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골고다의 의미는 단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그분의 십자가로 이끄신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옛 생명을 개선하지 않으시고 옛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다음 그분에게서 새 생명을 가져다 주신다. 당신이 이것을 시인할 때 당신은 새 생명에 속한 모든 특성들을 깨달을 수 있다. 옛 아담의 생명이 특성을 가지고 잇듯이 새 아담(그리스도)의 생명도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십자가의 메시지를 계속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능력은 먼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유념하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견고히 붙잡으며, 그 모든 능력을 믿는 우리 안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는 다만 죄인을 그곳으로 이끌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탄을 온전히 이기셨다(골 2: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골고다의 승리를 아는 사람은 사탄이 완전히 패배당한 원수임을 깨닫는다. 두려움이 한때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골고다에서 이루신 일은 사망의 두려움과 사망의 권세 잡은 자에 대한 두려움을 없이 하셨다(히 2:14-15).
그리스도께서 나무 위에서 죄들을 담당하셨고 그분의 보혈을 통해 죄들이 지워졌기 때문에 사탄의 악한 영들은 당신을 죄악에 빠지게 할 수 없으며, 또한 당신에게 죄악을 던져 주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8:12). 이것은 형벌에서 벗어나는 구원이다. 이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은 당신이 제거하기 원치 않는 죄는 제거할 수 없으시며 오직 당신이 제거하기 원하는 죄만을 제거하신다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제해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되고 새 생명의 선물을 받게 된다. 십자가를 통해 얻은 이기는 생명에 대해 우리가 자세히 알아야 할 다음의 세 방면이 있다.
1. 죄를 이김
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았다면 그는 죄를 타파할 권리가 있다. 그는 승리한 예수의 이름 안에서 "죄가 다시는 나를 주관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 위에 서 있다면 당신은 "담배를 피우는 습성은 내게 아무 권세가 없다. 나는 완전히 거절하고 다시 그것의 속박을 받지 않으리라"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이미 구속된 혼을 가졌다면 반드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당신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큰일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모든 은혜를 붙잡고 실제적으로 그것을 적용해야 한다(롬 6:13). 그럴지라도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당신에게 속한 영광이 아니요 당신의 뜻이나 권력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승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완전한 일을 의지하는 데서 온다. 그분은 당신에게 죄 사람을 얻게 하려고 모든 죄를 이기시고 또한 사망을 이기셨다! 외로운 십자가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십자가 위의 어린양을 한 번 바라보라. 무디(D. L Moody)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어린양으로서 죽으심으로 음부의 사자를 이기셨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사실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여! 어찌하여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죄와 사탄의 속박을 대적하지 않는가?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모든 행사가 진멸되기에 합당하다고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나타나셨기 때문이다(요일 3:8).
우리는 순간순간 골고다의 승리의 사실을 붙들어야 하고 사탄을 완전히 패한 원수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미 골고다에서 승리의 싸움을 사셨기 때문에 당신이 로마서 6장 위에 서서 옛 생명을 이미 못 박힌 것으로 여기고 당신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로 연합("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7)될 때 당신은 홀로 이 무서운 영적인 원수와 싸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왕이시고 당신은 이미 승리의 왕과 한 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승리'는 승리자와의 영적 연합 가운데서 주시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 4절은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정복자와 승리자와 합하여 한 영이 되었다면 원수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골고다에 가지 않고 당신의 옛 아담의 생명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깨닫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 연합의 참 뜻을 알기 여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옛 생명이 아직 존재한다면 반드시 싸움이 있게 된다. 이 싸움은 아무 효과도 없을 뿐더러 원수에게 지위와 권리를 내주는 것이 되어 버린다. 옛 아담의 생명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여겨야 한다. 매순간 이 옛 생명을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결국 이것은 사탄이 쏘아대는 화전의 원료를 제공할 뿐이다. 사탄은 모든 '옛 창조'에 속한 것을 다스릴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옛 생명 안에 어떤 부분이 아직 못 박혀 죽지 않았다면 사탄은 모든 화전으로 이 부분에 맹렬한 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 화전의 끝 부분에는 지옥의 불이 있다(약 3:6). 화전이 당신 마음속에 쏘아질 때그 화전은 당신을 불사를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이 화를 내는 것을 볼 때 당신은 옛 생명이 지옥 불에 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여! 당신은 이러한 화전에 불타지는 않았는가? 당신은 당신이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지는 않았는가? 당신에게 합당치 않은 행위는 없었는가? 사탄이 당신에게 지옥 불로 불타게 하지는 않았는가? 이것은 승리의 싸움이 아니라 항상 패배한 싸움이다! 여기서 당신은 로마서 6장의 중요성을 깨닫는가? 만일 당신이 로마서 6장 위에 서 있지 않고 사탄과 싸우러 나간다면 당신은 그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사탄은 "왜, 어떻게 내게 속한 것들이 그에게 있지? 그에게는 내게 속한 세간들이 많군"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 자신은 그 강한 자를 결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강한 자에게 속한 세간들이 당신 속에 그리고 당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골고다에 서서 순간순간 이 옛 생명을 죽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을 향해 지옥에서부터 올라온 불은 '본성의 수레바퀴'를 불사르지 못할 것이다. 이 '본성의 수레바퀴'에는 뱀의 독이 있는데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아담)을 이겼던 그 독이다.
싸움에서 음부의 악한 사자를 이기려면 반드시 어린양(사자 - 어린양)의 영, 곧 주 예수의 영을 가져야 한다. 화전이 올때에 어린양의 영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당신을 학대하고 조롱한다 하더라도 당신을 불사를 불이 없을 것이다. 당신 또한 소위 '의의 분노'를 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골고다의 구원과 어린양의 영을 가져야 한다.
2. 고난 가운데 이김
이 방면의 이기는 생명은 로마서 8장 35절 부터 39절까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넉넉히 이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람들의 학대를 받고 그리스도처럼 도살당할 양같이 되는 것이다. "주를 위하여 죽음을 당케 되며." 양은 도살되기에만 합당하다. 여기에는 영광도 체면도 교만의 여지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죽으실 때 '체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주님께서 풀려나서 다시 심판을 받으실 때 그분은 먼저 가시 면류관이 쓰여 얼굴이 피로 적셔졌다. 그분은 야간에 이십여 리(里)의 기나긴 노정을 가셔야 했다. 사람에게 풀려나와서는 다시 사람들 앞에서 수욕을 당하셨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으셨다(사 53;2). 그분은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하셨다 이러한 죽음이 영광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체면 손상에 대한 문제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당하는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지만 사람들 앞에서 수치당하는 것은 매우 마음을 쓴다. 그들은 아주 작은 일로도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나 믿는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있다고 진실로 느낀다면 이 모든 것들은 죽는다. 성경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주를 위하여' 죽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허물 때문에 채찍을 맞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선을 위하여 매를 맞고 참는다면 그것은 은혜이다. 만일 당신이 허물로 말미암아 매를 맞는다면 당신이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는가?(벧전 2)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을 때 그것이 승리이며 그를 이기는 자로 만든다. 만일 당신이 악을 행하여서 고통을 받는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지 말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어린양의 영에 의한 승리이다. 예수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곧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3. 사탄을 이김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인내와 자비의 영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영으로 모든 고통과 무례한 대우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그러나 마귀에 대한 태도는 그렇지 않다. 마귀에 대해 결코 양같이 온순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에 대하여는 양 같아야 하므로 인내와 자비가 필요하다. 온순한 어린양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마귀를 대적함에 있어서는 베드로전서 5장 8절과 9절, 야고보서 4장 7절의 말씀과 같아야 한다.
앞에서 말한 이기는 생명은 세 방면을 이기는 것에 대한 것이다.
① 죄에 대한 방면 ; 죄에 대하여 참으로 죽는 것(롬 6). ② 세상 사람에 대한 방면 ; 비록 세상 사람이 당신을 죽인다 하더라도 오히려 넉넉히 이긴다. ③ 마귀에 대한 방면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엡 6). 원수를 대적함에 대해 내가 분명히 말하건대,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는 양과 같으셨고 마귀에게 대적할 때는 맹렬한 사자와 같으셨다. 그분은 모든 정사와 권세 잡은 자를 끊어 버리고 밝히 그를 부끄럽게 하셨다. 사람들이 실패로 보는 것을 하나님은 승리로 보시며 사람들이 수치로 보는 것을 하나님은 영광으로 보신다. 사탄과 그의 군대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강한 사자 - 유다 지파의 사자 - 와 같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흑암의 권세를 사자 생명으로 이기는 영적 전쟁을 발견한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강건한' 군인의 영을 가진 군인을 본다. 인간적은 면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고후 13:4), 실지로 그분은 '그 강한 자'보다 훨씬 '강한 분' 이다. '그보다 강한 분'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보다 더 강한 분'이다. 주님은 '그 강한 자'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에 사탄에 대해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은 바로 '강건하다'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더 이상 약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본성과 당신 자신이 혹 약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당신은 마땅히 주 안에서 강건해야 한다.
마귀의 궤계 중 하나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고후 13:4()라는 말씀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약함을 용납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강건하여라"라는 구호를 외쳐야 한다. 세상에 대하여 바울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 라고 했다. 그러나 원수에 대해서는 그는 "강건하여라"라고 말한다. 그는 "(마땅히) 겅건하여지고"라고 말했지 "강건하도록 시도하여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그분의 능력을 당신에게 주셔서 그렇게 되게 하실 것이다. 만일 그분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셨다면 빛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들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당신은 "아멘,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취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체험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당신을 능히 강건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연약한 자가 "나는 강건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왜 당신이 이렇게 말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영적 세계에서 말은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내가 말한 그것을 소유한다"라고 하신다. 영적 세계에서는 헛된 말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당신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세상에 있는 '혈기 있는 사람'처럼 행한다면 당신의 말은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영적 세계에서 행한다면 당신이 믿는 것과 당신이 말한 것이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내게 '강건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강함으로 강건하다"라고 말한다면 즉시 당신에게 강건함이 임하게 된다. 마귀는 영적 세계의 법칙을 안다. 그는 당신의 귓가에 대로 "자, 오늘 너의 형편없는 상태를 보라!"라고 말한다. 그러면 당신은 이 말에 "그래, 나는 정말 형편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강건하여라"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강건하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의 귓가에 대고 "너는 실패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탄에게 당신이 "그래, 나는 실패할 게 분명해"라고 말해 버린다면 당신은 정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중에서 영적 세계의 말의 능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 약한 자는 마땅히 "나는 강건하다"라고 말해야 한다.
'강건하다'는 것이 당신에게 달려있는 문제인가? 아니다. '주님에게 달려있다.' 이러한 위치는 주님 밖에 있지 않고 '주님 안에' 있다. 당신은 다른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 안에 계신 것 같이 '나는 주 안에 있다'는 이 사실 안에서 당신의 믿음을 보존해야 한다. 나는 단독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나는 약하나 그리스도는 강하다. 나는 무력하나 그분은 능력이 있으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강건한 자이므로 그분의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서 주 안에 서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의 위치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히 약해지며 맹렬한 싸움이 있을 때는 즉시 물러선다. 이러한 사람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결코 그들에게 기도 가운데서 승리하라는 말을 들려 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한 교회를 통해 죄와 사탄과 세상과 싸우게 된다면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십자가의 내면적인 메시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능력'이라는 말로 음부의 악한 사자를 대적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강건하여' 그분의 강한 능력안에 서 있으라고 하셨다면 모든 두려움은 자연히 다 사라진다. 여기서 말한 '능력'은 에베소서 1장 20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와 같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모이도록 부르심 받을 것이다.
이긴 생명의 기초
로마서 6장은 진리의 한 방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기초를 말한다. 모든 진리는 다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진리이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얻고자 한다면 온전히 이 장(章)에서 말하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골고다의 중심일 뿐 아니라 더욱 부활의 중심이기도 하다. 골고다의 의미는 믿는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믿는 이의 생활과 행동이 부활 생명의 영적 영역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리라"(롬 6:9). 왜냐하면 그분의 죽음은 죄에 대한 것이고 그분의 사심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십자가의 부활 방면에서 당신은 사망이 당신에게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당신은 죽음이라는 소극적인 면에 거하지 말고 마땅히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적극적인 면에 거해야 한다. 당신은 죽음이 이미 이루어진 사실임을 시인하고 언제나 그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므로 다시 죽지 않는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므로 이제 당신은 십자가의 생활 방면에서 그분과 생명의 연합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이미 모든 것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 - 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것에 있어서 죽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여러 번 간구했다면 당신은 결코 적극적인 생명의 능력을 얻을 수 없다. 이제 당신은 로마서 6장 6절의 위치에 굳게 서서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긴다면 적극적인 생명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에베소서 6장 10절 부터 18절까지에서 말씀하셨듯이, 당신이 하나님을 대하여 살 때 영적인 원수들과 반드시 싸우게 될 것이다. 로마서 6장에 굳게 서서 승리의 위치를 행해 돌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