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 3:50 PM
거리 : 2.7 km
소요 시간 : 1h 24m 25s
이동 시간 : 1h 5m 6s
휴식 시간 : 19m 19s
평균 속도 : 2.5 km/h
총 획득고도 : 21 m
최고점 : 73 m
난이도 : 매우 쉬움
서울둘레길>한양도성길>서울도심길>종로3가 한바퀴>탑골공원 한바퀴
2020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컴퓨터 앞에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하다. 4중창을 하는 아내는 예배 필수요원이다.
나는 온라인 예배참석 부탁을 받다. 갈수록 느느니 허참이다.
예배했는데 괜히 우울하다. 문뜩 어제 서울도심길을 걷다가 탑골공원에서 만났던 노숙인들 생각이 났다.
지갑을 두고 와서 2500짜리 닭곰탕도 1천원에 3개하는 붕어빵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굶었던 터라
노숙인들이 먹고있는 컵라면이 먹고 싶었던 생각도 났다.
그래서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능하면 그들과 따뜻한 붕어빵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따뜻한 말 한디라도 나누며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후3시52분 5호선 종로3가역 4번출구
낙원상가(樂園商街)가 바로 보이다
계란빵:1개 1천원
출구에서 나오자 마자 또래 노숙인들이 보이다. 계란빵을 사서 나누어 먹다.
뒤에 온 분의 시선을 느끼고 내것도 건네다. 고맙단 말을 들으니 쑥스러워졌다.
혼자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몇 사람이 함께 와야 할 것 같다
낙원상가(樂園商街) 밑 삼일대로 중고기타 가게
낙원상가;1967년서울시 도심부 재개발 사업의 일부로 건립계획이 수립되어 1969년 완공되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주상복합상가 건물과
건물의 1층이 자동차 도로로 사용되는 특이한 설계로 건축되어 화제가 되었다.
1979년 탑골공원 담장정비사업으로 피아노 상점들이 낙원상가로 입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악기 전문 상가로 발전하였다.
낙원상가 2층엔 음악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모이는 악사 인력시장이 형성되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몇번 들렸던 추억이 있다.
탑골공원 북문 골목
탑골공원 둘레길에서 제일 복잡한 곳이다. 특히 점심 시간에는 인파(?)가 형성되는 곳이다.
서문 급식소는 폐쇄 중인데 북문의 무료 급식소 는 아침, 저녁에 배식하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빵보다는 소주 한잔 사달라는 친구도 있다. 이미 취한 것 같은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서문에서 본 낙원상가 방향. 낙원극장(실버영화관의 간판)
엊그제 보았던 노숙인들이 그자리에 보이다. 좌편의 두 사람이 텐트를 친 것은 처음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텐트가 없는 분은 어쩌나? 날 향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려니 뒷머리가 뜨거워지다.
서문 서쪽방향: 종로타워와 센트로폴리스 빌딩
어마무시한 빌딩군과 노숙인의 텐트
뒤돌아 본 서문 길: 벌써 깊이 잠든 사람도 있다. 추워서 한잔? 한잔하여 한잠?
담장넘어로 본 탑골공원 내부
삼일대로:청계천 2가 방향
굳게 닫힌 삼일문:탑골(파고다)공원정문
예년 같으면 활기(?)가 넘치고, 급식받은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형성 되었을 것이다.
삼일문 틈으로 본 국보 제2호 원각사지10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팔각정-손병희 선생의 동상
탑의 석질이 대리석인 관계로 탑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 보호막으로 감싸놓아 세부를 자세히 살필 수 없다.
팔각정은 1919년 3월 1일 독립 선언서가 낭독되고 행진이 시작되었던 독립운동의 발상지다.
동문으로 가는 골목길:사회복지원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북문 급식은 하루부번 계속 한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동문; 수표로와 동문 사잇 길이 네 문 중에 제일 넓다. 식당과 포장마차가 여럿이다
이발 5천. 염색 5천
손님이 항상 많다. 밖에서 대기 중인 분도 있다.
닭곰탕 3천원 그러나 60세 이상 2500원 양도 맛도 그저 그렇다. 나는 괜찮았다
여긴 조금 고급(?)스러운 곳이다.
열심히 이발 중이다.
다시 북문; 탑골궁원 한바퀴 돈셈이다. 동문방향으로 폐지 수집 리어커 집합소
이곳의 고시텔에서는 누가 무슨 고시 준비를 할까
이발 3천원. 여러사람이 대기 중이다.
친구
"야, 네 마누라 한테는 내가 술사서 멕였다고 말해"
수표로(송해길)
수표로와 동문 중간의 포장마차들. 멀리 종로타워
천원에 3개하는 잉어빵을 들고 걷다가 "형님 잉어빵 남았는데 한개 들레요?"하면서 건네주면 된다.
어떨 때는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다.
때마침 몇몇의 식사 봉사자들이 오길래 따라가다
사진을 찍으니 받은 분이 지워달라고 한다. 인물은 없고 밥그릇만 나온 걸 보더니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보는 앞에서 다 지웠다. 계란빵을 나누던 분들은 그러지 않았으나 그 사진들도 지웠다.
돈화문로5길 골목길; 파고다귀금속
피카디리와 단성사 가는 골목길
단성사빌딩.한국최초의 상설영화관 단성사가 있던 빌딩
적지 않은 추억이 있는 곳인데 없어졌다니 서운하다
극장 피카디리1958
단성사는 없어졌고 피카디리는 지하 1층으로 내려 갔다고 한다. 양쪽 모두 귀금속점포들이 주인이 되다
초동(草洞)교회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이며 대단한 경력에 3대 부통령도 역임하였던 함태영(咸台永)목사님이 초대 목사님.
4대 난곡 조향록(趙香祿) 목사님 때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조목사님은 나의 부친이 함경도출신이라 관심을 가지셨기에 자연스레 나도 관심을 가졌었다.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를가장 많이 하셨는데 80이 넘어서야 그 참뜻을 알게 되셨다는 고백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 덕에 난 좀 더 이른 70에 깨닫게 되었다.
영락교회가 평안도에서 월남한 신자가 많았던 것에 비하여 초동교회는 함경도에서 월남한 신자들이 많았다.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본 창덕궁 방향
돈화문로9길; 춘원당한방병원
평북 박천에서 1847년에 시작하여 8대째 이어지고 있다고.
다시 탑골공원 북문 문틈으로 본 10층석탑
위의 3층이 지상에 방치되었었는데 1946년 2월 17일에 미군 공병대 가 장비를 동원하여 복원해주었다고 한다.
이번엔 수표로(水標路) 22길
중년여인이 지나치며 이상한 말을 건네다. 수상해서 걸음을 빨리 하다.
뒤늦게 생각하니 알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나다. 허참
왜 눈물이 시도때도 잘 나는지 모르겠다. 늙는 증거이리라.
얼큰육계장
'하늘도둑'?
돌고돌다보니 다시 단성사 골드 주얼리센타. 밖에서 전화로 가족과 귀금속 구입 의논을 하는 엄마들도
그리고 또 뒤돌아본 피카디리1959 골목길
다시 송해길= 수표로
오후 5시 15분. 다시 원각사 삼일문과 종각타워와 센트로 폴리스
좀더 어슬렁거리다가 야경도 보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그래서 귀가하기로하다.
지하철과 상가 이곳저곳 구석진 곳에서 노숙인(큰여행 가방을 끌고나온 여성도 있다)을 보니 또 가슴이 답답.
괜히 나의 무력함에 좌절감을 느꼈다. 어쩌면 좋을까?
정치가나 행정기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을텐데. 대책이 없는건가?
아니면 우선순위로 여겨지지 않아 서일까?
2020년 01월 01일 걷기를 시작하면서 기대가 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