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델이 사귀자고 할 때부터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안 건가?”
누가 자기 부모님 아들이 아니랄까봐 생각하는 것 까지 부모님을 똑 닮은 오반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반이네 부모님도 처음에 보자마자 결혼을 약속하고,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냥 결혼해 버렸다지 아마? 비델은 오반이 슬쩍 들려줬던 얘기를 떠올리며 이런 단순 무직, 지고 지순, 천하 왕 순진한 사람이 내 남자라니, 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은 쑥쓰러운 듯 팔꿈치로 그의 가슴팍을 살짝 밀쳤다. 그리고 만족스러움을 가득 담아 적당한 반지를 선택했다.
“이 반지 어때?”
이번에는 커플들이 하기에 적당해 보이는 반지였기에 오반도 찬성했고, 역시 나는 망상쟁이야, 하며 직원은 반지를 그들에게 건내주었다. 오반과 비델은 서로의 손가락에 커플링을 끼워 넣어 주었고, 서로의 반지를 바라보며 베시시 웃음 지었다.
“생일 축하해 오반 군.”
“아, 고마워 비델....”
“그리고 잊지 않고 나와줘서 고맙고.”
“아, 아냐... 나야 뭐 한 것도 없는데... 근데 저기, 오늘 저녁에 뭐 할 거 있어?”
오반이 쭈뼛거리며 말하자 비델은 오반의 앞으로 내려온 머리를 살며시 매만지며 되물었다.
“왜?”
“저기... 안 바쁘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었으면 해서. 어머니께서 음식을 많이 만드실 건데 비델도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 어머님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란 말이지? 알았어.”
“아, 아니 저 그런 뜻이 아니고....”
비델의 말 한 마디에 왔다갔다 하는 오반의 모습에 그녀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그를 끌고 스토어 밖으로 나왔고, 여느 다른 연인들처럼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 맞춰 그들은 하늘을 날아 파오즈 산으로 향했다.
“어서 오렴. 둘이 같이 올 줄 알았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어머님. 어머, 이 많은 음식을 혼자 하셨어요? 죄송해요, 저도 미리 와서 돕는건데.”
아양 아닌 아양을 떠는 비델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과 오반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커플링을 스캔한 치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럴 거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됐어. 비델은 손님이잖아. 이렇게 와 줘서 고맙고, 음식은 충분히 있으니까 많이 먹으렴. 얘 오천아, 아직 오반이 형이랑 비델 누나가 앉지도 않았는데 먹기 시작하면 어떡하니?”
“그치만 전 아까부터 배고팠단 말이에요.”
오천이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치치를 바라보다가 이내 오반과 비델을 응시했다. 냉큼 앉지 못해? 하는 표정이었기에 둘은 후다닥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등장한 우마왕까지 해서 그들은 오반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뒤,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자, 학교에 복학한 오반은 이미 전교에 비델과 자신이 커플이라는 소문 싹 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반 입장으로는 민망한 일일수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누구 하나 놀리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자기 일처럼 축하해 줄 뿐이었다. 아마도 비델이 사전 작업을 완벽하게 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보내던 오반은, 어느 새 올 해의 마지막 달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달에는 크리스마스 라는 게 있었지.’
본래 오반이 살고 있는 지구에는 크리스마스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 외부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 지구에 들리며 자신들의 종교와 크리스마스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엄청나게 인기 있는 연말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전파한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쌩뚱맞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크리스마스에 아연함을 감출 수 없었으나, 날짜가 12월 25일, 딱 연말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그들이 본래 의도했던 날이 아닌, 연말 대행사, 연인을 위해 준비된 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해피 엔드 오브 이어 등등의 온갖 상술에 휘말리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 세계의 열광을 이끌어 낸, 연말 최고의 행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오반이었으나, 그래도, 최근들어 크리스마스만 보고 산다는 연인들이 생길 정도로 크리스마스의 중요성이 커져 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크리스마스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비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좋을 텐데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나 지금까지 비델과 데이트 하며 모든 코스와 모든 플랜은 비델이 짜왔기 때문에 딱히 오반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정말 몸만 가져오면 됐었다.
‘하... 비델이 나중에 뭐라고 하면 난 진짜 할 말 없겠다.’
“어머, 오반 군,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잠깐 자책을 하고 있는 오반에게 웬 여자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반은 응? 하며 고개를 들었고, 친구인 일레이자가 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일레이자 씨군요.”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나한테도 반말하라니까. 뭐야, 비델은 여자친구니까 친근함의 표시로 반말하는 거라 이거야?”
“네? 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오반은 뒤통수를 긁적였고, 일레이자는 푸하하 웃으며 농담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그의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오반 군이 비델이랑 같이 안 있는 건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데? 아, 그러고 보니 비델은 오늘 선생님 면담이 있구나. 그래서 기다리는거지?”
“네, 네에.”
“아, 비델은 좋겠다. 이렇게 멋지고, 핸섬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하고, 몸도 좋은 남자 친구가 있어서.”
일레이자가 하나 하나 열거할수록 오반의 얼굴이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일레이자는 그런 오반이 귀여운지 살며시 그의 볼을 간질었고 으갹! 하며 뒤로 물러나는 오반에게 베시시 웃어 보였다.
“오반 군은 정말 어린애 같다니까. 놀리는 재미가 있어.”
“그, 그러지 마세요 일레이자 씨. 비델이 보면 전....”
오반은 서둘러 입을 닫았으나 일레이자는 이미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홋홋, 그렇구나. 역시 오반 군은 비델한테 잡혀 사는 거였어.”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아, 그럼 어디 재미 좀 봐 볼까. 오반 군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비델이 괜히 오해를 할 테고, 그럼 오반 군의 당황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겠지?”
“이, 일레이자 씨....”
오반이 울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일레이자는 깔깔 거렸다.
“농담이야 농담. 난 임자 있는 사람한텐 관심 없다구. 그나저나, 아깐 뭔가 고민 있는 표정이던데, 내가 뭐 좀 도와줄까?”
“아... 그거요....”
오반은 일레이자를 믿어도 될까, 괜히 또 말했다가 갑자기 아까와 같은 마녀 비스므리한 걸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일레이자가 흐음,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연말에 있는 크리스마스를 비델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 같던데. 맞지?”
“우,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일레이자 씨...!”
일레이자는 코를 한 뼘은 더 치켜 세우며 호호 웃었다.
“뭐, 뻔한 거 아니겠어? 그래서, 어떻게 계획은 좀 세웠어?”
“아, 아뇨 그게 저....”
“역시 못 세웠구나. 빨리 가서 비델한테 말해버려야지. 오반 군은 너랑 크리스마스 보내기 싫어한다고.”
“아니, 저기, 제발 좀, 일레이자 씨!”
오반이 애걸복걸하며 매달리자 일레이자는 못 참겠다는 듯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아아, 비델이 오반 군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역시 정말 말한 그대로야. 어쩜 이렇게 귀엽지?”
“비, 비델이 뭐라고 말했는데요?”
“흐음, 그건 비밀이지. 그나저나, 계획을 짜는데 내가 도움을 좀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나한테 커피한 잔 사 주면 도와주도록 할게.”
“커, 커피요?”
“그래, 요 앞에 새로 솔라벅스가 생겼잖아. 정말 으리으리하다고. 게다가 커피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사줄꺼지?”
어느새 팔에 앵겨붙은 일레이자였다. 오반은 안 사주면 잡아먹힐 것 같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주춤하며 일어났다.
“저, 근데, 비델이 곧 나오면....”
“걔 좀 전에 교무실 들어갔어. 그리고 선생님은 면담을 그렇게 일찍 안 끝내신다구. 아마 한 시간은 넘게 붙잡고 있을걸? 걱정말고 다녀오자.”
일레이자는 거의 오반을 반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오반은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그녀의 말을 믿고 솔라벅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머, 이건 오반 군 폰인데... 오반 군은 어디 간 거지?”
그러나 그들이 걸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레이자의 예상을 깨고 비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벤치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오반의 폰을 들어 올렸다. 여기 앉아 있겠다던 오반 군은 어디에? 하며 고개를 두리번 거리던 그녀는 저 멀리, 오반 군의 의상을 입은 남자와 일레이자의 뒤통수를 하고 있는 여자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뭐, 뭐야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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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진을 보니 오반 군과 비델은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ㅎㅎㅎ +_+
자, 순식간에 크리스마스가 있는 시즌으로 넘어왔습니다.
첫댓글 설마이건 비극적 전개가....ㅡㅡ 그러지마여 데넵님 ㅠㅠ
음... 여기서 비극이라 하시면... 어떤...?
일줄알앗는데 아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