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계속해서~
황릉중 최대규모의 릉은 장릉이라고 하네요.
명13릉] 중국 명나라의 13명 황제가 잠들어 있는 능묘(명13릉,明十三陵,밍스싼링)
중국 북경에서 40km 떨어진 창평현(昌平縣) 천수산(天壽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명13릉은 중국 명나라 16명의 황제중에서 13명의 황제가 잠들어 있는 능묘입니다.
그래서 명13릉(明十三陵,밍스싼링) 이라 불려지는 것이고요.
13명의 황릉중에서 3개만 (장릉, 소릉, 정릉) 개방하고 있습니다.
명조(1368~1644년)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와 능묘(한꺼번에
모여 있는 산) 중에서 일명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13대 만력제의
능묘인[명 13릉-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
※발굴할 때 벽돌을 하나씩 빼서 저런 입구 모양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찌나 단단하던지 [금강벽]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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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인[명 13릉-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
베이징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천수산 아래에 위치한
북경 명13릉 은 약 40km² 부지 안에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의
무덤인 장릉(长陵)부터 승정제의 사릉(思陵)에 이르기 까지 황제
13인과 황후 23인 비, 그리고 1인의 능묘가 모여 있는곳 입니다.
실제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는곳은 13곳 중에 3곳으로 3대 영락제의
장릉(长陵) 13대 융경제의 조릉(昭陵) 14대 만력제의 정릉( 定陵) 만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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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위에 돈들^^
황제와 황후의 관 2개가 함께 놓여 있는 이곳에는 유명한 사찰이나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듯..이곳에도 여기저기 돈들이 놓여 있다.
물론,한국 돈도 많이 보인다.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인가 보다.
팔달령(八達嶺)에서 이어지는 천수산(天壽山)을 주봉(主峰)으로 좌우 용산
(龍山)과 호산(虎山)이 호종하고, 앞은 물을 거두어, 전체적인 사신사와
국세가 웅장하고 장엄하지만, 풍수의 핵심인 혈(穴)을 궁구(窮究)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후 궁전 쯤으로 보는것이 속 편할거라 봅니다.
또한 그곳에 묻힌 명나라 13명의 황제 중, 공개되는 능묘는 발굴을 완료한
만력제의 정릉(定陵)과 영락제의 장릉(長陵)이 전부지만, 그나마 장릉은
영락제가 영면하는 지하궁전이 아직 발굴되지 않아 일부만 공개되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요,그러나 명 13릉을 답사하다보면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배울
점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만일 13능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나머지 11개의 능들도 발굴하지 않고서는 못 배겨났을
것입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도 “감나와라 배나와라” 하면서
관여하기를 좋아하고,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국보급이 묻힌 황제의
능을 알고서도 발굴하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겠나요? 이곳 중국인들은 물론
정부나 고고학자들도 나머지 능을 발굴할 생각은 물론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보화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마음과 후손들을 위한 인내심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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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 유물 전시관^^
현재 공개가 되고 있는 능묘는 세 곳으로 정릉(定陵), 장릉(长陵), 소릉(昭陵)
과 신도 네 곳만이 대외에 개방되어 있으며, 명말과 청초 시기의 많은 전쟁
들과 그 이후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청 건륭 50-52년
(1785-1787)에 비교적 큰 복구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명13릉에 있는 13명의 황제의 능묘
1. 성조 영락제 - 장릉(長陵) - 개방
2. 인종 홍희제 - 헌릉(獻陵)
3. 선종 선덕제 - 경릉(景陵)
4. 영종 정통제 - 유릉(裕陵)
5. 헌종 성화제 - 무릉(茂陵)
6. 효종 홍치제 - 태릉(泰陵)
7. 무종 정덕제 - 강릉(康陵)
8. 세종 가정제 - 영릉(永陵)
9. 목종 융경제 - 소릉(昭陵) - 개방
10. 신종 만력제 - 정릉(定陵) - 개방
11. 광종 태창제 - 경릉(慶陵)
12. 희종 천계제 - 덕릉(德陵)
13. 의종 숭정제 - 사릉(思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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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궁전 평면도^^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F5D3A4FD7BB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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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안치하고 지하궁전의 문을 닫고 나오는 길은 비밀통로로 달리
있었을 것이며... 돌기둥이 문을 막고 있었다고 한다. 하는수없이
벽돌을 하나하나씩 들어내며 내부로 들어가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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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할 때 벽돌을 하나씩 빼서 저런 입구 모양이 생겼다고 합니다.
지하궁전 내에는 도합 7개의 거대한 돌문이 있으며 문과 지하동굴은 모두
한백옥석(漢白玉石)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하궁에는 모두 다섯 개의
궁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기둥과
대들보가 없는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지하궁에는 관곽 외에 금, 은, 진주,
보석, 옥기 등 많은 순장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만력황제의 금관이
있는데 조각은 머리카락 굵기의 황금실로 정교히 만들어져 있습니다. 금관
위에는 두 개의 금룡문양이 박혀 있어서 당시의 높은 공예기술 수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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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13릉 만력제의 무자비(無字碑)에 관한 오해 History ★
북경에서 서북쪽 창평현에 천수산(天壽山)이 있고, 이 산속에는 명 왕조의
13명의 황제의 능이 모여 있는데 이곳을 명13릉(明十三陵)이라고 부른다.
명13릉에는 태조 홍무제와 혜제 건문제를 제외하면 모두 이곳에 묻혀, 모두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2명의 태자, 30여명의 비빈, 1명의 환관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정릉은 13릉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해서,
명13릉의 대표 얼굴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명13릉의 대표인 정릉에서
다시 대표적인 얼굴이라고 한다면 만력제의 신공성덕비인데 이것이 그 유명한
무자비(無字碑)이다. 무자비(無字碑)는 말 그대로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만력제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적이 너무 크고 많아서 이곳에 다 새길 수 없다 그런 생각에서 무자비(無字碑)를
세운 것이다 라고도 하고, 또는 만력제가 여기에 자신의 공덕을 기록하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지만, 실제로 그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결국 기록할
것이 전혀 없어서 무자비(無字碑)가 되었다 라고도 한다. 만력제의 태만이야 워낙
유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논 것이 없어서 기록할 것도 없다”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무자비(無字碑)는 그렇게 신기한 것이 아니고,
공덕비가 무자비(無字碑)인 것이 만력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어떻게 보자면
무자비(無字碑)야말로 훨씬 보편적인 것이고 글자를 새기는 것이 희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다.
무자비(無字碑)는 비록 만력제의 것이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만력제 이외에도
무자비(無字碑)는 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5개의 무자비(無字碑)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경우가 바로 섬서성 함양시에 위치한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함께 묻힌, 건릉(乾陵)의 무자비(無字碑)이다. 물론 여기에는 측천무후
曰: 자신의 공덕이 커서 너희들이 기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비(無字碑)를
세우게 했다 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기는 하다. 이건 만력제의 스토리 중
첫번째와 같다. 그 외에도, 비수전투(淝水之戰)에서 8천의 군대로 100만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사안(謝安)의 무덤이 남경에 위치해 있는데 그의 비석도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아 즉, 무자비(無字碑)이다. (단 현재에는 찾을 수 없다)
★측천무후의 무자비(無字碑)★
게다가 사실 명13릉에 위치한 황제의 신공성덕비는 모두 무자비(無字碑)이다. 단지
이곳을 처음 건설한 영락제의 장릉(長陵)을 제외하면. 인종 홍희제의 것부터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것까지 모두 글자가 없다. 이것의 원인은 명 태조 홍무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본래 명 태조 홍무제는 자신의 죽음을 두고 신하들이 공과를 평가하고
운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때문에 그의 비문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다음 황제만
가능하게 되었고, 홍무제의 공덕비에 적힌 글은 그의 아들인 성조 영락제가 지어야 했다.
그리고 영락제의 사후에 그의 공덕비는 다시 그의 아들인 인종 홍희제가 지은 것이다.
영락제 이후에는 명대 황제의 능이 모두 북경으로 옮겨졌고, 홍무제의 능(孝陵)은
남경에 남았기 때문에, 명13릉에는 영락제의 장릉만이 비문(碑文)이 있는 공덕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왜 글자가 없게 된 것일까. 설마하니 인종 홍희제가
만력제만큼 무능하고 태만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 답은 무덤의 양식 때문이다. 인종
홍희제의 무덤 이후부터는 능에 비석과 그것이 위치한 비정(碑亭)을 세우지 않았다.
비석이 없으니 당연히 비문이 있을 리가 없다. 이후에 세종 가정제가 즉위할 때까지 이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왔다. 가정제가 황제가 된 이후에 자신의 능을 건설할 때
비정(碑亭)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이후에 대신들이 상소하여 역대 황제들이 전부 비정
(碑亭)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는, 전대의 황제들의 능에도 모두 비정(碑亭)을 세워줄
것과, 홍무제의 비문을 영락제가 짓고, 영락제의 비문을 홍희제가 지은 법도에 따라,
마찬가지로 여기에 적힐 비문을 황제가 지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가정제가
비정(碑亭)을 세운 목적에는 그런 귀찮은 일까지 원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 그의 전대
황제 7명은 모두 글자가 없는 무자비(無字碑)만 세워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가정제가
비문을 적지 않은 이유에는 그가 도가(道家)에 빠져 있어서 이를 적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가정제의 사후,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은 전대의 황제가 모두 글자가 없는 무자비(無字碑)인
선례를 따라 마찬가지로 역시 비문을 새기지 않았고 그래서 만력제의 무자비(無字碑)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명13릉에서 만력제의 정릉의 무자비(無字碑)만 이렇게나 유명한
명성을 갖게 된 것은 좀 억울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껏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영락제의 장릉과 만력제의 정릉뿐이기 때문에 두 무덤 주인 사이의 극명한 대조(명 왕조의
전성기 황제 vs 왕조를 몰락시킨 암군 F4의 대표)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할 수 있기 때문
같기도 하다. 또한 여기에는 만력제의 정치적 활동을 배경으로 연결시켜 꽤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명13릉이 북경과 가깝고, 또 매우 크고 화려하며, 무엇보다도
보존상태가 훌륭해서 지금껏 숱하게 유명세를 치러왔기 때문에서 더욱 더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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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백두산]만리장성.명13릉.천안문 광장.천단공원.이화원.자금성.
북경서커스)[백두산]천지조망3.803m.[장백폭포1.203m]♧
★[중국.백두산]만리장성.명13릉.천안문 광장.천단공원.이화원.자금성.북경서커스)
[백두산]천지조망3.803m.[장백폭포1.203m](2012년 6월 2일~6일)★
★베이징 [北京(북경), Beijing]★
중국의 수도.
위치 중국 허베이성 중앙부
경위도 동경116°23′29″ 북위39°54′20″
면적 16808㎢
꽃 국화, 월계화
나무 회화나무, 측백나무
정식 명칭은 베이징직할시[北京直轄市]이며, 약칭하여 '징[京]'이라고도 부른다.
화베이평야[華北平野] 북쪽 끝에 있으며, 동남쪽으로 보하이해[渤海]와 150㎞
거리에 있다.전국시대에는 연(燕) 나라의 수도였으며, 초기에는 '지[蓟]'라고도
불렸다. 후에 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 나라 등을 거쳐 중화민국 초기의
수도로서 8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1928년 시(市)로 정하고 이름을 '베이핑
[北平]'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명칭도 다시
'베이징'으로 고치고 수도로 정해졌다.
면적은 16,410.54㎢이다. 행정구역은 둥청구[東城區]·시청구[西城區]·충원구[崇文區]
·쉬안우구[宣武區]·하이뎬구[海淀區]·차오양구[朝陽區]·펑타이구[豊台區]·스징산구
[石景山區]·팡산구[房山區]·먼터우거우구[門頭溝區]·퉁저우구[通州區]·순이구
[順義區]·창핑구[昌平區]·다싱구[大興區]·화이러우구[懷柔區]·핑구구[平谷區]등
16개 구와 옌칭[延慶]·미윈[密雲] 등 2개의 현(縣)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와 대외
교류의 중심지이며 국제화된 대도시다.
1929년 교외의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60만~23만 년 전의 베이징원인
[北京原人] 화석을 통하여 불을 사용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
북방을 포함한 전국의 정치·문화·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인재가 흥성하여
숱한 역사적 인물을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원나라 희곡의 4대 작가 중
마치원(馬致遠)·관한경(關漢卿)·왕실보(王實甫) 등 3명이 이곳 출신이며,
《낙타샹쯔[駱駝祥子]》로 유명한 현대 소설가 라오서[老舍] 등이 있다.
★황제와 신의 특별한 관계, [천단공원(天壇公園)]★
황제가 된다는 것은 신과 교류한다는 뜻. 낱낱이 신께 고해바치고 백성의 안위를
약속받는다는 뜻. 베이징 황성 내에는 네 개의 제단이 있다. 남쪽의 천단(天壇),
북쪽의 지단(地壇), 동쪽의 일단(日壇), 서쪽의 월단(月壇)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각각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다르다. 이중 천단(天壇)은 가장 중요
시되던 제단으로, 명청시대에 황제가 매년 이곳에서 천신에게 제를 올렸다.
이곳의 넓이는 무려 자금성의 네 배. 고대규모로는 가장 큰 제단이라 할만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제전이기도 하다. 명나라의 영락제가 1420년에 세운
이 제단은 1961년 최초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선포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건축법의 다양한 활용으로 “천원지방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 “천고지저(天高地底-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지의 순리를 담아내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圜丘壇)
정중앙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천심석(天心石)이 놓여 있는데, 이 천심석 위에서는
독특한 메아리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황궁우(皇穹宇)를 둘러싼 회음벽(回音壁),
황궁우 앞에 깔린 세 개의 돌, 삼음석(三音石)에도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다.
회음벽의 이쪽에서 서서 말한 작은 소리는 벽을 따라 전파되어 다른 쪽 벽에서도
들린다고 하고, 삼음석의 경우는 첫 번째 돌에서 손뼉을 치면 한번, 두 번째
돌에서는 두 번, 세 번째 돌에서는 세 번의 메아리가 들린다고 한다.
천단의 중심 건축물인 기년전(祈年殿) 천정에는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바닥에 조각되어 있던 봉황이 밤에 천정의 용에게
놀러 갔다가 날이 밝자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라고.
★백두산 [白頭山]★
북한 양강도(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경계에 있는 산.
위치 양강 삼지연군, 중국 지린성 경계
높이 2,750m
봉우리 장군봉
문화재 백두산 정계비
높이 2,750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
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다.
또 단군(檀君)이 탄강(誕降)한 성지로 신성시해왔다. 중국 금대(金代)인 1172년
에는 영응산(靈應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청대(淸代)에는 이곳을 왕조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배하였다.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맥[白頭山脈]의 주봉으로 최고봉은 장군봉
(2,750m)이다. 장군봉은 일제강점기에는 병사봉이라 불리며 해발 2,744m로
측량되었으나, 북한에 의하여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남동쪽으로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뻗어 있다.
활화산으로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 여러 시대의 지층들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생대와 신생대의 구조운동에 의해 형성된 단열구조, 파열구조 단층이 발달
하였다. 화산분출은 쥐라기(약 6억 년 전)에서 신생대 제4기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신생대 제3기부터 활발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질 용암이 대량
유출되어 약 5,350㎢의 넓은 백두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형성하였다. 화산활동
후기에는 대연지봉, 소연지봉, 대각봉, 무두봉, 베개봉, 청봉 등 부속화산들이
형성하였으며 이들은 적갈색 다공질현무암용암의 분출로 생겼다.
최근의 분출은 1597년·1668년·1702년에 있었다고 문헌에 전하고 현재는 백두산
주변 50km 내외에 진도 2∼3의 약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화산폭발시 용암이
잘게 부서져 쌓인 부석층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천지 부근의 부석층은 두께가
20m 가량 된다. 화산재, 화산탄, 화산모래 등의 층도 남아 있다.
토양은 여러 해 동안 동결층의 영향과 한냉한 기후에서 형성된 토양, 평탄한
현무암대지에서 형성된 토양과 수평대성을 띤 포드졸성 갈색산림토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고산기후이며,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6∼8℃, 최고기온 18∼20℃, 1월 평균기온 -23℃(최저 -47℃), 1월의
평균 일교차는 7.5℃, 7월의 평균 일교차는 4.8℃이다. 연평균 상대습도는
74%이며 여름에 가장 높고 겨울에 낮다. 북서풍과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최대 풍속은 40m/s,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며, 천지 부근은 강한 돌개바람인
용권이 자주 일어난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마주치면서 안개가 많이
끼는데 7~8월에 안개가 끼는 날수는 33일 가량 되며, 구름이 많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비를 동반한다. 벼락회수는 연간 약 50회이고 그중 60∼70%는
6∼7월에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500mm이며, 겨울 날씨가 연중 230일 정도 계속된다.
백두산에는 검은담비, 수달, 표범, 호랑이, 사향노루, 사슴, 백두산사슴, 산양,
큰곰 등의 희귀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204종의 조류가 서식하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지연메닭(348호)·신무성세가락딱따구리(353호) 등이 있으며, 특별보호대상
조류로 메닭, 세가락메추리, 북올빼미, 긴꼬리올빼미, 흰두루미, 재두루미, 원앙,
청둥오리, 붉은허리제비, 숲새 등이 있다. 북살모사와 긴꼬리도마뱀 등의 파충류와
무당개구리·합수도룡뇽 등의 양서류가 있으며, 천지에는 천지산천어가 살고 있다.
300과 2,7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데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잎갈나무,
좀잎갈나무, 백두산자작나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교적 분포속도가 빠른
식물종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화산 분출에 의해 피해를 받기 전의
식물종들이 정일봉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자란다. 이 지역에서는 백두산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흰병꽃나무·구름꽃다지·백리향·만삼·왜당귀 등이 자란다.
빙하기 이후 고산조건에 적응한 담자리꽃나무, 시로미, 물싸리, 두메김의털, 장군풀,
산할미꽃, 두메아편꽃, 큰산싱아, 각씨투구꽃, 끈끈이주걱, 두루미꽃, 눈사버들,
구름국화, 바위구절초, 만병초 등 한대성 식물들이 자란다.
또 매저지나무·들쭉나무·백산차 등의 냉대성 관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금방망이·삼잎방망이·자주꽃방망이·무수해·황기·부채붓꽃·손바닥란·동의나물·
분홍노루발풀·왕바꽃·메바꽃·구름범의귀풀·물매화 등 냉대성 초본식물들이 있다.
산 정상에는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는데 면적 9.165㎢, 평균수심 213m,
최대수심 384m이다. 천지의 물은 높이 67m의 장백폭포(長白瀑布)가 되어
얼다오바이강[二道白河]으로 떨어져 쑹화강[松花江]으로 흐른다. 천지에
시원을 둔 폭포는 백두폭포·사기문폭포·형제폭포·백두밀영폭포 등이며 압록강
상류, 두만강 상류, 산다오바이강[三道白河]으로 흘러들어간다. 천지에는
백암온천과 새로 개발된 백두온천이 있으며, 주변에 장백온천과 제운온천이 있다.
허항령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삼지연(三池淵)은 대소 4개의
얕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위 길이가 4.5km, 수심 3m인 천연호수로서
주변 경관이 뛰어난 휴양지이다. 문화재로는 1712년(숙종 38)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세운 백두산정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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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후기 ★
2012년 6월 2일~6월 6일까지 4박 5일 [중국](만리장성.명13릉.천안문 광장.
천단공원.이화원.자금성.북경서커스).[백두산]백두산 천지에서 흐르는 웅장
하고 장엄한[장백폭포1.203m].[천지조망3.803m]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칼데라호로 해발2.257m의 천문봉 짚차로 등정.유황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는
[유황 온천지대 관광].용정시 해란강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비암산 정상에
위치한 소나무로 독립운동의 혼이 담겨져 있는[일송정 차창]관광.[윤동주 시인]
이 다녔던 학교[용정 중학교.대성 중학교.윤동주 시비].북한의 남양시가 보이는
중국과 북한의[중조국경지대].를 산악회에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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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萬里長城,万里长城, The Great Wall]★
북쪽의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증축하면서 쌓은
산성이며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국가 중국(China)
지정일 1987년
분류 문화
테마분류 문화유산
소재지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허베이[河北],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산시[山西], 내몽골, 산시[陝西], 닝샤[寧夏], 간쑤[甘肅], 신장[新疆], 산둥[山東],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쓰촨[泗川], 칭하이[靑海], 그밖의 자치주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에 이른다.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보통 만리장성의 기원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 770~ BC 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 왕국인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당시의 만리장성은 동쪽 랴오양[遼陽]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까지로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2000여 년 역사,
시대에 따른 변화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이다. 처음 건축될 무렵의 길이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 보하이만
[渤海灣]까지 약 1,500㎞였다. 이후 명(明)나라 때 총 길이 2,700㎞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淸)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만리장성 2,700㎞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 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 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군사적 방어선이자 문화적 경계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 쏟는 정성도 달라졌다. 왕조가 공격적
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
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 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 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 ★
명조(1368~1644년)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와 능묘(한꺼번에
모여 있는 산) 중에서 일명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13대 만력제의
능묘인[명 13릉-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
베이징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천수산 아래에 위치한
북경 명13릉 은 약 40km² 부지 안에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의
무덤인 장릉(长陵)부터 승정제의 사릉(思陵)에 이르기 까지 황제
13인과 황후 23인 비, 그리고 1인의 능묘가 모여 있는곳 입니다.
실제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는곳은 13곳 중에 3곳으로 3대 영락제의
장릉(长陵) 13대 융경제의 조릉(昭陵) 14대 만력제의 정릉( 定陵) 만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10일^^☎☎
★ 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
명조(1368~1644년)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와 능묘 중에서
일명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13대 만력제의 능묘인[명 13릉
-명 13릉 중 "정릉[지하궁전]관광-↓게속해서~![](https://t1.daumcdn.net/cfile/cafe/191BE7504FD6771137)
![](https://t1.daumcdn.net/cfile/cafe/1335163C4FD7BE5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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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1648B384FD7BF031B)
[용의 발톱 나무] 용좌수:이상한 모양으로 꼬인 나무(주로 시내 가로수로 이용)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E50334FD7BFA916)
![](https://t1.daumcdn.net/cfile/cafe/180B46334FD7BFAA17)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33D334FD7BFAB14)
용의 발톱 나무^^ ![](https://t1.daumcdn.net/cfile/cafe/180CF7334FD7BFAC15)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humb.200112.album.www.com.ne.kr%2FY2001%2FM12%2FD03%2Fthumb%2Fthumb_%25C7%25C7%25BE%25C6%25B3%25EB_121103montst_com.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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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볼거리가..무궁한 중국.
우리나라도
많이 개발해서..
여행국가로 ,,발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