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135회
초영왕(楚靈王)에게는 괴벽(怪癖)이 하나 있었는데, 허리가 가는 사람을 좋아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가 굵은 사람을 보면 안중지정(眼中之釘)처럼 여겼다.
[‘안중지정(眼中之釘)’은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으로, ‘눈엣가시’라는 말과 같다. 미워서 보기 싫은 상대 혹은 남에게 심한 해독을 끼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화궁(章華宮)이 완성되자, 영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들을 선발하여 그곳에 살게 하였다. 그래서 장화궁은 세요궁(細腰宮)이라고도 불렸다. 궁녀들은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면서 배고픔을 참고 허리를 가늘게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굶어 죽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楚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본받아, 허리가 굵은 사람을 추하게 여겨 아무도 포식(飽食)하려고 하지 않았다. 백관들조차도 입조할 때에는 허리띠를 졸라매 왕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왕은 허리가 가는 미녀들이 가득한 장화궁에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즐겨, 풍악소리가 밤낮으로 끊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영왕이 장화궁의 고대 위에서 음악을 들으며 연회를 하고 있었는데, 홀연 고대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반자신(潘子臣)이 한 관원을 데리고 왔다. 영왕이 보니, 우윤(芋尹) 신무우(申無宇)였다.
[제134회에, 공자 위(영왕)가 교외로 사냥을 나가면서 멋대로 초왕의 깃발을 수레에 꽂고 갔는데, 신무우가 분수에 넘치는 짓을 책망하면서 왕의 깃발을 빼앗아 다시 부고에 넣었었다.]
영왕이 깜짝 놀라며 까닭을 묻자, 반자신이 아뢰었다.
“신무우가 왕명도 받지 않고서, 왕궁으로 들어와 멋대로 왕궁을 지키는 수졸(守卒)을 잡아 가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주 무례한 짓이라, 왕궁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신이 붙잡아 온 것입니다. 왕께서 처결하십시오.”
영왕이 신무우에게 물었다.
“그대는 그 수졸을 왜 잡아 가려고 하였소?”
신우무가 대답했다.
“그놈은 신의 문지기였습니다. 신이 그에게 문을 지키게 했는데, 담장을 넘어 신의 주기(酒器)를 훔치고 일이 탄로 나자 도망쳤습니다. 신이 그놈을 찾았지만, 1년 넘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알고 보니, 그놈이 몰래 왕궁으로 와서 수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잡아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134회 말미에, 영왕이 장화궁을 축조할 때,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도 모두 불러들여 죄를 사면해 주고 장화궁 건축에 동원했다고 하였다.]
영왕이 말했다.
“그가 이미 과인을 위해 궁을 지키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오.”
신무우가 대답하였다.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열 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왕 이하 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조(皂)·여(輿)·요(僚)·복(僕)·대(臺)가 있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제어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김으로써 상하의 질서를 지켜 나라가 혼란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의 문지기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신이 법대로 그를 처벌하지 못하고, 그가 왕궁의 위세를 빌려 자신을 비호하려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도적이 공공연히 횡행해도 누가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죽을지언정 왕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조(皂) 이하 다섯 등급은 천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조(皂)는 말을 키우는 사람, 여(輿)는 수레를 모는 사람, 요(僚)는 관청에 소속되어 궂은일을 하는 사람, 복(僕)은 사가(私家)에서 종으로 일하는 사람, 대(臺)는 심부름하는 하인이다. 이 가운데서도 요·복·대는 전쟁 포로이거나 죄를 지어 신분이 낮아진 사람들로 주인에게 소속되어 매매까지 가능한 천인이었다.]
영왕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소.”
영왕은 그 수졸을 신무우에게 넘겨주게 하고, 신무우가 함부로 왕궁에 들어와 수졸을 잡아가려고 한 죄를 사면해 주었다. 신무우는 사은하고 물러났다.
며칠 후, 魯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부 원계강(薳啟疆)이 노소공(魯昭公)과 함께 돌아왔다. 초영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제123회에, 제영공(齊靈公)이 세자 광(光)을 폐위시켰는데, 세자 광이 노나라 여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노양공(魯襄公)이 사신을 제나라에 보내 광의 죄가 무엇인지 묻게 했었다. 그래서 제영공이 노나라를 침공하였고, 노나라 대부 숙손표가 晉나라에 구원을 청하여, 齊軍과 晉軍이 평음성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었다. 노소공은 노양공의 서자로서, 이름은 주(裯) 혹은 조(稠), 혹은 소(袑)이다. 제134회 말미에, 장화궁이 완성되자, 초영왕은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하고자 사방의 제후들을 초청했다고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고 원계강이 노소공만 데리고 온 것이다.]
원계강이 아뢰었다.
“魯侯는 처음에 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魯나라 선군 성공(成公)과 우리나라 대부 영제(嬰齊)가 맹약을 맺은 일을 상기시키고, 맹약을 저버리면 정벌하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魯侯는 두려워하여 행장을 수습하였습니다. 하지만 魯侯는 예의에 익숙한 사람이므로, 왕께서는 유념하시어 魯侯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하십시오.”
[제113회에, 초공왕이 공자 영제를 대장으로 삼아 鄭軍과 함께 위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영제는 衛軍을 격파하고 군대를 이동하여 노나라를 침공하였다. 노성공은 중손멸을 보내 초군에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맺었었다.]
영왕이 물었다.
“魯侯의 외모가 어떠하오?”
“얼굴이 희고 키가 크며, 수염이 한 자가 넘는데, 그 위의가 볼 만합니다.”
영왕은 은밀히 명을 내려, 나라 안에서 키가 크고 수염이 길며 풍채가 당당한 사람 열 명을 선발하여 사흘 동안 예법을 익히게 한 다음 의관을 갖추고 魯侯를 접대하게 하였다. 노소공은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왕이 노소공과 함께 장화궁을 거닐며 구경시켜 주자, 노소공은 그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영왕이 말했다.
“상국에도 이런 아름다운 궁실이 있습니까?”
노소공이 허리를 굽혀 절하며 말했다.
“폐읍은 소국인데, 어찌 감히 상국의 만분지일에라도 미치겠습니까?”
영왕은 얼굴에 교만한 기색을 띠며, 장화대로 올라갔다.
장화대를 읊은 시가 있다.
高臺半出雲 높은 대 허공에 솟아 구름을 뚫고
望望高不極 아득히 높아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草木無參差 땅 위의 초목들은 구별이 안 되고
山河同一色 산과 물이 모두 한 색깔이었다.
장화대는 아주 높아서 구불구불 돌아서 층계를 올라가게 되어 있었고, 각 층마다 밝은 복도와 굽은 난간이 둘러 있었다. 그리고 나이 스무 살 이하의 미동(美童)들이 여인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쟁반에 옥 술잔을 받쳐 들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술을 권했다. 금석사죽(金石絲竹)의 화음이 위로 올라갈수록 선명하게 울려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였고, 술잔이 오가는 사이에 분향(粉香)이 피어올라 마치 신선의 동부(洞府)에 들어온 듯 혼백을 빼앗아 인간세상에 있지 않는 듯하였다.
[‘금석사죽(金石絲竹)’은 쇠·돌·실·대나무로 만든 악기, 즉 종, 경쇠와 거문고 같은 현악기, 피리 같은 관악기를 총칭하는 말이다. ‘동부(洞府)’는 신선이 사는 곳이다.]
크게 취하여 작별하면서, 영왕은 노소공에게 대굴(大屈)이라는 활을 선물했는데, 대굴은 楚나라 부고에 간직되어 있던 보궁(寶弓)이었다.
다음 날, 영왕은 보궁을 준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었다. 영왕이 원계강에게 그 얘기를 하자, 원계강이 말했다.
“신이 魯侯로 하여금 반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원계강은 공관으로 가서 노소공을 알현하고, 아무 것도 모른 척하면서 물었다.
“어제 연회 때 과군께서 뭔가 군후께 드린 것이 있었습니까?”
노소공이 보궁을 보여주자, 원계강이 재배하고 축하하였다. 노소공이 말했다.
“겨우 활 하나일 뿐인데, 뭘 그리 축하합니까?”
“이 활은 천하에 유명한 것입니다. 齊·晉·越 3국에서 사자를 보내 얻고자 했었는데, 과군께서는 예물이 많건 적건 간에 모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특별히 군후께 드렸으니, 저 3국이 장차 魯나라에서 활을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魯나라는 앞으로 저 3국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하여 이 보물을 잘 지키십시오. 이런 보물을 얻으셨으니,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소공은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과인은 이 활이 그런 보물인 줄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어찌 감히 받았겠습니까?”
노소공은 활을 돌려주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거(伍舉)가 그 일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왕은 좋은 끝을 보지 못하겠구나! 낙성식에 제후들을 초청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고 겨우 魯侯 한 사람만 억지로 왔는데, 활 하나가 아까워 신의를 잃었도다. 자기 것을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필시 남의 것을 빼앗게 되어 많은 원한을 사게 되는 법이니, 망할 날이 머지 않았구나.”
때는 주경왕(周景王) 10년이었다.
한편, 진평공(晉平公)은 楚나라가 장화궁을 짓고 제후들을 초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들에게 말했다.
“楚나라는 만이(蠻夷)의 나라인데도 아름다운 궁실을 지어 제후들에게 과시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 晉나라는 만이보다 못하단 말이오?”
대부 양설힐(羊舌肹)이 아뢰었다.
“패자가 제후들을 복종시키는 것은 덕으로써 하는 것이지, 궁실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장화대를 축조함으로써 楚나라는 덕을 잃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걸 본받으려 하십니까!”
평공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곡옥(曲沃)의 분수(汾水) 곁에 장화궁을 모방한 궁실을 짓기 시작했다. 규모는 장화궁보다 작았지만 화려함은 장화궁을 능가하였다. 궁실의 이름을 사기궁(虒祁宮)이라 하고, 제후들에게 사신을 보내 궁실의 낙성을 알렸다.
염옹(髯翁)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章華築怨萬民愁 장화궁은 만민의 원한과 근심으로 세워졌는데
不道虒祁復效尤 사기궁은 다시 그것을 본받았다.
堪笑伯君無遠計 패자로서 원대한 계획이 없음을 비웃는데
卻將土木召諸侯 도리어 토목공사를 일으켜 제후들을 불렀도다.
열국은 낙성식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고 모두 몰래 비웃었지만, 그래도 감히 사신을 보내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간공(鄭簡公)은 지난번에 초영왕이 소집한 회맹에 참여하고 晉에는 입조하지 않았으며, 위영공(衛靈公)은 즉위한 후 한 번도 晉侯를 알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 군후는 친히 晉나라로 갔다. 두 군후 가운데 먼저 晉나라에 당도한 사람은 위영공이었다.
[제134회에, 초영왕이 진평공에게 제후들을 소집해 달라고 청하여 신 땅에서 회맹했는데, 그때 정간공과 허도공(許悼公)이 먼저 초나라에 입조했었다. 제131회에, 공손 면여가 영희를 죽이고 위헌공이 태숙 의(儀)을 정경으로 임명하여 국정을 맡게 한 후부터 위나라는 다소 안정되었다고 했었다. 위영공은 위헌공의 손자이며, 이름은 원(元)이다.]
위영공 일행이 복수(濮水)에 당도하자 날이 저물어 역사(驛舍)에 묵게 되었다. 밤중에 영공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영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베개에 기대어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약했지만 아주 청아하여 또렷이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악공들이 연주해 왔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리였다. 영공이 좌우에 물어보자, 다들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라고 하였다.
영공은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여 연(涓)이라는 이름의 태사(太師)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사계절에 맞는 새로운 곡을 잘 지어 영공이 총애하였으며, 출입할 때에 반드시 따르게 하였다. 영공이 사연(師涓)을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가 도착했을 때에도 거문고 소리는 아직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영공이 말했다
“저 소리를 잘 들어 보게, 마치 귀신 소리 같지 않은가?”
사연은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들었다. 한참 후 거문고 소리가 끊어지자, 사연이 말했다.
“신이 대략 알아들을 수 있겠는데, 하루만 더 이곳에 머문다면 그대로 따라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공은 그곳에 하루 더 머물렀는데, 밤이 되자 그 거문고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연은 거문고를 끌어당겨 그 소리를 연습하여 마침내 곡조를 터득하게 되었다.
위영공이 晉나라에 당도하여 조하(朝賀)의 예를 마치자, 진평공은 사기궁에서 연회를 열었다. 주흥이 오르자, 평공이 말했다.
“위나라의 태사 연이 새로운 곡을 잘 짓는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같이 왔습니까?”
영공이 일어나 대답하였다.
“지금 대(臺) 아래에 있습니다.”
“과인을 위해 그를 불러오십시오.”
영공이 사연을 부르자, 평공 역시 사광(師曠)을 불렀다. 시종이 사광을 부축하여 왔다. 두 사람은 계단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올렸다. 평공은 사광을 옆자리에 앉게 하고, 사연도 사광의 곁에 앉게 하였다.
[사광은 제124회에 등장했었다. 장님이기 때문에 시종이 부축한 것이다.]
평공이 사연에게 물었다.
“근래에 새로 지은 곡이 있는가?”
사연이 아뢰었다.
“晉나라로 오는 도중에 들은 곡이 있습니다. 거문고를 주시면 연주해 보겠습니다.”
평공은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사연의 앞에 갖다 주게 하였다. 사연은 일곱 개의 현(弦)을 고른 다음, 손가락을 튕겨 거문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문고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평공은 찬탄하였다.
곡이 아직 절반도 연주되지 않았는데, 사광이 급히 손으로 거문고를 누르며 말했다.
“그만 하시오! 이는 망국(亡國)의 음악이라,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
평공이 말했다.
“왜 그러는가?”
사광이 아뢰었다.
“은나라 말기에 연(延)이라는 이름의 악사가 있었는데, 주왕(紂王)을 위해 퇴폐적인 음악을 연주하였습니다. 주왕은 그것을 듣고 권태를 잊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이 곡입니다. 무왕께서 주왕을 정벌하자, 악사 연은 거문고를 안고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복수에 투신하였습니다. 그 후로 음악을 좋아하는 자가 그곳을 지나가면, 물속에서 그 곡이 들린다고 합니다. 사연이 晉나라로 오는 도중에 이 곡을 들은 곳이 바로 복수 가일 것입니다.”
위영공은 마음속으로 경이로움에 감탄하였다. 평공이 또 물었다.
“이는 예전의 음악이니, 지금 연주한다고 해서 해될 것이 있겠는가?”
사광이 말했다.
“주왕은 음란한 음악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음악이므로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
평공이 말했다.
“과인은 새로운 곡을 좋아하니, 사연은 과인을 위해 끝까지 연주하라.”
사연은 다시 거문고를 조율한 다음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문고의 높고 낮은 소리는 마치 호소하는 듯 흐느껴 우는 듯하였다. 평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평공이 사광에게 물었다.
“이 곡명이 무엇인가?”
사광이 말했다.
“이 곡은 청상(清商)입니다.”
“청상이 가장 슬픈 곡인가?”
“청상이 슬프기는 하지만, 청징(清徵)보다는 못합니다.”
“청징을 들을 수 있겠는가?”
“안 됩니다. 예전에 청징을 들었던 사람은 모두 덕과 의(義)가 있었던 군주들이었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덕이 부족하여 그 곡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인은 새로운 곡을 너무 좋아하니, 그대는 거절하지 말라.”
사광은 할 수 없이 거문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광이 거문고를 한번 연주하자, 남쪽에서 한 무리의 검은 학이 날아와 궁문 기둥 위에 모여들더니 그 수가 여덟 쌍이 되었다. 사광이 또 한 번 연주하자, 학들이 소리를 내며 날아와 계단 아래에 좌우로 여덟 마리씩 줄을 지어 늘어섰다. 사광이 또 한 번 연주하자, 학들이 목을 길게 빼고 울면서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학의 울음소리가 음악과 조화를 이루어 하늘 끝까지 닿는 듯하였다.
평공은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하였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기뻐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평공은 옥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친히 사광에게 하사하였다. 사광은 술잔을 받아 마셨다. 평공이 감탄하며 말했다.
“청징보다 더 나은 곡은 없을 것이다!”
사광이 말했다.
“하지만 청각(清角)보다는 못합니다.”
평공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청징보다 더 나은 곡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과인에게 들려주지 않는가?”
“청각은 청징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만, 신이 감히 연주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전에 황제(黃帝)가 태산(泰山)에 귀신들을 모았는데,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교룡(蛟龍)과 필방(畢方)을 거느리고 갔습니다. 치우(蚩尤)가 앞장서고, 풍백(風伯)는 먼지를 쓸고, 우사(雨師)는 길에 비를 뿌렸습니다. 호랑이와 이리는 앞에서 달리고, 귀신은 뒤를 따랐으며, 등사(螣蛇)는 땅에 엎드리고 봉황이 그 위를 날았습니다. 그렇게 귀신들을 크게 모아 청각을 지었습니다.
그 후로 군주들의 덕이 나날이 쇠하여 귀신들을 복종시키기에 부족하여, 귀신과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만약 그 곡을 연주한다면 귀신들이 모두 모여들 것이니, 화(禍)는 있되 복은 없을 것입니다.”
[‘필방(畢方)’은 전설상의 괴조(怪鳥)로 생김새는 학과 비슷하며, 다리는 하나이고 푸른 바탕에 붉은 무늬, 흰 부리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 새가 출현하면 화재와 같은 재앙이 발생한다고 한다. ‘치우(蚩尤)’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구려족(九黎族)의 우두머리로서 황제(黃帝)와 전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전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중국과 한국에서 ‘전신(戰神)’이나 ‘병기의 신(兵主神)’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풍백(風伯)’은 바람 신이고, ‘우사(雨師)’는 비 신이다. ‘등사(螣蛇)’는 운무를 일으켜 몸을 감춘다고 하는 하늘을 나는 뱀으로, 상상의 동물이다.]
첫댓글 종이가 만들어 지지 않았던 비시 6세기 후반,
그 시절에 이미 지금에 못지않게 생각과 사상은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