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음악, 문화 아이콘, 디자인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상물을 소개해온 레스페스트영화제가 10주년을 맞았다. 혁신적인 작품을 소개하겠다는 레스페스트의 첫 마음은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시작은 소박했다. 레스페스트는 97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된 영화제였지만, 그 어떤 영화제보다 젊고 무모했다. 거기다 알차고 재밌었다. '얼마나 혁신적인가?' 레스페스트의 작품 선정 기준은 ‘혁신’ 하나로 통했고, 그 혁신의 결과물들은 또 다른 영상 작가들과 관객들에게 미래의 비전과 즐거움을 안겨줬다. 바로 그 레스페스트가 어느새 열 살이 됐다. 그동안 레스페스트는 샌프란시스코의 지하실을 벗어나 미국을 횡단했으며, 파리, 도쿄, 상파울로, 멜버른, 케이프타운 등 6개 대륙 45개 도시로 혁신의 정신을 전파하는 글로벌투어 영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7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매년 10만 5천 명 이상의 관객이 레스페스트를 찾고 있으며, 2천여 편이 넘는 작품이 레스페스트의 문을 두드린다.
혁신적인 영상에 주목하다
90년대 중반 ‘저해상도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레스페스트의 화두는 '디지털'이었다. 97년 막 보급되기 시작한 초창기 DV 카메라와 컴퓨터 편집 시스템은 레스페스트가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누구도 디지털이 대중화되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때, 일찌감치 디지털 툴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활성화되리란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당시 레스페스트로선 디지털이야말로 미래지향적 혁신에 부합하는 테크놀로지였다.
디지털 툴의 도움을 받는다면 누구나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적은 예산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영상물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98년 레스페스트가 영화제 명칭을 ‘레스페스트 디지털 필름 페스티벌’로 바꾼 것도 그러한 믿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상, 음악, 문화 아이콘, 디자인, 아트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형식, 내용 면에서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들을 찾아 나섰다. 레스페스트가 배출한 감독들의 면면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스, 크리스 커닝햄, 조나단 글레이저 등이 레스페스트를 통해 주목받은 감독들이다. 또한 레스페스트는 샤이놀라, MK12, 티비 그래픽스 등 새로운 감독들을 발견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디지털은 모든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디지털로 제작됐다는 것만으로 혁신을 얘기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 시점에서 레스페스트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한다. 2005년부터 영화제 명칭에서 '디지털'을 빼고 ‘레스페스트 필름 페스티벌’로 거듭난 것이다. 레스페스트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나다. 바로 혁신적인 영상의 발굴이다. 디지털이 대세가 된 마당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만으로 혁신을 얘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레스페스트는 이제 디지털이 아니라 혁신적인 영상 그 자체, 혁신적인 영상을 만드는 사람 자체에 주목한다. 제아무리 신기술이 나온다 하더라도 만드는 주체의 창의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저 신기술 시연회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영감을 주고받다
이처럼 10년을 거쳐 오는 동안 레스페스트는 새로운 영상 충격을 원하는 이들의 바로미터로 자리 잡았다. 또한 주류 문화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레스페스트에 가면 광고와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해 레스페스트에 소개된 작품들의 경우 어김없이 다음 해 광고로 등장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광고 생산자와 디자이너들에게 레스페스트는 혁신적인 영상을 찾아내는 첫 관문으로 통했다. 이들은 레스페스트의 작품을 보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렸으며,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차용해 그들의 상품이나 작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프랑스와 보겔 특별전의 아파트 광고 아이디어의 경우 올해 바로 삼성 프린트 광고에 등장했으며, 미셸 공드리 감독의 동생 올리비에 공드리가 수작업으로 제작한 플립북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은 현대카드 광고에 그대로 사용됐다. 이렇듯 레스페스트가 진지한 영화광보다 트렌드세터들에게 환영받게 된 데는 상영되는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지나치게 실험적이라기보다 적당히 대중들의 구미에 맞되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특히 하위문화의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였던 뮤직비디오를 예술로 격상시켜 관객들의 관심을 모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10주년을 맞이하는 레스페스트가 지난해 '벡 특별전'에 이어 '라디오헤드 특별전'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도 뮤직비디오를 또 하나의 중요한 영상예술로 인정한 결과다. 라디오헤드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뮤직비디오들은 인터넷에서 클릭만 하면 집에서 간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뮤직비디오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유는 뭘까. 이는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감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조나단 글레이저('Street Sprit'), 샤이놀라('Pyramid Song'), 미셀 공드리('Knives Out') 등 레스페스트에서 주목받아온 감독들이 대거 라디오헤드 뮤직비디오에 이름을 내밀고 있다.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를 상영한다는 것은 곧 레스페스트에서 발굴하고 주목해온 감독들을 한 자리에 초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는 유달리 뮤직비디오가 많이 상영되는 해라 할 수 있다. 개막작에 이어 폐막작도 뮤직비디오다. 우탱 클랜의 다큐멘터리 <락더벨스: 우탱 클랜의 재결합>이 10주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뮤직비디오는 개폐막작뿐 아니라 섹션별로 고루 분포돼 있다. 글로벌 섹션 9개 중 '레스페스트 10년 베스트 뮤직비디오 콜렉션' '시네마 일렉트로니카' '락 뮤직 비디오' 등 뮤직비디오 섹션만 3개다. 여기에 국내 섹션의 '모션그래픽&뮤직비디오'에서도 재미난 뮤직비디오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80년대 스타들이 등장하는 <당신은 당신의 영웅과 춤춰본 적이 있냐?>가 그 주인공. 이 영화에선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 마돈나와 주윤발이 함께 춤을 춘다. '시네마 일렉트로니카'에서는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독창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매시브 어택, 베이스먼트 잭스 같은 뮤지션들의 작품부터 우디 앨런의 <젤리그>와 DJ 데인저 마우스의 <그레이 비디오>를 부분 편집해 만든 로버트 헤일즈의 <웃는 얼굴들> 등이 상영된다.
세상을 한 자리에 불러내다
레스페스트의 '아이덴티티'는 그해 영화제의 경향과 방향을 알려주는 키워드다. 이를 구현해낸 트레일러 역시 독립적인 또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활동하는 트랜지스터 스튜디오의 브래들리 그로쉬, 새이맨차우, 앤더스 슈로더, 제임스 프라이스, 조엘 라바, 맷 파이크, 패트릭 보여 등이 아이덴티티 기획과 제작에 참가했다. 이들이 기획한 10주년 아이덴티티는 기존의 아이덴티티와 달리 대륙별 특성을 살려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냈다. 10년 동안 레스페스트가 강조해온 개인성, 국제성, 창의성은 변하지 않은 가운데, 각기 다른 대륙의 공존을 강조하는 ‘레스랜드’가 올해의 아이덴티티다. 레스랜드는 온갖 종류의 초현실적 잡종 짐승들이 존재하는 전설 속의 세계. 레스랜드는 레스페스트가 보여주는 기술적 비전으로 인해 세상이 하나로 좁아지게 될 것이란 바람을 담은 공간이기도 하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레스페스트 10년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대거 포진돼 있다. '레스페스트 10년 베스트 단편 콜렉션' '레스페스트 10년 베스트 뮤직비디오 콜렉션'을 통해 레스페스트가 지향하는 테크놀로지 툴이 어떻게 사용되고 발전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 '레스페스트 10 도큐멘트전'에선 초창기 레스페스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레스페스트의 다양한 콘텐츠들인 포스터, 매거진, 다큐멘터리, 베스트 영상들을 모아 소개한다.
올해 상영될 작품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글로벌 섹션에서 소개되는 <글로벌 단편 1: 예술 같은 인생>과 <글로벌 단편 3: 공포와 전율>이다. 총 11편이 상영되는 <글로벌 단편 1>에서는 실사,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물들이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블랙하트 갱의 화려한 오페라풍 <테일 오브 하우>는 눈을 즐겁게 하고, 요한 크레이머 감독이 만든 <0.08>은 장님에 가까운 스페인 소년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글로벌 단편 3>은 총 6작품이 상영되며, 호러영화 위주로 묶여 있다. 인간의 사악함, 성장의 두려움, 금기에의 열망 등 인간 내면의 잔혹한 풍경을 음침하고 소름 끼치는 화면으로 담아낸다.
이밖에 글로벌 섹션에서 상영되는, 역시 하나의 섹션으로 분류할 수 있는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사람들을 위협하는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영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의 경우 미리 섹션의 성격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었다기보다 올해 접수된 수천 편의 글로벌 공모작들을 묶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두는 작품이 많아 엮게 된 섹션이다. 이 섹션에서는 환경의 문제를 다룬 <휴먼>, 식량 문제를 다룬 <헝그리 플래닛> 등 총 16작품이 상영된다.
국내 섹션 중 <모션그래픽&뮤직비디오>에서는 제작 툴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접 만들어내는 DIY(Do It Yourself) 작업으로 실험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무빙 파노라마>와 인체의 변화과정을 기록한 <육체 애니메이션>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레스페스트에서 매년 최고의 인기를 모으는 섹션은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자인 세계>다. 최첨단 CGI부터 포스트잇 메모지를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까지 광범위한 테크닉을 이용해 비주얼의 쾌감을 선사한다. 특별 초청 섹션에서는 레스페스트 일본의 공모작들을 초청해 일본작들의 경향을 비교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샷츠 2006 베스트 콜렉션'에서는 두 달에 한번 영국에서 DVD와 매거진을 만드는 샷츠에서 2006년도 라인업을 소개한다. 이밖에 아트센터 나비와 함께 모바일 매체에서 구현되는 영상 콘텐츠와 모바일 매체를 이용해 만든 작품들을 상영한다. 또한 1주년 세미나로는 <킹콩>과 <괴물>의 비주얼이펙트를 담당한 한국 출신 테크니컬 디렉터 박재욱 씨가 비주얼이펙트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자리가 12월 8일 열릴 예정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채로운 상영작이 입맛 가득 선보이게 될 레스페스트 10주년 자리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을 찾으면 된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resfest.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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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추천작 8선
음식전쟁 FOOD FIGHT 글로벌 단편 1: 예술 같은 인생 | 감독 스네판 네이들만 | 2006년 | 미국 | 5분 30초
발상 자체가 우습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전쟁을 치른다. 2차 세계대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재현하는 음식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담겼다. 초밥(일본)과 햄버거(미국)가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햄버거가 초밥 무리에 핵폭탄을 터뜨리기도 한다. 침략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김치도 등장한다. 심지어 김치와 김치 간의 싸움까지 나온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건드리고 있음에도, 음식들의 모양새 때문이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영화다.
침묵은 금이다 SILENCE IS GOLDEN 글로벌 단편 1: 예술 같은 인생 | 감독 크리스 셰퍼드 | 2006년 | 14분 30초
침묵은 금이자 세계평화의 시작이다. 이 영화를 보면 세상의 모든 소음, 다툼이야말로 광기의 시작임을 실감하게 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혼합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벽을 두드리는 광적인 이웃에 의해 서서히 미쳐가는 두 모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런던의 영상 제작사 슬링키픽쳐스의 공동 설립자인 크리스 셰퍼드 감독은 이웃에 대한 호기심과 저주가 뒤범벅된 소년의 그림, 장난감 등으로 피 튀기는 전쟁을 재현한다. 광기는 결국 광기로 전염될 수밖에 없다는 결말이 묘한 슬픔을 안겨준다.
인공세계 V.3 ARTIFICIAL WORLDS V.3 글로벌 단편 3: 공포와 전율 | 감독 리처드 펜윅 | 2005년 | 영국 | 8분
사람들이 디지털 쓰나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다. 매트릭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여성이 매트릭스의 바다로 직접 뛰어든다. 영국감독 리처드 펜윅이 진행하고 있는 RND# 시리즈 중 최근작. 영화 <인공 세계>의 세 번째 편인 <인공 세계 V.3>은 전작과 같이 세상의 균열과 현실 세계의 묵시록적 분위기를 허무하게 담아낸다. 특히 가상현실 디지털 쓰나미가 풍경과 사람들을 삼켜버리는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버그 크러쉬 BUG CRUSH 글로벌 단편 3: 공포와 전율 | 감독 카터 스미스 | 2006년 | 미국 | 36분
올해 레스페스트 상영작 중 가장 러닝타임이 긴 극영화다. 작은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벤은 변변한 연애 한번 못 해본 숙맥이다. 날라리 친구들의 생활을 막연히 동경하던 벤은 우연히 전학 온 그랜트에게 끌리게 된다. 일탈이라고 하면 마약 정도라 생각하던 벤은 그랜트의 집에서 자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어두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 첫 경험을 앞둔 고등학생의 성적 열망과 두려움이 엑스터시를 느끼게 하는 벌레란 매개체로 집약된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단편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
얼라이브 오브 요하네스버그 ALIVE IN JOBUGE 태양 아래 모든 것 | 감독 네일 블롬캠프 | 2005년 |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 6분 20초
문어 모양의 에일리언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나타난다. 흉측하게 생겼지만 해를 끼칠 뜻은 전혀 없는 에일리언. 이들을 없애기 위해 군대가 동원된다. 하늘에서 거대한 비행체를 타고 내려온 에일리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큰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인 불법 체류자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미국의 공상과학 영화로 풀어낸 독특한 SF 다큐멘터리. 이 영화 속의 기발한 특수효과에 힘입어 네일 블롬캠프 감독은 컴퓨터게임 <할로>의 극장용 장편 연출자로 영입됐다.
혀와 택시 TONGUES AND TAXIS 레스페스트 10년 베스트 단편 콜렉션 | 감독 마이클 오버벡 | 2000년 | 미국 | 7분 30초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불행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고양이가 펼치는 황당무계한 애니메이션. 화를 내다 혓바닥이 잘려나간 남자를 위해 그의 고양이는 스테이플러로 혓바닥을 집어주는 응급조치를 한다. 하지만 병원으로 가던 길에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또 한 번 혓바닥이 떨어져나간 남자. 의사는 잘려나간 혓바닥을 버리고, 그 혓바닥은 방사능 오염된 하수구에 빠져 거대 괴물로 바뀐다. 영화 <고질라>를 패러디한 듯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삶 자체가 묘한 희비극을 안겨준다.
고속 영화 FAST FILM 레스페스트 10년 베스트 단편 콜렉션 | 감독 피르길 비드리히 | 2003년 | 오스트리아 | 14분
300편의 고전영화가 한 자리에 모였다. 고작 14분 동안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서부극, 전쟁영화까지 영화의 역사를 두루 되짚어냈다. 피르길 비드리히 감독은 300편의 영화 속에서 65,000개 이상의 이미지를 인화한 후 이를 페이퍼 오브제로 엮어 영화역사에 대한 복합적 오마주를 펼쳐낸다. 영화를 열고 닫는 험프리 보가트뿐 아니라 수많은 배우들이 서부 평야 위로 펼쳐지고, 다시 하늘을 날아다닌다. 영화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데다 종이 말, 드라큘라의 관 등 페이퍼 오브제에 펼쳐지는 풍경들도 흥미롭다.
락더벨스: 우탱 클랜의 재결합 ROCK THE BELLS 폐막작 | 감독 데니스 헨리 헤넬리, 케이시 수챈 | 2006년 | 미국 | 113분
힙합의 전설 우탱 클랜의 다큐멘터리. 우탱 클랜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다. 제목 그대로 악명 높은 우탱 클랜 아홉 멤버들을 재결합시킬 콘서트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결합이 불가능할 것 같은 멤버들을 묶어낸다는 설정 자체가 스릴을 더해준다. 113분에 걸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영화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이들을 재결합시키는 데 성공하고, 2004년 캘리포니아 힙합 축제 락더벨스를 보여준다. 특히 우탱 클랜의 멤버 ODB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공연이라 우탱 클랜 팬들의 가슴을 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