳이에요. 무주는 산골이기는 했지만 남의 땅이나 경작지 때문에 오히려 자연과 분리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곳은 자연이 툭 던져진 듯한 느낌이에요. 아래를 보면 바다고 위를 보면 산이고…. 사는 곳인데도 여행하는 느낌이에요. 알 듯 말 듯한 신비로움에 끌렸죠.” 길연씨의 말에 범준씨가 농을 건다. “이 사람이 인생을 흥미로 살아요.” 제주 예찬이 부창부수로 이어진다.
사람 홀리는 풍광에 마침 그들의 계획을 실현하기 딱 좋은 집마저 만났으니 운수대통이었다. 작지만 텃밭도 있고 손님이 묵어갈 수 있도록 지은 별채와 제법 넓어 도서관을 들여도 좋을 것 같은 본채가 있는 집은 딱 부부를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필(feel)’을 믿는다는 길연씨가 ‘필 딱 꽂힌’ 이 집은 단념하자고 마음먹었지만 며칠 동안 눈을 감아도 삼삼히 떠올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리저리 변통하고 도움받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원하던 집을 얻게 되었다.
여행 같은 삶, 삶 같은 여행이 부부는 매일 친구처럼, 오누이처럼 다투지 않고 살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역시 투닥투닥 다투며 상처를 주고받고 사는 부부다. 마찰이 생기면 묻어두지 않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극렬하게 싸우는 편이다.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최대한 솔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놀라운 것은 사소한 표현의 차이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열띤 논쟁 끝에 차츰 서로의 대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서 부부는 한걸음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더구나 온종일 함께 붙어 있어야 하는 부부는 서로 도망갈 곳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에 남들 몇 십 년 싸울 것을 몇 개월 만에 다 싸우고 부부는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속성으로 터득한 셈이다.
“펜션 반응은 어떠냐”는 질문에 아직 정식 손님은 거의 없었고 반 강제로 지인들이 몇몇 묵고 갔다고 한다. 부부의 성향과 맞는 사람들은 좋아했으나 간혹 꽤 괴로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람 펜션에는 몇 가지 수칙이 있는데 그것은 ‘실내에서는 금연, 술보다는 차를 즐기고, 적게 먹고 적게 버리자’는 것이다. 흥청거리는 여행보다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조용한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기자는 것이다. 부부가 소개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현지인들이 찾는 허름하지만 맛난 밥집을 찾은 손님들은 그래서 더욱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하고 떠난단다. 길연씨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식당을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요즘 외식하는 맛에 빠져 있다.
이 부부는 요즘 도서관과 펜션 마무리 작업에 바쁘다. 범준씨는 잡지 청탁 원고를 쓰기도 하고 길연씨는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염색과 바느질 강습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은 마을 근처에는 탁 트인 초원과 수풀이 우거진 한적한 오솔길이 있어 바쁜 일손을 놓고 잠시 산책하는 즐거움을 즐긴다. 바람 도서관은 6월 말부터 5일간 오프닝 행사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 전까지 부부의 손은 더욱 분주해질 것이다.
도시에서 떠난 삶은 다양할 수 있다. 그들이 처음 머문 곳은 무주 산골이었다.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지을 생각도 못하던 그들이 밭에서 수확을 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쁨을 맛보았다. 이제 무주 산골은 스친 곳이 되었고 그들은 다시 제주에 머물게 되었다. 아마 제주도 언젠가는 스쳐간 곳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정착 생활 이전, 그보다도 더 유구한 물과 풀을 찾아 떠돌던 시대의 유목민의 습성이 유독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처럼’ 살고 싶은 이 부부가 선택한 삶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첫댓글 노년을 위해서 물 좋고 산 좋은 곳으로 마포팀 빌라 한채 지을까요?
마포에서 제주로 ~ ~
10년후면 가능할까? 단 부킹은 받지 말자고요.물흐려지니까 ㅋㅋㅋ
제주도에서 고고장 오픈 할려고 춤연습 시작해야 되겠는걸 ㅋㅋ
빌라와 농사도..목장도..좋지...
12월8일 제주도 한라산 올해 마지막 원정간다..한라산만 찍으면 올 200% 딜성이다 멋진사진 찍어올께..
산악인 동조 홧팅! 마지막원정 성공기원.
탱큐..이번에는 하루전날 술 먹지말고 꼭성공하리라..작년에도 고만 싱싱한 회한테 꼿여서 정상못같거던 ㅎㅎ
북에서 남으로 ....굉장하군...
동조야 올해에는 소원 성취 한라 봉우리에서 - - - - -
꿈은 현실과 다르지.... 젊은 부부들 얼마나 시골생활 버틸런지?
때론 도시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도 있다네~~
그래서 간혹 떠나고 싶어하지만 작심3일 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