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계의 에바스에덴은 어느때와 다름 없이 아름다웠으며, 평화로웠다. 나는 에바스에덴의 풀밭에 앉아 방금 딴 보석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며 신나게 뛰놀고 있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곳을 마음껏 볼 날도 멀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실컷 봐둘 생각이었다.
나는......곧 소멸한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16000살이면 상당히 오래 살았다. 트로웰과 이프리트도 이미 소멸해 신이 된지 오래였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소멸은 곧 죽음을 뜻한다. 이미 한번 겪어 봤던 일이지만 이사나와 라피스, 트로웰과 이프리트 등 많은 존재들의 죽음을 봐서 그런지 겁이 났다.
물론 라피스는 크로아첸이 되었고 트로웰과 이프리트도 신이 되긴 했지만 일단 죽는것이 아닌가. 아프지 않다 해도 죽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런 내 걱정을 알아챈건지, 한창 실프들과 신나게 놀고 있던 나이아스 한마리가 다가왔다.
-엘퀴네스님! 무슨일 있으신가요? 표정이 어두우세요.
"아, 아무일도 아냐. 그보다 나이아스, 넌 내가 소멸하면 어떨것 같아?"
-으음...... 굉장히 슬플것 같아요.
"그러니?"
-네! 엘퀴네스님은 친절하시잖아요. 그런데 그런분이 소멸하신다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물의 정령들도 슬퍼할걸요?
"후훗, 고마워."
그나마도 나이아스의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소멸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3일 후, 소멸하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두명의 인도자가 정령계를 찾아왔다. 나와 인도자 말고도 물의 정령들과 이번대의 트로웰과 이프리트, 그리고 미네와 크로아첸,엘뤼엔,페르데스,신이 된 트로웰과 이프리트까지 에바스에덴에 모인 상태였다.
"이렇게까지 안와줘도 되는데......"
정령들은 몰라도 신들은 처리해야할 서류가 꽤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소멸하는 때에 이렇게 찾아와 주니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 소멸한다는데 모른척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애인이 소멸하는데 같이 있어줘야 하지 않겠어?"
"내 생각에 엘 네가 소멸을 무서워할것 같아서 함께 있어주려고 왔어."
"난 그냥 엘뤼엔을 따라 온거야."
"그보다 엘, 너는 당연히 신이 되겠지?"
마지막 페르데스의 말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세의 길을 선택할거야."
예상대로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류도 미루고 찾아온 다섯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소멸한다는 것을 안 후부터 고민하다 겨우 내린 결정이었다. 그 이유는 신이 처리해야할 서류가 많다는 데에도 있었지만, 한번 더 중간계에서 태어나 생활해보고 싶었다.
"으음, 엘이 원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어짜피 언젠간 다시 만날테니까."
"좀 아쉽군. 신이 되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이미 한번 결정한 일을 바꿀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엘퀴네스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이제 한동안 못보겠구나."
"나 잊으면 안돼, 엘! 환생해도 다른 남자 만날 생각은 하지 말고."
"크로아첸 넌 내가 특별히 잊어줄게."
"엘,다음에 신이 된 뒤에 한번 찾아오시죠."
"알았어. 잘있어, 미네."
물의 정령들과 정령왕들, 신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인도자를 따라 명계로 왔다. 명계에서는 아레히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레히스, 오랫만이네요."
"오랫만입니다, 엘퀴네스님. 신이 될건지 내세의 길을 갈건지는 결정 하셨습니까?"
"네. 내세의 길을 가겠습니다."
"......의외네요. 엘뤼엔님과 다른분들 때문에 신이 되실줄 알았는데."
"신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요."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아레히스도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내세의 길을 선택했던 엘뤼엔이 신이 되었던 일을 상기했다. 설마 나까지 신으로 만드는건 아닐까?
"자, 그럼 어느 차원에서 환생 하시겠습니까?"
"으음......어디든 상관은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환생하도록 하죠."
나는 아레히스를 따라 한참을 걸어 어떤 문 앞에 멈춰섰다. 아마 이 문을 지나면 중간계에서 환생하게 되겠지.
"엘퀴네스님, 들어가시죠."
"에? 그냥 들어가요? 망각의 물은?"
"드릴까요?"
"......아뇨."
예전에 있었던 망각의 물 사건(?)은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했다. 그런 망각의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 나중에 봐요, 아레히스."
"네. 이젠 돌아가실 때나 다시 볼 수 있겠군요."
마지막으로 아레히스와 인사를 마친 뒤 문을 열었다. 동시에 문 안쪽으로 몸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고, 그것이 엘퀴네스인 나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차원에서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클로네'라는 소수 종족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정엘과 숲클을 섞은... 네 그런겁니다.
첫댓글 뭐..뭐죠..?? 짬뽕!!오어어어!!
짬!뽕!
푸흐흐 수고하셨습니다!!
재밌겠네요
감사합니다!
검사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