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 관한 시모음 23)
한 해를 보내는 마음 /정용철
이제는 12월, 한 해가 갑니다.
요맘때가 되면 '올해 나는 무슨 일을 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한 해를 무의미하게 보낸 듯한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일은 많이 했지만 이룬 것은 없고
생각은 많았지만 행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았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2009년 한 해를 이렇게 살았습니다.
삶은 어떤 경우에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삶이란 그것이 나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만들고 이루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올 한해의 삶을 통해, 가정과 직장과 친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얼마나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을 내가 내 자리에서 다 했습니다.
물론 불만스럽기도 하고 후회도 있지만,
한 해의 삶 자체는 이것으로 완벽합니다.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고 훌륭했습니다.
삶이란 +와 -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와 -가 합하여 한쪽 방향으로 길어지는
긴 +(┼──────)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과 미래가 됩니다.
아픔도 부족도 미래를 향하면 삶의 새로운 힘이 됩니다.
죽일 년 살릴 년 /박상률
이 년 가니 저 년 오는 세밑 저녁
앉은뱅이책상 앞에 쭈그려 앉아
헌 수첩 전화번호 새 수첩에 옮겨 적는다
해마다 갖는 나만의 송구영신 의식으로
전화번호부 개정판을 내는 것이다
이 사람은 금년에 연락한 일 한 번도 없었지
내년에도 전화할 일 없을 테니 헌 수첩에서 죽이고
이 사람은 자주 연락해서 전화번호 외울 판이지만
내년에도 또 전화할 일 있을지 모르니 새 수첩에 살리고
묵은 해니 새 해니 따질 것도 없는 살림이지만
구년 가고 신년 오는 그 사이
죽일 년 살릴 년 운명을 가르는 나의 연례행사
고향의 송년 /이원문
이맘때면 언제나
밀려오는 그리움
연줄에 걸쳐지는
가느란 옛날인가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부터 떠 올릴까
물리고 물리는 날
겹쳐져 더 겹치고
그러다 끊기면
어렴풋이 스쳐간다
흑백사진 몇 장으로
돌아보는 그날들
어느 곳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있는 흙 있나
흐려지는 얼굴들
누구의 모습을 잊을 건가
떠올리는 얼굴마다
희미하다 뚜렸하고
바다에서 산으로
가난이 두 곳이다
나뉘어지는 친구에
놀던 곳은 안 그런가
배고픈 곳 뼈아픈 곳
갯벌에 냇가에
물도 짠물 민물
하늘은 그렇게
넣은 이 눈의 것은
어찌 그리 많은지
셈 해야 셀 수 없는
두 고향의 그 많은 것
발 담근 물에서
시간을 배우던 날
구름 올려 보며
인생을 배웠다
이 두 번의 고향이
무엇을 가르쳤나
연줄에 매달리는
고향의 기억들
아련히 하나 둘
가느란히 풀려간다
한해를 보내며 /김혜정
지나온 한해
뒤돌아보는 바구니 속엔
생생한 빛으로 여문 무지개 꽃이
삶의 흔적을 안고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마른 줄기마다 하나 둘 새겨진
한해살이의 이름들이 지난
추억의 나비 되어 꽃잎 위에 내려앉고
마름해 보는 삶의 분지 위에는
새해란 희망이 나풀거립니다.
겸손치 못함으로 틔웠던
오만의 싹은 가위 손 지나가는 길마다
겸허한 모습으로 여물고
폭풍처럼 휘몰아왔던 질곡 같은
삶의 파편들은 과거라는 이름으로 붙여진
쪽배 위에 띄워 보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는 마음속엔
해 오름의 신선한 몸짓으로
풋풋한 열매로 맺혀 들게 할
푸른 희망을 담아 봅니다.
송년의 밤 /송향 도분순
저문 해를 바라보며
상념 속에 빠져들고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은
친구 향한 그리움 놓는다
삼삼오오
기쁜 마음으로 모이자
잘 나가도 친구요
못 나가도 우린 친구 아닌가
소실 적 정답게 뛰어놀던 기억,
천진난만한 그 모습들로
다 함께 어울림 한마당 하자꾸나.
올 한 해
속상한 아픈 상처들 한편에 두고
가슴 열고 술 한잔 기울며
목청 높여 맘껏 놀아보세나
술잔에 고된 인생살이 담아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시름을 나눠 가지세
진짜,
보고 싶은 벗들아
너희들 웃는 낯을 안주 삼아
덩실덩실 취해보세나
우리네 청춘 더 늦기 전에
진솔한 이야기꽃 나누며
희망찬 미래 논하여 보세
먼 훗날,
친구와 함께했던
추억과 기억을 품으며
인생길 동행하고 싶다네
그립고 그리운 친구야
함께 흥을 돋워 어화둥둥
신나게 한 마당 띵까띵까 해보세
친구야,
너무 보고 싶다!
한 해를 보내며 /오석주
한 해가 저물어 가듯
모든 환경에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내 마음은
자연의 지배를 받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의 마음은
영혼에서 공급받는 힘
세월의 흐름에
나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해를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듯이
여행하는
즐거움으로 삶을 가져볼 것이다
저무는 길목에서 /은파 오애숙
한줄기 소망의 빛 영원한 사랑으로
어둠 속 낙망으로 늪속에 갇힌 영혼
화알짝 날개 펼치어 양지 녘에 이끄사
당차게 쓸모없는 모든 것 던지고서
어려운 산더미로 산재된 모든 일들
당신의 거룩한 빛에 일사처리 하소서
코로나 팬데믹에 얼매어 노심초사
스미진 곳을 찾아 움츠려 들었으나
당신의 무지갯빛 향 휘날려 주시어
절망의 음지에서 소망의 양지 녁에
나르샤 할 수 있게 님의 빛 비추소서
모든 짐 다 내려놓고 당신만을 보오니
당신의 사랑 삭여 가슴에 숙성시켜
소망의 향기 마셔 수정 빛 청아함에
새아침 단장케 하사 이루소서 하늘 뜻
내 소망 오직 당신 뜻 따라 항해하길
저무는 길목에서 다시금 손 모으매
내 주여 당신의 소망 이루소서 날 통해
주님의 그 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이 땅에 사는 동안 당신 뜻 이루소서
내 소망 오직 당신께 있사오매 내 주여
송구영신 /오승한
앞으로 가려 하니 수 만길 벼랑이요
뒤 돌아본 길 비틀비틀 아득하구나
점점 조여오는 세월의 벽에
팔랑팔랑 떨어져 가는 한 장의 달력
안녕 손을 흔든다
맑고 여운 긴 열 두 번의 종소리
숙연한 울림으로 심장을 흔들고
삼백육십오개의 행복한 불꽃이 하늘에 반짝인다
희망의 폭죽 함성소리 밤하늘을 깨우고
아직 깜깜한 새벽 시린 손 모아 소원을 빌어본다
이글이글 타는 커다란 불덩이 어둠을 태우고
눈부신 빛 찬란한 아침
가슴에도 뜨겁게 희망이 떠오른다
송년의 커피 /김정희
차가운 창가
소박한 꿈 하나가
섬광(閃光)을 긋는다
이 작은 불꽃의
범위야 아직 알지 못해도
파란 바람이 불어서
사랑으로 타오르기를…….
새해에는 내 마음에서
진실함으로만 된
꽃이 피어나
그윽한 향기로
다가오기를….
한 해를 보내면서 /석랑(石朗) 조윤현
다난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꿈이 그려지는
새해를 맞는 연말에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며
영욕의 세월을 그린다.
지나온 해를 돌아보고
한 해를 또 보내면서
고희를 맞아야 하지만
지는 해가 거듭하면
미련에 남는 해는 아쉽고
새해가 또 기다려진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영겁의 세월을 보내면
무상한 인생 편력은
또 그렇게 그려지겠지.
한해를 돌아본다 /매향 도현영
사계절 속의 아름다운 꽃들이
알록달록한 크레파스 색깔처럼
詩인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詩인 머릿속엔 색깔이 정해진다
그중 흰색이 첫눈을 떠올리게 하니
겨울을 상징하는 상고대 그리면서
한해를 쭉 스케치해보자
희로애락을 도화지에 올려놓고
망설임 없이 밝고 어두운색을
가릴 것 없이 그려가자
어느 색깔이 더 마음 갔을까
나의 한해를 그려보니
눈부신 색깔이 가득 메꿔져 간다
엄마 소풍이 그리움 되어
나를 더욱 성숙하게 그려져 가고
슬픔보다 좋은 일 많았던 것 보니
모정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리다 보니 난 알았다
엄마를 많이도 사랑했다는 걸
천국으로 떠난 후에도 빛을 품은 채
딸을 향해 미소짓는다는 것을..
달력의 송년 /이원문
그 한 번씩 찢어도 되렴만
그래도 한 장 한 장 넘겨온 달력
무엇을 아끼려 그리 넘겼는지
통째 떼어 넘겨 보니 숫자로 가득 찼고
그 숫자 하나에 밤과 낮이 있지 않았겠나
몇몇 기억 빼고나면 다 잃어버린 날이고
그 안의 날에는 기다렸던 날
빨리 지났으면 하는 싫어 했던 날
돌아 오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 했던 날
그저 그렇게 무의미 했던 날
모두 모아 돌아 보니 욕심의 시간인데
그 욕심의 시간이라도 버려진 시간이고
이렇게 버려도 느는 것은 주름뿐
지나고 나니 너무 빠르고 허무 하지 않았나
멀고 멀었던 끝 달의 끝 시간인가
찢고 버려야 할 달력의 꿈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