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을 알아야 우리말 달인
네이버블로그/ 사이시옷 규정 어떻게 사용하면 될까?!
⑥ 뒷쪽 마당엔 마굿간이 없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 가장 엉터리없는 것은 사이시옷(ㅅ)에 관한 내용일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규정을 알아도 제대로 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끼리도 통일을 시키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니 일반인이 사이시옷을 정확히 쓰기란 정말 힘듭니다. 지금부터 그 내용을 살펴볼게요.
현행 맞춤법 제30항은 ①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 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②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것 ③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④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과 한자어(혹은 한자어와 순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⑤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과 한자어(혹은 한자어와 순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것 ⑥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과 한자어(혹은 한자어와 순우리말)의 합성어 중 뒷말의 첫소리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⑦두 음절로 된 한자어 중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등 여섯 개 낱말에 사이시옷을 쓰도록 밝히고 있습니다.
뭔 말인지 모르시겠죠? 쉽게 말하면 ▲두 말이 더해지면서 본래는 ㄱ, ㄷ, ㅂ, ㅅ, ㅈ이던 뒷말의 소리가 ㄲ, ㄸ, ㅃ, ㅉ으로 소리나는 경우 ▲두 말이 더해지면서 원래는 없던 ㄴ이 튀어나오는 경우에 사이시옷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한자와 한자 사이에서는 ⑦에서 말한 여섯 가지 외에는 절대로 사이시옷을 못 씁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좀 아시겠죠? 제가 이래서 우달이로 불리는 겁니다. 우리말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잖아요.
아무튼 고릿재[고리째] 귓밥[귀빱] 뱃길[배낄] 우렁잇속[우렁이쏙] 잇자국[이짜국] 잿더미[재떠미] 따위는 ①의 예이고, 멧나물[멘나물] 깻묵[깬묵]은 ②의 예, 도리깻열[도리깬녈] 나뭇잎[나문닙] 댓잎[댄닙]은 ③의 예, 귓병[귀뼝(귀病)] 전셋집[전세찝(傳貰집)]은 ④의 예, 곗날[곈날(契날)] 툇마루[퇸마루(退마루)]는 ⑤의 예, 가욋일[가왼닐(加外일)] 훗일[훗닐(後일)]은 ⑥의 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위의 규정과 보기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이시옷을 넣느냐 마느냐가 ⑦을 제외하고 모두 ‘발음’에 따라 결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이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의 발음은 가족이나 이웃, 사는 지역 등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니까요. 단적인 예로 어느 지역 사람은 이상하게도 쌍시옷(ㅆ) 소리를 잘 내지 못합니다. 경상도 분들요. 발음에 자신 없기는 여러분도 비슷하실 겁니다.
자, 다음의 네 낱말을 여러분이 한번 소리 내 보세요.
‘머리기름’ ‘머리기사’ ‘머리그림’ ‘머리글’!
이들 말 중에서 뒷소리의 ㄱ이 ㄲ으로 소리 나는 말에 사이시옷을 넣어야 하는데, 어느 말에 사이시옷이 들어갈 것 같은가요? 모르시겠죠? 사실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자주 틀리고 나서 국어사전을 뒤진 뒤에 겨우 알았습니다. 정답은 [머리끼름] [머리-기사] [머리끄림] [머리-글]입니다. ‘머릿기름’과 ‘머릿그림’에만 사이시옷을 받쳐 적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누구 맘대로 그러는 거냐고요.
여러분이 친구들에게 한번 소리 내 보라고 시켜보세요. 네 가지 발음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는 사람이 있는지 말입니다.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들도 많습니다. ‘예사(例事)소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예사-소리]와 [예사쏘리] 중 뭐가 맞을까요? 모르시겠죠?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 말의 발음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거든요. 한때 〈동아 새국어사전〉은 [예사쏘리]가 옳은 발음이라고 했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예사-소리]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사전이 옳든, 최소한 최고의 어문학자도 정확한 발음의 잣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농사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ㄴㄴ’ 소리가 덧나올 까닭이 없다고 했지만, 〈동아국어대사전〉은 [농산닐]로 ‘ㄴㄴ’ 소리가 덧나온다고 했습니다. 대체 사람들더러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겁니까. 진짜 너무 헷갈립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사전들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르고 있기는 합니다.
어디 그뿐인 줄 아세요? 어느 말을 합성어로 볼 것이냐는 문제는 더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 과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머릿속’과 ‘뼛속’은 있지만 ‘바닷속’은 없었습니다. 반면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바닷속’만 있고 ‘머릿속’과 ‘뼛속’이 없었습니다. 결국 발음뿐 아니라 사이시옷 규정의 전제조건인 합성어를 바라보는 시각도 학자마다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엄니는 툭하면 제 ‘창자 속’까지 들어갔다 나오셨다고 하는데, 대체 ‘창자 속’ ‘창자속’ ‘창잣속’ 중 어디를 들어갔다 나오셨을까요?
현재 국어사전을 놓고 따지면 ‘창자 속’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창자속’과 ‘창잣속’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거든요. 그러나 “상상이나 생각이 이루어지거나 지식 따위가 지장된다고 믿는 머리 안의 추상적인 공간”을 이르는 말이 ‘머리 속’이 아니라 ‘머릿속’인 만큼 ‘속마음까지 안다’는 의미의 말도 ‘창잣속’이 돼야 합니다. 어머니가 정말로 제 창자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사이시옷 규정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자어에서의 문제입니다. 아까 얘기했죠? 한자말 중에는 두 음절로 된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에서만 사이시옷을 쓴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들 여섯 개 말에만 예외를 인정했는지 그 기준이 모호합니다.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툇간’은 이제 거의 쓰지 않는 말입니다. 툇간은 건축용어로 “안둘렛간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을 뜻합니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라도 있으신가요?
이와 달리 “추신수 선수는 안타 갯수(→ 개수/箇數)가 얼마나 돼” 또는 “한국이 숫적(→ 수적(數的) 열세를 극복하고 2-1로 이겼다”에서 보듯이 ‘갯수’와 ‘숫적’은 무척 널리 쓰입니다. 그것을 ‘개수’나 ‘수적’으로 적어 놓으면 읽기도 어색해지죠. 그런데도 그렇게 쓰라고 국어사전들은 똥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또 촛점, 잇점, 싯가, 댓가, 헛점 등도 사람들이 숱하게 쓰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 초점, 이점, 시가, 대가, 허점 등으로 쓰라고 하면서 평생 쓸 일도 없는 ‘툇간’은 편하게 사이시옷을 받쳐 적어도 좋다고 아량을 베푸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홧병’은 또 어떻고요. “김 노인이 앓아누운 것은 화병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때 김 노인을 아프게 한 것이 ‘火病(=울화병)’인지 ‘花甁(=꽃병)’인지 알 수 있겠어요? 게다가 ‘홧병’의 ‘화’는 한자 ‘火’가 아니라 순우리말 ‘화’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결국 곳간, 숫자, 찻잔, 툇간, 횟수에만 사이시옷을 적을 수 있도록 한 한글맞춤법 제30항은 아주 엄청 진짜 이상한 규정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리 이상한 한글맞춤법이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죠.
아무튼 일반인이 사이시옷 규정과 관련해 가장 흔히 틀리는 사례는 거센소리(ㅊ,ㅋ, ㅌ, ㅍ)나 된소리(ㄲ, ㄸ, ㅃ, ㅆ, ㅉ) 앞에 사이시옷을 받치는 것입니다. 〈어휘 편〉에서도 ‘코털’을 ‘콧털’로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요. ‘코’와 ‘털’이 합성어가 되면서 [코떨]로 소리 나지는 않습니다. ‘뒤풀이(→ 뒤풀이)’ 역시 ‘뒤’와 ‘풀이’가 합성어를 이루면서 [뒤뿔이]로 소리 나지 않고요. 그래서 사이시옷을 받쳐 적을 수가 없습니다. ‘뒤창문’ ‘뒤통수’ 따위도 마찬가지죠.
또한 ‘윗쪽(→ 위쪽)’ ‘뒷땅(→ 뒤땅)’ ‘뒷꿈치(→ 뒤꿈치)’ 등은 ‘쪽’ ‘땅’ ‘꿈치’가 원래부터 된소리입니다. 두말이 합성어를 이루면서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두 말 사이에 시옷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다음으로 흔히 틀리는 것은 한자와 한자 사이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경우입니다. 촛점(焦點) 잇점(利點) 싯가(時價) 댓가(對價) 헛점(虛點)처럼 말입니다. 또다시 얘기하는데, 곶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를 제외하고는 한자 사이에서는 절대 사이시옷을 적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흔히 쓰는 ‘마굿간’ ‘수랏간’ ‘소줏잔’ ‘제삿상’으로 쓰는 말 역시 ‘馬廏間’ ‘水刺間’ ‘燒酒盞’ ‘祭祀床’이므로, ‘마구간’ ‘수라간’ ‘소주잔’ ‘제사상’으로 써야 합니다. 사이시옷을 못 쓰는 거죠. 아울러 두 글자인 ‘셋방’과 ‘횟수’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지만 ‘전세방’과 ‘조회수’로 세 글자가 되면 사이시옷을 못 넣습니다.
또 ‘인사말’이나 ‘머리글’ 등은 [인삿말] [머리끌]로 소리 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인삿말’ ‘머릿글’ 등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머리말’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노랫말’은 [노랜말]로 소리 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어 사이시옷을 받쳐 적어야 합니다. ‘등교길’ ‘연두빛’ ‘장마비’ ‘장미빛’ 등도 ‘등굣길’ ‘연둣빛’ ‘장맛비’ ‘장밋비’처럼 사이시옷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엄청 헷갈리시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바로 국어사전을 살펴봅니다. 여러분도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그렇게 자꾸자꾸 국어사전을 뒤지다 보면 자기만의 비법이 저절로 쌓이게 될 겁니다. 아셨죠?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 문법편(엄민용, EBSBOOK,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2.20. 화룡이) >
첫댓글 자꾸자꾸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것 만이
비결이군요...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국어사전'과 친구가 되어
한평생 살아보십시다.
고맙습니다.
사이 ㅅ
읽을수록 더 헷갈리는 것 같아요.
등굣길. 연둣빛. 장맛비. 노랫말...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문법을 모르더라도 그렇게 일상적으로 써 온 말들도 있습니다.
헷갈릴때는 국어사전을 찾아 보겠습니다.
차 운전석 위에 둔 국어사전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국어사전을 일상화 하고 계시는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