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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두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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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펌글)/정치 시사 스크랩 민족지구에 민족간부는 없었다.
김정섭 추천 0 조회 37 07.12.22 07:2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나 한 사람 한 가정의 이야기로 민족간부를 싸잡아 비난하는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 과정에 많은 조선족 공무원들과 얼굴을 맞댔다.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 한족이면 조선족을 찾았다.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2년이다.

고향에 다녀온 어머니가 원 작은형님 앞집의 아줌마 조카가 아랍련합추장국이라는 나라에서 한식관을 경영하는데 복무원 여러명과 주방일군을 모집한다고 하였다.

주토지국 반공실 주임으로 있는 김인철의 형제들이고 그 기사(임시공)로 있는 동생 김동철 수속하러 직접뛰여다니기에 믿었다.

더욱이 떠날적에 고추가루도 몇십근을 갖고가도록 하는데 완벽하게 속았다.

 

북경까지 기차로 북경에서 우룸치 우룸치에서 출국해 현지에 도착하여 아랍련합추장국의 한식집에서 행장을 풀었다.

나머지 수속비를 김동철한테 넘겨서 한나절이 지나서 누나가 울면서 전화 왔다.

돈을 받은 다음에 짐을 다시 싸고 이동한곳은 기생굴이였단다.

그 돈들 다 포기하겟으니 돌려보내달라고 하니 모두 처음에는 그러지만 현실을 정시하고 인차 돌아가는것 포기하더란다.

너도 별수 없이 7일을 넘기지 못하고 할것을 기력을 빼지 말라고 하더란다.

 

한밤중에 울면서 하는 누나의 전화를 받고 시장전화,주장전화를 하였는데 하나같이 시외사과로 가서 신고하라고 한다.

이튿날 출근시간을 맞춰서 가보았는데 그순간부터 축구공신세로 되였다.

시외사과에서 주외사과 주외사과에서 시법원으로 시법원에서 다시 주법원 주법원원에서는 다시 시외사과로 가보란다.

 

이 과정에 민족간부는 제쳐놓고 간부는 없었다.

조선족 이기전에 연변사람이였는데 연변에 간부는 없었다.

 

외사과에서 희한한 말을 해준다.

외사과에서 지정한 로무송출 대행 회사에서 약속을 어기거나 법을 위반하면 처벌을 하지만 개인들이 한것은 당사자끼리 협의를 보라고 한다.

일방의 말만 듣고 처벌을 못한다고 한다.

증인과 증거를 얼마든지 제출을 할수 잇다고 햇는데 역시 막무가내였다.

 

이렇게 하루종일 축구공 신세가 되여서 다 돌고 나니 저녁이 되였다.

저녁에 누나한테서 전화왔는데 자포자기하는 목소리가 력력햇다.

룡정,흑룡강,화룡 등지에서 온 사람들중에 교원,대학생 등등 사람들이 많은데 와서 몇일내로 돌아간 사람이 없더란다.

몇일만 믿고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것들 후에 필요할지도 모르니 대화를 많이 하면서

시간나는대로 그곳 정황들을 낱낱히 료해 해두라고 햇다.

 

연변의 집법인원을 믿다가는 끝이 보이지 않을거 같았다.

 

방법을 달리할수밖에 없었다.

북경의 010114로 외교부전화를 알아냈다.

외교부에 전화해서  중국주재 아랍련합추장국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알아냇다.

중국주재 아랍련합추장국의 대사관을 통해서 아랍련합추장국주재 중국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사실의 경과를 말해주고 누나를 구출해서 보내줄것을 요구했는데 역시 수속해준 당사자를 찾으라고 한다.

당신 이름이 뭐냐.

외교관은 자국민의 인신안전과 재산안전을 보호해주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것이 아니냐.

외교부에 고발을 당신같은 사람은 외교관의 자격이 없다면서

야단을 치니 목소리도 많이 누그러든다. 

가족들은 이렇게 전화를 해와서 데리러 가면 본인이 돌아가기를 거부한다고 한다.

진정 누나를 돌아오게 할려면 누나한테 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어서 누나가 요청하면 자신들이 움직일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할수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저녁에 누나하고 전화통화에서 돌아올수 잇는 방법을 대주었다.

우선 조용하게 돌려보내고 수속비를 토해내면 돌아가서 떠들지 않겠다고 해보라고 했다.

수속비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면 돌려보낸다고 하기에 이런 각서 법적효력을 발생하지 못할줄 알고 불러주는대로 받아적었다고 한다.

 

바로 돌아올수도 없고 돌아오는데도 수속을 거치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면 몇일후에 출발하게 된다고 한다.

연길에서 출발해서 십여일만에 돌아왔다.

북경에서 기차타고 돌아오겟다는것을 비행기표를 갖다주도록 친구한테 부탁하였다.

불필요한 랑비라고 나무리던 누나는

그동안 초췌해져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어머니를 보고서야 잘햇다고 한다. 

 

화룡서성의 이미 이들을 통해서 아랍련합추장국에 가족을 보낸 가정과 수속을 해놓고 출발을 대기하는 집에 조용히 찾아서 이 인간들 마땅한 징벌을 받도록 하자.

일체 경비는 내가 대고 손해배상을 받더라도 부담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

동네 창피하게 소문을 내지 말아달라고 한다.

사실을 알고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들겟다는데 가족이 맞는가고.

혼자서 뛰는수밖에 없었다.

 

김광진 당시 공안국 국장한테 한시내에서 EMS로 만장같이 그동안 과정을 적어보냇다.

이튿날 시외사과에서 호출이 왔다.

당연히 해야할일을 국장이 지시를 해서야 움직이는 인간들 한심햇다.

정신고통과 손해를 본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손해를 본 금액의 절반정도를 받는선에서 합의를 하라고 한다.

 

현재도 주토지국 반공실 주임으로 있는 김인철이 동생 그돈들 다 탕진하고 손해비를 물어낼 능력이 없다고 한다.

동생은 잠적해버리고 연락이 전혀 않된다고 한다.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서 손해비를 지불하는데 절반밖에 물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누나가 주토지국에 갓을적에 수모를 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갈보라고 욕하던

인간의 흔적없고 동생의 잘못으로 피해를 준데 대해서

시외사과에서도 손해비의 절반을 받는것으로 만족을 하라고 한다.

 

자신들을 찾아왓던 사람들중에서 이만큼이라도 돌려받는것이 우리가정이 유일하다고 한다.

견결히 다 받을것을 요구하면 더 협조를 못하고 개인적으로 받으라고 한다.

한심해서 말이 나오질 않앗다.

별수없이 절반을 받는것으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대기중이던 한고향 누나한테서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믿지 말라고 하면서 추진을 할려고 하더란다.

가지않겟다고 하면서 그 수속비를 다 돌려달라고 했는데 전부를 돌려주지 않고 일부만 돌려받았다고 한다.

 

먼저 갓던 서성의 여자는 돌아오자바람으로 이혼을 당하고 아들보러 시집에 가면 보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더 한심한건 인두껍을 쓴 인간이니깐 이런 짓을 할수 잇다고 생각이 들엇다.

김인철의 여동생도 이렇게 속아서 가서 몸을 팔다가 몇해가 지나서 자금을 모아서 독립하고 이런것을 꾸렸다고 한다.

그리고 올케되는 남동생의 처를 데려갔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몸팔고 있더란다.

 

룡정의 두아들을 둔 언니는 작은 아들하고 전화통화에서 돈많이 보내라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다 포기하고 갈수 있는가고 하더란다.

대학나오고 교원으로 있던 사람들도 속아서 와있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더란다.

 

이과정에 량심적인 민족간부는 없었다.

아직도 김인철,김동철 형제는 주토지국에서 활개를 치고있다.

나또한 길에서 보면 잘보내고 있는가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연변일보에 기사제보를 했다.

회사와 이름을 실명으로 해줄것을 요구하면서 한쪽의 말만 듣고 기사를 낼수 없으니 증인의 진술과 확인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 드린다고 햇는데 소식이 없었다.

 

 

나의 노력으로 고향마을에 더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다른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 나도록 하는 인간들을 응징하는 법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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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2.25 02:57

    첫댓글 같은 민족을 사기치는것도 모자라 인신매매를 하는것 같은데.. 어이없는 일들이 중국엔 비일비재 하군요.. 많은 사람들게 알려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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