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새벽기차 스케치
김 진 우
대합실에 도착하여 손을 비비며
두유장수가 담요 속에서 꺼내 주는
따뜻한 두유 한 병을 사서 마시고
꼭두새벽의 어둠속을 가로질러
막 도착한 기차에 오르면
시발역에서 올라온 비린내가
녹색 융단 등받이에 배어 있고
중간 역에서 올라온 무 배추 냄새는
좌석에 먼저 앉아 있다
남자들 포마드 냄새와
여자들의 코티 분 냄새가
비린내와 채소 냄새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려 애를 쓰고
새벽밥 먹고 기차에 오른 교복 입은 통학생들이
김치 냄새 나는 가방을 선반에 얹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선다
들어서는 촌부들과 아낙들도
나름대로 옷을 차려입고
도시 사람들을 향한
자존심의 깃을 세운 채
아는 이들끼리 간단한 인사 후
최소화 된 긴장감 속에서
시선의 시공간 이동만이
정적을 채워간다
기차 바퀴 소리에 맞춰
짧은 여행길의 졸음은
여기저기로 전염되어
모두 겸허한 모습이 되고
간이역에 멈출 때 마다 동승하는
쌀랑한 새벽 공기는
비좁은 통로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체온에 동화되어 간다
기차가 기적을 목청껏 울리자
몇몇이 차창에 서린 김을 소매로 닦아가면서
밝아오는 미래 풍경을 가늠해 보고
두 갈래 철길로 구르는
쇠바퀴 소리가 빨라지면
건널목의 경고 종이
멀어져 간다
기차가 가장처럼 크게 헛기침하고 나서
자식들인 양 따라오는 객차들을 데리고
앞장서서 역으로 들어가고
객차에서 내린 순한 양떼 같은 사람들은
짐을 이고 들고 계단을 내려가
역무원이 차표를 받고 있는 역사로
기나긴 삶 같은 줄을 선다
플랫폼에 선 차장의
녹색 깃발 신호에
기차는 다시 한 번
기적소리를 울리고
쌍둥이 둘째를
낳으려는
산모처럼
한 번 더
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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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때 늦은 새벽기차 스케치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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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2
14.11.05 09:3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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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의 진한 냄새가 흠뻑 묻어나는
새벽 기차 스케치
우리네 서민들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
유난히 따뜻해 보입니다,
아주 오래 전 완행 새벽기차 경험이지만 잊혀지기 전에 그려보려고 하였습니다.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와... 기차 타고 싶네요.
여긴 기차도 지하철도 없네요.
잘 읽었습니다.
11호 차가 있으면 충분하신 곳에 사시니 그럴 것도 같네요.
지난 겨울에는 눈꽃열차를 타고 태백산에 다녀왔는데 올 겨울에도 열차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승용차로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참 좋더군요.
오늘도 공감해 주신 것에 감사해요.
제가 감히 평할 자격은 없으나 굉장히 숙성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아침에 쓸 수 없는 그런......
과찬이십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분위기를 그려보았습니다.
예전에 완행열차를 타보신 분들에게 새삼스런 추억이 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