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검은 내가 검도 승단시험때 사용했던 것인데 강씨봉에 있는 친구에게 주고싶다.
임나일본부설이란?
한마디로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인들의 섬나라 열등 의식을 해소하고 한반도및 대륙 정복의 구실로 삼고자 억지로 꿰어 맞춘 허구의 역사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신공황후가 269년 신라와 백제를 침공하여 굴복 시키고 평생 조공을 바치고 복종하기로 맹세 받고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삼한을 통치 하다가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 되었다는 것으로 그 근거로 만주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과 720년경에 조작하여 재작성한 일본서기를 들고있다.
이제부터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살펴보겠다,
일본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천황은 하늘에서 천신으로 강림 한후 약2,700년간 순수 혈통으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여 현 나루히토천황은126대이고 1대 신무천황은 기원전660년에 하늘에서 강림 하였다고 주장 한다,
그런 까닭에 천황의 보물창고는 수천년 보존이 잘 되고 있고 자기들 역사 왜곡에 불리한 자료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1870년 일본의 한 역사 학자가 이소노가미신궁 창고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좌우로 3개씩 가지가 달린 녹슨 칼 한자루를 발견하고 앞 뒷면의 은상감으로 새겨진 60여자의 글자를 해독 해보니 이는 백제왕(근초고왕추정)이 왜왕에게 통치권을 주는 것으로 해석 되었고, 백동 거울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백제 무령왕이 야마토 계체천황(무령왕의 이부동생,곤지의 세째아들로 추정)에게 백동으로 만든 거울을 하사 하였고 거기에는 백제왕이 귀한 백동200근을 구해 거울을 만들어 담로들에게 보낸다고 적혀있었다,
이백동경은 1834년경 한 농부에 의해서 발견된 것으로 지름 20Cm정도의 백동 인물화장경이다.
이것도 일본의 국보로 지정 되어있는데 그곳에는 백제 무령왕이 남제왕(왕이된 남동생)에게 밝고 올은 통치를 할것을 주문하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것도 일본인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있다
무령왕의 동생은 26대 계체천황인데 그 직전의 무열천황의 잔혹한 정치를 경계하라는 뜻이었을것이다. 무령왕은 국가 기록도 정확하게 할 것을 주문 하였던 것 같다.
무령왕은 백동거울 22개를 만들어 왕족을 보내어통치하던 담로에게 보내어 자신을 돌아보며 국민을 잘 다스리라고 하였다.
이 백동거울이 일본에서 3개나 나왔다는 것은 백제 지배하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 인데도 일본사 학계에서는 백제왕의 진상품이라고 우기고있다.
자고로 최고 통치권자가 통치권의 일부를 위임 할 때 칼을 하사 하는 전통은 지금 까지도 전승 되어 오고 있다,
어느 나라고 장군 임명때 칼을 하사한다 우리나라도 장군 임명때 대통령이 지휘권을 상징하는 삼정도를 하사한다,
조선 침략과 대륙 진출을 획책하던 일본 으로써는 난감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일본서기를 통해 집안의 광개토 대왕비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조선을 침략하기위한 명분을 만들기위해 일본내에 있는 백제를 섬겼다는 기록들을 민간 보유분 까지 모두 찾아내어 소각 시켰고 조선 침략 직전에 특수임무를 띤 중대 규모의 병력을 집안으로 보내어 광개토대왕 비문의 일부를 파내고 말똥을 쌓아 불을 질러 조작하여 백제와 신라가 신공황후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기로 하였다고 변경하고 칠지도와 백동경을 국보로 지정하여 백제에서 조공으로 진상한 물건이라고 하여 일제가 한일합방을 하는 것을 옛 영토회복의 정당성으로 삼았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670년에 차음사용 되었는데 660년 백제의자왕이 공산성으로 피신한지 3일만에 예식이라는 공산성주 에게 잡혀 소정방에게 항복하고 큰아들 융과 왕족 및 고위직 50명, 국민 1만2천명이 당나나로 압송된후 의자왕의 다른 아들 풍이 흑지상지와 함께 지금의 예산 임진성에서 나당 연합군에 항전하던중 일본에서 2만7천명의 원군을 보냈으나 백강전투에서 전멸하고 흑치상지의 배반으로 부여풍은 고구려로 달아나고 흑치상지는 당나라의 대장군 반열에올랐다. 일본의 원군이 출정중에 군을 인솔하던 황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출정이 늦었고 당의 13만 대군을 대적 할수 없었다.일본의대패로 일본은 나당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워 분열 되어 있던을 담로국들을 서기670년 부족간의 연합체인 일본으로 탄생시켜 이때부터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720년에 근초고왕의 지시로 기록 해오던 일본서기를 대대적으로 변조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지금도 백제를 쿠다라(큰나라)라고 부르고있는데 이는 민간의 큰집 종가집등과 같은 자기들의 모국,본국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는 백제의멸망을 663년으로 적고있으며 32대 부여풍을 마지막
왕으로 적고있다.
ㅡㅡ계속 이어집니다
2022년 9월20일(화) 지 덕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