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생일
비에 젖은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도란 도란 속삭이고 있다 완섭씨는 갈색 머리칼을 살랑 살랑 흔들고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졸음에 겨운 하품을 하고 있다 바로 그때 음식점 문이 열리더니 여덟살 쯤 돼보이는 여자 아이가 한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 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철한 행색은 한 눈에 봐도 걸인임을 짐작 할수 있었다 담배 연기처럼 헝크러진 머리는 비에 젖은채 였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완섭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 이 봐요 !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 " --- " 아이는 아무 말없이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완섭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부녀가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짐작 했다 하지만 식당에 오는 손님들에게 그들 부녀 때문에 불쾌감을 줄수는 없었다 더구나 돈을 못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에게 음식을 내 준다는게 완섭씨는 왠지 께림칙 하기만 했다 완섭씨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머뭇 거리는 사이에 여자 아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들려왔다 "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 "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좀 와볼레 " 계산대에 앉아 있던 완섭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 미안 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 그렇잖아도 주눅된 아이는 주인의 말에 낮빛이 금방 시무룩 해졌다 " 아저씨. 빨리 먹고 나갈께요 오늘이 아빠 생일 이예요 " 아이는 잔뜩 움추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 하다 말고 여기 저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장과 한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 알았다, 그럼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아빠 하고 저쪽 끝으로 가서 앉거라 거긴 다른 손님들이 와서 앉을 자리니까 " "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 아이는 자리로 가더니 아빠를 다시 일으켜 새웠다 그리고 화장실이 보이는 맨 끝 자리로 걸어가 아빠와 함께 앉았다 " 아빠는 순대국이 제일 맛 있다고 그랬잖아 그치 ? " " 으응 " 간장 종지 처럼 볼이 페인 아빠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후 완섭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 물끄럼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빠, 내가 소금 넣어즐께 잠간만 기다려 " " - - " 아이는 그렇게 말 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기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저 갔다 그리고는 자기의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나서 소금 으로 간을 맞췄다 "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 " 응, 알았어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먹었잖아 " " 나만 못 먹었나 뭐 ! 근데 - - -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서 밥 떠 , 아빠 내가 김치 올려 줄께 " " 알았어 " 아빠는 조금씩 손을 떨면서 국밥 한 수저를 떴다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눈 가득이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완섭 씨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 해졌다 그리고 조금전 자기가 아이한테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 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 볼수 없었다 음식을 다 먹은뒤 아이는 아빠 손을 이끌고 완섭씨 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계산대 위에 천원짜리 넉장을 올려 놓고 주머니 속에 있는 한 웅큼의 동전을 꺼내고 있었다 " 예야, 그럴 필요 없다 식사 값은 이천원 이면 되거든 아침 이라 재료가 충분 하지 않아서 국밥 속에 넣어야할 게 많이 빠졌어 그러니 음식값을 다 받을수 없잖니 ? " 완섭씨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천원짜리 두장을 다시 건네 주었다 " 고맙습니다 아저씨 " " 아니다, 아까는 오히려 내가 미안 했다 " 완섭씨는 출입문을 나서는 아이의 주머니에 사탕을 한웅큼 넣어 주었다 " 잘, 가라 " " 녜, 안녕히 계세요 " 아픔을 감추고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완섭씨는 똑바로 볼수 없었다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보는 완섭씨 눈가 에도 어느새 눈물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네가 손을 잡아 준다면
어떤 음악회 에서 한 가수가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앞으로 나왔다 그가 부를 노래는 흘러간 팝송 <대니 보이 > 였다 그 노래는 워낙 고음 이라서 가수 라도 쉽게 부를수 있는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노래할 가수는 풍부한 음량을 인정 받는 가수 였다 아름다운 선율의 전주가 흐르고 전반부의 노래가 잔잔하게 이어져 갔다 그래서 관객들의 숨소리 까지 잠재우며 노래는 절정 으로 다다랐다 관객들은 푸르렀던 젊은 시절을 회상 하며 노래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 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대니 보이 >의 절정 무렵 에서 마이크를 그만 내려 놓은것이다 계속 되는 반주에도 그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후 반주도 멈췄다 실내는 쥐 죽은듯 조용해 졌다 몇몇 사람들은 소곤 거리기도 했다 "왜 저러지, 무슨 일 이야 ? " " 저럴 가수가 아닌데 - -"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가수 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머뭇 거리던 가수는 무대 한쪽 계단 아래로 느릿 느릿 내려 갔다 그리고 관객석의 맨 앞줄에 이르렀다 많은 관객들은 어린 새 처럼 고개를 빼고 그의 걸음을 지켜 보았다 그 가수는 꾸부정 하게 몸을 낮추고는 한 소년의 손을 잡았다 휠체어에 않은 그 소년은 어리둥절 하는 모습 이었다 " 꼬마야, 아저씨가 계속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 그런데 이 노래에서 가장 높은 음 부분이 남아 있어 ! 네가 아저씨 손을 꼭 잡아 준다면 무사히 노래를 부를수 있을것 같은데 그래줄수 있지 ? 자, 아저씨 손을 꼭 잡아줄레, 힘껏 " 소년은 그 순간 진지한 눈빛으로 작은 손을 움켜 쥐었다 그러자 가수는 혼신의 힘을 내어 < 대니 보이 >의 절정 부분을 노래 했다 관객들은 감동적인 그 광경에 끝 없는 박수를 보냈다 어린 소년은 치자꽃 처럼 하얀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가수의 이마 위에도 땀 방울이 송글 송글 보석 처럼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한참 동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말 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주고 받으면서 - - -
반딧불이
가을 바람이 우수수 낙엽을 몰고 다닌다 은행 나무의 긴 그림자가 교수실 안으로 해쓱한 얼굴을 내 밀더니 초롱 초롱 얼굴을 맞댄 노란 은행 알들이 경화 눈에 정겹게 들어왔다 경화는 기말고사 시험지를 채점 하다 말고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신기루 처럼 환한 대학 시절의 추억 들이 경화의 마음 속으로 성큼 다가왔다 모교의 교수가 된 경화 에게 지난 기억 들은 언제나 유쾌한 아픔 이었다 경화가 대학 시절 휑한 눈으로 중앙 도서관을 오갈때면 늘 마주치는 청소부 아줌마가 있었다 몽당 만한 몸으로 이곳 저곳을 오가며 분주히 청소 하던 아줌마, 개미떼 같은 기미가 앉은 아줌마의 얼굴엔 한 겨울 에도 봄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청소부 아줌마를 만나면 경희는 항상 반가운 얼굴로 다가 갔다 " 아줌마, 오늘도 또 만났네요 아줌마도 반갑지요 ! " " 그럼 반갑고 말고요 " " 아줌마께 여쭤볼 게 있어요 어떻게 아줌마 얼굴은 언제 봐도 맑게 개어 있지요 ? " 아줌마는 빙그래 웃으며 결린 허리를 두드리며 말한다 " 그거야 희망이 있기 때문 이지요 대학 다니는 딸이 어찌나 착하고 열심히 공부 하는지 ! 딸 애만 생각하면 허리 아픈것도 다 잊어버려요 " " 대학 다니는 딸은 얼굴이 예쁜 가요 ? " " 그럼, 예쁘고 말구요 "
" 딸의 이름이 뭔데요 ? " " 이름은 경화고 성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 - - " 우수꽝 스런 대화를 주고 받은뒤 두 모녀는 까르르 웃곤 했다 청소부 아줌마는 바로 경화의 어머니 였다 경화는 마음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청소 하는 엄마를 만나면 늘 그런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엄마를 대신해 걸레질을 대신 할수는 없었지만 열람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크고 작은 오물 들이 r경화의 손에 언제나 가득 했다 대학 시절을 회상 하던 경화는 문득 시계를 봤다 그리고 서둘러 교수 연구실을 나섰다 경화는 엄마가 있는 행정관 지하 보일러 실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엄마는 비좁고 궁색한 방 한 구석 에서 낡은 수건을 줄에 널고 있었다 " 우리 딸, 아니 민교수 님이 여기 왠 일이세요 ? " " 그냥, - - " " 왜, 속상한 일 이라도 있는 거냐 ? " " 그런거 아니라니까 " " 그럼 다행 이구 ,근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 " 실은 엄마 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 경화는 허공에 시선을 둔채 잠시 망서렸다 그런뒤 말을 꺼낸다 " 엄마, 있잖아 청소 일 그만 두면 안돼 ? " " 뜬금 없이 그게 무슨 말 이냐 내 몸뚱이가 아직 성한데 왜 일을 두만둬 ? " " 엄마 나이도 있고 허리도, 무릎도 많이 아프잖아 " " 나야 이제 까지 청소 일로 이골이 났는걸 뭐 ! 하루 이틀 허리 아픈것도 아니고 , 하긴 네가 학생들 가르치는 대학 에서 엄마가 청소 일을 하는게 창피 스러울 까봐 ! 그생각을 안해본 건 아냐, 너, 혹시 그래서 그러는건 아니니 ? " " 그런거 아니야 엄마 " " 그런거 아니면 됬다 " 경화는 마음속을 들켜 버린듯 엄마의 물음에 당황한 빛을 감추기 바빴다 사실 자신이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 내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엄마가 경화의 마음엔 무거운 돌 처럼 매달려 있었다 " 경화야, 엄마가 청소일 한지 얼마나 된줄 아니 ? " " 나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이니까 얼마나 된 걸까 ? " " 벌써 삼십년이 됬다 너 어릴적 부터 지금 까지 내 뼈마디 마디를 묻은 곳을 떠 난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냐 아파 누워 있는 어린 너를 방에 두고 새벽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에미 마음이 얼마나 찢어 졌는데 - -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눈물 닦으며 일한 적도 많았지 " 길게 한숨을 쉬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깊은 회한에 잠겨 있었다 " 이제는 엄마가 일 하지 않아도 살아 갈수 있잖아 엄마도 봉천동 집에 혼자 계시지 말고 이젠 우리 집으로 들어 오셔야지 김서방도 그걸 바라고 아이들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도 좀 그렇구 해서 말야 " 경화는 진심을 말 하면서도 감추어진 속 마음을 차마 들어 낼수는 없었다 명색이 교수가 돼 가지고 엄마 허드랫일 시킨다고 사람들이 수근 거릴것 같다는 말이 경화의 입에서만 깔끄럽게 맴돌았다 " 하기사 이일 그만 두고 나면 몸뚱이야 편하겠지 그런데 에미 마음속엔 차마 이 일을 버릴수 없는 이유가 있어 청소는 더러운 곳을 쓸고 닦는 일만은 아냐, 이 에민 삼십년 동안 이 일을 간절한 마음 으로 해 왔어 아버지도 없이 불상 하게 자란 내 딸이 순탄하게 제 갈길을 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기도 였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쓸고 닦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흉하게 바닥에 붙어 있는 껌을 뜯어내며 인상 한번 쓰지 않았어 남들 걸어 가는길 깨끗 하게 해 놔야 내 새끼 걸어갈길 순탄 해질 거라고 믿으면서 - - " 경화는 차마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수 없어서 곰창이 핀 벽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 엄마 내가 공연한 말을 했지 ? " " 아니다, 네 마음을 다안다 학교 에서 엄마와 마주칠때 네가 창피 할까봐 엄마는 내심 걱정 되기도 했는데 늘 달려 와서 에미 손을 잡아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 " 창피 하기는 엄마가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 - " 엄마는 까칠 까칠한 손을 뻗어 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신다 " 에미는 네가 얼마나 자랑 스러운지 모른다 지난번 교수 식당 에서 너랑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어찌나 낮설고 어색 하던지 - - 어엿한 교수님이 내 딸 이라니 믿어 지지 않더구나 그래서 얼굴도 못 들고 에미가 밥 먹을때 너는 음식이 맛 있어 코 박고 먹는줄 알았겠지 ! 지나간 세월이 고마워서 눈물을 감출수가 없더구나 때로는 서러움을 당해 가면서 일하는 곳이 였지만 내 딸이 어엿한 교수가 됬다는 것이 하도 고마워서 말야, 걸레질을 하다가 물이 라도 조금 튀는 날이면 사납게 쏘아 붙이고 가는 여학생들을 그저 웃음 으로 흘려 보낼때, 에미 심정 인들 종았겠냐 그래도 쓴 인상 한번 보내질 않았다 그래야 내 자식 잘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 - 지금은 네가 학생들 가르치는, 더 책임 있는 일을 하는데 내가 어찌 이곳을 떠날수 있겠니 ! 무지랭이 에미가 도와줄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 - " 경화는 엄마를 가슴에 꼬옥 끌어 안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 엄마, 고마워, 엄마를 보면 반딧 불이가 생각나, 야윈 몸 한켠에 꽃 등을 매달고 깜빡 깜빡 가리며 어둠을 밝혀 주는 반디불이 말이야 엄마의 속 깊은 마음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 ! 엄마, 어제 우리학과 교수님들 회식이 있었거든, 강남에 있는 일식집 이었는데 식사비가 얼나나 나왔는지 알아 한 사람당 십만원씩 해서 육십민원이 넘게 나왔거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엄마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서러운 생각이 드는거야 , 우리 엄마는 새벽 다섯시 반이면 집을 나와 삼십년 동안 눈비 맞으며 고작 받는 한달 월급이 육십 오만원 인데 ! 하고생각 하니 눈물이 핑 돌더라구 2000년도에 월급 육십 오만원 받는 다면 누가 믿겠어 그래서 엄마 한데 이런 말 했던 거야 , 미안해 엄마 " " 미안 하긴, 엄마가 늘 너한테 미안 하지 " 엄마는 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경화는 엄마의 품에 안겨 말 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으로 소리 없이 엄마 에게 말 했다 " 어머니, 당신은 삼십년 동안 이나 어두운 새벽 버스에 지찬 몸을 실으셨습니다 낡은 청소복에 아픈 허리 깊이 감추고 늘 바보 처럼 웃으셨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저를 밝혀 주셨습니다 반디불이 처럼 환한 불빛 으로 반짝 이고 싶어 하는 철 없는 딸을 위해 당신은 짙은 어둠이 돼 주셨습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렇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