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활동이 아주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틈날 때마다 답글도 달고 그랬는데, 요새는 4학년이 되니까 바빠서 잘 못 들어옵니다. 이 글도 얼른 쓰고 스터디 준비하러 가야... 어흑
으음. 제가 첼시와 무링요를 싫어하는 이유는 축구에 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술은 있지만 철학은 없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철학을 말해보라면 승리만능주의 정도가 될 텐데 그걸 철학이라고 하긴 좀 그렇네요.
사실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길은 왠만큼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2 월드컵 때의 한국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팀이었지만 철저히 포지션 플레이로
일관했습니다. 유로 2004때의 그리스도 마찬가지로, 모든 선수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전술적 위치와 전술적 역할에만 골몰했습니다.
그러나 왠만한 강팀들은 선수들에게 꽤 높은 자유도를 부여합니다.
그들의 창의성을 믿는 거죠. 바르쌰 보세요. 에투 심심하면 하프라인까지 나와서 공 받고
PA 안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공격 시작합니다.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그 가운데 오가는 눈빛과 최소한의 약속으로 팀웍을 만들어내고 시너지 효과를 가져옵니다.
굳이 위치를 일일이 지정하고 조직하지 않아도 팀웍이 형성되는 경지...
명문 클럽들이란 돈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하위팀들의 주축 선수들을 다 빼가는,
기득권자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하는... 수많은 다른 팀 팬들에게 얄미운 존재입니다.
강자의 위치에 있는 명문 클럽이라면 그런 멋진 플레이로 팬들에게 보답해야죠.
우리가 돈을 처바르는 명문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밖에 할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첼시는 아시다시피 수비전술을 씁니다. 또 철저히 포지션 플레이를 펼칩니다.
첼시 선수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는 플레이는 왠만하면 지양합니다.
마치 2002년의 한국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2002년의 한국팀 같은 플레이를, 한 포지션당 10m씩 부어가며 각 포지션에 완벽한
선수들만을 모아서 펼친다면 물론 최고가 됩니다. 그러나 최고의 강팀들은 그런 컨셉을
좀처럼 잡지 않습니다. 그건 일종의 자존심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습이 가장 효과적인 공격인 것, 어느 감독이나 알고 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득점의 70%는 수비진영에서부터 3번 이하의 연결에 의해 터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팀이 역습을 노리고 있다면? 그건 너무 단조롭고, 창의성이 없어요.
상대의 수비라인이 다 정비된 상태에서도 우리는 너희를 흔들어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진검 승부를 거는 것이 명문 클럽다운 자세가 아닐까요.
수비전술이 항상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비전술을 펼쳐도 용서가 될 수 있는 팀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팀입니다.
볼튼이 첼시와 비슷한 전술을 쓰지만 볼튼에게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땡전 한 푼 없이 최고의 헐값 선수들만으로 승격부터 유럽무대까지 차근차근 밟아온
팀이라, 플레이는 좀 재미 없지만 그 성공 스토리가 다른 종류의 감동을 전해주니까요.
유로 2004 때 그리스가 우승해서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 선수들에게 너희는 평생 유럽선수권 우승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꼭 공격전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조화될 수 없는 재능들을 절묘하게 섞어 환상의 화음을 연주했던 01~03 당시의 레알이나
홀딩 한 명 없이 무수한 포지션 체인지로 거대한 역동성을 선사했던 유로 2004의 잉글랜드
경기의 절반 정도는 피구와 호나우두의 드리블로 해결하는 듯 했던,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최고였던 유로 2004의 포르투갈
그리고 선수들이 선사하는 각기 다른 종류의 마법들이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며 그 조화로움 자체가 아름다웠던 트리플 당시의 맨유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멤버들이 모든 순간 마법을 부려가며 상대 골문으로 질주하는 지금의 바르쌰
이런 팀들이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강팀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첼시가 하고 있는 플레이도 첼시 만의 플레이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떤 발상의 전환이나 절묘한 조화로 빚어낸 플레이가 아니라,
약자의 위치에 있는 팀들이 기를 쓰고 강팀을 이기기 위해 펼치던 전술에
각 포지션에 걸맞는 선수들을 거액을 쏟아부으며 긁어모아 완성한 플레이입니다.
고로, 철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팀은 그 위치에 걸맞는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일상 토크 |
요새도 첼시 이야기가 종종 나오네요
다음검색
첫댓글 첼시과학고는 생각하는 축구...ㅎㅎㅎ
매우 공감가는 글 ㅎㅎ
철학이라기 보다는 승리만을 보고 축구의 묘미를 버린다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듯...
뭐 글에 동감하지만...솔직히...이기는 축구가 부럽다는....ㅜㅜ
지대 옳으신 말씀~...그러나 현실은 이기는게 최고라는..;; 글고 첼시도 가끔은 재미나는 축구하던데.,,,지고있을때만..;;
공감...
공감.. 선수긁어가기 짜증나
대공감!
머라두 좋으니 맨유도 우승이나 한번 해봤으면....
그렇다고 2002년의 대한민국 축구까지 끼워 넣으시는 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