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굴/상도동성당
상도동은 상여꾼이 집단 거주하여 "상투굴"이라고 부르던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민속용어로 상여꾼은 <상두꾼> <향도꾼>으로 표현하고
있다.
<상두꾼>의 수는 상여의 종류에 따라 상이하나 일반적으로 민가에서 사용하는
상여에는 보통 13-28명의 상여꾼이 동원 되었다.
<상두꾼>의 신분은 원래 상민에 속했다. 그러다가 갑오경장 이후에 신분제도가
타파된 다음부터는 촌락단위나 친족단위로 바뀌게 된다. 상여를 멜때는 전날 저녁에
빈상여를 메면서 리허설을 하는 것은 필수 코스인데 이것을 "대드름" "댓돌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이 인망이 높거나 유명한 사람이면 서로 자기가 메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이제는 영구차로 바뀌어 볼 수가 없는 민속 예절로 남아 있을 뿐이다.
<상여소리>
부모 동생 이별하고 이제가면 언제오나/어허 어허하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후렴구)
인명은 재천이라 죽어갈길 서럽구나/ " "
한달이라 서른날은 맷돌같이 돌아갈제/ " "
꽃을 보고 놀던 나비 짝을 잃고 돌아가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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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에 달은 밝고 홀로 앉아 누었더니/ " "
이팔 청춘 원통하다 초로같은 우리인생 이슬같이 가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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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성튼 몸이 저녁나절에 병이 드니/ " "
부르느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 "
푸른 것은 버들이요 아지랭이 아롱아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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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대찰 찾아가니 북망산천 여기일세/ " "
<봉복남>이라는 국악인의 <상여소리>의 가사 일부를 소개 했지만, 가사나 곡조는 엿장사가 가위질 하듯
지역과 부르는이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 <상여소리>이다.
상도동 성당은 지하철 7호선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코앞에 있다.
북망산천 이야기와 관계없이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르며 흰구름은 평화롭다.
오늘의 상도동 성당을 향한 발걸음에는 조금 특별함이 있다.
아내의 친구이자 대녀(천주교에서 代父母Godparent는 신앙적 후견인을 말한다)가 전화를
받지도 연락도 없다고 한다. "문자를 보내봐"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두달 전에 떠나셨습니다."
아내가 문자를 보낸지 하루 후에 그녀의 아들에게서 온 문자 내용에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상도동 성당은 그녀가 다니던 성당이다. 엄마와 둘이 살던 아들은 상도동 성당에서의 마지막
장례미사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우리는 그녀를 위하여 미사를 통해 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미사중에도 아내는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내 아내가 이토록 고운 심성을 지닌 여인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 세가지가 있다.
<神의 문제>, <자유의 문제> 그리고 <영생의 문제>는 생각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칸트>가 한 말이다.
인디안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통과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도중에 있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지혜롭게 생각하고 그 매듭을 풀어내고자 한 인디안들의 철학이다.
허긴 우리 동기생들도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왔다. 빨리 죽어도 안되겠지만 언제까지 삶에
매달려야하는지 딜레마이다. 옛날 노인들 처럼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하면서 줄기차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미사가 끝난 후 조의금을 내지 못한 대신 아내 친구를 위한 연미사(죽은 이의 영혼을 위한 기도) 신청을
했다. 앞으로 매주 6주간은 그녀의 영혼을 위한 성당 차원의 기도가 있을 것이다.
성당을 나와 우리 부부는 상도터널 쪽으로 걸었다. 터널 왼쪽 언덕에는 김영삼 도서관이 우뚝 솟아 있고
터널을 빠져나가면 노량진과 한강 인도교로 연결이 된다.
터널 오른쪽은 피부과 약으로 이름을 떨치던 꽤 오래된 이화약국이 있다.
그 옆 골목 동쪽방향으로 언덕을 넘어가면 흑석동이다.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 중앙대학교 후문이 있다.
옛날에 상도동 천주교 신자들은 이 언덕을 넘어서 명수대성당(지금의 흑석동성당)으로 걸어 다녔다.
상도동에는 1.2.3.4동을 통털어서 고등학교가 없다.
대학교와 특수학교도 있으면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는 하나도 없는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동작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면적도 사당동 다음으로 넓은데 고등학교가 없다.
남학생은 대방동에 있는 성남고등학교나 영등포고등학교로 가고, 여학생은 수도여고 또는 숭의여고로
배정을 받는다.
우리는 걷고 또 걸어서 그 언덕을 넘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흑석동까지 걸었다.
우리가 다녀간 것을 알고 혼자 남은 그녀의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들려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시지 그랬어요. 저도 엄마가 몹시 보고 싶어요........"
새벽 안개처럼 홀연히 흩어져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다
인간은 슬픈데 강물은 파랗고 하늘의 흰구름은 몹시나 평화롭기만 하다.
고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