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북에서나 여행자들의 이야기에서나 꼭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이딸리아 남부, 특히 유명한 관광지인 나폴리는 여행자들에겐 거의 죽음이라고. 마치 나폴리에만 가면 초특급 긴장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길래 이번 여행에서는 아예 나폴리를 배제하고 일정을 짰다. 하지만 25일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생각해 보니 로마 일정이 너무나 길어지는 거다. 유레일 패스 사용기한도 하루 남았고 하니 본전도 뽑을 겸 좀 더 멀리 가보자 싶어서 나폴리와 그 주변을 도는데 이틀 숙박을 다시 계획했다.
소매치기라면 우리가 부주의했던 탓에 이미 마드리드에서도 당했으니 좀 더 조심하면 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숙박을 예약하려 하다 보니 지금까지 흔히 써 오던 숙박예약 사이트인 ratestogo.com에서는 어디 한군데 만만한 호텔이 없었다. 다들 제법 높은 가격을 호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없이 도착하는 날은 일단 한인민박집인 나폴리 강씨민박(구글에서 찾았다)에 예약하고 아침 열차로 무작정 출발했다.
나폴리 강씨 민박
5시반에 역에 도착해서 전화드렸더니 죄송스럽게도 우리가 3시반에 오는 줄 알고 역에 나와서 한시간여 기다리셨다 한다. 전화상으로 예약할 때 열차 시간은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겠다고 느낀 점이다. 몇번 재차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민박집은 역에서 가까웠고 차이나타운 안에 있다. 중국인들은 항상 역 주변에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산다는게 경험상 느낀 점인데 나폴리 역시 그랬다. 차이나타운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중국인이 경영하는 슈퍼가 있어서 여행 중 배고팠던 동양음식을 (중식당, 아니 특히 라면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일텐데 이곳에서 하루밤 묵는 데 그쳤기 때문에 제대로 찾아보지는 못한 건 아쉽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경아씨 또래인데 하얼빈 출신 중국동포다. 부모님 역시 중국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니 아마 구한말에 일제를 피해 만주로 이주한 집안의 3세일텐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집안에서 우리말을 잘 지켜오셨던 듯, 한국사람처럼 우리말을 잘 쓰신다. 음식 솜씨도 일품이어서 마치 우리나라 하숙집에서 식사를 받아먹는 것 같다. 이탈리아 오신지 겨우 9년이고 민박집 하신지는 얼마 안되셨다 하는데 어찌나 토종 한국놈 입맛에 잘 맞게 음식을 하시는지 배고픈 유럽 여행 말미에 들어선 우리에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미 베네치아에서 이틀 연속 자매민박에 있었는지라 아침저녁으로 한식 차림을 거나하게 받고 포식을 했지만 이곳의 음식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한식은 한식이되 식당밥과 집밥의 차이라고나 할까. 특히 아침식사로 나온 두부김치국은 밥맛없는 아침 뱃속을 편안하게 다스려주는 매력을 지녀서 저녁의 과식에 이어 아침에도 과식을 한 채로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편안한 과식이다.
아주머니께서 저녁에 산책삼아 돌아다닐 곳과 교통수단을 알려 주셔서 항구쪽을 중심으로 일단 나폴리 도착 탐색은 했다 해도 다음 날 일정이 소렌토 1박이었기 때문에 나폴리는 사실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소렌토 인근 지역인 포시따노와 아말피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여럿 일러 주시고 그 다음날 소렌토에서 하룻밤을 보낼 우리 짐까지 맡아 주신 덕분에 소렌토와 카프리는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짐을 가지고 나오게 되면 폼페이는 어떻게 돌아볼까 사실 전날 저녁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주머니 덕분에 나폴리발 1박2일 폼페이-소렌토-카프리투어(DIY투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나폴리의 인상
비록 도착했던 저녁시간과 2일 후 오후의 잠깐동안 스치고 지나간 도시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말도 못하게 지저분한 거리의 모습. 6시경 항구로 오후 산책을 나간 우리는 왜 이렇게 거리에 쓰레기가 많은지,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는 시스템이 없는지 의아했다. 길 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많음은 말할 것도 없고 쓰레기를 모아 놓은 곳조차도 며칠동안이나 수거해 가지 않은 듯 쓰레기 언덕을 곳곳에 만들고 있었다. 항구를 지난 위치의 중심광장에서는 축제를 벌인 뒤였는지 광장 전체가 오색종이가루와 캔 천지였는데 종이가루는 그렇다 쳐도 마구 쭈그러뜨린 음료수 캔이 광장 전체에 엄청나게 버려진 건 충격이었다. 도시의 다른 부분이 깨끗했다면 혹시 퍼포먼스가 아닐까 했겠지만 쓰레기가 널린 도시모습을 보고 온 지라 광장에 버려진 음료수캔 역시 그 연장선으로 느껴 졌었다.
나는 나폴리 시민들의 지저분함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 파리시민도 역시나 엄청나게 쓰레기를 버리고 바르셀로나 시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길가에 개똥 천지인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서는 항상 길을 걸을 때 발 밑을 무척 조심하면서 걸었으랴. (우린 호텔에 들어가도 신발을 벗고 살기 때문에 개똥을 밟으면 치명적이다.)
그래 도 도시 자체가 더럽다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밤이 되면 온데간데 없이 깨끗하게 치워버리는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리엔 그런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어쩌다 개발도상국들의 도시보다 지저분한 도시를 만들도록 방치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외곽 도시인 쏘렌토의 모습은 마치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을 보는 듯 하다. 숙소에서 체크인하는데 숙소아가씨가 저녁에도 안전하니까 다니는데 걱정말라고 말하기도 했고, 숙소를 찾는 도중 쓰레기를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쏘렌토에선 되는데 나폴리에선 안되는가?
두번째는 밤거리가 지나치게 어둡다는 것이다. 상점가가 밝으면 활기차 보이고, 산책로가 밝으면 도시가 인간친화적으로 느껴지게 되는데 이 둘 다 어두운 게 문제다. 게다가 가로등 조차 있거나 없거나 하며 있는 곳의 밝기도 지나치게 어둡다. 여행객 입장으로는 모든 도시가 어차피 처음 만나게 되는 도신데 어둡고 지저분하기까지 한 도시의 첫 인상에다가 남들에게 익히 들어 온 위험요소까지 가미되면 가히 "나폴리 기피 신드롬" 이란 신화(神話)를 굳혀 나가는 게 아니겠나.
우리라고 쉽게 나폴리를 욕할 순 없다. 불과 28년 전만 해도 나폴리 정돈 아니지만 우리네 도시의 모습들도 사뭇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뭔가를 잘 버렸으며 도시 하천은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었던 게 우리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침뱉고 쓰레기 버리는 데에 벌금이 35000원이었을까. (아버지 월급이 30만원이던 시절이다!) 지금도 일부 어린 친구들은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걸 당연시하지만, 대부분 현재의 한국인들은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 관심을 쏟고 자치 정부 역시 마찬가지여서 지금의 한국은 상당히 깨끗한 도시미관을 자랑한다.
이는 처음엔 단지 지시에 따랐더라도 옳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정말 잘 지켜 나가는 우리민족의 장점과 결부된 것이다. 뭔가를 마음 먹고 해 보려고 하면 확실하게 끝을 보며 스스로의 행동이 나라의 위신과 관련되어 남들에게 인식된다는 집단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쉬 망가지지 않는 태도상의 장점 말이다.나폴리 시민에게는 이런 집단적 소속감이 없거나, 자치 정부의 서비스가 엉망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나폴리를 빼놓지 말아야 할 이유
여행자 입장으로 가지기 쉬운 이런 편견을 잠깐만 벗어 낸 뒤에 나폴리를 보면 상당한 장점들이 많이 드러난다. 일단 역사 2천년의 도시가 세계에 얼마나 있나? 로마, 바그다드, 경주, 알렉산드리아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아닌가? 이런 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유니크한 모습을 보이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세한 곳에 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나폴리의 역사 (출처 : 위키피디어)
나폴리 시 지구는 기원전 7~6세기 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인이 건설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는 그리스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쿰마 인에 의해 전체 도시 유적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가 건설한 신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로마 제국의 지배 기간 동안 그리스 어와 관습을 간직한 곳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이후 고트족, 비잔틴 제국, 노르만, 아라곤 왕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때문에 오늘날 궁전에서는 수많은 왕가와 왕이 머물었던 기념비적인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266년 앙주 왕가(Angevin)가 나폴리로 천도를 하였고 시칠리아 왕국의 일원으로 나폴리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빈 회의(Congress of Vienna) 이후 나폴리는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엇다. 오랜 동안의 쇠퇴기 이후 100년이 흘러 이탈리아 통합 왕국이 출범하자 나폴리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
첫째, 쉽게 스쳐지나가는 나폴리의 중심가 도로는 옛 로마시절의 흔적이다. 이런 도로는 파리에서도, 로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전혀 새로 갈아엎지 않고 보수만 해서 사용하는, 그 자체가 문화재이면서 생활도구인 거다. 로마제국시절 1번 국도였던 아피아 가도는 바로 로마와 나폴리를 잇는 도로였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다. 또한 나폴리는 여러 왕조시대의 멋진 건축양식등 볼거리가 많다. 기괴한 모습을 가진 해안가의 계란성을 비롯해서 항구 앞의 누오보성, 언덕위의 산엘모 성 등등, 기념비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은 것이다. 또한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적유물들을 본격적으로 전시해 놓은 고고학 박물관은 폼페이를 재대로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빼놓으면 안되는 곳이다.
둘째. 도시의 교통시스템도 편리한데 저렴한 가격의 시간권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90분, 120분) 동안 무제한 버스,전철,푸니쿨라,트램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것 역시 각종 포인트를 찍고 다녀야 하는 여행자에겐 큰 메리트다. 언덕지형이 많아 다른 도시에는거의 없는 푸니쿨라(등산전철)가 버젓이 대중교통안으로 편입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카프리섬, 쏘렌토, 폼페이 등 인근의 대단한 관광지와 1시간 정도에 연결되는 중심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베이스캠프를 나폴리에 차리고, 하루는 카프리 섬에서, 하루는 나폴리를, 하루는 폼페이와 소렌토를 천천히 둘러 본다면 문화와 휴식과 자연을 골고루 갖춘 멋진 여행을 짤 수 있지 않겠나.
넷째, 위험하다는 문제와 관련해서, 강씨민박의 아주머니께서는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식이 나빠서 나폴리에 묵지 않고 로마에서 일일 관광으로만 지나쳐 버린다고. 사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로마나 마드리드나 나폴리나 매 한가지며 나폴리에서는 혼잡한 버스안에서 소매치기 주의만 하면 별 문제 없는데도 무조건 기피하는데 많이 안타깝다고 한다. 편견이 무서운 거다. 우리 나라도 얼마 전까지는 오토바이 날치기를 조심하라고, 핸드백은 꼭 앞으로 매라고 홍보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지만 바로 그 당시에도 내 기억으로는 불안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악명높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처럼 대놓고 실신시켜버리는 그런 이상한 분위기가 아닌 다음엔 스스로의 조심만으로 별 문제가 없게 되어버리는건데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폴리와 인근의 아름다움을 넘겨버리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쉽다.
우린 역시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나폴리를 아예 뺐다가 그놈의 유레일패스를 알찌게 써보자는 마음 하나와 폼페이가 자꾸 부르길래(^^) 나폴리에 온 것 뿐인데 의외의 소득을 얻게 된 격이라 운이 좋다 싶다. 로마에서 미리 숙소를 예약해 놓은 관계로 나폴리와 인근에 이틀밖에 배정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나폴리를 완전히 빼버린 격이 되긴 했지만 몰라서 그런 걸 어쩌겠나.
로마발 남부투어(나뽐쏘아?)
베니스 자매민박에 묵었던 친구들로부터 들은 말인데 주로 로마의 민박집에서 나폴리,폼페이,쏘렌토,아말피등 4곳을 묶어 남부투어란 일일 투어를 주선한다고 한다. 나폴리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결과다. 되도록 나폴리에 묵지 말라는 의미겠지. 우리의 경우 이틀(2박) 일정으로도 나폴리를 빼놓고 볼 수 밖에 없었는데 도대체 이런 투어가 어떻게 가능한 건지 한번 짚어 봤다. 8시에 출발하는 걸로 하고 초특급 뺑뺑이 일정으로 상상해 봤는데 혹시 가보신 분 있으시면 오류를 지적해 주시길.
1. 로마-나폴리 : 8시 → 10시 (유로스타로 90분, IC 로 120분) 2. 나폴리-폼페이 : 10 시 → 11시 (아마 전용차겠지. 전철로도 한시간) 3. 폼페이 관광 : 11시 ♧ 1시 4. 폼페이-소렌토 : 1시 → 2시 (넉넉잡고, 전철로는 40분 걸린다) 5. 소렌토 절벽 등 경치구경하기 : 2시 ♧ 2시30분 (보통 사진찍고 턴) 6. 소렌토-아말피 : 2시30분 → 3시 50분 (절벽길이라서 버스로 빨리 가더라도 1시간 20분 걸림) 7. 아말피 잠깐 구경 : 3시 50분-4시까지 (역시나 사진찍고 턴) 8. 아말피-살레르노 : 4시→4시 40분 (이정도 걸리지 않겠나?) 9. 살레르노-나폴리-로마 : 4시40분 → 5시 20분 → 7시20분 (살레르노-나폴리는 고속도로로 40분)
중간에 늦게 모인다던가 하는 변수가 없다고 가정하고 대중교통이 아닌 전용버스를 이용한다고 했을때 저 정도 걸리겠다는 생각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저렇게 배차시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니까.
자, 이렇게 딱 만들어 놓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투어는 "그곳에 얼굴 내밀고 왔노라" 하려는 사람이라면 강추지만,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에겐 위험스러울 정도가 아닌가? 2시간 40분 관광에 8시간 20분을 이동한다니.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시달리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또 쏘렌토와 아말피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삶의 모습이 비경처럼 멋진 곳인데 이곳을 흘러가듯이 관광하는 게 무슨의미가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와서 헬로유럽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이 남부투어( http://helloroma.co.kr )를 조사해 봤더니 8시에 모여서 저녁 10시까지, 101유로 (폼페이 입장료 포함)라고 한다. 저녁 10시까지라면 아마 위에 써 놓은 시간에서 나폴리를 잠깐 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긴 한데 이동시간이 긴 것은 매한가지겠다.
최대의 고대 유적지 폼페이
쎈트랄 역 지하에서 잡아탄 베수비오 돌기철도(Circumvesuvius)는 전철이라기엔 대단히 빠른 속도감을 냈다. 이게 스스로가 특급열찬줄 아는지? 미친듯이 달린다. 그럼에도 1시간 정도 걸렸으니 폼페이가 멀긴 먼 거다. 출발부터 저 멀리 보이던 베수비오 화산의 옆구리를 돌아 베수비오의 남쪽에 도착한 게 10시10분. 이곳에 내려 머리통이 움푹해진 베수비오를 보고 있었는데 움푹해진 머리통이 정말 크다. 저 정도의 크기가 되도록 분출했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했을까 특히 베수비오 산의 등성이는 매끈한 모양으로 되어 있어 그 옛날 분출된 용암이 상당히 묽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만큼 진행 속도도 빨랐으리라.
폼페이역의 부명칭은 Villa dei Mysteri 다. 수수께끼의 빌라. 폼페이 유적에 맞는 멋진 이름이다. 이 유적이 처음 발굴되었을 때 얼마나 기괴했을까. 2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타임머신처럼 돌아온 것인데.
출처 : Italy by train
누군가 "도시를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이나 흙으로 묻어버리는 것이다" 란 말을 한 기억이 난다.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이곳 폼페이. 유적지가 거의 도시 전체이기에 넓이는 상당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최대의 로마유적지는 터키 안탈랴의 페르게 유적이었는데 폼페이의 규모는 그의 몇 배는 되는 것 같다.
입구의 인포메이션에서는 유적번호가 매겨진 자세한 도시지도(!)와 유적설명서를 무료로 배부하고 있었는데 이 설명서 수준이 가이드북 수준이라 우리를 4시간에 걸쳐 진을 빠지게 만들고 아직 볼 거리가 남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게 만든 주범이다!
중요하게 설명되어 있는 곳에 안 가볼수는 없고, 그러자니 도시를 이잡듯이 뒤져야 하고... 진이 빠지도록 돌았건만 2/3 정도 봤나? 아예 모르면 안볼 것이고, 가이드를 대동하면 핵심정리로 보여줄텐데 가이드북으로 탐사하는 건 대강 하루를 잡아야 제대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입장권이 마침 1일권이기 때문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건 자유다.
폼페이 답사의 추천방법은 옛 사람처럼 도시를 그저 걷는 것. 누구누구 집에 들러 인사도 하고 집 구경도 하고 주마장(^^)고리도 보고. 포도밭도 갔다 오고, 극장에도 가 보고 마치 옛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 보는게 아닐까 한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가끔씩 마주치는 한국인 단체관광객 가이드 이야기를 넘겨들어도 좋고. 지도 하나 들고 길 이름 맞춰가며 해당 유적지를 미로찾기해도 좋고. 어차피 도시전체가 유적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알아보려 하는 건 무리다.
한참을 돌고 있노라니 이 정도의 도시 전체를 발굴해 낸 이들에게 절로 존경심이 생겨난다. 건물 하나하나가 유적이기에 여기 저기에 브러쉬를 대 가면서 흙을 걷어냈겠지. 땅속에 묻힌 걸 파헤치는 데는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파도 파도 나오는 유적들을 보면서 얼마나 또 감격했을까. 고고학자들의 로망. 도시 전체 발굴이라는 엄청난 사실 앞에서 아마 힘든 것도 전혀 못 느꼈을 거다.
도시의 남쪽은 포도밭과 극장 등 외곽 시설인 것 같은데 담장이 주거지역과 다소 다르게 허술한 모습이 보인다. 이곳 중 한 장소에는 화산재에 고스란히 묻힌 사람들의 모둠이 발굴되었는데 아마 포도를 따는 인부가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갑자기 몰아닥친 화산재에 질식해서 죽어 넘어진 시체 위에 용암에서 액화 플라스터가 스며들어 시체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기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아이를 감싸안은 엄마의 모습과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갑작스런 죽음앞에 선 인간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나폴리 (폼페이)
- 베네치아-나폴리 이동하기
보통 유로스타는 로마까지 간 후 다시 나폴리 행으로 갈아타는 반면 IC-plus 의 경우엔 하루 2대꼴로 직통 열차가 있다. 우리가 탄 ICPlus는 시간이 8시간 넘게 걸리고 베네치아 싼타루치아 역이 아닌 베네치아 마에스트레 역에서 출발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로마에서 한번 갈아타고 예약비를 다시 지불해야 하는 유로스타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2명에 10유로) 직통으로 가는 점은 편리한 부분이었다. 마에스트레 역은 싼타루치아 역 다음 역이기 때문에 일단 싼타루치아 역에서 아무 지역철이나 타고 마에스트레 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유레일 패스이용하기 때문에 무료다. 아니면 1유로 정도)
- 나폴리 시내 교통
트램과 버스가 운행하는데 표는 시간제다. 90분과 120분 표가 있어서 그 시간 안에 여러교통 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 이 표는 버스정류장에서 자동발매기를 이용해 끊을 수 있는데 24시간권 같은 것은 자동발매기에는 없는 것 같다.
- 폼페이로 이동하기
나폴리 중앙역 지하는 베수비오 순환선 전철역이기도 하다. 이 열차는 나폴리 인근을 운행하는 교외선인데 이 중 소렌토행 전철이 폼페이를 거쳐서 소렌토로 향한다. 이 전철을 이용하기 위한 표 역시 시간권이며 해당 시간 중 베수비오 순환전철(Circumvesuvio) 과 STA버스(푸른색교외버스) 상호 호환되는 표다. 폼페이까지는 3유로 안쪽.
- 숙박하기
나폴리에서는 강씨민박에 묵었다. 중앙역에서 5분 정도 거리로 가깝다. ( http://www.napolikang.com/ ) 쥔 아주머니께서 무척 친절하시고 나폴리와 주변 지역 여행 정보를 세세하게 알려주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아침저녁 식사가 때에 딱 맞는 가정식이라 원기를 회복하는데 참 좋았다. 아마 이번 여행중 최고의 식사가 아니었을까. 좀 심하게 과식했는데도 별 탈이 없을 정도였으니. 아주머니께는 미안했지만, 소렌토 들어가서 1박하려고 하면서 짐을 맡아달라는 부탁에도 흔쾌하게 허락하셔서 더욱 고마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