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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거리 많은 내 고향 부안
이준섭(李準燮)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형제를 사랑함과 같다. 고향은 포근한 엄마 품안이요, 동심의 세계이다. 고향에서 태어났듯 죽어서도 고향에 묻히길 원한다. 향수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드물리라. 그래서 옛부터 향수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가장 많은가 보다. 나도 그 누구보다 내 고향 부안을 사랑하며 자랑하고 있다.
내 고향 부안은 무엇보다도 한 시대를 개혁하고 창조하는 일에 어느 다른 곳보다도 앞장섰던 지역임을 자랑하고 싶다. 늘 새시대의 새로운 꿈을 위해 앞장서서 발버둥치며 몸부림치며 조상 대대로 뼈를 묻으며 내려온 고향이다. 늘 짓밟히고 빼앗기며 당하고만 살아왔지만 끈질기게 힘을 쌓으며 대대로 살아오는 고향이다.
서해안 구불구불 구불길의 외딴 마을
서로들 논뙈기 조금씩 나눠 갖고
서로들 밭뙈기 조금씩 얼싸안고
가난해도 가난한 줄 모르고
버림받아도 버림받은 줄 모르고
어우러져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나누며 사는 마을
조상 대대로 뼈를 묻으며 사는 마을
한 아기만 태어나도
서로들 미역가닥 사 들고 가고
서로들 쌈줄을 달아주고 가고
한 노인만 돌아가셔도
서로들 팥죽 쑤어 가고
서로들 밤새우며 눈물 흘리는 마을
< 외딴 마을의 노래 중에서> 이준섭 시
부안은 개성, 강진과 함께 고려청자 생산지였다.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에 고려청자 도요지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높게 평가받은 고려자기를 내 고향에서 구워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고려청자 박물관을 지어서 옛조상님의 창조정신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고장 선인들의 오묘한 창조력의 우수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내 고향은 옛날부터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은 어디였을까? 우리 부안의 위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부안의 명기(名妓) 이매창(1573-1610)과 허균( 1569-1618)은 같이 조선 선조, 광해군 때의 인물로 둘은 서로 시(詩) 작품을 나누며 교류하였다. 요즘 말로 하면 펜팔이나 컴퓨터 블로그에서 서로 존경하며 흠모하며 서로 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허균이 한양에서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기 전 공주 목사 (지금의 군수 벼슬)로 있다가 보수 세력들의 상소가 더 빗발치자 그마저 그만두고 매창을 만나기 위해 부안으로 왔다. 부안 내변산 산자락에 정사암(靜思庵)이란 암자를 짓고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창작하다가 끌려가 능지처참으로 그가 꿈구던 유토피아로 갔다. 허균의 죽음은 몇 세기를 앞서 살며 괴로워했던 선구자를 보수세력들이 끊임없이 상소를 올려 죽인 살인 사건이었다.
홍길동전의 활빈당은 도적굴이란 굴에서 조직되었다. 지금도 내변산 반계 유형원 선생의 사당 위에 있다. 부안은 당시 도적들이 모여 살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매창 따라 내변산에 와 옥녀봉 산자락에
대나무 숲 바위 사이 암자 하나 지어놓고
저 멀리 위도를 바라보며
유토피아 꿈꾼 허균
그대의 고귀한 꿈은 이 깊은 정사암에서
율도국을 꿈꾸다가 계급사회 개혁하려
최초의 한글 장편소설
홍길동전 낳았구나.
미래를 예언하는 선구자는 외로운가
모함의 상소문 속 떠돌다가 능지처참
슬프다 정말 슬프도다
한 혁명가의 죽음이.
<유토피아에 살다 간 님> 이준섭 시
매창과 허균의 인간적인 교류로 보아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늘상 꿈꾸는 유토피아인 율도국은 위도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부안의 정사암 (지금은 불타 없어지고 암자터만 남아 았음)에서 날마다 위도를 바라보며 이상국가 건설을 꿈꾸며 살아온 게 틀림없다.
격포에서 위도 가는 뱃길
철썩거리는
동해보다 푸른 바다
일렁이는 하얀 물길
눈부신 황금물결 따라 펼쳐지는
율도국(律島國)
허균(許筠)의 이상향이
뱃길 따라 열리는가
푸른 물 길게 갈라 솟구치는 분수물이여
가는 곳 산모롱이마다
품안 같은 모래밭
돌고 도는 산길 따라
소나무의 푸른 나라
내려보는 모래밭에
펼쳐놓은 무지개 자락
산자락 나뭇잎마다
쏟아지는 별똥별
<황금물결의 위도> 이준섭 시
조선 현종 때 반계 유형원 (1622-1673)선생은 부안군 보안면 만화동(옛지명 반계동)에서 실학을 연구하셨다.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셨지만 일생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조선 8도를 몇 년 걸어서 답사하시고 결국 우리 부안에서 반계서당을 차려 후학들을 가르치시며 실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셨다. 실학 연구의 불후의 명저 “반계수록(磻溪隧錄)”은 반계서당에서 탄생했다. 31세 젊은 나이에 시작하여 49세에 완성했으니 19년간 연구한 결과가 이 책에 집대성 되었다. 반계 선생은 이 책에 교육, 국방, 토지, 등 당시 우리 나라의 현실 문제를 실학사상적 관점에서 저술한 책이다. 농촌 문제의 핵심이 토지에 있다고 보고 “균전론”으로 토지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셨다. 그의 주장이 당시엔 외면당했어도 실생활에 얼마나 가치가 있고 선구자적인 개혁이었나는 오늘날에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당시 반계 선생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도 일찍부터 부(富)의 편중을 막고 고루 잘 사는 사회를 건설했을 지도 모른다. 선구자의 지혜로움을 지배자들은 외면하기 마련인가? 선구자의 외침은 외로운 것인가 !
반계선생 사후 100년 후 정조 때 늦게나마 유형원선생의 업적을 인정하고 그의 저서를 바탕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지휘로 화성( 수원성)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개암사 뒤쪽에는 지금도 우금산성이 거의 옛모습 그대로 남아 았다. 이 우금산성은 라당 연합군의 침략에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우리 고장을 지키려고 싸운 곳이다.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고, 복신 장군은 베틀굴 속에 숨어 살다 가셨다. 여기에서 우리 땅을 지키려는 우리 옛선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정신은 대대로 이 땅에 내려오고 있어 이것 또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라당 연합군에 맞서 왜구들은 우리 군과 협조하여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의 옛조상의 전쟁터를 잊지 않고 해마다 찾아오곤 한다 했다. 우금산성 터을 복원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조국을 지키기 위한 불굴의 투쟁정신의 현장을 잘 물려주어야 한다.
내변산에 우뚝 솟아
더 가파른 우금 산성
십리가 넘는 성터에
그때 그 바위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
오늘도 들썩이는데.
라당연합군 맞아
마지막 지켜낸 성터
끝끝내 쭃겨오다
베틀굴에 숨었구나
장군님, 복신 장군님
다시 살아와 지키려나.
제단(祭檀)도 그대로고
바위들도 그대로고
조금만 공들여도
그 옛날 그대로인데
후손들 어찌해 외면한 채
이천년을 훌쩍 넘기나.
< 우금산성 이준섭 시>
“이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처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
이 글은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내 고향 변산에 왜 도둑들이 우굴거리고 있었을까?
변산의 도둑들은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양민들이었다. 전국의 많은 양민들이 살기 좋은 부안으로 모여든 것이 틀림없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암행어사 박문수 이야기나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박문수나 이서구가 부안을 돌아보고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부안이라고 임금님께 보고하였다.
부안이 왜 가장 살기 좋은 곳인가?
첫째 기름진 옥토가 많아 쌀이 풍부하고, 둘째 변산의 울창한 숲에서 나무가 많이 나와 땔감 걱정이 없고, 셋째 서해에서 많은 고기가 잡히고 염전이 많아 소금 걱정이 없을 뿐더러 자연 경치가 수려하여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보고 했단다. 그래서 전국의 도둑(이때 도둑이란 굶주린 백성들)들이 몰려와 새시대를 꿈꾸며 살았을 것이다.
정유재란 때는 부안 호벌치에서 왜놈들과 우리 부안군민들 사이에 처절한 대혈전이 벌어졌다. 의사(義士) 채홍국외 92명의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싸웠다. 모두들 맨주먹과 칼만 가지고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외적의 침략을 물리친 거룩한 혼들이 우리 부안의 호벌치에도 잠들어 있다. 나라를 위해선 목숨을 아깝게 생각지 않았던 충직의 혼(魂)들이 대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관(官)의 폭정에 못 이겨 정의의 깃발을 들고 동학혁명군들은 백산(白山)을 근거지로 일어섰다. “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죽산이나 백산의 지명은 다 여기서 유래한다. 농민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들고 부르르 떨며 일어서서 부정부패에 항거했다. 동학란이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농민운동의 한 획을 긋는 혁명이 우리 고향에서도 일어났음을 자랑하고 싶다.
삽 괭이 쇠스랑을 들고 모여 서서
같이 죽고 같이 살자 쉽게도 외쳤더냐
주검이 산더미처럼 쌓여 봉화불만 솟구쳤더냐
봉두난발 상투만 자를줄 알았어도
연발 소총 성능만 더 자세히 알았어도
원통히 그리 쉽게 쓰러지진 않았을 것을.
“농민들 잘 사는 세상” 그 신념 하나로
*삼남이 똑같이 일어선 곳 우금치로구나
마지막 피눈물의 아우성이
함성으로 터져나누나.
시뻘건 피눈물 속에 하늘 하나 잠긴다.
日軍의 연발 포격 속에 우리들도 쓰러질 듯
차라리 피울음을 터뜨려라
塔으로 선 農軍님이여.
<탑(塔)으로 선 農軍님이여
--우금치 전적비에서> 이준섭 시
* 삼남 : 충청,전라,경상 지방을 무대로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인 무장 농민군 집단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간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조선 선조 때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떨어지지 않는 큰별 이매창은 우리 부안이 낳은 시인이다. 위 시조처럼 애절한 이별의 정서가 가득하여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고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자 대표적인 시조 작품이다. 매창은 특히 한시(漢詩)가 우수해서 중국 명나라 때 베스트셀러 시인이었다. 여성의 특유의 섬세한 이별의 애절한 정감을 한시로 창작한 작품들이다.
목가적 서정시의 제1인자인 신석정 시인, 우리 부안군이 최근에 개관해 자랑하고 있는 석정문학관, 농촌 소설문학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똠방각하”의 최기인, 문단에 데뷔한 시인들만 하더라도 50명이 넘는다. 이것도 다 옛날부터 개혁과 예술적 창조력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채석강, 적벽강, 직소폭포, 변산해수욕장, 내소사, 구암리 고인돌 … 빼어난 자연환경의 수려함 때문이기도 할까?
와 ! 7천5백만년 전부터
2011년까지 살고 있는 바위
옛날 옛날 한옛날 또, 또, 또또, 옛날 옛날 한옛날의 바위
수없이 많이많이 반복한 또, 또또, 옛날 옛날 한옛날의 바위
채석강엔 아주 많고 많은 바위의 주름살
층층이 주름살들이 총총총 또렷하게 보인다
이대로 바위님 몇 천년 더 오래오래 살다 보면
우리들의 손자의 손자들이 또, 또또, 그 손자들이
수없이 많이 반복한 먼먼 훗날의 또, 또 손자들이
이곳에서 숨바꼭질하며 놀기에 가장 좋은
이 골 깊은 주름살들이 깊은 동굴 되려나.
깊고 깊은 기침소리 파도소리로 들려온다.
<바위의 주름살 > - 채석강에서 이준섭 동시
내변산의 부안댐은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내변산에는 공장 하나 없음은 물론이요 축산 단지 하나 없다. 자연 그대로의 맑고 고운 물이 그대로 부안댐을 이루어 물비늘이 언제나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다. 그래서 부안댐 물이 우리 나라에서 물맛이 가장 좋다고 소문이 났다. 이것 또한 우리 부안의 큰 자랑이다.
우주에서 가장 푸른 하늘 한 자락이
부안댐에 내려와 일렁거리고 있구나
단단한 바위에도
연두빛 새싹 촉틔우며
이 맑고 고운 하늘 자락이
변산자락 구석 구석까지 스며
흘러 흘러 들어가
넘쳐난 물빛 설레임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산등성 가파른 길
외따론 선비들의 길
세상 등진
叡智의 물결이 넘실거리다
부안 벌 멀리 더 멀리
銀絃의 바람소리 !
쇠잔한 이내 몸도
격포 바다 해넘이처럼
황혼의 꽃잎으로 흩날리다
고향에 묻혀
부안댐
맑고 고운 물비늘로
언제나 반짝이리.
<부안댐에서 > 이준섭 시
지난 2011년 4월, 25년이 넘는 공사기간을 거쳐 33.9km 길이의 방조제를 준공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 방조제 또한 우리 부안의 자랑거리다. 일찌기 홍길동전에서 허균이 이상국가 건설을 예언한 서해에 제방을 쌓아 육지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허균은 조선 광해군 때 이미 이곳에 새로운 세상이 건설되리라고 예언한 셈이다. 이곳에 우리 민족의 유토피아가 백년 정도 걸려 완공되면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몰려올 것이다.
물비늘 일렁거리는 바닷속에도 길이 있었구나
달려도 달려도 가라앉지 않고 바닷물로 반짝거리는 길
물 속의 직선 도로에 넘쳐나는 새만금의 빛구슬들
곧고 바르게 쭉쭉 뻗어 나가자
아스라한 갯벌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길
황금빛 눈부심 속에 촉터오르는 푸른 잎들
달려라, 새로운 세상 하나 세워 달려가자
우리들의 새나라는 물과 길로 연결되고 있다
쭉쭉 뻗은 길 속에 황금빛 눈부신 새세상
자랑스럽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가자.
< 물 속의 직선 도로 달리며 > 이준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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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젊은 시절 변산반도 채석강에서 놀던 생각이 왕 그립습니다. 부안이 낳은 시인 이준섭샘 덕분에 부안이 더욱 멋져부렀습니다.
부안, 변산 반도, 채석강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요~~
고향자랑 글 써서 부끄럽습니다. 젊은 시절엔 외변산의 채석강도 좋지만 이제는 내변산의 부안댐, 내소사, 정사암 등을 둘러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름다운 고향을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은 참 행복해보입니다.
변산반도만 가 봐서 구석구석 더 돌아보고 싶네요.
안녕하세요, 김재원님, 감사드립니다. 대개 외변산만 보고 가는데요. 내변산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부안 여행 꼭 한번 실현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