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했다는 건 무슨 병?
사람이 "체했다"고 말할 때 그 말을 자세히 따져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증상들을 이야기 한다. ;
1.속(대개 명치 끝 - 가슴 바로 아래, 배의 맨 위쪽 가운데 부분)이 아프다.
2.가슴이 답답하다.
3.음식을 먹은 후 속이 거북하다.
4.속이 매스껍다든지 토할 것 같은 느낌이다.
5.토했다.
6.어지럽다.
7.배가 아프다.
8.머리가 아프다.
9.열이 난다.
10.설사를 한다.
11.신물이 올라온다.(=생목이 올라온다.)
12.하품이 자꾸 난다.
13.딸꾹질이 멎지 않는다.
14.숨이 차다.
15.위에 말한 여러가지 증상들의 둘 이상이 함께 있다.
"체했다"는 것 때문에 병원에 온 환자의 최종 병명들(극히 드물게 보는 병들은 제외) ;
1.단순 소화불량
2.급성 위염, 급성 장염, 혹은 급성 대장염
3.기능성 위장장애(=신경성 위장병)
4.정신신체 반응
5.식중독
6.역류성 식도염
7.식도 경련
8.위암, 식도암, 간암, 췌장암, 기타 각종 소화기계 암
9.급성 췌장염
10.담석증
11.급성 간염, 기타 각종 간질환
12.장 마비증
13.장 폐색증
14.급성 충수돌기염(=급성 맹장염)
15.위석(위내 이물질)
16.협심증
17.급성 심근경색증
18.심부전증
19.급성 부정맥(발작성빈맥 등)
20.급성 심낭염
21.감기 혹은 독감
22.폐염
23.기관지 천식
24.급성 기흉
25.일과성 뇌허혈
26.전정신경염 혹은 기타 전정신경장애
27.뇌경색증
28.뇌 지주막하 출혈
29.불안 신경 반응
30.우울 신경 반응
"체(滯)했다.", "체한 것 같다."라는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실제 증상들이 위와 같이 너무나 다양하고, 또 결론지어 지는 병은 또 왜 이렇게 온갖 병들이 다 있을까?
1번에서 15번 까지의 병명들은 소화기관의 질병들이나, 그 이하의 다른 기관의 병들에서 왜 사람들은 "체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유는 "체(滯)했다"란 증상이 너무나 주관적이요, 제대로 정의(定義)가 내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했다"란 말은 옛날 말 혹은 한방식 표현이다.
한방의학에서는 "체함"을 하나의 질병상태로 정의하는지 모르겠으나, "체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자의 느낌, 즉 증상의 하나이지 병명이 아니다.
"체(滯)했다"란 것을 말의 뜻대로만 풀이한다면, 무언가가 식도나 위에 "머무르고" 있고 내려가지 않아, 즉 "소화가 되지 않아서" 우리 몸의 여러 기관과 조직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말 뜻대로만 해석하면 위의 여러가지 병들 중 15번 "위석(위내 이물질)"과 가장 가깝다.
위석(=Bezoar)은 위 속에서 여러가지 섬유질들이 뭉쳐서 단단한 돌덩어리로 형성된 것으로서 상당히 희귀한 질환이고, 위조영촬영이나 위내시경으로 쉽게 진단이 되며, 거의 대부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이다.
불과 2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한 복판에도 "체 내림"이란 간판을 걸어놓은 사이비 "의료기관"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고, 몽매한 사람들 중에는 "체(滯)했다"고 느꼈을 때 그런 곳을 찾아 갔었다.
시술자가 손가락을 환자의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어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꺼집어내어 환자에게 보여주면 "체함"은 단번에 치유되기도 하였다.
(사족 : 물론 그런 행위는 시술자의 손 기술에 의한 마술-트릭이었고, 환자의 증상이 없어지는 것은 정신적인 최면에 의한 것이다. 아무리 질긴 고깃덩어리도 보통은 8시간, 아무리 오래 걸려도 12시간 이내에 소화액에 녹아서 장으로 내려간다. 식도나 위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또, 아무리 “비 사이로 막가”는 갈비씨의 손도 사람 목을 통과해 식도로 들어간다는 건,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통과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시적인 "체(滯)함"의 대부분은 1, 3, 4번에 해당되는 "소화불량감"으로서,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좋은 것이지만, 일반인이 이를 자가진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안전을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급성 맹장염" 같은 꼭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도 처음에는 "체(滯)했다"고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가 아주많고,
생명이 경각에 달린 "심근경색증"도 급체라면서 응급실로 오는 경우도 꽤 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점이다.
또, "소화기관"과는 관계없는 많은 질병들이 소화기관의 기능을 떨어뜨림으로써, 일반인들은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긴 걸로 착각하고 "체(滯)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결론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은, 이제는 "체했다"는 말은 "옛날말 사전"에나 남아 있게 하고 아무도 그런 표현은 않는 것이 병을 올바로 진단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급체(急滯)???
약 오십년 전, 독일의 거대 제약회사가 우리나라 의약시장 조사를 한 후
"한국에는 유난히 소화불량 환자가 많다. '생명수'니 '활명수'니 하는 이상한 한방계열의 위장약이 엄청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선 "훼스탈"이란 소화제 광고로 딥다 나팔을 불며 우리나라 약품시장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ㅡ 아마 짭짤한 수입을 보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유난히 '소화불량 증상' 내지는 소위 '급체 증상'을 많이 호소한다.
TV연속극 안에서도 심심하면 소화제를 찾는다든지 '바늘로 손가락 끝을 따는', 외국인들이 보면 토인들의 무슨 주술행위 같은 짓을, 상당히 상류사회,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당연한 절차 처럼 행하고 있는 것을 더러 본다.
왜 그럴까?
"체했다"는 데 대해서는 저 앞에서 말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되풀이 하지는 않겠지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소화불량(=dyspepsia)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걸까?
깊게 생각하기 귀찮아 하는 사람들은 그냥 편하게 맵고 짠 우리나라 음식들에 그 원인을 돌리는 수가 많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자극적인 기호식품, 소-스를 쓰는 나라는 우리 말고도 많이 있다.
소화를 더디게 하는 것은 주로 기름진 음식이 많을 때이다.
기름진 음식은 오히려 서양사람들이 훨씬 많이 먹지 않는가?
우리나라 반찬에 유난히 푸성귀가 많아서 그럴까?
이건 가능성이 좀 있는 이야기 같다.
섬유질 중에도 주로 채식동물들이 많이 먹는 "셀률로우즈"는 사람은 전혀 소화시킬 수 없다.
사람은 잡식동물에 속한다고는 하나 그런식으로 보면 육식동물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푸성귀"들도 12시간이면 거의 모두 위에서 장으로 내려가 버림으로 그렇게 많은 "급체"의 주범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들 밥을 빨리 먹어서 그런건 아닐까?
이것도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나로서는 세계 각국의 식사시간들을 모두 알아볼 수는 없지만, 대충 접해 본 여느 나라들 사람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은 유달리 식사시간이 짧다.
사람의 위가 아무리 포용력과 팽창력이 좋다고는 하나 수십초 안에 들이닦치는 자장면을 감내해 내기는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ㅡ 하나의 가능성으로 점 찍어 두자.
그렇지만 나 개인의 의견으로는 "Stomach-oriented-mind(말이 되나? 영어도사들 한테 야단 맞는건 아닌가?)", 즉 가슴이나 배 쪽에 불편함을 느끼면 무엇이든지 "위장" 탓을 하는, 즉 소위 "체했다"고 생각하는 관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렵게 이야기 하면,
정신적인 자극에 의해 부교감신경들이 일시적으로 일을 쉬고,
주로 "급한 상황"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교감신경들의 작용에 의해
위장관의 근육들이 퍼져버리고, 각종 괄약근들은 문을 닫고 심장은 빨리 달리고, 가슴과 배의 살들은 바짝 긴장을 하여 수축을 하고... 하는 현상들을 "급체"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묶어서 피를 안통하게 하여 바늘로 찌르면 당연히 새까만 피가 나온다.
그것을 보고는 "역시 체했구나, 피가 까만 것을 보니."
ㅡ 가슴과 배를 자극하던 교감신경들은 묶은 손가락으로, 찌르는 바늘로 가버렸는데다가, 그런 정신요법 내지는 최면술 까지 작용을 하니 급체했던 것이 좋아지는 것 처럼 느낄 수 밖에...
그런 경우라면 "급체" 했을 때 손가락 끝 바늘로 따는 것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단, 너무 깊이 찌르지 말아야 하고 바늘을 잘 소독해야 하겠고, 상처도 소독을 잘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급체" 증상이라면 아무리 길어도 여섯시간은 넘지 않아야 한다.
계속 증상이 좋아지지 않거나 다른 증상을 동반하면 병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