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증권가 작전세력들이다.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이 이들의 한번 ‘작용’으로 움직인다.
회사 대표이사와 몇몇 펀드매니저, 투자상담사가 개입하는 난장판.
최근에는 대학생과 가정주부, 인터넷 동호회까지 동원되는 양상을 보인다.
증권가의 ‘검은손’ 작전세력의 전모를 집중 추적했다. 편집자>
작전세력의 주가조작은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한다.
서울 시내 A호텔 사우나. 수요일 오후 4시, 아직 사무실에서 한창 일할 시간이지만 여기 저기 목욕하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전날 과음한 샐러리맨들일까. 기자와 함께 사우나에 들어간 K씨는 “보통 샐러리맨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K씨는 사설 펀드를 운용하면서 증권가에서 ‘큰손’으로 알려진 주식 전문가. 그는 기자에게 “목욕하러 온 사람 중 일부는 펀드매니저와 시세 조종을 일삼는 작전 전문가”라며 “이곳은 이들에게 인기 있는 사우나 중 한 곳”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에서 펀드매니저와 작전세력은 서로 잘 모르면서, 동시에 잘 압니다. 초면이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뿐이지 목욕하다 몇마디 슬쩍 건네면 대략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계획된 일입니다. 작전세력들이 먼저 작전에 가담시킬 펀드매니저를 물색하고, 검증이 끝나면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죠.”
펀드매니저는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이처럼 작전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다. 작전 전문가들은 엄청난 현금으로 펀드매니저들의 혼을 빼앗는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번 이들과 손잡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이곳 세계의 룰이다.
“안면을 트면 작전팀장은 펀드매니저의 사무실로 놀러 갑니다. 그리고는 까만 가방에 든 1억원 정도의 현금을 보여줍니다. 작전팀장이 보유한 종목을 말하고 매수 주문을 하는 거죠. 펀드매니저는 회사 계좌를 통하지 않고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매수합니다. 주위에서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작전팀장은 두세차례 펀드매니저를 더 만나 현금과 향응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유한 종목을 가르쳐 주고, 펀드매니저 역시 이를 맡아둔다(이들은 ‘파킹’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다 이른바 주식을 매도하는 ‘D―Day’가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때를 전후해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팔고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사표를 낸다. 일부는 해외로 잠적한다. 이들은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유학간다고 말하기도 하고, 해외 병원을 찾아 수술받으러 간다는 얘기를 흘리기도 한다. 작전팀장 역시 사라진다. 사라지기 직전 작전을 통해 10억원정도를 챙긴 팀장은 펀드매니저를 포함, 팀원들에게 이익을 나눠 주고 팀을 해체한다.
“요즘에는 투신사가 컴플라이언스(감사부)를 신설해 펀드매니저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작전은 여전히 벌어집니다. 해외로 일시 도피했던 펀드매니저는 귀국해 작전세력으로 변신합니다. 흡혈귀에 물려 다시 흡혈귀가 되는 것이죠. 마땅히 다른 일을 할 것도 없잖아요? 게다가 이들은 수억원의 자금도 확보했겠다, 아쉬울 것이 없죠.”
작전세력이란 신(神)의 영역인 주가의 향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를 통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챙긴다. 한번쯤 작전의 유혹을 느끼지 않은 투자자들은 없으리라. 지루한 증권시장에서 떼돈을 벌 수 있다는데 누가 가담하지 않겠는가. 일부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작전세력이 없다면 수많은 중소기업 종목의 주가는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뱉기도 한다.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은 줄잡아 1,500여곳. 이중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회사의 가치를 분석하고 적정주가를 산정하는 등 관심을 보이는 곳은 50%도 안된다.
신문에 기사가 나오는 기업도 많지 않다. 따라서 500여 기업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소외돼 있는 것이다. 주가가 올라야 증시를 통해 회사의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수많은 기업이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이런 이유로 회사의 대표이사는 자연스럽게 작전세력과 결탁해 회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증권가의 한 전문가는 “작전세력에도 좋은 세력과 나쁜 세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작전세력을 나쁘다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해 내는 작전에서 좋고 나쁨을 가른다는 말조차 우습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실은 이렇다. 그래서인지 작전세력은 좀처럼 박멸되지 않는다.
지난 1월14일 서울 A증권사 지점 김대섭(가명·32) 대리의 컴퓨터 화면에 짤막한 메시지가 떴다. 회사 투자정보팀에서 보낸 이 메시지는 메신저 프로그램을 타고 왔다가 20초 뒤에 사라졌다. 보통 메신저를 통해 들어온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근거를 갖고 있는 루머. 이 때문에 메시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김대리가 확인한 내용은 ‘B회사에 작전세력이 붙었으며, C증권사 창구 두곳에서 서로 물량을 주고받는다’는 것.
같은 시간 C증권사 지점에서는 계약직원 K씨와 또 다른 지점의 직원 P씨가 B회사의 주식을 주거니 받거니 수급을 조절하고 있었다. 휴대폰과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사를 교환하던 이들은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매수와 매도를 반복했다(통정매매). 만약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면 일반인들의 물량을 받는다. 이처럼 바이러스(일반투자자)가 끼면 작전에 상당한 차질이 생긴다.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K와 P가 물량을 주고받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B회사의 대주주이자 사장인 L씨. 이미 지난해 12월 K씨와 P씨를 만난 L씨는 이들과 짜고 자신이 보유한 물량을 시장에 털어내지 않고 있다. 가격이 좀더 오르면 내놓을 생각이다. 보통 증권가에서는 작전이 성공하려면 회사 대주주를 설득해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대주주가 세력들과 협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물량(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면 세력들로서는 이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 막대한 자금이 추가되다 보면 작전세력에 포함되는 투자자들이 늘고, 이렇게 되면 작전은 밖으로 샌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 배신자가 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L사장은 이들에게 협조하는 척하면서도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이들이 조금만 주식을 더 올려주면 이를 기회로 자신의 주식을 팔아치울 요량이다. 최근 1년 동안 일반투자자들이 외면해 주가가 바닥을 벗어나지 않자 회사 증자대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서다. 증자에 참여하지 못하면 자신의 지분율이 점점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L사장은 K와 P에게 휴대폰을 걸어 “가격을 더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매수를 담당하는 P씨의 자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100억원을 모집해 시세조정 대금으로 사용했고 거의 소진한 상태. 더 이상 자금을 끌어들이면 작전이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있다. B회사의 주가는 작전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200%가 올랐다. 앞으로 50%만 더 오르면 본격적으로 물량을 털어낼 계획이었지만, 자금이 부족해 더 이상 주식을 매입할 수 없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L사장은 가격을 더 올리라고만 주문했다.
작전세력의 배신자들
P씨로부터 응답이 없자 결국 L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D증권사 창구에서 20만주 가량이 매도 수량으로 나오자 K와 P는 당황했다. 대주주인 L사장이 물량을 털어 내면 이제까지 50억원을 투입해 끌어올린 주가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했던 대로 극으로 치달았다. 일반투자자들도 놀란 탓인지 주식을 팔았고, 주가는 순식간에 하한가로 마감됐다. 결국 대주주의 배신으로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럴 경우 K와 P가 생존하는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펀드매니저를 설득해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넘기는 것이다. 여기서 펀드매니저들에게 건네는 금액은 통상 1억∼3억원. 이마저 실패하면 당분간 주식시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 이곳 게임의 법칙이다. 서울 시내 모 증권사 직원은 “10번 시도해 한번 성공하기 힘든 것이 작전”이라며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배신자가 꼭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금융가의 투쟁은 전쟁보다 더 격렬하고 무자비하다. 전쟁에서는 적어도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는 알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에서 수많은 주가조작 사건을 지켜본 변호사 윙켈만(B. F. Winkelman)의 말이다.
증권가에서 만난 큰손 K씨는 “작전이 성공하려면 꼭 회사의 대주주나 사장이 개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K씨는 예전에 작전팀장으로 모 회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린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 주포(주식거래를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투자자)의 배신과 회사 사장의 비협조로 작전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증권가에는 작전의 유혹을 느끼는 회사 경영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특히 투자자들에게 외면받는 종목의 사장이라면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검찰의 수사로 회사 사장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철창 신세를 진 경우가 드러났다. 코스닥 등록 업체인 유니슨산업의 이정수 사장은 지난 2000년 2월 13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회사 대표가 작전세력이라는 점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는 코스닥 등록법인협의회 회장의 신분이었던 사람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그가 죄인으로 전락한 데는 회사의 사정이 있었다. 회사의 유상증자 자금을 확보해야 했지만, 주가는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1998년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뒤 회사의 주가는 1만원을 밑돌았다. 이 주가로는 유상증자를 해도 들어오는 자금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이사장은 회사 주식담당 직원과 함께 회사의 주식 66만주를 통정매매해 9억9,000만원의 돈을 챙겼다. 통정매매란 자신이 고가에 매도하면 같은 시각에 다른 계좌에서 이를 매수하면서 주가를 올리는 방법을 말한다.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증권거래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대표이사가 통정매매로 주가조작
이처럼 이사장은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주가를 끌어올렸고, 이 과정에서 회사의 주가는 4만원에 육박했다. 대표이사의 지분이 변동되면 이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해야 하지만 뒤가 구린 이사장이 이를 지킬 리 없었다. 보유주식 변동 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죄가 추가됐고, 이사장은 구속됐다.
A&D주로 한때 화제를 모았던 브이오엔(VON)의 남궁본 사장 역시 대표이사가 주가조작에 개입돼 쇠고랑을 찬 경우다.
이 회사는 안양본백화점을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이었지만 경쟁업체들이 생기면서 영업실적이 점차 나빠졌다. 이에 2001년 9월 상호를 변경하고 신세대패션쇼핑몰(JEFE)로 개점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다. 또 2001년 하반기에는 본엔터테인먼트, 전유성코미디시장, 본픽쳐스 등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백화점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업종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수개발(A&D)주로 인기를 끌었던 것.
그러나 이처럼 회사의 외형을 바꾸면서 대표이사는 ‘딴 생각’에 몰두했다. 지난 2000년 9월부터 2001년 3월까지 남궁 사장은 외자유치를 발표하기 전, 차명계좌를 동원해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들은 이처럼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주식을 매집한다. 낮은 가격에서 주식을 모은 다음 허수주문을 내거나 통정매매,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절차를 거친다. 이 회사 대표 역시 외자유치 발표 전에 사 모은 주식을 발표뒤 매도해 무려 6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남궁 사장의 불법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이 이를 눈치채고 조사하자 그는 뉴퍼블릭골프클럽 대표 황용배(61, 구속)씨를 로비스트로 내세워 조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황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조사 무마 등 로비자금으로 2억5,000만원을 건넸고, 이 때문에 구속됐다. 죄목은 ‘금융기관 임직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한 금품 수수’였다.
부산 Y금속 회장 C(59, 구속)씨 역시 직접 주가조작에 나섰다가 구속됐다. 재미있는 점은 부산에서 기업을 운영하던 C씨가 작전을 펼 때는 광주와 나주에 있는 증권사 직원들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C씨는 부산의 전 K종금 대주주 L(71)씨와 짜고 지난 1999년 10월 광주의 작전세력과 결탁했다. 그해 12월까지 2개월간 이들은 Y금속의 주가를 7,000원에서 2만원으로 올려 3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차익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C씨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주가가 올라도 보유한 주식을 팔지 않겠다던 광주의 작전세력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것. 참가자들의 배신으로 작전은 와해됐고, 결국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이들의 비밀계좌를 밝혀내 범행의 전모를 파헤쳤다. 이처럼 비밀계좌까지 동원해 조심스럽게 작전을 펼쳤지만 배신당한 조직원들이 순순히 수사에 협조해 전모가 드러났다는 후문이다.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의 한 검사는 “최근 들어 인수합병(M&A)이나 인수개발(A&D) 등으로 투자자를 현혹시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벤처기업 사주나 조직이 많이 늘었다”며 “일반투자자들에게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색출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1부는 지난 1월 주가조작 사범 39명을 적발해 냈으며, 이중에는 코스닥기업 사장, 펀드매니저, 증권사 임직원 등이 끼어 있었다. 특수1부는 이례적으로 실명을 공개했다.
금융과 증권사범만 중점 수사하는 서울지검 형사9부도 최근 시세조작을 일삼는 세력을 적발해 44명을 구속하고 11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형사9부의 한 검사는 “과거에는 회사 사장이나 대주주가 사전에 작전세력이 시세조종을 한다는 것을 알아도 이를 묵인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작전세력과 결탁해 적극적으로 시세조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작전세력, 그 다양한 群像
평소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던 D금속이 갑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초. 액면가 5,000원인 이 회사의 주가는 코스닥에 등록한 이후 줄곧 5,000∼1만원을 오르내리다 이때부터 투자자들의 관심권에 들었다. 2만원대를 돌파하더니 불과 5개월만에 주가는 8만원을 호가하는 종목으로 둔갑했다. 거래량이 폭발한 것은 불문가지. 평균 1만주 안팎에서 거래되던 것이 2000년 여름 10만∼20만주가 거래되면서 코스닥시장을 달궈 놓았다. 주가 급등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1998년 적자에서 99년 흑자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2000년 4월 증권가에 발표된 것이 전부였다.
주가 급등을 설명할 별다른 실적이 없자 냉담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사 실적이 나빠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는 맥없이 떨어지더니 이 회사의 주가는 2만원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이 회사는 예전의 화려한 시절을 잊은 듯 2002년 1월까지도 1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거래량도 고작 1,000∼2,000주를 기록해 침체된 분위기를 극명하게 전해 주고 있다.
최근 서울지검 특별수사1부는 D금속의 주가급등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작전세력으로 불리는 투자자들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3,000만∼5억원의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골자. 주가에 탄력이 붙던 2000년 5월 주식투자자 C(38, 구속)씨는 D금속 주식 10만주를 매매하면서 고가로 주식을 매입하거나 허위로 대량의 매수주문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C씨는 5억원의 돈을 챙겼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주식투자자 L(37, 구속)씨 역시 이 회사의 주식을 2개월 동안 빈번히 사고 팔면서 2억원을 벌었다. 방법은 C씨처럼 고가주문과 허위주문 등 고전적인 것이었다. 여기엔 증권회사 지점장도 개입됐다. K증권 전주지점장 O(40, 불구속)씨는 같은 기간 동안 이 회사의 주식 8만주를 매매하면서 3,000만원의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이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렸고, 매도시점을 교묘히 조절했다. 때로는 휴대폰으로 장중에 특정 시간을 정해 매매하기도 하고, 시간외종가매매제를 이용해 3시10분부터 3시40분까지 암암리에 거래하기도 했다. 주가조작은 일반투자자와 증권사 직원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은행 직원들도 이같은 불법을 저지른다. 대표적 사례가 해태제과 주가조작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주요 영업용 자산 매각)된 해태제과는 H은행 신탁부 차장의 손에 의해 한때 주가가 급등한 적이 있다.
2000년 6월 H은행 신탁부 차장 O(44, 구속)씨는 해태제과 주식 20만주를 사고 팔면서 이득을 챙겼다. 그는 14개의 증권 계좌를 이용해 152회에 걸쳐 이 회사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O씨가 해태제과 주식을 갖고 장난칠 당시 증권가에서는 해태제과의 인수설이 나돌았고, 이같은 분위기를 타고 주가는 날개를 단 듯 상승했다. 거래소 지수가 하락할 때도 해태제과만은 상한가를 치며 위로 올랐다.
이를 통해 O씨는 무려 294억원의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검찰에서 밝혀진 주가조작 이유는 ‘H은행이 보유했던 해태제과의 주가가 떨어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렇다면 이는 H은행의 경영진 등 조직적으로 주가조작을 모의한 소지가 있었지만 검찰은 O씨를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작전주 특성 연구
작전주, 이렇게 판별하라
작전주는 급격한 주가의 변동을 설명할 내용이 없는 종목이다. 거래소 공시를 살펴봐도 도대체 주가가 올라갈 이유가 없다면 일단 세력이 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종목들은 대개 거래량 상승을 동반한다. 평소 2만주 가량 거래되던 것이 20만주로 10배나 늘었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또 하나 작전주를 판별하는 법은 매수잔량과 매도잔량을 관찰하는 것이다. 예컨대 매수잔량이 10만주, 매도잔량이 3만주라면 상식적으로 이 주가는 올라가야 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 그런데 주가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상식과는 반대로 가격이 변화한다면 이는 거의 시세를 조종하는 세력이 붙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특정 증권사 지점이 물량을 조절하면서 일반투자자들의 입질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특정 증권사 지점 두곳에서 사자와 팔자를 반복하고 있다.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거래하는 증권사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들은 어떤 증권사의 어느 지점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지 가르쳐줄 것이다. 증권사마다 시장조사팀이 있고, 이들은 증권거래소를 드나들며 각 증권사의 매매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은 어떤 종목을 작전주라고 판정할까.
대표적인 것은 매매 패턴을 살피면서 특정 계좌에서 하루에 몇번 주문을 내는지, 그 주문으로 주가가 얼마나 상승했는지 하는 이른바 ‘시세 관여율’을 측정하는 것이다. 특정 계좌에서 낸 매매 주문으로 시세의 1∼5%가 오르거나 내렸다면 이는 ‘작전’이다. 5% 이상이면 틀림없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특별한 이유나 재료 없이 거래량이 터지거나 ▷회전율이 높은 종목은 일단 세밀히 관찰할 것을 주문한다. 또 ▷종가 부근에서 주문이 크게 쌓여 주가가 일정수준 이하로 밀리지 않도록 받치는 종목이나 ▷매수창구가 몇개에 집중되는 종목도 조심해야 한다. 이밖에 실체 없이 호재성 소문이 난무하는 종목 역시 신중하게 매매해야 한다.
작전세력, 투자상담사를 노린다
O씨가 은행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순진한 발상’에서 주가를 조작했다면, 모 은행 외환담당 계장 J(36, 구속기소)씨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전을 계획했다. 지난 1999∼2000년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한 시점을 전후로 J씨는 또 다른 투자자 두명과 함께 시세조종을 하게 된다. 9개월 동안 이들은 S제약 S중기 등 4곳을 타깃으로 정하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무려 40억원의 돈을 챙겼다.
문제는 주가조작에 사용한 돈을 어디서 마련했느냐 하는 점. J씨는 은행에서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것을 이용해 고객의 자산인 은행돈을 마치 자신의 자금처럼 사용했다. 예컨대 그는 지난 2001년 4월경 내국신용장어음 매입 의뢰를 가장했고, 전산정보처리장치에 부정한 명령을 입력해 67억원의 돈을 빼돌렸다.
내국신용장이란 수출용 수입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에 일종의 생산 자금과 원자재 구입 자금을 융자해 주는 제도. J씨는 가상의 업체로부터 내국신용장을 받아 자금을 빌려 주는 서류를 꾸몄으며, 이를 통해 그는 은행돈을 주무를 수 있었다. 이 자금을 J씨는 1999년부터 선물거래, 주식시세 조작 등에 사용했고, 그 결과 40억원의 엄청난 이익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시세조종을 위해 증권사 직원 P씨와 일반투자자 K씨를 고용했고, 이들에게 ‘오직 자신의 지시에 따라 시세를 조종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꼬리가 잡힌 J씨는 은행돈을 빼돌린 혐의와 주식시세 조종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과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서울지검 형사9부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공공기금을 편취해 주가조작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들과 함께 시세조종에 참여하는 투자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 책임자들이 기업의 대출금 상환 능력을 무시한 채 부실대출해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들이 자신의 부실대출 행위를 감추기 위해 금융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전했다. H은행에서 근무한 O씨의 경우도 부실대출을 감추기 위해 저지른 사건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에 빠지지 않고 연루되는 사람들이 ‘투자상담사’들이다. 증권사 지점에 근무하면서 개미투자자들에게 투자 관련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작전에 쉽게 개입되는 이유는 이들의 수익구조 때문이다. 투자상담사는 일정한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매매 수수료를 증권사와 나눈다.
능력 있는 강남의 투자상담사는 평균 200억∼300억원의 고객 자금을 관리하며, 이를 통해 얻는 수수료 수입이 연간 3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기업체 사장보다 월급이 높다.
하지만 투자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서는 고객들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줘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 쉽지 않다. 주가라는 것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오늘 맞췄다고 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방법에 현혹되는 것이다.서울 강남의 한 투자상담사는 “작전세력과 투자상담사가 쉽게 손을 잡는 이유는 꿩 먹고 알 먹는 이중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세력들은 주식투자에 경험이 많은 투자상담사를 이용해 검찰의 눈을 피해 작전을 할 수 있으며, 투자상담사를 통해 주식 거래를 하면 막대한 수수료도 얻을 수 있다.
전국 조직망 갖춘 작전세력
예컨대 한달에 100억원을 거래하면 투자상담사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4,000만원 가량 된다. 증권사 지점에서 상담사에게 0.7∼0.8%를 수수료로 주기 때문. 거래 회전이 많을수록 수수료는 계속 올라간다. 이같은 이익을 세력들이 놓칠 리 없다. 투자상담사와 거래하면서 차익은 물론 거래 수수료까지 챙기는 것이다. 최근 검찰에 발목이 잡힌 투자상담사들의 경우를 보자.
H증권 마산지점 투자상담사 B(29, 구속)씨와 같은 지점에서 투자상담사로 근무하는 P(29, 불구속)씨 그리고 주식투자자 L(29, 불구속)씨 등 세 명은 벽산건설 주식을 목표로 삼았다. 나이가 같아서 그런지 이들은 손발이 착착 맞았다. 2000년 8월과 9월을 행동 개시일로 정한 이들 중 B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계좌 10개를 동원해 벽산건설 주식을 사고 팔았다. 두달 동안 그가 매매한 횟수는 총 103회, 하루 1∼2차례 꼴로 총 272만주를 거래한 결과 2억원의 돈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B씨가 고가에 주문을 내면 P씨가 받아 매입했다. 그리고 다시 P씨는 고가에 매수주문을 내고, 이번에는 L씨가 그 물량을 소화했다. 세 사람이 번갈아 주식을 사고 팔면서 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평균 주당 2,000∼3,000원대에 머물러 있던 주가가 6,000원까지 오르는 등 두배 이상 급등한 것.
L씨는 74차례나 주식을 샀다가 팔기를 반복하면서 8,000만원의 차익을 얻었다. P씨 역시 이 과정에서 2,000만원의 돈을 벌었다. 아직 20대 청춘인 이들은 주가조작 사건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신세로 전락해 긴 청춘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서울 압구정동 동부증권 투자상담사이자 투자상담사 협회장인 최병화(62)씨는 “몇몇 미꾸라지들이 투자상담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며 “앞으로 투자상담사가 작전에 연루됐다면 해당 증권사 지점장도 같이 구속수사해야 이같은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회장은 “특히 대박을 꿈꾸는 30대 초반의 젊은 상담사나 자녀들 학비가 걱정되는 40대 상담사들이 세력과 연계되기 쉽다”며 “정도를 걷는 것만이 투자상담사로서 장수하는 길”이라고 전했다.
보통 작전세력들은 한 지역을 거점으로 일을 벌이기보다 전국적으로 작전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거래소나 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이나 검찰의 수사망에 혼선을 주기 위해 다양한 거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지검 형사9부가 밝혀낸 I회사 주가조작 사건은 ‘전국적인 작전세력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먼저 등장인물을 보자. 군산 모 은행 지점장 L(45)씨, 서울 모 증권사 차장 K(39)씨, 고양시 모 증권사 계약직원 K(34)씨, 서울 A회사 사외이사 L(43)씨, 남양주시 모 증권사 투자상담사 O(41)씨, 울산 모 증권사 투자상담사 L(41)씨 그리고 인천 모 증권사 지점장 J(39)씨 등 7명. 은행과 증권사 지점장은 물론 투자상담사들이 낀 전형적인 작전세력의 팀워크를 이뤘다.
작전팀장인 은행 지점장 출신 L씨는 전국 각지의 투자상담사들과 치밀하게 사전에 계획을 모의했다. 먼저 L씨는 J신용금고에서 입금을 의뢰한 60억원을 횡령했다. 주가조작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객의 돈까지 가로채는 등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점장의 위치를 훌쩍 내던졌다.
L씨와 조직원들이 목표로 삼은 곳은 자본금이 적어 비교적 쉽게 주식을 매집할 수 있는 I회사. 이들은 L씨가 관리하는 22개 계좌와 조직원들의 계좌 36개 등을 합해 총 58개의 계좌를 통해 무려 1,500회나 샀다가 팔기를 반복했다. 하루 평균 17회나 사고 팔면서 I회사의 주식을 250%나 올려놓았고, 이를 통해 60억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
L씨는 작전계획을 짜면서 투자상담사 등 조직원들의 협조를 얻는 한편 I회사 대주주와도 접촉을 시도했다. 회사의 대주주가 작전에 참여한다면 이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손쉬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다. 이렇듯 은행 자금과 회사의 대주주까지 끌어들여 완벽한 작전을 꿈꾸던 그는 결국 조직원들의 배신으로 궁지에 몰렸다. 공모자들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물량을 계속 내놓는가 하면, I회사의 대주주 역시 본인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았던 것.
대학생·주부·인터넷동호회까지 가담
작전이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자 다급해진 L씨는 I회사에 직접 찾아가 자신들이 확보한 지분으로 회사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마저 실패하자 L씨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이 와중에 L씨를 믿고 60억원을 맡긴 J신용금고는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결국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고에 돈을 맡긴 선량한 고객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은 것이다. 조직원들의 배신, 은행돈 횡령, 작전팀장의 해외 도주 등 온갖 추잡함이 얽히고 설켜 거대한 부패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인간관계는 없고 돈만 있는’ 작전세력들의 말로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대학생 K(28, 울산)씨와 가정주부 K(35, 충남 논산)씨 등은 거래소와 코스닥을 넘나들면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증권사 직원 등 전문가들이 개입한 작전세력에 이렇듯 학생과 주부까지 끼어든 것은 주가조작이 일부의 전유물이 아님을 방증한다. 인터넷을 통한 주식거래가 자리잡으면서 단타매매가 성행하고 이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증명된 셈이다.
대학생 K씨는 지난해 인터넷으로 주식거래를 하면서 불과 9개월만에 1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냈다. 멋모르고 떠들어대는 K씨를 두고 주위에서는 ‘주식의 신동’으로 치켜세웠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도 모으지 못할 돈을 1년도 안돼 마련하자 그는 우쭐했다.
그가 주가를 올리는 수법은 간단했다. 먼저 집과 PC방에서 소형주를 정상거래 가격에 매입한 뒤 추가로 허위 대량매수 주문을 내 주가를 끌어올렸다. 유통물량이 적고 소액주문으로도 시세변동이 가능한 중저가 중소형주들이 K씨의 제물이었다. 그뒤 그는 오른 가격에 되팔았고, 다시 허수 매수주문을 전량 취소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는 비록 한 큐에 거액의 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결국 검찰에 붙잡혀 쇠고랑을 찼다.
이같은 방법으로 주가조작을 시도하다 검찰에 붙잡힌 사람들은 이들 외에도 학원강사 등 일반인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최근 검거된 사람은 15명(10명 구속기소)에 불과하지만, 검찰은 블랙리스트를 따로 관리하면서 추가 범죄자들을 검거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량의 허수주문과 취소의 반복은 증권시장의 공신력을 떨어뜨려 일반투자자들이 시장에 염증을 내게 하는 원인”이라며 “부당이익금을 환수하는 것은 물론 항소를 해서라도 꼭 징역살이를 시키겠다”고 말했다. 작전세력 사범의 경우 죄의식이 희박해 이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다.
서울지검 형사9부 정진영 부장검사는 “증권범죄는 불특정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직접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며 “이들은 오히려 불법행위를 주식투자 기법이라고 항변하는 등 반성보다 운이 없어 처벌받는다고 불평한다”고 전했다.
지난 1월말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는 재미있는 보도자료를 올렸다. 인터넷 주식동호회가 작전을 펼치고 있으니 투자자들은 조심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내용인즉, 인터넷 주식동호회에서 ‘작전세력’을 모집해 시세조종을 일삼았다는 것이었다.
펀드매니저가 작전의 소굴로
지난 2000년 9월,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의 주식투자동호회장 K씨는 회원들에게 계좌를 운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원금은 물론 그 이상을 약속한다는 K씨의 말에 회원들은 계좌를 맡겼다. 이들은 평소 주식투자로 적지 않은 돈을 날린 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이었다. 의사·회사원·자영업자·주부 등 계층도 다양했다. 이같은 약점을 안 K씨는 20∼30명의 회원들에게 계좌 운용 권한을 얻었다.
2001년 초부터 K씨는 본격적으로 시세조종에 들어갔다. 회원들로부터 2억8,000만원을 모으자 그는 시세조종이 쉬운 우선주를 공략했다. 우선주는 시가총액이 적어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도 조종이 가능했다. 시가총액 3억4,000만원의 S건설 우선주 등 소형 우선주 7개 종목을 타깃으로 삼았다. K씨는 먼저 자기 계좌에서 집중 매수하고, 다른 계좌를 이용해 주식 시세를 올렸다. 그후 자기계좌에서 주식을 매도하고, 다른 계좌는 한발 늦게 매도하게 했다.
이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K씨는 S사 우선주 투자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다른 계좌에서는 손실이 발생했다. 약삭빠른 K씨는 손실을 본 회원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분배하면서 이들의 불만을 달랬다. 막대한 이익(59억원)은 자신이 챙기고, 투자원금 대비 5%의 수익만 회원들에게 분배했던 것이다.
이같은 장난을 알 리 없었던 회원들은 손실이 난 계좌의 원금을 만회해 주고 소량이지만 이익까지 안겨주는 K씨를 더욱 신임했다. 위임 금액을 증액시키는가 하면 다른 사람까지 소개했다. 이를 통해 그는 더욱 많은 자금을 운용했고, 시세조종은 그만큼 쉬워졌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듯 얼마후 그의 ‘꼼수’가 드러났다. K씨를 믿고 따라붙은 투자자들은 자꾸 손해를 보는데 유독 K씨만 수익을 올리자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편승 매매자들은 물론 회원들까지 손해를 보자 누군가 검찰에 정보를 제공했다. 결국 그는 시세조종 혐의를 받아 검찰에 연행됐다.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펀드매니저들은 절대 주가조작에 연루되지 않는다. 예전보다 한층 더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들을 보면 ‘청교도’적인 냄새가 날 정도로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한다. 한탕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욕심에 무릎을 꿇는 펀드매니저들은 아직도 많다. 최근의 검찰 수사 결과는 이같은 세간의 우려를 입증하고 있다.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는 주가조작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39명을 적발했으며, 이 중 8명의 펀드매니저를 불구속 또는 약식 기소했다. 금융범죄자중 20%가 펀드매니저 출신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펀드매니저치고 한번 이상 세력들과 접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최근 발생한 펀드매니저 주가 조작 사건을 보자. 지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2년에 걸쳐 서울 여의도의 펀드매니저들은 마치 서로 짠 듯 시세조종에 가담했다. 이들의 타깃이 된 종목은 S건설, 작전에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까지 개입됐다. 작전팀장격은 제이캐피탈 전종배 사장으로, 8명의 펀드매니저와 시세조종 계획을 짜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여기에 연루된 펀드매니저들은 대한투자신탁증권·주택은행(현 국민은행)·중소기업은행·동양오리온투자신탁·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전사장과 짜고 200만∼8,200만원의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손해를 본 사람들의 손실 규모가 이익을 본 측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한투자신탁증권 L 펀드매니저는 14억원, 같은 회사 최종삼씨는 1억4,000만원, 역시 같은 회사 B씨는 5억2,8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검찰의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의 손실과 달리 전사장은 작전을 통해 무려 39억5,000만원의 돈을 챙겼다. 또 주식매매를 담당했던 세종증권 투자상담사 I씨는 13억3,000만원을, 대한주택할부금융 자금팀장 예병철씨는 20억원의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대부분 통정매매를 통해 거래했고, 이 과정에서 사용된 계좌수만 48개, 매매 횟수는 450회에 달했다. 검찰은 대한투자신탁 펀드매니저 등 19명을 불구속기소 또는 약식기소했으며, 달아난 전종배 사장을 지명수배했다.
명동 모 증권사 투자상담사 P씨는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작전세력들과 펀드매니저들의 만남이 잦았다”며 “작전세력이 매집한 주식을 펀드매니저가 몽땅 매입한 뒤 사례금으로 수억원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가에 주문을 내 주식을 매집한 뒤 되팔려고 하면 매수세력이 없어 이를 펀드매니저들에게 떠넘긴다는 얘기다. 그는 “수법만 바뀌었지 작전세력과 기관의 유착관계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증권가 루머의 유통과정
“M&A 관련 풍문은 사실인 경우 많다”
증권가에 떠도는 풍문은 몇 %나 사실일까. 최근 증권거래소 풍문분석팀은 재미있는 보고서를 냈다. 내용의 골자는 지난해 풍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많아졌고, 풍문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 역시 많아졌다는 것. 지난해 풍문의 양은 1년 전과 비교해 58%가 증가한 426건으로 집계됐다. 또 이같은 풍문에 대해 관련 기업측에서는 ‘사실무근(전체 건수 중 30%)’이라는 답변보다 ‘추진중(23.4%)’ 또는 ‘검토중(19.1%)’이라는 긍정적 답변을 많이 공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서 떠도는 말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어떤 내용이 풍문으로 떠돌았을까. 지난해 기업에서 밝힌 조회를 보면 기업 인수 관련이 150건(29.2%)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합병이나 사업부 인수와 관련된 것으로 63건(12.3%)이었다. 주로 관리종목을 중심으로 인수와 합병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M&A와 관련된 풍문은 실현성이 높다”며 “지난해 풍문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많아진 것은 인수합병 얘기가 주종을 이뤄 그렇다”고 말했다.
증권가에는 풍문과 소문이 있다. 뉘앙스는 같게 들리지만 내용은 조금 다르다. 풍문은 주가에 영향을 준 사실이 있고, 소문은 그렇지 않다. 주가와 거래량이 급등한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문이면 일단 풍문으로 간주된다. 증권거래소 풍문분석팀은 이를 분석하고, 뭔가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거래소 감리부에 이 자료를 넘긴다.
감리부는 이를 토대로 특정 종목의 매매에 인위적인 흐름이 있는지 조사한다. 시세조종을 의심할 수 있는 단서가 잡히면 감리부는 금융감독원 조사2국으로 통보한다. 금융감독원은 다시 서울지검에 범법 사실을 알려준다. 증권거래소 풍문분석팀 → 거래소 감리부 → 금융감독원 조사2국 → 서울지검으로 작전세력의 정보가 흘러가는 것이다. 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서 내는 자료는 검찰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될 뿐 아니라 검거의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풍문분석팀 관계자는 “풍문이 주가조작의 사례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며 “풍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애널리스트, 시황 담당자 등 증권사 직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증권사 리서치팀에서 특정 종목을 추천종목으로 데일리에 올려놓고, 한편으로는 풍문을 이용해 주가 부양을 시도한다는 얘기다. 풍문분석팀원들은 증권사 직원들을 따라 각종 정보회의에 참석하며, 증권가에서 나도는 일명 ‘찌라시(정보지)’까지 수집한다. 요즘에는 온라인에서 주가를 올리기 위한 소문에도 귀를 기울이며 누가 이같은 루머를 퍼뜨리는지 조사하기도 한다.
첫댓글 아~~ 저런경우가 있네요~~ 조심혀야징
감사해요..양심저버린 애널이나 브로커들이 ~
감사요
무서운 이야기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