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보고에 따르면 ... 파지리크의 후예들은..불란 코빈문화
.기원후 400년 쯤까지 ..그 지역과 인근에 살았다 ...정확한 이유를 알수 없지만 ...이후 소멸했다
파지리크인들은 .기원전 2세기 흉노의 패권이후 ..금을 비롯한 교역권등을... 계속 가져가기는 어려웠으나..
계속 거주권을 인정받고 흉노의 중심세력으로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유적으로 본다면 1세기 북흉노의 소멸이후에도 존속했다 ......
기원후 4세기초반 산서성에 자리잡고 있었던 남흉노는 중원의 혼란을 틈타서...북중국을 차지하고 ..한[漢]..전조를 세웁니다 .
당시 남흉노의 왕족은 김일제의 아버지 ..휴저왕의 후예.. 저각종 연제씨 ...중국성으로는 유씨[劉]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군요...
보고에 따르면
기원후 320년...갈족의 석륵에게 ...나라를 찬탈당하고 ...그 세력은...서쪽으로 이주를 단행합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기다라족이 등장하는데....왕의 이름이 키[ki]..그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정했다고 하는군요
이란계 아리안족과 투르크족이 섞여있는 집단 이였으며 ...
홍 훈족이라 불렸다 ....인도에서는 후나[huna]....중국에서는 흉노의 별종
당시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을 지배하던 ...소그드인의 표현으로는 훈족 ....
.낙양으로 처들어온 남흉노를 훈으로 기록한 내용이..남아있습니다
소그드인이 ..중앙아시아의 훈족과 .. 남흉노를 ..같은 세력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그들을 동일세력으로 판단했다는 의미이기에 ...가장 유력한 증거로 보입니다
이어 백 훈족도 나타나고... ...그 나라 이름은.. 왕의 이름을 따서 에프탈....기다라족을 지배했다
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기원후 370년경...카스피해와 흑해의 북쪽 ...알란족을 공격하여
그 땅을 차지합니다.....지구상에서 가장 넓고 기름진 초원지대
학자들은 ..그 사건을.. 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은 훈족의 서막으로 보고 있습니다
홍훈족은 ...이란계 아리안어를 사용하였고 ..백훈족은 ..아리안어와 투르크어가 같이 사용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에프탈은 상당기간 중앙아시아를 지배합니다 ...그들이 인도의 불교를 망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그들은 6세기 중반 돌궐이 그 지역에 등장하기전까지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니까 ..대략 200년간이네요
예상되는 ...훈족의 핵심은 ...알타이 지역에서 출발한 ..이란계 아리안 ....입니다
흉노로 불렸고 ...촉발된 시점은...기원후 320년..기원후 350년..남흉노의 휴저왕 후손과 갈족의 정권이 패망한 이후 ....
그 시기는 ..알타이지역 이란계유목민의 문화가 소멸되는 시기와도 대략 일치합니다
*신라에서 훈족을...예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신라의 김씨 왕조의 핵심이 알타이의 이란계 아리안족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면...틀린 추정은 아니다 .
유목민 인 키다리 족은 알타이 산맥 에서 기원 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키 다라 인들이 동아시아 혼합 품종과 함께 " 유로 피이드 (Europid) "라고 생각합니다.
Kidarite 동전에서 그들의 통치자는 수염이 없거나 깨끗한 면도로 그려져있다. - 예를 들어 그 당시 남중국 중앙 아시아의이란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당시의 내면의 아시아 문화의 특징. [6] Kidarites는 동전의 반전 에 탑재 된 궁수 로 묘사되었습니다. [7] 그들은 또한 인공 두개골 변형 을 실행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8]
Kidarites는 Spit Xyon ( "White Xionites")과 함께 Xionites의 주요 하위 부문 인 Karmir Xyon ( "Red Xionites"또는 더 논쟁적인 "Red Huns")과 동의어 인 것처럼 보입니다. ). 그들의 시조 통치자 인 키다라 (기원전 350-385 년)의 이름은 "서쪽"이라는 뜻의 투르크어 단어 인 키드 르티 (Kidirti) 와 동족이 될 수 있으며 키다 라이 족 은 원래 Xionites의 가장 서쪽에 있었고 처음으로 내 아시아에서 이주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11] 중국 소식통은 Uar (미끄러지는 Huá)가Pingyang (평양, 현대 Linfen , 산서 ) 주변 지역에서 기원전 320 년경 조 (Zhao) 주에 의해 서쪽으로 추방 되었을 때 Xionite 계열 인들에게 압력을 가했을 때, (Kidarites)와 같은 이주자가 이주해야합니다. 또 다른 이론은 4 세기 동안 알타이의 기후 변화로 인해 여러 부족들이 서쪽과 남쪽으로 이주하게되었다는 것입니다
Kidarites는 곧 Hephthalites에 의해 압도되었다. [25] [20] 520에 의하여, Gandhara는 중국 순례자에 따라 명확하게 Hephthalite 통제의 밑에,이었다.
313년, 소그드 상인은 간수 회랑에서 사마르칸트로 보내는 편지에서, 중국의 남흉노 집단을 훈Xwn이라 부르고 있으며
백제국(白題國엽달족)
융노의 별종. 활국과 페르시아사이에 위치.
양서 열전 제이(梁書卷第五十四 列傳第四十八 諸夷)
“王姓支名史稽毅,其先蓋匈奴之別種胡也
에프탈(Ephthalites 또는 Hephthalites)은 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투하리스탄을 중심으로 투르키스탄과 서북 인도에 세력을 떨친 페르시아계(系) 유목 민족이다. 백훈족(White Huns)으로 알려져 있다.출처: http://elfqkr.tistory.com/entry/533-양직공도梁職貢圖속의-백제국사百濟國使-제기題記-해석 [바람따라구름따라]
흉노는 고대에 ‘훈느’로 발음되어서 훈과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외에도 동서양의 기록에서도 유사성이 보인다. [위서]“서역전”에 속특국(소그드국)에 대한 언급에서 溫那沙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를 內田吟風은 ‘후나스탄Hunastan'이라고 추정했다. 속특국을 엄채(알란)의 후예라고 하면서 흉노가 그를 멸해서 3대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바, 이는 바로 훈이 알란족을 멸망시켰다는 서양의 기록과도 부합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사서에서는 奄察(알란)을 무너뜨린 한 집단을 ‘흉노’라고 기록했다. 중국의 사서에도 서기 350년에 북흉노라는 집단이 게르만족의 변경인 알란국을 침략했다고 했으며, 로마의 기록에는 376년에 훈이 알란보다 서쪽에 위치한 크림반도를 침략했다고 한다. 두 기록을 연결하면 하나의 집단이 점진적으로 서쪽으로 침략해온 것으로 보인다
북흉노의 잔존 무리들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서 중앙아시아로 도망쳤고, 그들은 서기 158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사라져버렸다
인도 불교의 쇠망에 타격을 입힌 것은 에프탈(Ephthalites)인데, 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투하리스탄(박트리아 일대, 아프카니스탄)을 중심으로 투르키스탄과 서북 인도에 세력을 떨친 이란계(系) 유목 민족인 백색 훈족(White Huns)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사적(史籍)에는 엽달(嚈噠), 읍달, 혹은 활(滑)이라고 기록되었고, 서방 사료에는 에프탈(Ephthalitae) 등으로 왕족은 알타이 지구에서 서쪽으로 이동
돌궐족
튀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지방에 살았던 튀르크 종족)의 한 부족으로서 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柔然: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의 족장 토문(土門:만인의 長이라는 뜻)이 유연·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伊利可汗]이라 칭하였다(552).
이 무렵부터 그의 아우 디자불로스는 서방으로 진출하였고, 3대 목간가한(木杆可汗) 때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563∼567).
https://en.wikipedia.org/wiki/Kidarites
이 페이지 번역하기 The Kidarites were a dynasty of the "Ki" clan named after their ruler Kidara. They were part of the complex of tribes known collectively as Xionites or "Hunas".
m.blog.daum.net/shanghaicrab/16155793
2017. 8. 19. - 이것이 바로 유럽문헌에 나오는 "훈족"이다. ... 흉노를 구성하는 민족 중에 동이란언어를 사용하는 기다라인(Kidarites, 홍Huna인이라고도 부름)도 ...
오호십육국시대를 개막한 인물이자 한(漢, 훗날 전조(前趙))의 창건자. 자(字)는 원해(元海)이고, 묘호는 고조(高祖)이며, 시호는 광문황제(光文皇帝)이다. 신흥(현재 산서성 흔주) 사람으로 일설에는 서하습성(현재 산서성 분양)사람이라고도 한다. 흉노족으로 남흉노의 선우였던 어부라[1] 손자이며 좌현왕 유표[2]의 아들이
흉노족과 스키타이의 혼혈이 훈족이라는 DNA 연구 결과가 나와 혈연적인 관계성이 입증되었다. #
news.donga.com/3/all/20180513/90058953/1
2018. 5. 14. - 스키타이, 흉노, 훈족 등 역사책에 흐릿하게만 남아 있던 후기 청동기∼신석기 시대 인류의 기원과 이주 역사가 고게놈학 연구로 새롭게 밝혀졌다.
https://ko.wikipedia.org/wiki/영가의_난
영가의 난(永嘉之亂)은 중국 서진 말기에, 이민족에 의해 일어난 반란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제(懐帝)의 연호였던 영가(永嘉 307년~312년) 때 일어났기에 그렇게 ...
누락된 검색어: 훈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