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자 칼춤이 난무하고 검은 연기 솟아오르더니 왕조가 바뀌어버렸다. 수(隋)나라가 역사의 심연 속으로 침잠하고 당(唐)나라가 아침 해처럼 떠올랐다. 나라를 뒤엎어 왕권을 틀어쥔 인물은 이연(李淵)이었다.
이연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다. 이연은 다음 권력을 이어받을 황태자에 맏아들 이건성을 책봉했다. 맏이는 성격이 유순했고, 뛰어난 충신 ‘위징(魏徵)’을 곁에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이건성은 위징을 데리고 술을 마시다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주공, 지금 인재들이 주공에게 모여들고 아버님께서 주공을 황태자로 책봉해 보호해주시니 태평성대가 왔다고 안심하면 큰일 납니다. 동생 이세민을 그냥 두고는 주공께서 황제가 될 수 없습니다. 설사 황제가 된다 해도 칼날 위에 앉아 있는 꼴이 될 겁니다.” 위징의 말에 이건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를 죽여야 합니다!” 위징은 단호했다. “동생을 죽이라고? 부왕께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계시는데.” 이건성은 와들와들 떨었다. 위징은 한숨을 쉬었다.
이후로도 몇번이나 이세민을 죽일 기회를 만들어줬으나 우유부단한 이건성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렸다. 권력욕에 불타고 결단력 있는 이세민의 위협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위징은 야망 있는 넷째 동생 이원길을 포섭해 황태제(皇太弟) 자리를 약속했다. 다음에 왕권을 부자(父子) 승계하는 게 아니라 동생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장자 이건성과 넷째 이원길은 호시탐탐 둘째 이세민을 없앨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오히려 이세민은 그들이 현무문으로 입궐한다는 정보를 입수, 현무문 수문장을 매수해 수하 장군들을 매복시켰다. 결국 입궐하던 이건성과 이원길이 이세민과 그의 장수들에게 무참하게 피살되고 말았다.
626년 7월2일, 현무문의 변은 이렇게 막을 내리며 당태종 이세민의 시대를 열었다. 소식을 접한 황제 이연의 얼굴에 회한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는 일. 부자지간이라도 권력을 나눠 가질 수는 없었다. 허울뿐인 황제 이연은 이세민을 막을 힘도 없어 보고도 못 본 체할 뿐이었다. 황제 이연은 이세민에 의해 거의 유폐됐다. 현무문의 변 두달 후 이연은 황제 자리를 물려줬다. 태종 이세민이 칼을 차고 형의 책사였던 위징을 불러 꿇어앉혔다.
“네놈은 어째서 끊임없이 나를 죽이도록 형을 부추겨 이렇게 골육상쟁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나게 했느냐?” 그러자 싹싹 빌어야 할 놈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주공이 우유부단해 머뭇거리는 탓에 당신은 살아났고, 나는 죽었어야 될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문초를 당하고 있는 거요!” 태종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다가 다시 넣으며 생각했다. ‘이런 맹랑한 놈이 있나!’ 그러고는 말했다. “여봐라, 저놈의 포박을 풀렷다.”
위징은 지옥 문턱에서 살아나 오히려 태종의 책사가 되었다. 위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하의 태종에게 직언을 했다. 후대의 사가들은 당태종을 제왕 중의 제왕이라 추앙한다. 황제 자리에 오르자 이름 ‘세민(世民)’ 그대로 제세안민(濟世安民)에 온 힘을 쏟았다. 태종을 성군으로 만든 것도 책사 위징이었다. 태종은 매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날렵한 매를 새로 입수해 쓰다듬고 있는데 위징이 들어왔고, 태종은 엉겁결에 매를 품속에 감췄다.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던 위징이 나가고 나서 품속의 매를 꺼냈더니 매는 질식사한 상태였다.
“도대체 황제가 누구냐? 네놈이 황제냐?” 태종이 불같이 화를 내며 위징에게 칼을 뽑아 든 게 무려 삼백번이 넘었지만 그때마다 결국엔 칼을 거뒀다. 위징이 태종의 단점 열가지를 제시하자 태종은 서슴없이 열폭 병풍을 만들어 둘러쳤다. 태종이 버럭 칼자루를 잡을 때마다 한사코 말리는 사람은 첫째 부인 장손황후였다. 장손황후도 죽고 위징도 죽자 태종은 일생일대의 실책을 범했다. 645년에 고구려를 선공했다 참패를 당하고 패장이 돼 돌아오며 한탄했다. “위징이 있었으면 내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