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달은 것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처음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도 그랬다. 울고 비명 지르고 신음하던 나날들에 비하면 꽤 평온한 감상이었다. 가고 싶지 않을 이유는 다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상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시간,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는 주말, 집 근처의 떡볶이집,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잃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항상 그랬던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인터넷에 상주하는 나에겐 이동학습은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먹구름도 나의 두근두근하는 마음 한구석을 완전히 덮친 못했다. 거짓된 슬픔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필리핀이 간디의 꽃이라고 했다. 아직 친해지지 못한 친구들과도 진짜 “친구”가 되어 돌아올 기회일까, 정말 글러 먹은 나를 고칠 기회일까. 마음이 솔깃하기도 했다. 36/1의 설렘과 36/35의 두려움을 온전히 실은 채 비행기는 출발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늘 외로웠다. 나는 죄책감을 항상 느꼈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나를 괴롭게 만들 수 있었다. 어디에도 내가 설 곳은 없었다. 어느 곳에서도 적절하게 머무르지 못했다. 하루하루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세상에도 미안해서 살아갈 수 없었다. 나는 매일매일 쇠퇴해갔다. 집에 돌아가더라도 이미 알아버린 나 자신의 문제 때문에 우울할 것이었다.
나도 행복하게 지혜롭게 살고 싶었다. 앞으로 뭐도 안 될 글러 먹은 인생에 순응해야 해서 슬펐다. 그럼에도 모든 걸 바꿀 수 없다. 믿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다. 별로 친분이 없었던 16기 친구들이 나에게 먼저 손을 뻗어 주었다. 사실 나는 이전에 일부 친구들과 관계가 아주 나빴었고 그 사실 때문에 자주 자책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들에게 고마웠다. 나의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것, 제대로 살기를 해보고 싶었다. 엉망진창에 가망 없는 인생을 스스로 구원해 나은 새로운 미래를 맞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어울리면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제대로 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올라왔을 때 나는 이 마음을 문지 선생님께 용기 내 말했다. 문지 선생님은 나를 안아주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안겨 있었다.
내일부터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하리라 다짐하면서 우선 16기가 내게 먼저 다가와 준 것처럼 나도 16기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친하지 않은 아이들의 대화에도 끼어보았고, 자주 말을 걸었다. 또한, 4 주 동안 식사 당번을 매일매일 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지만 뉴스레터 시간에 친구들의 영어를 도와주기도 했다. 나의 노력이 헛되진 않았는지 16기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16기와 가까워질수록 즐거운 순간들이 늘어났다. 친구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 예를 들자면 장난을 칠 때나 대화를 나눌 때 같은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이 내게 행복으로 다가왔다. 친구들의 사소한 관심이 내가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내가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가 비단 16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깔리까산의 맛있는 음식과 따스한 햇볕도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 먹으니 도망가고만 싶던 이동학습의 평소와는 다르게 마지막 날에는 아쉽고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깔리까산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고, 다신 오지 않을 시절을 흘려보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그 추억은 언제까지고 내 마음 속에 존재할 것이다.
연결은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갈 때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내가 잘 지낼 수 있었던 까닭에 내 노력이 없진 않겠지만, 날 기다려준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아주 고맙다. 나는 이번 이동학습을 16기와 함께 할 준비를 하는 기간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앞으로 친해진 16기와 많은 일을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