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미학
on-line적인 삶보다 off-line적인 삶이 그립고, 디지털 문화보다 아날로그적인 문화가 더 정겹게 느껴지는 요즘, 나는 인기 드라마 폐인도 아니고 축구 애호가도 아니고 그야말로 테니스 폐인(嬖人)이다.
현대사회의 바쁜 메커니즘 속에서 내 삶의 쉼표가 머무는 곳, 그것은 바로 테니스이다.
나는 테니스를 사랑하는 순수 아마츄어 동호인이다.
누구보다도 복식 경기를 좋아하고 즐겨한다.
그렇다고 내가 테니스 경기를 잘 하는 고수도 아니요 또한 오랜 캐리어를 가진 전문가도 더욱 아니다.
그냥 건강을 위해 시작한 테니스가 이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테니스는 내 삶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마약 중독처럼 나를 몰입하게 한다.
넷트를 마주한 채 백색라인의 사각 테니스 구장에 들어서면 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부럽지 않다.
인간에겐 영원한 것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영혼을 가르는 불멸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테니스는 내 삶에서 불멸의 신화 같다.
거기엔 권태로움이나 싫증이 없다.
테니스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빠져들게 하는가?
모든 스포츠는 각자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 테니스가 가진 매력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도 정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원래 정복하기 어렵고 힘든 일을 탐닉하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은 일정기간 훈련이나 연습을 하면 엘리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테니스 경기는 오랜 기간을 투자해도 그리고 많은 시합 경력을 쌓아도 정복하기 힘든 것 같다.
라켓이란 매체를 통해 사각의 코트에서 네 사람이 벌이는 테니스는 무한한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파트너와 상대의 수준이나 경기전략 이외에도 코트의 상태, 햇빛이나 바람, 온도에 따른 볼의 상태나 공기압, 라켓의 상태나 텐션 그리고 경기불안과 마인드 컨트롤 등 너무나 많은 변수를 극복해야 한다.
전문적인 기능 이외에도 그러한 변수들도 함께 극복해야만 비로소 이른바 고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요즘은 동호인을 대상으로 한 전국대회나 지방대회가 참 많아서 좋다.
하얀 유니폼과 운동화를 신고 강력하게 내리 꽂는 스매싱의 파괴력.
위급할 때 상대의 맥을 찌르는 로브.
마법사의 묘기와 같은 정교한 발리.
철벽 수비를 뚫어버리는 빽 드라이브와 포핸드 스토로크의 시원시원함.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그곳엔 짜릿함과 긴장이 있고, 완급과 강약이 요구되며, 신중함과 센스가 있어야 하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끈기가 요구되며,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테니스 동호인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테니스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짧은 구력으로 이른바 고수의 경지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내 자신의 테니스 실력이 우수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위장병과 허리 디스크 증상 때문이었다. 테니스는 순환기능에 영향을 미쳐 나의 위장병을 놀랄 정도로 호전시켰고, 유연한 허리운동으로 인하여 디스크 증상이 병원신세 안 지고 관리되고 있다. 오늘날,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은 바로 테니스였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험은 아마 ‘아내’ 일 것이다. 그런데 아내라는 보험혜택을 평생 동안 잘 보장받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 아내에게 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 속을 많이 썩이면 나이 들어 질진 고기만 줄 거라고......’
나이 들면 치아가 안 좋을텐데 질긴 고기를 무슨 맛으로 먹으랴?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질긴 고기 줘도 좋으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달라고......’
그래서 아내도 늦은 나이에 테니스를 시작했다.
요즘은 아내도 테니스 매력에 빠져가고 있다. 테니스가 아내의 건강도 지켜주고 있고 또한 클럽회원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테니스를 알고부터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그린 필드에서 시원시원하고 통쾌하게 내리치는 하얀 골프공의 유혹이 있고, 지칠 줄 모르는 파도의 속삭임이 있는 여름바다가 있고,
순백의 백설을 가르는 겨울 스키의 유혹도 있고,
빠알간 단풍의 미소가 수줍게 포개지는 가을빛도 아름답지만 난 이들보다 테니스를 더 사랑한다.
봄빛을 받고 피어나는 백목련의 향기를 찾아다니는 여행보다 테니스 매력이 더 강하게 나를 유혹한다.
내겐 레저와 여가가 테니스이고, 테니스가 곧 여행이다.
그래서 난 테니스 폐인(嬖人)인것 같다.
첫댓글 스크랩해왓습니다.
꼭 우리들 얘기와 어울리네요.
센팍에도 여러분 있는것 같은데..
중독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