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자격과 믿음의 혀
야고보서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야고보 사도는 3장에서 교회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믿음과 관련된 두 가지 요소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교회 공동체에서 선생, 곧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둘째로는, 일반 공동체 회원들을 향해 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선생의 자격에 있어서, ‘혀’ 또는 ‘말’을 필수 조건으로 놓고 있습니다.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야고보는 '선생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지도자들을 더욱 엄중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당시 '선생'이라는 직임은 권위와 존경과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권위와 존경과 인기를 탐내던 사람들이 많았고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는 욕구가 교회 공동체에 편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엉터리 선생들, 스스로 선생이라 칭하는 자들이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로 인하여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지도자의 자질이 교회 내에서 심각하게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야고보 사도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을 원어로 보면, 권고형이 아니라 금지를 요구하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너희는 함부로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함부로 선생이 되면,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선생이 된 후 '선생'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그에게 심하고 무거운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서 교회에서 선생의 가르치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의 지도자 또는 선생이 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2절에서 꼬집어 알려줍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현대에서 교회 공동체의 선생이라고 하면 일단 목사가 해당하고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장로, 안수 집사, 교사 및 소그룹 인도자인 코디가 해당합니다. 히브리서 사도는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마땅히 선생의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알려줍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한편,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이라고 말할 때 “말에” 실수가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는 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교회 공동체를 배경으로 할 때는 가르치는 공적인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절과 연결하면 선생으로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가르치는 내용에 있어서 실수가 없는 자라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Clarke).
사랑하는 여러분!
선생의 자격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일 잘못 가르치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께서 그릇된 교훈을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3-14).
이 내용은 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맹인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서 멸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다. 맹인이 인도할 때 그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 아니므로 맹인을 따른다. 맹인 인도자가 가르치므로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질 것이다.”
사실 마지막 때가 되면 잘못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또한 성경은 그들의 거짓된 교훈을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9-12).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을 가르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배와 인기를 위하여 선생이 된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요 거짓 선생들입니다.
[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롬 16:17-18)
바울은 자신을 거짓 교사들과 구별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쉬운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올바르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게 말합니다.”
즉, 엉터리 목사들 및 가짜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짜 선지자의 전형적인 실예가 발람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도다. 그가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참조, 벧후 2:15-16).
이 시대의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장로들과 소위 교회 지도자들 중에도 성경이 알려주는 복음과 성령의 교훈을 모르면서 자기 고집과 주장과 편협 된 사상을 가르치며 많은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어리석은 선생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종교로 밥벌이를 하고, 심지어 이단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보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이나 인본주의 사상을 교인들에게 주입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파렴치한 거짓 선생들의 경우가 맹인이 맹인들을 인도하는 사례(事例)로서, 거짓 선생 한 사람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불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경고한 내용이 바로 야고보 3장 1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복음을 바르게 전파되는 교회가 참 교회인 줄 믿기 바랍니다. 그러한 복음적인 교회에서는 거듭남의 역사와 함께 성화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복되고 영광스런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아무튼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지도자의 자격은 “말에 실수가 없는 자”이며 그 중 무엇보다 가르치는 교리에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둘째는, 2절을 보니 선생은 “온 몸도 굴레 씌우는 온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는 가르치는 자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즉, 선생은 온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는 말과 행실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현대 교회에는 목사 또는 장로 및 안수 집사, 권사, 소그룹 인도자의 직분을 권력과 인기와 명예로 생각하여 그 직분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최근까지도 많은 부패한 교회에서는 장로 및 안수 집사, 권사 직분을 돈으로 사고 파는 사례들이 빈번합니다. 이런 경우 선생의 직분이 거룩한 믿음과 바른 성품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 지위와 돈 또는 인기 및 권력에 의하여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사람들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6-7)라고 비판합니다.
야고보 당시에도 이러한 종류의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야고보는 선생의 자격은 반드시 온전한 교훈 및 영적인 성숙, 즉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닮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선생의 자격은 “교리 및 교훈에 있어서 오류가 없고”, “온 몸도 굴레 씌우는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이 볼 때 선생은 '성숙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온전한 사람은 “죄가 없거나 결백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적인 교리에 대한 지식 및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통한 영적 성숙함에 있어서 잘 갖추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의 진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계속 나타내는 성령으로 충만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그분의 뜻에 늘 순종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바로 알고 말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그 특징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온 몸을 굴레 씌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삶에 있어서 절제와 경건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선생의 자격은 복음을 정교하고 바르게 아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닮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생은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의 혀를 잘 다스리며 교회의 덕과 유익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선생, 곧 감독의 자격에 대해 말합니다.
[
2 그러므로 선생(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딤전 3:2-7).
[
6 (선생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딛 1:6-9)
[
8 (선생은)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선생들은(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라
](참조, 딤전 3:8-12)
사랑하는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습니다. 선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믿음을 통해 자신의 성품과 삶으로 소화시켜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우들 및 청중에게 아무런 복음의 선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한편, 본문은 야고보서 1장과 연결되는데 그곳을 보면 선생의 가장 중요한 성품 중에 하나는 성내기를 더디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즉, 자신이 화가 난다고 하여 말을 다스리지 못하고 저주의 말이나 욕설을 하는 자들은 결코 교회 지도자로서의 선생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이처럼 교회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말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을 내며 혈기를 부린다면 쌓은 의를 다 허물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움과 시기와 분쟁 속에서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자들로서 선생이 되어서도 안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교회에서 계속 문제아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복음의 능력으로 경건과 인격에 있어서 온전하여진 자로서 비로소 선생의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야고보는 선생들에게서 시작된 “말에 대한 교훈”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확대시킵니다. 야고보 사도의 관심은 선생에게서 교회 공동체로 옮겨지면서 공동체 내에서의 “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먼저, 3-5절을 보면, 혀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공동체를 파괴하는 큰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야고보 사도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3절에서는 사도는 사람의 ‘혀’를 달리는 말을 묶는 재갈로 비유합니다. 재갈은 매우 작지만 말에게 모든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4절에서는 ‘혀’를 큰 배를 조종하는 작은 키로 비유합니다. 배의 키는 작지만 배 전체를 움직입니다. 5절에서는 ‘혀’를 큰 숲을 태우는 작은 불로 비유합니다. 작은 불이 붙으면 어느새 큰 숲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는 ‘혀’를 재갈과 조종 키와 큰 숲의 붙은 불로 비유하면서, 혀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전체에 충분한 영향을 끼치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이때 사도는 6절과 8절을 통해 사탄이 교회를 파괴시키는 최고의 매개체는 ‘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 속에 새기고 늘 기억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6, 8).
혀는 성냥불처럼 작은 것이지만, 숲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혀를 다스리지 못하면 삶 전체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요, 특히 혀가 독과 악으로 가득하면 숲 전체를 태우는 불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 교회 공동체 전체를 태워 무너뜨리며 나아가 우리 영혼을 지옥불에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가 자기 혀를 다스릴 수 있다면 그는 그의 삶 전체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엄청난 지혜입니다. 재갈이 달리는 말을 다스리고, 작은 키가 배를 다스리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의 혀를 다스리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일까?’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내 자신의 절제 없는 삶에 대하여 좌절하며 고통 받는 분들이 있습니까? 가족이 늘 큰 소리로 다투더니 이제는 대화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오늘 아침 교회에 오기 전을 생각해 봅시다. 특히 피곤한 남편이나 늦잠 자는 어린 자녀들이 예배 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믿음 좋은 아내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치게 됩니다. 그때 말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 남편과 어린 자녀들에게 지혜롭지 못한 말을 하게 됩니다. 독을 품고 말하게 되고 위협하며 말하게 됩니다. 심지어 신경질을 부리며 책망합니다. 그러면 그 후부터는 예배에 오는 시간이 천국 잔치에 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썰렁하고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프고 짜증나는 슬픈 시간이 됩니다.
종종 예배 시간에 큰 은혜를 받고 마음을 정하고 예배를 마칩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또 작은 말 한 마디로 남편과 아내가 차에서 다툽니다. 그때 혀를 다스렸다면 주일저녁은 온 가족이 행복하고 따스한 시간이 되었을 텐데, 혀를 다스리지 못하고 쓸데 없는 말과 불만스런 말을 하면서 그 날 주일은 각자 자기 방에서 썰렁하게 지냅니다.
이런 일들이 주일 뿐만 아니라 매일 가정에서 흔하게 발생한다면 어느덧 그 가정은 실망과 미움과 섭섭함의 덫에 빠지면서 가족이 서로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가족은 Sweet Home, 즉 행복한 안식처는커녕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살벌하고 차갑고 어두운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보면 혈기와 교만과 불만과 미움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 문제의 요인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혀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습니다. 파괴하는 힘도 있고 세우는 힘도 있습니다. 말을 통해 쌓을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혀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혀로 위대한 일을 이룰 수도 있고, 거꾸로 온 세상에 많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혀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온 마음을 다해 ‘혀’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혀가 다스려지면 성품과 삶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대인 관계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혀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미움과 분노가 다스려지지 않습니까? 일단 혀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큰 문제가 터지지 않을 것입니다. 혀를 다스릴 수만 있다면 모든 인생 문제들이 다스려질 것입니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혀를 절제하면 해결됩니다.
자, 우리는 혀를 다스리면 많은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혀를 다스리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약 3:8).
여러 종류의 짐승, 새, 벌레, 해물 등은 다 길들여집니다. 그러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혀는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벌써 말이 나와버렸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혀를 다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혀를 다스리는 비결을 말합니다. 그것은 10절과 12절입니다.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10).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2).
10절을 보니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야고보가 “내 형제들아”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혀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어찌 그 변화된 마음에서 저주가 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에서 어떻게 거짓과 협박과 욕설과 비방이 나오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야고보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지금 야고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언어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성도의 입에서 저주와 욕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영생수가 나오는 샘물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혀는 거룩함과 사랑을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이며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다스리는 문제는 절제의 문제이기 이전에 믿음의 문제요,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라도 만일 그리스도의 영을 따르기보다 옛사람을 택하여 따르면 쓴 물이 나오는 마라의 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인격적인 믿음을 떠나 살 때, 우리의 혀는 파괴하는 불이요, 산림처럼 큰 교회 공동체마저 불태울 수 있는 무서운 불씨요, 불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혀는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악들과 연관되어 다른 사람들까지 범죄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첫 조상인 하와는 사탄의 혀에 미혹 당하여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습니다. 그 후 하와는 자신의 그 혀로 아담을 유혹하여 아담을 쓰러뜨렸습니다. 그 이후 인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고 그들의 혀는 지옥 불이 되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이처럼 주님을 떠나면 인간의 마음은 어둠이 되는 것이요, 그 혀는 지옥 불을 지피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혀는 …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으로서 어느새 지옥 불이 되어 가정을 불사르고 교회 및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6절에 표현된 '지옥'을 뜻하는 헬라어 '게엔나'는 구약의 힌놈의 골짜기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한 표현인데, 구약의 '게힌놈'은 예루살렘 남쪽의 쓰레기 소각장을 말합니다. 그곳은 불이 결코 꺼지지 않는 장소로서 매우 고약한 냄새가 항상 나는 곳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이 없는 혀의 말은 게힌놈에서 나오는 냄새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더러운 악이며, 이러한 혀를 가진 자들은 종국에 게힌놈으로 갈 것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믿음에 거하지 않고 자신의 혀의 힘을 제어하는 데에 계속 실패한다면 그 혀로 인하여 인생이 완전한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가정이나 교회 및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혀는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지옥불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께서는 불의한 혀를 매우 싫어하시며 그런 혀를 가진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은 …
17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언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말이니라
](참조, 잠 6:16-19).
여러분의 혀는 어떻습니까? 혹시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입입니까? 야고보는 이것이 마땅치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리라.”
하나님의 자녀는 온 마음을 진실하게 주께 드린 자들로서 그들의 입은 진실하며 그 혀는 갈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따라 일관성 있게 그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축복하는 곳에 효과적으로 혀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같은 교훈을 하셨습니다.
[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 15:18-20).
즉,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따르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입으로 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주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면 우리의 혀는 갈리지 않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지면 우리의 혀는 주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혀를 진정으로 다스리는 비결입니다. 즉,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혀는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마음과 혀를 아름답게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친절한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을 신중하게 선택하기 바랍니다. 조급하게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의 친절하고 온화한 지혜로운 말에 즐거움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적인 마음을 가질 때 말이 아름답게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마음을 지닐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수의 강처럼 신선함과 힘과 위로를 줄 것입니다.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시내와 같으니라”(잠 18:4).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혀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몇 가지 지혜로운 훈련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내 말이 상대에게 덕과 유익이 되는가? 지금 하려는 말이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며 공동체를 세우는가?’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혀에 있는 말을 점검한다면 말을 절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 12:18-19).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우리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으며, 또한 내 자신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내가 하려는 말이 참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가정과 내게 덕과 유익이 되는지 먼저 생각해 보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찬송을 많이 부르기 바랍니다. 여기서 찬송은 진심이 담긴 감사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9-10절을 다시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한 입으로 찬송가 저주가 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드리는 찬송하는 혀는 저주를 내뱉지 않게 된다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담긴 감사의 찬송을 부르기 바랍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바랍니다. 쉬지 않고 주께 감사하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께 드리면서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능력으로 인해 감사 찬송을 드리기 바랍니다. 이러한 참된 감사를 기도와 찬송으로 표현하는 혀는 믿음의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절대로 지옥불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12절).
셋째는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생활을 철저하게 하면 지혜가 생겨나면서 혀를 다스리는 훈련이 온전하여집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잠 15:2).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잠 21:23).
넷째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 혀는 죄악에 쓰일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3-8).
결론을 내립니다.
말은 우리가 머무는 공동체, 즉 가정, 교회,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혀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 반면, 악한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짓 복음과 비방과 독설과 저주와 거짓말로 인하여 가족 공동체 및 주의 교회 공동체가 사탄의 노리개가 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서(요 8:44) 남을 죽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그에게 조종당하는 자 역시 남을 해하기 위해 저주와 욕설과 비방과 거짓을 상습적으로 말할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잠 17:4)
거짓말하며 거짓 증언을 하는 자들은 거짓의 아비 사탄의 꾀에 미혹된 자들로서 결국 비참과 고통 가운데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 후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잠 17:20)
사랑하는 여러분!
따스한 가정, 풍성한 교회, 아름다운 사회는 혀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말은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고, 정욕에서 나오는 말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혀는 우리 모두의 삶을 파멸시킬 수 있고 우리 모두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하기보다 듣기를 속히 하라고 당부합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속히 하기 바랍니다. 믿음의 연약한 자들의 입장을 들어보기를 속히 하기 바랍니다. 그들의 말을 다 듣고 천천히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세만 취하여도 삶의 큰 실수가 상당 부분 제거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인 관계가 원만합니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만 속히 말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사람들이 그와 대화하기를 피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외롭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우월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세는 열등감 및 교만에서 나올 뿐입니다. 이들은 또한 잘난 척을 잘하고 매우 독선적입니다. 늘 자기 자랑을 하고 남의 흉을 봅니다. 이해심이 없고 배려하는 마음이 매우 적습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조급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읽기 위해 조용히 듣기를 속히 합니다. 심지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특히 위기 상황에서도, 또는 악하고 고집이 센 못된 사람을 만나도 말에 실수가 없는 신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절제를 가지고 아름답고 덕스럽게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신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선생의 자격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말의 실수는 입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정녕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예수님께 나아가 말씀과 성령으로 나의 생각과 혀를 훈련 받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짧은 삶이 주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잠 10:19-21).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우리 모두의 혀가 이러한 아름다운 말과 유익이 되는 혀가 됨으로 우리의 삶이 복되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히 쓰임 받음으로 우리의 여생이 영원한 보람으로 가득 차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