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0. 주일오전예배
시편 24편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선출되면 취임식을 합니다. 대통령 취임식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당사자에게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권위와 권세와 위엄과 국력을 만방에 알리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나라의 영광과 권세와 힘이 대통령의 취임식에 위엄있고 장엄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한 사람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그 취임식의 행사를 통해서 이 나라의 대통령의 권세와 권위뿐 아니라, 그 나라의 권세와 국력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그 취임식에 누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그 취임식의 권위가 증명되기도 합니다. 세계 강국들의 국왕이나 대통령, 수상이 참석한 것과 국무총리나 장관급이 참석한 것은 그 취임식의 권위와 권세를 격상될 수도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막 취임한 대통령은 그가 직무를 수행한 대통령실이나 백악관등 대통령의 직무실에서 첫 업무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오늘 저는 시편 24편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루살렘 성 문안으로 들어가시는 분을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영원한 문으로 들어가시는 분은?
만물을 다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분이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이시다
1. 만물을 다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분이시다
시편 24편은 질문과 답변으로 시를 전개합니다. 3절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4-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8절과 10절은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라고 동일하게 묻습니다. 이것에 대한 대답이 7-10절입니다. 이런 구조는 시편 15편에서도 유사합니다. 1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해서 그 사람을 설명합니다. 시편 121편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시를 전개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시편들은 언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약은 한 개인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언약의 당사자 즉 쌍방이 있어서 그 언약의 당사자들이 서로 사랑으로 관계맺음입니다.
이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른 자와 거룩한 곳에 설 자는 같은 사람입니다. 또한 영광이 왕이 들어가신다 하는 것을 볼 때, 이 시편 24편의 배경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것,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입궐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은 더 쉽게 풀이하면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하나님이 그 법궤와 함께 하신다는 현존의 증거이기 때문에, 법궤가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들어가심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과 거룩한 곳에 서는 것과 영광의 문으로 들어가신다는 그 모든 것은 다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일시 할 수 있고, 이는 그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는 분이 영광스런 왕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광의 왕은 어떤 분인가? 할 때,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시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영광의 왕이 영원한 문에 들어가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7절과 9절이 동일하게 반복하여 말씀한다는 것은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 시편의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7절과 9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여기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는 분은 영원한 문들입니다. 결국 영원한 문에 들어갈 왕이어야 영광의 왕입니다. 이 영광의 왕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성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법궤로 상징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기 때문에 그 성전도 영원한 문들이어야 한다고 기술한 것입니다. 영광의 왕은 영원성을 가지신 분이기에 그가 사시는 그 성의 문을 영원한 문들로 표현함으로 나타내고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편 24편을 통해서 분명히 증거하는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영광 왕은 누구신가? 이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영광의 왕은 어떤 분이셔야 하는가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영원한 문으로 들어가실 분은 영원한 신 창조주이시다.
먼저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영광의 왕은 영원한 신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라는 표현은 사람과 구별된 또는 피조물과 구별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영광의 왕은 우리와 다른 존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나 국왕이나 수상이나 원수라도 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가 스스로 신이라고 칭하고 신으로 섬기도록 했을지라도 그는 결국 죽음앞에 다 엎드러집니다. 그는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피조물이 아닌 존재, 즉 스스로 계신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존재하지 않은 존재, 이것을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에게 찾는 존재 스스로 계신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에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만물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나님이 소유삼으신 것은 땅,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공간인 땅과 나라, 그리고 그 땅위에 활동하는 모든 생물체와 사람들을 다 소유하신 분입니다. 여호와의 소유권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신입니다. 창조주이기에 만물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분은 먼저 창조주이신 분이시고, 이 창조주이신 신을 만물을 초월하시지만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은 여전히 만물의 소유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풀 한포기, 흙 한줌, 개미 한 마리, 하늘의 별과 구름, 비, 바다의 물고기 등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이 세계 즉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떠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는 것은 세상의 나라들 바로 육지가 바다와 강들 위에 세워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다와 강, 육지와 각 나라의 경계를 나눈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참된 중보자로서 참 하나님이시면서도 참 사람이신 중보자이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영원한 문들로 들어가실 분이 창조주 하나님, 세상의 모든 경계와 터를 세우신 그리하여 온 세상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증언을 들었습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초월해계신 분이고, 세상보다 더 큰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과 만물에 초월해 있다면우리는 그분과 어떻게 관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가 참 하나님일뿐 아니라 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교리문답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관계 맺게 하시고 연결해 주는 중보자가 필요한데 만약 이 중보자가 참하나님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고 연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참 중보자는 참하나님이면도 참 사람이어야 합니다. 3절 이하는 이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관련이 없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관련된 참된 중보자로서 참 사람이심을 증거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이 시과 점층법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나오고 그 다음에 터가 바다에 세워지고 강들위헤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낮은 것에서 높은 곳으로 점차 올라가고 있습니다. 3절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든지 거룩한 곳에 설 자라고 해서 더 올라가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문들로 들어가시는 분이 더 그 문에 가까이 오고 있음과 동시에 그 문에 들어오시는 분이 위엄과 권위가 높아지심을 나타내고 한 것입니다. 여기 “여호와의 산”과 “그의 거룩한 곳”은 동격입니다. 여호와의 산은 거룩한 곳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면 그 산에 설 수 있고 그 서있는 그 여호와의 산은 거룩합니다. 이 여호와의 산은 감람산인데 그 산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산에 있는 예루살렘 성이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산,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성입니다. 그 곳이 거룩한 것은 그 곳에 시온성이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는 이미 시편 15편 1절에서 확인하는 바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성산에 주의 장막이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산이 거룩한 산, 성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편 15편에서 이 성산에 머무러 살자가 누구인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참 사람이어야 합니다. 참 사람이라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의 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죄와 무관한 분이어야 함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참된 중보자이신 참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시편 24편도 이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의 의를 얻습니다.” 이 시편 24편의 구조는 시편 1편과 거의 비슷합니다. 복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과 같으니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합니다. 시편 24:5절에서도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습니다.” 진정으로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 바로 거룩한 곳에 서는 자는 열매를 맺으며 형통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손이 깨끗합니다. 그의 행위가 불의와 더러운 이익이 없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행합니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의와 순결함을 드러냅니다. 그는 겉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식이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합니다. 마음도 깨끗합니다. 하나님께만 향해 있고,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는 허탄한데 두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도 의지하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오직 그를 보내신 성부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섬깁니다. 그는 모든 것이 진실합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이것이 철을 따라 맺는 열매이고 이것이 의인의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있는 사람의 모습니다. 그는 진실로 여호와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얻습니다. 우리는 이 분이 누구인지 압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바로 삼위 일체 의 한 위격이신 성자 예수님이며 이분은 성부와 성령 하나님과 더불러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의를 얻는 여호와 산에 오르며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참된 중보자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면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참된 중보자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시면 참 사람이십니다. 그분은 여호와를 찾는 진정한 이스라엘인 참 포도나무이시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분입니다. 이 예수님이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분입니다. 그 영원한 문을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참된 중보자로서 들어가십니다.
3. 영광의 왕이신 만군의 왕이시다
창조주이시며 중보자로서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십니다. 이 시의 절정입니다. 가장 고조되는 장면입니다. 오르는 것이 정점을 이룹니다. 예루살렘의 문들은 모두 열립니다. 그것을 들리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영원한 창조주께서, 참된 대제사장께서 그리고 영원한 문에 영원한 왕께서 행차하시기 때문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를 7절과 9절과 반복한 것은 강조입니다. 그 당시 문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성문이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성안으로 들어갈 때 문이 올려지는 것을 문들이 올려지는 것으로 먼저 표현했습니다. 이 문은 왕만 들어가는 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나 제사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문들로 들어가는 사람이 영광의 왕이 들어갈 때 경배하고 찬송하고 높인다는 의미로 문들아 너희 머리(사람)을 들지어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문이 아래에서 위로 들리고, 사람이 머리를 드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는 능동형인데 반해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해서 수동형입니다. 문들은 자신이 드는 것이고, 영원한 문은 들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능동형은 지금 이땅에 예루살렘 성에서 사람이 문을 드는 것이라면, 영원한 문은 새하늘과 새땅의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는 영원한 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시는 분은 이땅에서도 왕이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왕이십니다. 그러니 영원한 왕이십니다. 영원한 문에 들어가실 영원한 왕입니다. 이 예수님은 이 땅 사람뿐 아니라 천군천사들이 다 높여야 하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이 영원한 왕은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십니다. 이 찬양받고 높임받으실 영광의 왕은 누구십니까? 바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영광의 왕입니다. 이 영광의 왕은 모든 군대의 왕이십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강하고 능한 전쟁한 능한 전쟁에 승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모든 군대의 우두머리이신 만군의 주입니다. 모든 만백성의 만 천하의 모든 군대에게 영광을 받을 분, 그분은 영원하신 영광의 왕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전쟁에 능한 강한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다윗은 이 창조주이시며 대제사장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구약에서는 여호와 칭호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예언하고 찬양합니다.
이 시편 24편의 찬송과 송축을 우리가 지금 마태복음 설교를 듣고 있는 마태복음 21장의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장면과 연결시켜봅시다. 참으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그 안에 사는 자들은 다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이라는 칭호는 주라는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주님이 쓰신다고 하니 익명의 어떤 사람은 나귀와 나귀새끼를 내어줍니다. 이 주님은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주인이시고 그분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가십니다. 그 나귀새끼는 아직 사람이 타 본적이 없는 멍에매이지 않은 새끼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제사할 때 쓰인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자신이 친히 재물에 쓰일 흠없는 어린양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예언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의가 되셨습니다. 친히 우리의 죄를 담당할 대제사장이요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어 하나님의 의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전쟁에 능한 만군의 여호와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데, 그때 어린아이들이 찬송하였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9:38-40절을 보시면,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14절을 보시면,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19장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그분은 영광의 왕으로서 영원한 문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영원한 문에 들어가시는 분은 사람 뿐 아니라 천군 천사도 찬송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찬송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시므로 그분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창조주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대제사장이시오 중보자로서 우리의 화목제물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죄가 없으시고 흠없는 대제사장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때 천군천사와 어린아이들, 제자들이 찬송했습니다. 오늘 시편 24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영원한 문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왕을 찬송한 것입니다.
이 영원한 문으로 들어가셔서 찬송받으시는 영광의 왕은 강하고 능하신 분이요 특별히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어린아이와 젖먹이 입에서 나오는 찬미로 주의 대적자와 보복자들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특별히 시편 24편은 이 전쟁에 능한 만왕의 왕이 창조주이시고 죄가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이며 왕으로서 말씀하심으로 피조물을 다 능히 이길 수 있는 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탄과 싸워 능히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창조주이시면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한 중보자요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멸하시고 그 죄로 인해 사람을 두렵게 하는 죽음을 멸하실 뿐 아니라, 사탄의 종노릇하고 죄의 종노릇, 사망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치실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죄와 사망을 이기실 분이요, 거짓과 속임의 사탄을 이기실 분입니다.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 예루살렘인 영원한 문에 들어가셔서 영원토록 왕으로 권세를 행사하시며 모든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하시고 승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 예수님과 연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것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이름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신 예수님을 머리들어 찬송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영광의 왕이심을 찬송합니다. 우리는 이제 참된 이스라엘로서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참된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으로 복을 받은 것을 은혜로 연합한 우리가 그 은혜가 동참하여 그 복을 받고, 하나님을 찾고 그 얼굴을 구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의 의를 얻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