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을 알아야 우리말 달인
네이버블로그/ 노랑이 빨갱이 땡땡이 입니다.^^
⑤ 빨갱이는 되는데, 노랭이는 왜 안돼?
자, 한 형태소(뜻을 가진 작은 말의 단위)에서 뒷소리에 있는 ‘이(ㅣ) 모음’이 앞소리에 영향을 미쳐 앞소리가 뒷소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나는 현상을 뭐라한다고 했죠? 맞습니다. ‘이 모음 역행동화’입니다. ‘호랑이’가 [호랭이]로, ‘구더기’가 [구데기]로, ‘실랑이’가 [실랭이]로 소리 나는 것이 다 ‘이 모음 역행동화’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행 한글맞춤법에서 ‘이 모음 역행동화’는 어떻게 한다고 했죠? 맞습니다.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방금 “이 모음 역행동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했죠? 이 ‘원칙적으로’가 아주 중요합니다. 바로 예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고 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진중하지 못하고 툭하면 객기를 부리는 사람’을 일컬어 흔히 ‘풋나기’로 쓰는 말 있죠? “풋나기인 줄 알았더니 보통이 아니구나” “김 일병이 이제서야 풋나기 티를 벗었군” 따위에서 ‘풋나기’ 말입니다.
이 ‘풋나기’가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풋나기’가 아니라 ‘풋내기’가 바른말이라는 얘기죠. 새내기, 서울내기, 여간내기, 신출내기 등에 두루 쓰이는 ‘-내기’는 원래 ‘나다’에서 온 말이니 ‘나기’로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써 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나기’를 ‘-내기’로 소리 내는 바람에 1988년 표준어규정을 정하면서 아예 ‘-나기’꼴을 버리고 ‘-내기’ 따위로만 쓰도록 했습니다.
이렇듯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는 말 중에는 ‘꼬챙이’도 있습니다. 이 말 역시 1988년 이전에는 ‘꼬창이’가 바른 말이었지만, 이제는 ‘꼬챙이’로 써야 합니다. 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빨갱이’도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는 말입니다. 원래는 ‘빨강이’로 써야 하지만 너나없이 ‘빨갱이’로 쓰니까,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빨갱이’를 표준어로 삼은 거죠.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은 말은 아주 적습니다.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아주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누구나 쓰는 ‘노랭이’ 역시 ‘이 모음 역행동화’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는 ‘노랑이’를 써야 합니다.
‘노랑이’는 “노란색”을 뜻하는 ‘노랑’에 “(몇몇 명사, 어근, 의성·의태어 뒤에 붙어) ‘사람’ 또는 ‘사물’의 뜻을 더하고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 ‘-이’가 붙어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빨간빛을 띤 물건”은 ‘빨강이’이지만 “사람(공산주의자)”은 ‘빨갱이’로 구분해 쓰라고 하면서, ‘노랑이’로는 “노란 빛깔의 물건”과 “사람(인색한 이)”을 함께 의미하도록 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가 옳다고 보시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한국어능력시험 등에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아주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나오면 ‘노랑이’에 동그라미표를 하고, ‘노랭이’에는 가위표(가새표)를 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장담하건대 ‘노랭이’는 곧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아주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표준어가 될 것입니다. 제가 처음 〈건방진 우리말 달인〉을 지은 후 짜장면·내음·연신·먹거리·걸판지다 등을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런 말들 수십 가지가 복수 표준어로 인정됐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앞으로도 언중의 말 씀씀이를 꾸준히 살필 터이고, 사람들 백이면 백 모두가 쓰는 ‘노랭이’를 복수 표준어로 삼을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몸피가 작고 좀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 ‘좀팽이’도 과거에는 ‘좀팡이’를 표준어로 보았지만 지금은 ‘좀팽이’로 바뀌었답니다. 다만 ‘좀팽이’를 ‘쫌팽이’로 소리 내기도 하는데, ‘쫌팽이’는 바른말이 아닙니다. 또 ‘쫌스럽다’도 ‘좀스럽다’로 써야 한다는 것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노랑이’가 언제 ‘노랭이’로 바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가끔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들어가 뒤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노랭이’가 복수 표준어가 돼 있을지 모르니까요.
참, 지금도 ‘노랭이’가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잠자리의 애벌레”를 이르는 말로는 ‘노랭이’를 쓸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말은 사람과 동물에 쓰는 말이 다릅니다. 사람의 ‘이’가 동물에게는 ‘이빨’이 되고, 사람의 ‘손’이 동물에게는 ‘앞발(앞다리)’가 되는 식이죠. 이때 동물에게 쓰는 말을 사람에게 쓰면, 그것은 속된 말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속된 말은 대개 문법보다는 소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거죠.
그래서 사람에게는 ‘함진아비’처럼 ‘아비’로만 쓰이는 말이 동물에게는 ‘애비’가 되기도 합니다. 하천이나 저수지 등 수면의 흐름이 적은 곳에 서식하는 곤충으로, 앞다리로 물 위에서 덤벙거리는 모습이 마치 흥이 나서 노래 부르며 장구를 치는 것과 같은 놈 있죠? 그놈의 이름이 ‘장구애비’입니다.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 문법편(엄민용, EBSBOOK,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2.17. 화룡이) >
첫댓글 노랭이, 노랑이
역행동화 처음으로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빨갱이와 노랑이는
멀고도 가까운 친구랍니다.
고맙습니다.
노랑이 ○
노랭이 X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노랭이보다는
노랑이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