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스의 신 ventus : 라틴어의 ‘바람’
1. 연습실
오늘도 미르는 늦은 밤까지 홀로 연습실에 남아 연습중이다.
거울 속에서 의기소침한 미르의 반대편이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그래도 열심히 스텝을 밟아본다.
몇 번이고 턴 연습도 해보고 지치면 베이직도 밟아본다.
벌써 가슴께와 등 쪽 셔츠가 흥건히 젖어들었다.
공허한 연습실에선 박자시디만 원투쓰리를 나직이 외치고
열기로 인한 습한 김이 미르를 에워싸고 있다.
흐르는 땀이 튀어 연습실 바닥을 적신다.
미르의 표정이 비장하다.
“집에 안가, 오빠?”
미르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본다. 인혜다.
밝은 표정이 아니다.
“먼저 가라니까 왜 왔어. 연습 좀 더 하고 간다니까?”
“치……. 맨날 연습만 해. 정작 빠에서 춤추자고 하면 뒤쪽에 숨어버리면서.”
인혜는 한손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베베꼰다.
못마땅한 듯 한쪽 발은 연습실 바닥을 탁탁 구르고 있다.
“언젠간……. 뭐. 자신 있게 출 날이 있겠지…….”
“가자, 오빠아아.”
인혜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르를 졸라댄다.
어느 틈에 땀에 절은 미르의 팔뚝에 매달려 있다.
미르의 불룩 솟은 핏줄이 뜨겁게 인혜의 손바닥에 전해왔다.
“그래……. 가자.”
미르는 하는수 없이 신발을 벗어들었다.
“나 세수좀 하고 올게.”
연습실에 붙어있는 간이 화장실에 들어간 미르는 수도를 틀었다. 거세게 나오는 물줄기 아래 머리통을 댔다. 차갑다.
연습실에서 계속 울리던 박자시디의 카운트 세는 소리가 끊겼다.
인혜가 만진 모양이다.
잠시 후 귀에 익은 살사 음악이 흐른다.
I still haven't found what I am looking for…….
미르는 얼굴의 물기도 채 닦아내지 않고 급히 뛰쳐나갔다.
“꺼.”
단호하고 무서운 얼굴이다.
“오, 오빠…….”
“끄랬지! 그 음악 싫다고 했잖아!”
“오빠, 미안, 난 그냥 이번 해변살사때 나올 음악리스트를…….”
“당장 꺼. 그 음악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잊었어?”
“알았어. 화내지마. 알았어. 끌게.”
‘딸각.’
음악이 멈췄다.
“오늘은 못 데려다 주겠다. 혼자 가라. 기분 좀 그래. 혼자 맥주한잔 하고 갈래.”
인혜는 그런 미르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이런 날은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란 걸 잘 안다.
인혜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등을 보이며 걸었다.
미르는 인혜가 떠난 연습실에 다시 홀로 남았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들었다.
연습실 구석의 낡은 소파위에 진흙덩어리처럼 몸을 던졌다.
차갑고 자극적인 맥주의 탄산이 목구멍을 쓸어버리며 흘러 들어갔다.
한참을 벌컥거리고 마신 미르는 눈을 감았다.
미르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2. 나쁜기억
작년가을이었다. 여기 저기 빠마다 파티가 끊이지 않았다.
미르도 사람들과 어울려 뒤풀이까지 달리곤 했다.
살사 입문 3년차였던 미르는 아는 사람도 꽤 됐고 어느 정도 레벨 높은 패턴의 춤을
구사하는 살세로였다.
문제의 그날은 어느 동호회의 파티 뒤풀이로 낯선 살세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파티의 장점은 낯선 파트너와 춤출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거다.
그것은 신선한 긴장감을 준다.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았을 때는 마치
숨겨져 있던 보석을 발견한 모험가의 심정이 드는 거다.
“일단, 천천히 둘러봐서 그럭저럭 스타일이 맵시 있는 사람들을 물망에 올려.
그다음 다른 사람과 춤추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는 거지.
그정도가 되면 본인의 실력에 얼추 맞는 살세라를 찾을 수 있고
다음 곡이 시작 될 때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면 되는 거야. 어때, 쉽지? 하하하. “
미르는 후배 살세로들에게 노하우까지 전해주며 호기 있게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그리고 목표 살세라를 하나 정했다.
긴 생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한 작고 귀여운 살세라였다.
“저와 한 곡 추실까요?”
하얀 얼굴의 그녀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살짝 미르에게 건넸다.
I still haven't found what I am looking for 가 흐르기 시작했다.
미르는 3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맘껏 …….
그때였다. 몇 소절 흐르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멈춰 섰다.
“잠깐요. 지금 박자틀리셨거든요? 음악 못들으시나봐요? 그런데 어떻게 춤 신청을 하시죠?”
황당했다.
그녀는 긴 갈색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확 돌리고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미르는 마비된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음악은 계속 흘렀고. 나머지 긴긴 음악을 홀로 플로어에 남아 들어야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후배들의 야유가 들리는 거 같았다.
냉랭했던 그녀의 ‘음악 못들으시나봐요?’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온 세상이 캄캄했다.
어떻게 제자리에 돌아왔는지. 어떤 식으로 집으로까지 오게 됐는지 기억이 안났다.
“괜찮아, 형. 형이 이해해. 저 애 까칠하기로 유명해.”
“쟤가 웃기는 애지. 형이 참아.”
“뭐 저런 싸가지가 있냐. 아휴. 화나.”
그런 말들을 들은 거 같다.
하지만 미르의 귀에는 모두 윙윙 거리는 개미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날 이후 미르는 자꾸 실수를 거듭했다.
좀처럼 자유롭고 여유롭게 춤을 출 수가 없었다.
자꾸 그녀의 목소리가 야유를 보내는 거 같았다.
“음악도 못 들으시나봐요?”
미르에겐 악몽이었다.
미르는 점점 플로어에 나오는 일이 줄어들었다.
말없이 구석 소파에 앉아있기에 무척 어울리는 표정을 하고 팔짱을 낀 채로 있을 뿐
전혀 춤을 추지 않게 된 거다. 그리고 정모나 번개모임이 끝나면 홀로 연습실로 가서
혼자 춤을 췄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때의 상처는 그대로 큰 벽을 만들고 자존심과 고통의 가시가 무수히 높은 담장을 이뤘다.
‘나는 아무와도 춤출 수 없어…….’
미르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3. 벤투스의 신
=“이봐, 미르! 오늘 우리 창고 정리하는 날인데 나 좀 도와줄래?”
“어? 헤르만 형.”
느지막이 깨어도 좋을 휴일 아침에 탑바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헤르만의 전화를 받았다.
미르는 어제 과도한 연습과 음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기꺼이 헤르만을 도와주겠노라 대답했다.
미르에게 있어서 의리는 생명과도 같은 거니까.
대낮에 도착한 탑빠는 밤새 울려 퍼지던 음악이 꺼진 채로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음습하고 고요하다. 지하계단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왔구나. 고맙다. 나중에 술 한 잔 살게.”
먼저 도착한 헤르만은 벌써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작업 중이다.
“난 이쪽 창고를 정리해야 하니까. 넌 안쪽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간 신발 좀 정리 해줘. 아마 곰팡이 핀 것도 많을 거야. 필요하면 마스크 사용하고.”
헤르만이 목장갑 한 컬레를 미르에게 던졌다.
“마스크는 됐어요. 도대체 얼마 만에 창고 정리인거에요? 후후.”
미르는 탑바 주방 뒤쪽으로 나있는 문을 열고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낡은 종이상자가 빼곡히 쌓여있다. 먼지가 케케로 묵은 걸로 봐서 몇 년은 족히 지난 상자들이다. 맨 꼭대기에 올려진 상자를 내리자 춤을 추듯 먼지들이 잠을 깬다.
신발들이다.
어떤 건 빨갛고 검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도 있고 어떤 건 구겨진 채 처박혀 있다.
“쓸 만 한 건 꺼내두고, 아주 못 쓰게 된 건 구분해서 버리라구!”
헤르만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미르는 말없이 창고에 처박힌 채 벌써 네 개의 상자를 내려 정리중이다. 개중엔 쓸 만한 신발이 몇 개 있어서 대여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오래된 신발은 가죽이 상해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그런걸 모두 모아 버리면 된다.
“오늘은 이만 하자고. 정리해. 내가 맥주 쏠게.”
땀범벅이 된 헤르만이 창고 문을 열고 윙크를 한다.
미르도 씨익 웃어줬다.
“ 다 했어요. 몇 개만 더 보면 돼.”
네 번째 상자의 마지막 신발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근데,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손끝이 찌릿 했다.
미르는 신발 주머니를 열었다. 남자 신발이다.
“형, 이건 쓸 만한데요?”
“어디.”
헤르만이 고개를 빼서 미르가 들고 있는 신발을 쳐다봤다.
“으음? 이건 벤투스의 신이잖아?”
“벤투스의 신?”
아닌 게 아니라 신발주머니에 은빛문구가 적혀있다. ventus.
“이야, 미르. 운이 좋은데? 이런 신을 찾다니.”
“무슨 소리야, 형.”
“너 벤투스 몰라?”
“벤...투스?“
“그래, 벤투스 10년 됐나. 왜 그……. 우리나라 살사계 신동으로 불리면서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5년 만에 바람처럼 사라졌던…….“
“아!”
미르는 기억을 더듬어 벤투스를 찾아냈다.
타고난 춤꾼이었던 그의 전설 같은 행적들. 어디를 가나 벤투스의 동영상이 있었으며
어디를 가나 그의 칭송은 화려한 미사려구와 함께 빛났다.
벤투스와 춤추기 위해 전국 살세라들이 모여들었고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다른 살세로들 마저도 카메라를 열어 그 영상을 담기 급급했다고 한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었던 벤투스의 아름다운 샤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던 벤투스의 황홀한 리드.
유명했던 벤투스는 그가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나서
정말 그의 닉네임에 걸맞게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신발을 보관하던 탑바에서도 주인 잃은 신발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지금 5년 만에 미르가 찾아낸 것이다.
“벤투스는 그렇게 사라지면서 전설이 되었지.
지금까진 아무도 벤투스를 능가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모두들 그의 신발을 탐냈었어.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며 보관하다가 결국
어찌 어찌 사라졌었는데. 그게 여기 있었구나. “
“이 신발을 왜 탐을 내요, 사람들이?”
“벤투스의 정기가 흐르는 신 일거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겠어? 하하하.”
“…….”
미르는 생각에 잠겼다.
왠지 벤투스의 신을 찾은 건 운명 같은 게 아닐까.
미르는 벤투스의 신을 조심스레 신어 보았다.
사이즈가 딱 맞는다. 신기했다.
왠지 기운이 솟는 거 같았다.
약간 낡은 신이었지만 바닥을 비벼보니 아직도 쓸 만했다.
“이거 내가 가져도 될까. 형?”
“물론이야. 네가 찾았잖아. 어차피 신발 몇 개 줄 생각이었어. 그나저나 여기 얼른 정리해야겠다. 곧 빠 문 열 시간이라구.”
“응.”
미르는 벤투스의 신을 가방에 챙겨 넣고 마무리 창고정리를 했다.
4. 변화
빠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르는 벤투스의 신을 신고 거울 앞에 섰다.
그동안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한순간에 걷히는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용기를 내어 보아도 되지 않을까.
“오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 인혜야.”
남보다 좀 일찍 와서 베이직 연습을 하는 인혜다.
미르는 인혜에게 시험해 보기로 했다.
“춤출래?”
“어머, 오빠가 웬일이야. 홀딩은 질색을 하더니.”
인혜는 이쁘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다.
미르는 용기가 났다.
공포스럽기만 했던 플로어가 편하게 다가왔다.
곡이 끝나간다. 미르는 인혜의 손을 잡고 턴을 돌리기 시작했다.
리드미컬한 턴은 점점 가속도를 붙여 빨라졌다.
그렇게 수십 바퀴를 돌리고 천천히 감속되어지며 안전한 정지까지.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인혜는 황활 감에 도취되어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미르의 이마에 땀이 흐르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거칠고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약속이나 한듯 조용했던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모두 미르와 인혜의 춤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다.
미르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가벼이 목례를 했다.
수많은 살세라들이 앞을 다투어 미르와 춤추기 위해 몰려들었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미르의 홀딩은 계속되었다.
미르와 춤춘 살세라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 되어 미르와 짙고 깊은 감사의 포옹을
하고나서야 미르를 놓아주었다.
비 오듯 땀이 흘렀지만 이상하게 지치지 않았다. 벤투스의 신을 신고 있는 한 미르는
바람처럼 몸이 가벼웠다.
미르는 정상에 섰다.
아무도 미르에게 박자운운하며 샤인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미르는 제왕이 된 것이다. 살사계의 숨은 진주! 라틴24와 오살사에는 미르를 칭송하는
기사와 사진들이 연일 게재되었다.
명실 공히 미르는 최고가 된 거다. 그리고 미르는 벤투스의 신을 늘 가지고 다녔다.
2시간 50분에 서울과 부산을 주파하는 ktx 차창 밖으로 풍경이 쏜살같이 뒤로 달린다.
지난밤 들뜬 기분에 잠을 설쳤는지 옆자리엔 인혜가 곤히 잠들어 있다.
미르의 명성에 힘입어 부산 해변살사에 초청공연팀으로 초대된다는 사실보다
미르와 함께 바다로 향하는 여행이란 사실에 인혜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인혜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2년 만에 첫 번째 여행이었다.
인혜의 고개가 미르의 어깨로 미끄러진다.
미르는 흘러내린 인혜의 앞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겨주었다.
이쁜아이다. 착하고.. 고맙고.
‘벤투스의 신 덕분에 인혜를 기쁘게 할 수도 있구. 참.. 고마운 신발이야.......’
‘....?’
미르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신발주머니!’
미르는 재빨리 일어나 짐칸에 올려놓은 가방을 내렸다. 그 바람에 미르에 기대 잠들었던
인혜도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오빠?”
허겁지겁 가방을 뒤적이는 미르는 대답할 겨를조차 없다.
“오빠. 뭐 잃어버렸어?”
“신. 신발 주머니! 그거! 벤투스의 신!”
“…….”
인혜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미르는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오빠, 그까짓 신발이 뭐 중요하다구. 전에 신던 거 예비용으로 가져왔잖아.”
“아냐. 벤투스의 신이 없으면 난 공연할 수 없어! 춤 출 수 없다구!
아! 어디 갔지. 어디다 뒀지? 기억이 안나. 분명 어제 탑바에서 마지막으로 춤추고…….“
미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어젯밤을 돌이켜보았다.
“그래, 라살사 뒤풀이를 갔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아! 인혜야. 어떻게 생각 좀 해봐!”
미르는 애꿎은 인혜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발 생각 좀 해봐! 그게 어떤 건지 몰라서 그래? 그 신발이 아니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구! 이런 제길! 하필 이런 때! “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미르를 쳐다보는 인혜는 당황한 기색조차 없다.
오히려 매우 침착해 보였다.
“오빠.”
“뭐!”
“그 신발. 내가 일부러 탑바 탈의실에 두고 왔어.”
“뭐! 너 미쳤어?”
미르는 금세라도 인혜를 올려칠 기세로 인혜에게 다가섰지만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인혜의 두 어깨를 부서져라 꽉 쥐어흔들었다.
5. 도약
“미쳤어? 그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오늘 부산으로 떠날 거 알면서 일부러 두고 와?”
“오빠. 그 신발은 원래 그 자리야. 오빤 그 신발 없이도 충분히 잘 해 낼 수 있다고!”
미르는 절망적이었다. 인혜를 잡았던 손이 맥없이 풀렸다.
맥이 풀린 미르는 자리에 털썩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아! 어쩌지. 이제 어쩌지. 내가 왜 확인을 다시 안했을까.”
“다시 확인했더라도 내가 또 빼내어버렸을 거야. 이제 오빠는 그 신발 없이
오빠 힘으로 도전할 때가 아닐까? 오빠…….
오빠는 벤투스의 신 같은 걸 믿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전부 나랑 헤르만 오빠가
미르오빠를 위해 꾸민 거라구!“
미르는 고개를 들어 인혜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오빠 정도의 실력이면 애초부터도 전국재패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어쩌다가 그 이상한 여자애한테 상처 받은 것쯤……. 이젠 이겨낼 때도 됐잖아?
그 벤투스의 신은 물론 전해 내려오는 말이지만
사실은 오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나와 헤르만 오빠가 만든거라구.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이즈도 딱 맞겠어.
헤르만 오빠한테 부탁해서 미리 그 창고에 내가 가져다 둔 거야.
애초 벤투스의 신이란 건 없어. “
미르는 머리가 아찔했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벤투스의 신이 사실은 가짜라니.
동시에 인혜에 대한 따뜻함이 솟아올랐다.
“그럴 수가....인혜... 네가....날 위해서.”
인혜는 어정쩡하게 서서 말문이 막혀버린 미르의 두 손을 잡았다.
“오빠, 벤투스의 신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동안 오빠가 숱한 세월을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그런 게 바로 지금의 제왕자리에 오른 원동력인 거야. “
인혜는 가방을 뒤져 또 하나의 신발주머니를 꺼냈다.
연습용으로 늘 하나 더 가지고 다니던 미르의 원래 댄스화였다.
“오빠는 어떤 신을 신어도 최고로 멋지게 출 수 있다구.”
“인혜야....”
미르는 인혜가 내미는 신발을 받아들고 미소 지었다. 사랑스러운 인혜.
6.에필로그
부산해변살사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물론 미르와 인혜는 훌륭한 공연을 펼쳤다.
미르는 비로소 벤투스의 신에 의지 하지 않은 채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미르는 헤르만과 탑바 근처 편의점에서
기쁜 조우를 가졌다.
“형, 고마워요.”
“뭐,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전부 인혜의 꾀였지. 여하튼 모든 게 잘 됐어.”
“이젠 나 자신을 믿고 더 열심히 출거에요.”
“멋지군. 세계적인 춤꾼이 하나 더 나오는 건가? 하하하.”
“에이, 형님도. 하하하.”
미르와 헤어져 탑바로 돌아온 헤르만은 휘파람을 불며 텅빈 플로어를 가로질러
창고 문을 열었다.
미르 덕분에 잘 정돈된 창고 안의 상자들이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다.
헤르만은 잠시 상자들을 둘러보더니 하나를 들어 내린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 신발주머니 하나가 눈에 띈다.
‘벤투스의 신’이라는 은색 글자가 선명하다.
헤르만은 엷은 미소를 짓는다.
상자를 다시 잘 닫아 두고 창고를 나온다.
핸드폰을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아, 여보세요? 재우야, 나 헤르만 형인데. 창고 신발정리 좀 해야겠다.
내일 시간 있니?“
순간, 창고 문이 닫히며 암흑세계였던 창고 안에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벤투스의 신이라고 쓰인 은빛글자에서 발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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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플로어에서 가끔, 예의없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로 깊은 상처를 받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한곡을 같이 시작했으면 끝날때까지 예의를 지켜주면 참 좋으련만. ^^
그런식으로 상처를 받으면 어떤 사람들은 홀딩 공포증이 생겨버려서 실전 살사를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작 본인의 실력은 늘어가는데 용기가 없어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벤투스의 신을 바친다. ^^
즐거운 살사인생을 맘껏 누리도록.
딸기의 살사화 공구가 진행중이길래..작년 8월쯤에 썼던
창작소설을 끄집어 내와 봤어요. ^^
신이 사람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
편한 발이 자유롭게 하는건 맞아요. 즐거운 아침~
첫댓글 꿈신님~전에 뒤풀이때 하신말씀이 생각나네요~간지나게 입고추라고 ㅋㅋㅋㅋ ..명심~!!!
항상 낭랑한 목소리로때 사회를 보는 多방면에 재주많은 이쁜 꿈신 주인공 이름덕분에 끝까지 읽어봤네요... 초보시절 이런좌절을 겪는 이 땅의 모든 살사인이 읽어봤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다방이요? ㅋㅋㅋㅋ
인혜같은 파트너 있슴...고수되는 데 3개월이면 충분하겠는뎅..문제는 저런 파트너를 어떻게 만날수 있을지..과연 있을까? ~ 쩝~ ㅡ,.ㅡ;
나.......여기 있쟈나~~~ ㅋㅋㅋㅋ
인혜야...니 본명을 아직 풍경이 알리 없잖아 ㅋㅋㅋㅋ
허~걱! 딸기누나였어 ? @.@;;
투잡이신가요? 작가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