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의 몇 가지 테마
박 병 규
사람들은 우리들 여성 작가의 글을 보면
여기저기에 질문만 무성하다고 얘기한다.
이점에서 우리들은 전적으로 리얼리스트이다.
누가 정답을 알고 있느냐고 되묻기 때문이다.
오로지 교조주의자, 파시스트, 군부독재자들만이
대답을 안다고 생각한다.
― 루이사 발렌수엘라
1. 뮤즈에서 페미니스트로
라틴아메리카는 마치스모(machismo)라는 독특한 어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관습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남성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위치는 현재도 여전히 종속적이며, 갖가지 차별과 불평등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시간의 갈피를 더듬어보면 여성이라는 조건을 자각하고, 제도적 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Sor Juana Inés de la Cruz, 1651-1694)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꼽힌다.
식민시대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지금의 멕시코)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소르 후아나는 예속적인 결혼을 피하기 위해 수녀가 되고, 천재적인 지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문학이라는 가면을 사용했다. 이러한 보호막 아래서 남자를 조롱하는 시를 쓰고, 당대의 스콜라 철학에 대한 이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했으나, 결국 제도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여자”라는 반성문을 작성하였다.
역사는 소르 후아나를 “열 번째 뮤즈”라고 부른다. 이런 평가는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상찬일 것이다. 그러나 뮤즈란 소르 후아나의 활동을 오로지 시―식민시대 여성에게 허용된 유일한 문학 장르―에 국한시키고, 그녀의 삶에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제거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소르 후아나를 무시간적이고 탈지상적인 존재이자 예외적인 존재로 수용함으로써 전복적인 특성을 성공적으로 잠재워버렸다.
이후, 18세기와 19세기의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는 현저하게 약화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전위문학 운동 등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의 등장과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스토르니(Alfonsina Storni), 엘살바도르의 라르스(Claudia Lars), 칠레의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브라질의 메이렐레스(Ceilia Meireles), 우루과이의 이바르보로우(Juana de Ibarborou) 등이 작품이나 행동으로 여성이라는 조건을 드러내려고 시도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본격적인 페미니즘 페미니즘 문학이 전개된 때는 때는 1970년 무렵이다. 이 시기 페미니즘 문학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요인 가운데 하나는 국제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해방운동을 들 수 있다. 수잔 손탁, 시몬느 보브와르, 제인 폰다 등의 목소리를 이어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 운동은 이 대륙에 편재하는 빈곤과 억압의 문제에 직면하였으며, 쿠바와 니카라과 혁명, 자국 내의 좌파 운동과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에 돌입하게 됨으로써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 작가들은 의식적인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포착한 현실의 이미지, 여성의 담론으로 주조한 현실의 이미지를 제시하려고 하였으며,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문학에 대하여 도전장을 제출함으로써 이전의 문학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 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상황 속에서 여성 작가들이 천착해온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문학의 윤곽을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2. 부엌과 요리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전제한다. 그리고 억압적인 가부장제 하에서 고난을 받는 여성의 상황을 증언하고, 자신의 위치를 재평가하여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한다.
현상을 기술하려는 이러한 문학은 사회로부터 여성을 배제하고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공간으로 가정과 가사 활동을 꼽는다. 특히, 부엌과 요리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만 할당된 이미지로 남성들의 이미지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관습적인 사고에 따르면, 남성들이 외부 세계에서 창조적 활동을 수행하는 능동적인 존재인 반면에, 여성은 가정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소모적인 활동을 하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엌은 수십 세기에 걸쳐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이라는 주체가 현존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며, 요리는 여성에게만 주어진 의무이자 특권이다.
이처럼 여성의 고유성을 담보하고 여성임을 확인하는 부엌과 요리의 예는 멕시코 작가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Rosario Castellanos)의 단편 「요리 강습」(Lección de cocina)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카스테야노스의 이 단편 소설은 갓 결혼한 신부가 요리 책을 참조하며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과정을 통해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본질적인 속성이라 아니라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내가 있는 장소는 바로 여기이다.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여자는 이곳에 있어 왔다”는 작품 초반의 의식은 실제로 스테이크조차 제대로 굽지 못하고 태워버리는 사건을 거치면서 부정적인 명제로 변화된다. 그러나 카스테야노스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는 아니므로 가정과 결혼생활을 부정한다거나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여성 고유의 문화를 논하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은 남편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문체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부엌과 요리라는 테마는 지금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문학적 담론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단어와 상세한 묘사는 남성 중심의 정전 문학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언어의 사용법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 문학은 ‘문학어’의 범주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금기로 여겨온 성적 담론, 특히 여성의 시각에 비추어진 성적 표현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처럼 부엌과 요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명확하게 가름하고, 문학의 영역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앙헬레스 마스트레타(Angeles Mastretta)의 「페미니스트 요리」(Guiso feminist), 라우라 에스키벨(Laura Ezquivel)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요리 문학’(literatura culinaria)이라는 페미니스트 문학이 애호하는 모델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얘기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과 성적 억압의 보편성이라는 명제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제3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을 오로지 남성과의 대립구도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이 특권에 속하는 사회, 산간 오지의 원주민들에게는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가 아직도 낯선 이방의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사회, 대부분의 원주민과 흑인이 하층계급을 점유하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범주는 실제로 지나친 추상이다. 자기집 부엌에서 스테이크를 굽는다는 행위는, 비록 대표성과 상징성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인종과 계급이라는 범주를 사상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여성에게는 공허한 논설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를테면 멕시코 치아파스에 거주하는 원주민 여성에게 경제적이고 인종적인 차별을 언급하지 않고 가부장제의 폭압에 따른 성적 차별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서구와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은 방향을 달리한다.
3. 증언
성, 계급, 인종이라는 범주를 포괄하려는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의 형식으로는 증언을 들 수 있다. 증언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억압과 질곡을 고발하거나 이에 저항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기존의 참여문학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증언은 참여문학처럼 민중을 대변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그 대신 지배 질서에 의해서 억압되거나 약화된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한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얘기하면, 목소리를 전달하는 증언의 특성 때문에 구술자의 말은 기록자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사실(facts)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이는 기존의 문학 이론이나 비평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때 많은 곤란을 야기한다. 한동안 화제가 된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Menchú)의 증언 조작을 둘러싼 공방도 어느 면에서는 진실의 기록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다. 하지만 구술자의 말은 사실이나 진실의 토로가 아니라 구술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공동체의 경험을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증언에서는 사실과 허구의 구분이나 정형화된 문학적 형식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이 증언을 천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의 힘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정치․사회․문화적인 종속과 가난과 문맹이라는 이중의 질곡으로 억압받는 ‘하위 주체’들의 고단한 일상의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지배질서가 창조한 공식 역사의 이야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담론 투쟁이다. 이런 작품으로는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Elena Poniatowska)가 헤수사 팔란카레스를 증언자로 내세운 『그리스도, 우리 다시 못 만날 때까지 안녕』(Hasta no verte, Jesús mío, 1969), 도미틸라 바리오스 데 충가라(Domitila Barrios de Chúngara)가 볼리비아 주석 광산의 여성 노동자 모에마 바에세르의 증언을 기록한 『내 말 좀 들어보세요』(Si me permiten hablar, 1977), 과테말라 원주민 리고베르타 멘추의 구술을 부르고스가 정리한 『내 이름은 리고베르타 멘추』(Me llamo Rigoberta Menchú y así me nació la conciencia 1983) 등이 있다.
한편, 페미니즘 증언은 제3세계라는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여성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흔히 얘기하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정체성이란 국가가 국민통합을 위해 창출해낸 민족주의적 담론이다. 한 국가 사회에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정체성이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 통일하려는 기도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소외시킨다. 이러한 위험은 초기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존재했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하위주체로서 여성이라는 일반적인 범주 속에 원주민, 흑인, 물라토(흑인과 백인의 혼혈) 여성은 누락되어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세르히아 길반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에서 흑인이나 물라토의 정체성의 문제는 1990년 어름까지 타부로 여겨졌다. 이처럼 하위주체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하위주체가 말을 통해서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고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통로 가운데 하나가 증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의 한 가지 특성은 이질성인데, 이는 이론의 차이에서 연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 주체가 처한 고유의 역사적 경험의 상이성에서 연유한다.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카리브 해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문화적 전통이나 인구의 숫자에서 보더라도 원주민의 영향력이 강력한 안데스 지역이나 중미의 정치적 페미니즘, 아마존 개발로 야기된 에코페미니즘이 좋은 예일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 이론과 문학은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동일한 작가라고 할지라도 필요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은 현실에 충실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고문과 학살을 경험한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의 페미니즘 문학에 엿볼 수 있다.
4. 독재
라틴아메리카 현대 작가들은 작품 경향에 상관없이 파란 많은 역사적 굴곡에 희생자이고 경험자이자 증인들이며, 대부분은 작품과 글을 통해서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는 페미니즘 작가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의 붕괴와 뒤이어 등장한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학살과 실정을 체험한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는 첫 작품 『영혼의 집』(La casa de los espíritus, 1982)에서부터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잇는 마술적 사실주의와 페미니즘의 시각을 결합하여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아옌데는 이 작품에서 클라라, 블랑카, 알바로 이어지는 모계 혈통의 가족사를 통해서 칠레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가부장적 질서, 과두제, 폭력, 비합리성을 해부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아옌데는 가난, 폭력, 불평등, 불의에 저항하지만 겉보기의 혼란 밑에는 어떤 질서가 존재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옌데는 비판의 순간에도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을 설파한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화해와 용서라는 미덕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통해서 그 모두를 껴안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아옌데의 글쓰기는 엘렌 식수가 말한 ‘여성적 글쓰기’, 즉 모든 단계의 억압을 해제하고 잠재적으로나마 글쓴이를 자유롭게 하고 또 멀리 나아가게 하는 글쓰기에 근접한다.
아르헨티나의 현대사도 칠레 못지 않게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되었다. 1976년 군부독재는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더러운 전쟁’을 수행하여 반대파들을 체포, 감금, 고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3만 명이 강제 실종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외국 망명을 선택하였다. 이처럼 엄혹한 독재를 피해 1979년 미국으로 망명한 루이사 발렌수엘라(Luisa Valenzuela)는 ‘더러운 전쟁’을 주요 모티브로 매우 독자적이고 복잡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대표적인 단편으로 꼽히는「무기의 교환」(Cambio de armas, 1982)에서 보듯이, 발렌수엘라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 몸과 마음, 은닉과 폭로, 에로스와 타나토스, 메조키즘과 새디즘, 동지와 적, 가학자와 피학대자는 투쟁 속에서 유희적으로 전복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는 고문실, 나아가서는 군부 독재 치하의 아르헨티나를 전방위적으로 지배하는 억압과 공포를 텍스트로 구조화한 것이다.
좀 더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등장인물 라우라는 도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로케 대령의 고문을 받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이다. 로케 대령은 ‘더러운 전쟁’ 기간에 흔히 그랬듯이 이러한 라우라를 아파트에 가둬두고 성적 노리개로 삼는데, 채찍과 성폭력이 반복될수록 라우라는 의식을 찾아가며 성행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오르가즘을 느끼며, 로케는 이러한 라우라의 손에 총알을 장전한 권총을 쥐어 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전달하고 있는 고문과 인간성의 파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간과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라우라는 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 몸과 성적 쾌감을 통해서 자신을 깨달아 가는 여성이다. 이리가라이의 분석을 원용하면, 여성으로서 라우라는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를 거쳐 상징계로 진입하지 않고 접촉을 통해, 몸의 반응을 통해서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이로써 발렌수엘라는 여성이란 거세된 남근이며, 상징계의 주변부적 존재라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남성중심적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징 질서의 구축이 가능하다고 시사한다.
5. 이론과 평가
라틴아메리카 문단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로사리오 페레(Rosario Ferré)만큼 지속적으로 페미니즘 비평 이론의 정립에 관심을 기울여온 대표적인 인물도 드물다. 페레는 1987년 『저주받은 사랑』(Maldito amor)을 비롯하여 많은 단편을 발표하고, 「글쓰기의 부엌」(La cocina de la escritura, 1980)과 『암캐들의 대화』(El coloquio de las perras , 1990)를 통해 페미니즘 문학 비평을 정립하려고 시도한다.
페레의 주장은 여성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와 남성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어떤 분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페미니즘 문학은 남성문학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페레의 견해로는 문학의 차이란 성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이다. 이는 실제 창작에서 작가가 선택하는 주제, 구성, 문체에도 가감 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페레는 페미니즘 비평을 언급하면서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에서 클라리사 리스펙토르를 거쳐 루이사 발렌수엘라만을 다루는 페미니즘 비평은 남성 작가를 배제하고 있는데, 이는 남성들이 여성 작가를 배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며, 문학에는 오로지 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과 졸작이 있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페레는 크리스테바의 기호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미덕이라면 크리스테바만큼 난삽한 신조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과 여성의 저항은 자칫 테러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성급한 경고를 발설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페레의 주장은 언어적 특성만을 고려하여 크리스테바와 마찬가지로 저항과 혁명의 페미니즘을 약화시키고 중화시킨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은 서구와 교호작용 속에서 문학의 영역을 부단히 확장해왔다. 때로는 값싼 대중문학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비문학어라는 이유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을 정전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창출해냈다. 또한 서구의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여성이라는 범주의 보편성이 허구임을 지적하고 여성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에 조응하는 계급과 인종의 범주를 덧붙여 페미니즘 논의를 한층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현재 시론적인 차원에 논의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 이론은 페미니즘 문학이 성취한 미학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이고 변혁적인 성격을 담보해내야 하는 과제를 떠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