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원로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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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배우라
히 5:7-10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저는 착하고 성실하면 좋은 목사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회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착하고 성실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교회 부흥회 주제가 [하나님이 현실이 되게 하라] 였는데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착하고 성실해도 하나님이 현실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군목 시절에 연단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제게 하나님이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훈련 중 다리가 부러졌을 때, 하나님보다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부대 훈련이 있으면 누구에게 부대 위문을 부탁해야 하나, 군인교회를 건축해야 할 때, 어느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나, 그 생각부터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현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의지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게 하셨습니다. ‘오른쪽 다리’ ‘대학원 학위’ ‘편안한 목회’ ‘안락한 삶’을 버렸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없으면 죽는 줄 알았기에 순종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것들은 제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게 하심으로 제게 하나님이 현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실 때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 밥 먹는 일에 무슨 순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에는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순종을 배우면 하나님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한 선교단체 수련회 때 리더인 한 자매와 상담을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어왔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예수님이 정말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하여 의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매에게 “말씀을 읽지만 말고 말씀대로 순종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 교인이 계 3:20을 읽고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였는데, 여전히 주님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답은 ‘완전한 순종’입니다.
순종이 안 되면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만 하며 살자” 하면 많은 교인들이 “너무 힘들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힘듭니다.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하나님, 그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속히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종이란 말입니까?
제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가장 먼저 회개한 것이 늘 ‘도와달라’고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도와달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회 잘하게 도와주세요. 공부 잘하게 도와주세요. 설교 잘하게 도와주세요. 심방 잘하게 도와주세요.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주님은 저 도와주시는 분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도 어떻게 주님일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이 제 삶과 목회에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순종을 배우려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 것은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경건하심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기도하셨던 것이 경건하심입니다.
이런 순종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믿어질 때, 가능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온갖 거짓말과 은밀한 죄를 저지르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미워하고 저주하고, 낙심하고 좌절 속에 삽니다.
기도도 자기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선한 일은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자기 몸을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아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에게 자기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아서 후손을 이으려 했습니다.
모세에게도 자기 계획이 있었습니다. 주먹으로 동족을 구원하려 했습니다.
다윗에게도 자기 계획이 있었습니다. 피 묻은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것들은 한편 선한 일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신 것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히 5:8-9)
예수님과 우리 관계가 전적으로 순종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조동욱 선교사는 인도에서 20년간 신학교를 세우고 열심히 사역하였는데, 인도 정부의 추방으로 신학교를 인도 기독교 형제들에게 모두 이양하고 지금 네팔에 가서 인도를 위하여 사역하고 계십니다.
조동욱 선교사님이 인도에서 추방당하면서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저의 선교지는 히말라야 산자락입니다.
네팔과 부탄 중간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역 초기 몇 년 동안 저희 부부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형편”에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먼저는 한국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를 지도해 줄 감독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꼬집어줄 장로님이 없었습니다.
한국말로 설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그 설교를 들어줄 성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김치도 없었고 커피도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처럼 없는 것으로 가득한 그 자리에 나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평안이 넘쳤습니다.
하는 일들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넘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왜였을까요? 나의 주권이 사라진 그곳에 예수님 그분이 나를 다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선교지를 떠나야 해서 신학교의 지도력과 선교재산을 현지 형제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재산 목록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신학대학 캠퍼스의 건물, 개척된 교회들과 호산나 스쿨의 동산과 부동산 그리고 신학생들과 교수들, 목회자들과 교인들 그리고 호산나 스쿨의 학생들과 교사 등. 우리는 선교 재산 점검 결과를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을 행하셨구나’하는 사실에 감탄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그 감격이 너무나 커서 큰 선교 재산을 인도 형제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안타깝지 않았고 선교지를 떠날 때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조동욱 선교사님이 그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음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어디든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
둘째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렇게 순종하는 것은 단지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배워 주님께서 ‘나의 삶’에 역사하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순종을 배워 주님께서 ‘나의 인생’에 간섭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로랜 커닝헴 목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젊은이들을 전 세계에 보내는 놀라운 선교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YWMA란 선교단체를 만들었는데 초교파 단체이기에 소속 교단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난감하였습니다.
마침 그때에 큰 교회로부터의 청빙도 들어왔습니다.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회사를 넘겨받으라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무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내려가는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더듬더듬 옆에 있는 아내를 찾았는데, 숨을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래도 나를 섬기겠느냐?”
커닝헴 목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그러자 계속해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래서 숨을 쉬지 않는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아내가 살아났습니다.
그도 고난 중에 순종을 배웠고 지금의 YWMA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사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나는 종일 손을 펴서” 이 구절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거듭 거듭 손을 내밀며 “내 손을 붙잡고 가야 한다. 순종하여야 한다.” 하는 말씀을 눈물 없이 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해 본 적이 없으십니까?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손을 잡고 가야 한다.” “순종하여야 한다.”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순종의 결단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주여 제 귀를 열어 말씀하옵소서.” 기도합시다.
찬송: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