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0-01-31 11:18 조회 : 1630 |
| | | 아버님, 나하고 같이 놀자
박 영 보
성격, 생각하는 면 또는 생활을 하는 스타일에서도 크게 걱정을 해 본적이 없다. 막내녀석 ‘율’에 관한 이야기이다. 만년 어린 아이로만 여겨지던 녀석이 어느새 만 서른 세 살이 되었다. 삼월이면 결혼을 하겠단다. 또 다른 이별의 연습을 해야 할 때가 임박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후배였던 녀석의 여자친구인 ‘세희’와는 양가를 서로 오가는 사이가 된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서로가 양가를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각 부모들도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혼 문제라 하면 흔히 대두하고 있는 ‘부모로부터의 승낙이니 허락이니’ 하는 별도의 절차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세희가 우리집을 오가는 동안 별다른 미운 구석이 발견되지 않았고 작은 좋은 점이라도 발견되면 실제보다도 더 돋보이기도 하여 흐뭇해지기도 하던 터이기도 했다. 조그만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더라도 모두를 감싸고 이끌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세희 부모님께서도 율이를 그렇게 봐 주시기 때문에 미래의 사윗감으로까지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쯤 되고 보니 세희의 부모님들을 한번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당사자끼리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과 또 다른 가정과의 만남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온 나로서는 더 일찍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소위 말하는 상견례라고나 할까. 어떤 분들일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궁금해 안달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상대방에 대한 조건 같은 것을 계산하는 격이 되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겠지만 이것은 방관이 아니라 성년이 된 자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마음에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당사자끼리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자세가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그 자식의 됨 됨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궁금증이었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화목하고 가족들간의 분위기가 어떤지가 관심사였을 뿐이었다. 율에게 물어본 것이라면 “세희와 세희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간의 사이는 어떠냐”, “서로 가깝고 친구처럼 친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도 자주 나누는 편이냐”는 등과 같은 것이 주된 질문의 내용일 뿐이었다. 이제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그분들을 처음 대하면서도 전혀 생소한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무슨 거추장스러운 격식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첫 만남이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이웃과도 같았고 자주 만나온 친인척이나 친구처럼 무슨 간격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날 밤 세희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그 자리에 함박웃음의 꽃이 피게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분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위해 오클라호마에서 비행기편으로 와서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우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시간이었다. 율이가 아침에 호텔로 전화를 하여 그때까지 온종일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를 묻더라는 것이다. “아무데도 갈 데도 없고 그때까지 호텔에 머물러 있다가 시간을 맞추어 나가면 된다.”고 했더니, “아버님 그럼 오늘 나하고 같이 놀자”. 이것이 장래의 사윗감이 장인어른께 한 말투였다. 딴에는 온종일 따분하게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그 분들을 모시고 남아있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지루하지 않게 해 드릴 생각이었나 보다.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자기나라의 말이나 예절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였다. 두 아이 모두가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편리한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있는 이곳 동포자녀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녀석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였던가. 형님 내외가 이곳에 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비즈니스에 바빴고 한국에서 방문한 친인척이나 거래처 분들이 오면 업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의 자투리 시간에 디즈니랜드 같은 데를 안내해오곤 했었다. 그 날따라 시간을 낼 수도 없었고 수십 번을 다녀온 그곳에 매번 간다는 것도 그렇고 시간적인 제약도 있어 녀석에게 “네가 오늘 큰 아빠 엄마를 안내해 드려라. 좋은 곳은 네가 알아서 골라가며 보여드리고 점심 주문도 해 드려라.” 라며 태워다 주고 끝나면 모시러 가기로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형님은 껄껄 웃으며 “야, 율이가 점심시간에 어떻게 했는지 아니?”라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율이가 형님께 “너 뭐 먹을래?”라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계속 웃음이 나오더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라도 의사사통이 될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 아니냐”며 웃음을 멈추지 않던 일이 생각난다.
사돈 될 양반도 율이의 “나하고 같이 놀자” 라는 말투가 밉지가 않고 귀엽게 봐 주시는 것 같았지만 죄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늦었지만 율이에게 한국어 공부를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이 자신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집안에서도 웬만한 일상용어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희와 처음 사귈 무렵 세희의 집에 전화를 할 때 부모님이 받으면 어떻게 말을 해야 실례가 되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안녕하세요. 저 율인데요, 죄송하지만 세희와 이야기 해도 될까요?’라고 하면 된다고 말해준 적도 있다. 장인 장모님께 부르는 호칭도 “계속 아저씨나 아줌마로 불러야 하느냐”고 묻기에 이제는 ‘아버님’, ‘어머님’ 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호칭은 이제 그렇게 부르고는 있지만 ‘나하고 같이 놀자’ 라니~.
세희도 우리 부부를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르기 시작을 한지도 제법 되었다. 그런 호칭을 들을 때마다 더 예쁘게 보이고 흐뭇하기도 하다. 맹목적으로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을 해야 한다”는 정체성 같은 것만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선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만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라도 계속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
| 이진화 | 10-02-01 23:58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ㅎㅎ... 우리말은 호칭과 존대말이 복잡해서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갈등이 많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예의에 벗어난 말이었지만 어른들께서 이해를 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말이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는 틀리면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우리말 틀리는 것은 별로 부끄럽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려서 부터 여러 나라에 돌아다니며 살고있는 조카들이 생각나네요. | |
| | 박영보 | 10-02-03 01:27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저희 아이들의 예절, 특히 언어 문제에는 부모인 저희 부부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까지 저희 부부에게 무슨 대답을 할 때 "예"라거나 "~했어요" 대신에 "응", "아니" 또는 "했어"라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는데 부모로서 이에 대한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에게 갑자기 존대말을 쓴다면 오히려 거북할 것 같고 요샛말로 '닭살'이 돋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끼리는 그렇다 해도 다른분들 앞에서는 눈치가 보일 것도 같은데 이제부터라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것이 저희 부부들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정진철 | 10-02-11 21:05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그렇지요~ 제 손자도 중국에서 갓난 아기시절부터 자라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중국말이 주언어이고 한국말은 너무 서툽니다, 요즘 가정교사를 대서 쓰고 읽는 것을 가르치는데 한국말을 무척 어렵게 생각하네요 차라리 어렸을때는 제법 잘했는데 말투도 어눌해지고 지금도 한국에 나오면 바로 그말 " 할아버지 나하고 놀자" 그건데.. ㅎㅎㅎ 이놈이 좀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 |
| | 박영보 | 10-02-13 16:29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두 아들들이 이제와서 저희 부부에게 원망이라도 하는듯 저희 부부에게 "왜 강제로라도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손자녀석에게는 지금부터 한글을 배우게 하겠다고 합니다. 저들 부부도 둘다 서툴기는 하지만 아이에게는 한국어만을 쓰기로 했다며 한국말로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로 영어의 'Wear'라는 말을 해야 할 때, 안경도 입고(쓰고가 아니라), 양말도 입고(신고),신발도 입는다고 하니 이런식으로 배우게 된 손자녀석의 훗날 한국어 구사능력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재문 | 10-02-13 23:2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한국말이 서툴어서 그런건데 더욱 더 귀엽게 받아줘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버지는 때로는 그렇게 친구처럼 대해주어야 할 때도 있지 않나 하고 생각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
| | 박영보 | 10-02-14 16:19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큰 아들녀석은 저에게 가끔 "헤이 영보, 맥주 하나 마실래?" 라고 하면 "좋지"라고 답을 하는 집안. 한국분들이 흔히 말하고 있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녀석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레슬링을 하자며 뒷마당 잔디밭에 가서 뒤엉켜 둥글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런 무드가 사라져 버렸으니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
| | 최복희 | 10-02-14 21:05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제목부터 애교스럽고 재밌네요. 말 투는 좀 어색하지만 글에서 진정한 사랑과 정이 묻어납니다. 행복한 가정 잘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도 떡국 잡수시는지요. 행복한 명절 되십시오. | |
| | 박영보 | 10-02-18 18:5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떡국.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 입니다. 화씨 100도가 넘나드는 한 여름에 함께 자리한 분들과의 식사 때 다른 분들은 냉면을 시킬때도 저는 떡국, 떡만두국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떡국이 없는 설날이었습니다. 다음 한인타운에 나가면 떡국부터 먹을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자인 | 10-02-15 23:0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박영보 선생님, 서른 셋의 막내 아드님이 3월에 결혼 한다니 축하드립니다. 글이 참 재미있네요. 영화 한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아버지의 자상함과 가정의 화목함이 묻어납니다. 아드님도 나중에 한국말을 잘 한다면 본인도 웃고말겠지요. | |
| | 박영보 | 10-02-18 18:59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며느리 될 아이도 한국말은 잘 하는 편입니다만 좀 어려운 말은 다시 영어로 설명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에 가보면 요즈음의 어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이들과 며느리, 장래의 며느리와의 대화를 할라치면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짜리와의 대화보다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말을 해 놓고나서 "무슨 뜻인지 알라?"라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영어로 시작을 해야 합니다. | |
| | 임병식 | 10-02-17 07:1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호칭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가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말 처럼 호칭이 다양하고 가려서 쓰기도 어려운 말은 없을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
| | 박영보 | 10-02-18 19:1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한 때는 한국어의 호칭이나 존대말이 가정과 사회의 민주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상하관계, 명령과 복종의 관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들면 '하극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했었습니다. 나이와 계층에 따라 평준화는 영원히 없는 세계라는 생각까지도 했던적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하급생이 1년정도의 상급생에게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으면 업드펴 뻗쳐에 정강이를 걷아 차이는 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 그 호칭이나 존댓말에서 '오고감', '나눔의 정'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존경심과 사랑의 발로'에서 나오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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