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139회
주경왕(周景王) 12년, 초영왕(楚靈王)은 陳·蔡를 멸망시키고, 또 허(許)·호(胡)·심(沈)·도(道)·방(房)·신(申) 여섯 소국의 백성을 형산(荊山) 땅으로 옮기게 하였다. 백성들은 고향을 떠나 떠돌게 되고 길거리에는 탄식과 원성이 자자하였다.
영왕은 조만간 천하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며, 밤낮으로 장화대(章華臺)에서 연회를 열어 즐겼다. 영왕은 사신을 주왕실로 보내 구정(九鼎)을 楚나라로 옮겨 오게 하여, 楚나라의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자 하였다.
[제101회에, 초장왕(楚莊王)이 구정에 대해 물었다가 왕손 만(滿)에게 질책을 받고 물러났었는데, 거기서 ‘문정경중(問鼎輕重)’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었다.]
우윤(右尹) 정단(鄭丹)이 말했다.
“지금 齊·晉이 아직 강성하고 吳·越은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왕실이 비록 楚나라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제후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영왕이 분노하며 말했다.
“과인이 잊을 뻔했다. 지난번에 신(申) 땅에서 회맹할 때, 서자(徐子)의 죄를 용서하고 吳나라 정벌에 동참하게 했었는데, 徐나라는 吳나라 편이 되어 힘을 다하지 않았었다. 이제 과인이 먼저 徐나라를 정벌한 다음 吳나라를 평정하면 장강(長江) 동쪽이 모두 楚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미 천하의 절반을 평정하게 되는 것이다.”
[제134회에, 영왕이 신 땅에서 회맹했을 때, 서나라 군주가 오나라 여인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오나라 편에 붙지 않을까 의심하여 구금했다가, 서자가 오나라 정벌의 향도가 되겠다고 자청하자 석방했었다. 그때 영왕은 오나라에 망명해 있던 제나라의 경봉을 붙잡아 처형하였다.]
영왕은 원파(薳罷)로 하여금 채유(蔡洧)와 함께 세자 녹(祿)을 받들어 도성을 지키게 하고, 병거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동쪽으로 가서 주래(州來) 땅을 순행하고 영수(潁水)까지 나아갔다. 사마(司馬) 독(督)으로 하여금 병거 3백승을 거느리고 徐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영왕 자신은 건계(乾谿)에 대군을 주둔시키고 후원하기로 하였다.
때는 주경왕(周景王) 15년, 초영왕 11년 겨울이었는데, 큰 눈이 내려 석 자나 눈이 쌓였다.
[채유는 본래 채나라 사람이다. 제138회에 채나라가 멸망하고 초나라로 잡혀 갔는데, 부친 채략이 영왕에게 피살되었기 때문에, 채유는 마음속으로 복수할 뜻을 품고 영왕에게 아첨하여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때를 읊은 시가 있다.
彤雲蔽天風怒號 붉은 구름은 하늘을 가리고 바람은 노하여 울부짖는데
飛來雪片如鵝毛 새털 같은 눈송이 펄펄 흩날린다.
忽然群峰失青色 홀연 많은 산봉우리들이 푸른색을 잃고
等閒平地生銀濤 한가로운 평지엔 은빛 파도가 일어난다.
千樹寒巢僵鳥雀 수천의 나무 위 차가운 둥지 속에선 새들이 얼어 죽고
紅爐不煖重裘薄 붉은 화로는 따뜻하지 않은데 입은 가죽옷은 얇구나.
比際從軍更可憐 싸움터의 군사들은 더욱 가련하니
鐵衣冰凝愁難著 철갑옷은 얼어붙어 더욱 근심스럽도다.
영왕이 시종에게 말했다.
“예전에 秦나라에서 바친 복도구(復陶裘)와 취우피(翠羽被)를 입어야겠다.”
[‘복도구(復陶裘)’는 새털로 짜서 만든 가죽옷이고, ‘취우피(翠羽被)’는 물총새의 깃털로 장식한 외투이다.]
시종이 가죽옷과 외투를 가져와 바치자, 영왕은 그것을 입고 머리에는 가죽 관을 쓰고 발에는 표범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장막을 나와 설경(雪景)을 바라보았다.
우윤 정단이 곁에 다가오자, 영왕이 말했다.
“몹시 춥구먼!”
정단이 말했다.
“왕께서는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 표범가죽 신발을 신고서 호피(虎皮)로 만든 장막에 거처하시면서도 춥다고 하시는데, 군사들은 짧은 옷을 입어 복사뼈가 다 드러난 채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서 풍설(風雪) 가운데 무기를 들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어떠하겠습니까? 徐나라를 정벌하러 간 군대를 소환하여 도성으로 돌아가, 내년 봄 따뜻할 때 다시 정벌을 도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경의 말이 좋긴 하지만, 과인이 용병한 이래 이기지 못한 적이 없소. 사마가 조만간에 승전보를 전해 올 것이오.”
“徐와 陳·蔡는 같지 않습니다. 陳·蔡는 楚나라와 가깝고 오랫동안 楚나라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徐나라는 楚나라와 동북으로 3천 리 떨어져 있으며 또 吳나라와 친한 사이입니다. 왕께서 徐나라를 정벌하려는 공을 탐하여 삼군이 오랫동안 바깥에 주둔하고 있어, 피로와 추위의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만일 국내에서 변란이 일어나면, 군사들의 마음이 이반(離反)되어, 왕께서 위태로워지실까 염려됩니다.”
영왕이 웃으며 말했다.
“천봉술(穿封戍)이 陳에 있고, 기질(棄疾)이 蔡에 있으며, 오거(伍舉)가 세자와 함께 도성을 지키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삼초(三楚)인데 과인이 무엇을 염려할 것이오?”
[제137회에 초영왕은 陳나라를 정벌하고 천봉술을 진공(陳公)에 봉하여 지키게 하였고, 제138회에 기질이 채나라를 정벌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으며, 채유의 건의에 따라 陳·蔡의 도성을 증축하여 방비를 강화하였다.]
영왕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좌사(左史) 의상(倚相)이 영왕 앞을 지나갔다. 영왕은 의상을 가리키며 정단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으로, 삼분(三墳)·오전(五典)·팔색(八索)·구구(九邱)에 통달하였으니, 자혁(子革; 정단)은 그를 잘 보시오.”
[‘삼분(三墳)’은 삼황(三皇) 즉 수인씨(燧人氏)·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의 사적(事迹)을 기록한 책이고, ‘오전(五典)’은 오제(五帝) 즉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의 사적을 기록한 책이고, ‘팔색(八索)’은 팔괘(八卦)에 관해 설명한 책이며, ‘구구(九邱)’는 구주(九州)의 토산품이나 기후 등을 기록한 지리서(地理書)인데, 네 책 모두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정단이 대답하였다.
“왕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예전에 주목왕(周穆王)이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자, 제공(祭公) 모보(謀父)가 ‘기초(祈招)’라는 시를 지어 간했습니다. 목왕은 그 간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와 화(禍)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신이 의상에게 그 시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일도 모르는 자가 어찌 미래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주목왕은 주나라의 5대 왕으로 이름은 만(滿)이다. ‘팔준마’의 이름은 화류(華騮)·녹이(綠耳)·적기(赤驥)·백의(白義)·유륜(踰輪)·거황(渠黃)·도려(盜驪)·산자(山子)이다.]
영왕이 말했다.
“‘기초’라는 시는 어떤 내용이오? 과인을 위해 읊어 줄 수 있겠소?”
정단이 ‘기초’ 시를 읊었다.
祈招之愔愔 사마(司馬)의 군사는 평안하고 화락하니
式昭德音 왕의 큰 덕을 보여주는구나.
思我王度 우리 왕의 도량을 생각해 보니
式如玉 옥과도 같고
式如金 황금과도 같도다.
形民之力 백성들의 노고를 헤아려
而無醉飽之心 취하거나 포식하지 않으시네.
영왕이 말했다.
“이 시는 어떤 뜻이오?”
정단이 대답했다.
“‘음음(愔愔)’은 평안하고 화락한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기보(祈父) 즉 사마(司馬)가 거느린 군사들이 평안하고 화락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왕의 큰 덕 때문이니, 왕의 덕을 옥의 견고함과 황금의 무거움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백성을 긍휼히 여겨 적절한 정도에서 멈추어야 하며, 지나치게 취하거나 포식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영왕은 그 말이 자신을 풍자한 것임을 알고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경은 물러가 있으시오. 과인이 생각해 보겠소.”
그날 밤 영왕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회군하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홀연 첩보가 들어왔다.
“사마 독이 徐軍을 패퇴시키고 마침내 도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영왕이 말했다.
“이제 徐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겠구나.”
그리하여 영왕은 회군하지 않고 건계에 계속 주둔하였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사냥을 즐기면서, 백성들을 사역시켜 궁궐과 고대(高臺)을 짓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蔡나라 대부 귀생(歸生)의 아들 조오(朝吳)는 채공(蔡公) 기질을 섬기고 있었는데, 밤낮으로 蔡나라를 복원할 궁리를 하다가 읍재(邑宰) 관종(觀從)과 상의하였다.
[제137회에, 기질이 채나라를 공격하고 있을 때, 조오는 기질을 찾아가 ‘당벽(當璧)’의 징조를 얘기하면서 군위 찬탈을 종용했었다. 제138회에, 기질은 채나라를 함락하고서 조오를 부하를 삼았다.]
관종이 말했다.
“楚王은 군대를 억지로 동원하여 원정을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어, 楚나라는 안으로는 비어 있고 밖으로는 원성이 높습니다. 이는 하늘이 楚王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 기회를 놓치면 蔡나라는 복원할 수 없습니다.”
조오가 말했다.
“蔡나라를 복원하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겠습니까?”
“楚王 웅건(熊虔)은 반역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세 공자는 마음속으로 모두 불복하고 있습니다. 다만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입니다. 채공(蔡公)의 명이라고 핑계대고 자간(子干)과 자석(子晳)을 불러들여 여차여차 하면, 蔡公이 楚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蔡公이 楚나라를 얻게 되면, 웅건은 둥지가 깨지는 것이니 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蔡公이 왕위에 오르면 蔡나라는 필시 복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137회에 보면, 초공왕(楚共王)의 아들이 다섯인데, 첫째는 웅소(熊昭) 즉 강왕(康王), 둘째는 위(圍) 즉 영왕(靈王) 웅건, 셋째는 웅비(熊比), 넷째는 웅흑굉(熊黑肱), 막내가 기질이다. 자간(子干)은 웅비이고 자석(子晳)은 웅흑굉이다. 제134회에, 영왕이 강왕의 아들 웅균(熊麇)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을 때 웅비는 晉나라로 달아나고 웅흑굉은 정나라로 달아났었다.]
조오는 그 계책에 따르기로 하였다.
관종은 晉나라로 가서 웅비를 만나고, 또 鄭나라로 가서 웅흑굉을 만나 말했다.
“蔡公께서는 두 공자를 楚나라로 불러들이고 陳·蔡의 군대를 일으켜 역적 건(虔)을 몰아내려고 합니다.”
웅비와 웅흑굉은 크게 기뻐하면서, 기질을 만나기 위해 蔡나라로 갔다. 蔡나라 교외에 당도하자, 관종이 먼저 성으로 들어가 조오에게 알렸다. 조오가 교외로 나와 두 공자를 맞이하고 말했다.
“실은 蔡公께서 명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두 분이 蔡公을 겁박하면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웅비와 웅흑굉이 두려운 기색이 되자, 조오가 말했다.
“왕은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나라가 비어 아무런 대비가 없습니다. 게다가 도성을 지키고 있는 채유는 선친의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다행입니다. 그리고 교윤(郊尹) 투성연(鬥成然)은 蔡公과 친밀한 사이이므로, 蔡公이 거사하면 필시 내응할 것입니다. 천봉술은 진공(陳公)으로 봉해졌지만 속마음으로는 왕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蔡公이 부르면 필시 달려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陳·蔡의 군대를 일으켜 비어 있는 楚나라를 기습하면, 탐낭취물(探囊取物)과 같을 것입니다. 두 분 공자께서는 성공하지 못할까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탐낭취물(探囊取物)’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을 꺼낸다는 뜻으로, 아주 쉬운 일을 이르는 말이다.]
조오가 이렇게 설득하자, 두 공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말했다.
“그대의 가르침을 따르겠소.”
조오는 희생을 잡아 두 공자와 함께 삽혈하고, 선군 겹오(郟敖)의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맹약문에 蔡公의 이름을 먼저 쓰고, 웅비·웅흑굉과 함께 역적 웅건을 몰아낸다고 쓴 다음 땅을 파고 희생과 함께 묻었다. 맹세를 마치고, 조오는 가병을 거느리고 웅비와 웅흑굉을 인도하여 채성(蔡城)으로 들어갔다.
[겹오는 영왕이 시해한 강왕(康王)의 아들 웅균(熊麇)이다. 제134회에, 겹(郟) 땅에 장사 지냈기 때문에 ‘겹오’라 부른다고 하였다.]
蔡公 기질은 막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공자가 들어오자, 너무 의외의 일이라 깜짝 놀라며 몸을 피하려고 하였다. 조오가 다가가서 蔡公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공자께서는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웅비와 웅흑굉이 蔡公을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역적 건(虔)이 무도하여 조카를 죽이고 우리를 쫓아냈다. 우리 두 사람이 여기 온 것은, 너의 병력을 빌려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다. 일이 성공하면 너를 왕위에 앉히겠다.”
기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서 상의하십시다.”
조오가 말했다.
“두 분 공자께서 배가 고프시니, 함께 식사하시지요.”
웅비와 웅흑굉이 식사를 마치자, 조오는 두 공자를 재촉하여 楚나라로 떠나보낸 다음, 군사들에게 선언하였다.
“蔡公께서 두 공자를 부르신 까닭은, 함께 거사하기 위해서다. 이미 교외에서 맹세하고, 두 공자를 먼저 楚나라로 들여보냈다.”
기질이 조오를 제지하며 말했다.
“나를 무고(誣告)하지 말라!”
조오가 말했다.
“교외에서 맹약문과 희생을 땅에 묻었는데, 어찌 본 사람이 없겠습니까? 공자께서는 피하려 하지 마시고, 속히 군대를 일으켜 부귀를 취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오는 거리로 나가 소리쳤다.
“楚王이 무도하여 우리 蔡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이제 蔡公께서 蔡나라를 복원시켜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소. 그대들은 모두 蔡나라 백성인데, 어찌 종묘의 제사가 끊어지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蔡公과 두 공자의 뒤를 따라 함께 楚나라로 쳐들어갑시다!”
蔡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환호하면서 무기를 들고 蔡公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조오가 기질에게 말했다.
“인심이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 공자께서는 빨리 저들을 위무하여 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기질이 말했다.
“그대는 나를 겁박하여 호랑이 등에 태우려 하는가?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조오가 말했다.
“두 공자께서 이미 교외로 나갔으니, 빨리 가서 힘을 합치십시오. 저는 진공(陳公)을 설득하여 군대를 일으켜 공자를 따르게 하겠습니다.”
기질은 할 수 없이 조오의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웅비와 웅흑굉은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모아 蔡公과 연합하였다. 조오는 관종을 陳으로 보냈는데, 관종은 가는 도중에 陳나라 사람 하설(夏齧)을 만났다. 하설은 하징서(夏徵舒)의 현손(玄孫)으로 관종과 평소 면식이 있었다.
[제105회에, 하징서는 모친 하희(夏姬)와 놀아난 진영공(陳靈公)을 시해하였고, 초장왕(楚莊王)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관종이 蔡나라를 복원시키려 한다는 말을 하자, 하설이 말했다.
“저도 陳公의 문하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역시 陳나라를 복원할 계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금 陳公은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니, 그대는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가 먼저 蔡나라로 돌아가 있으면, 제가 陳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관종은 돌아가 蔡公에게 보고하였다.
조오는 밀서를 써서 채유에게 보내, 내응하게 하였다. 蔡公은 가신(家臣) 수무모(須務牟)를 선봉으로, 사패(史猈)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관종을 향도로 삼아 정예병을 거느리고 먼저 떠나게 하였다. 그때 마침 하설이 陳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당도하였다. 하설이 蔡公에게 말했다.
“천봉술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의로써 陳나라 사람들을 일깨워 공자를 도우러 왔습니다.”
蔡公은 크게 기뻐하며, 조오로 하여금 蔡나라 사람들을 거느리고 우군(右軍)이 되게 하고, 하설로 하여금 陳나라 사람들을 거느리고 좌군(左軍)이 되게 하였다. 蔡公은 조오와 하설에게 말했다.
“기습하는 일은 지체해서는 안 되오!”
蔡公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도(郢都)로 진격하였다.
채유는 蔡公의 군대가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복을 성 밖으로 내보내 맞이하였다. 투성연도 교외로 나와 蔡公을 영접하였다. 영윤 원파가 병력을 소집하여 성을 지키려고 했는데, 채유가 성문을 열고 蔡나라 군사들을 들여보냈다. 수무모가 먼저 입성하여 소리쳤다.
“蔡公이 건계에서 楚王을 죽이고 지금 대군을 거느리고 오셨다!”
楚나라 사람들은 영왕의 무도함을 미워하여 모두 蔡公이 왕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항거하는 자가 없었다. 원파는 세자 녹(祿)을 모시고 달아나려고 했지만, 수무모가 이미 왕궁을 포위했기 때문에, 왕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자결하였다.
호증선생(胡曾先生)이 시를 읊었다.
漫誇私黨能扶主 사당(私黨)을 만들어 임금을 세울 수 있다고 장담 말라.
誰料強都已釀奸 견고한 영도 안에 이미 적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若遇郟敖泉壤下 지하에 가서 겹오(郟敖)를 만나게 되면
一般惡死有何顏 똑같이 비명(非命)에 죽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
蔡公의 대군이 뒤를 이어 왕궁으로 들어가, 세자 녹과 그 아우 공자 파적(罷敵)을 죽였다. 蔡公은 왕궁을 청소하고 웅비를 왕으로 받들고자 하였다. 웅비가 사양하자 蔡公이 말했다.
“장유(長幼)의 순서를 어길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웅비가 즉위하고, 웅흑굉을 영윤에, 蔡公을 사마에 임명하였다.
조오가 蔡公에게 은밀히 말했다.
“공자께서 앞장서서 거사하셨는데, 왜 왕위를 남에게 양보하셨습니까?”
蔡公이 말했다.
“왕이 아직 건계에 있어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소. 내가 두 형님을 제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것이오.”
조오는 蔡公의 뜻을 알아채고 계책을 내놓았다.
“왕의 군사들이 바깥에서 오래도록 고생하고 있어 필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이해(利害)로 설득하여 불러들이면, 필시 무너져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대군을 거느리고 가면 왕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蔡公은 그 말에 찬성하고, 관종을 건계로 보내 군사들에게 말을 퍼뜨리게 하였다.
“蔡公이 이미 도성에 들어가 왕의 두 아들을 죽이고 자간을 왕위에 받들었다. 신왕께서 명을 내리시길, ‘먼저 귀국하는 자에게는 전답을 돌려주겠지만 늦게 돌아오는 자는 의형(劓刑)에 처할 것이며, 왕을 따르는 자는 그 죄가 삼족에까지 미칠 것이며 왕에게 음식을 주는 자도 같은 죄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형(劓刑)’은 코를 베는 형벌이다.]
그 말은 들은 군사들은 순식간에 절반이 달아나 버렸다.
영왕은 술에 취해 건계의 고대(高臺)에 누워 있었는데, 정단이 황급히 들어와 변란을 보고하였다. 영왕은 두 아들이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자, 침상에서 굴러 떨어져 방성대곡(放聲大哭)하였다. 정단이 말했다.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이반(離反)되었으니,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영왕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남들도 그 아들을 사랑함이 과인이 같은가?”
정단이 말했다.
“조수(鳥獸)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영왕이 탄식하며 말했다.
“과인이 남의 아들을 많이 죽였으니, 이제 남이 내 아들을 죽인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잠시 후, 초마(哨馬)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신왕이 蔡公을 대장으로 삼아, 투성연과 함께 陳·蔡 두 나라의 병력을 거느리고 건계로 쳐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영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과인이 투성연을 박하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나에게 반기를 든단 말인가? 일전을 벌이고 죽을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포박을 당할 수는 없다!”
영왕은 영채를 뽑고 출발하였다.
영왕은 하구(夏口)를 거쳐 한수(漢水)를 따라 올라가 양주(襄州)로 가서 영도를 기습하려고 했는데, 군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영왕은 검을 뽑아 들고 몇 명을 베었지만, 그들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자량(訾梁)에 당도했을 때에는 따르는 자가 겨우 백 명뿐이었다. 영왕이 말했다.
“만사가 물 건너가 버렸구나!”
영왕은 관과 의복을 벗어 강가의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정단이 말했다.
“근교(近郊)로 가서 민심의 향배(向背)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영왕이 말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반기를 들었다는데, 뭘 더 살펴본단 말이오?”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가서 군사를 빌려 나라를 되찾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후들 가운데 누가 나를 좋아하겠소? 내가 듣건대, 큰 복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였소. 쓸데없이 치욕만 자초할 뿐이오.”
정단은 영왕이 자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신왕에게 벌을 받을까 두려워 의상과 함께 몰래 楚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영왕은 정단마저 보이지 않자,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어 이택(釐澤) 주위를 배회하였다. 따르는 자들도 모두 도망가고 마침내 홀로 남았다. 배가 고파서 마을을 찾아가 음식을 얻으려 했으나, 길을 찾지 못하였다. 시골 사람들은 楚王을 알아보았지만, 도망치던 군사들이 신왕이 엄명을 내렸다는 말을 퍼뜨렸기 때문에, 모두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영왕은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단지 두 눈만 뜨고서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구원해 주기만을 바랐다. 홀연 어떤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예전에 성문을 지키던 관리였는데 그 당시 연인(涓人)이라 불리던 주(疇)라는 사람이었다. 영왕이 소리쳤다.
“주야! 나를 구해다오!”
주는 영왕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가가서 머리를 조아렸다. 영왕이 말했다.
“과인이 사흘 동안 굶었다. 과인을 위해 밥 한 그릇만 얻어다오!”
주가 말했다.
“백성이 모두 신왕의 명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신이 어디 가서 밥을 얻어 올 수 있겠습니까?”
영왕은 탄식하면서, 주에게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다리를 베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영왕이 잠들자, 주는 다리를 빼고 흙덩이를 괴어 주고는 달아나 버렸다. 영왕이 잠이 깨어 주를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자신이 베고 있던 것을 더듬어 보니, 흙덩이였다. 영왕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였지만, 기력이 떨어져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