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부삼천지교의 극성 아버지(사마천 아버지, 손흥민 아버지)>들의 가르침
자식 교육의 극성 어머니는 맹자(孟子) 어머니가 상징성을 갖는다. 고사성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세번 이사를 하였다는 고사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맹자 어머니가 처음 이사간 곳이 시장 바닥이었다.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다. 밀당을 통해 양보와 타협, 서로를 이기려하기보다 합리적 선택을 하는 세상 물정을 터득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인생공부를 하였다.
두번째 이사를 간 곳이 바로 공동묘지 근처, 오늘날 우리의 장례식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맹자가 장례식장을 유심히 관찰해보니까,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 빈객의 많고 적음과 태도를 보고 '죽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깨달았다.
죽은 사람이 비록 고관대작을 지냈어도, 인심을 잃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한 인물은 장례식장이 썰렁했다. 죽은 권력의 쓸쓸함과 염량세태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벼슬이 없어도 평소에 베풀고 인심을 얻은 사람이 죽은 빈소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맹자가 얻은 삶의 교훈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세번째 이사간 곳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서당, 즉 오늘날 학교 근처이다. 학교의 교육과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는 것, '사람은 평생동안 끊임없이 배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극성스런 어머니 덕분에 맹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극성스런 아버지는 없는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연구로 유명한 김영수 교수는 "고전(古典) 속의 극성 엄마 1호는 맹자 어머니, 극성 아빠 1호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라고 말했다.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여,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를 "극성 아빠 2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1. 고전 속의 '극성 아버지 1호'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
사마천이 사기(史記)의 맨마지막 130편 "태사공서"에 자신의 아버지 사마담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해에 천자가 처음으로 봉선의 예를 행하였는데, 태사공(사마천 아버지 사마담)은 낙양에 머물러 있어서 그 일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분을 못이겨 죽으려 하였다. 그런데 아들 천이 때마침 사명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버지를 황하와 낙수 사이에서 뵈었다. 태사공(사마담)이 아들 사마천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이제 천자께서는 천세의 대통을 이어받아 태산에서 봉선하는 예를 행하고 있다.
내가 이 행사에 수행하지 못함은 천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내가 죽으면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될 것이다. 태사가 되거든 내가 저술하려 했던 것을 잊지 말라. 대저 효도란 어버이를 섬김으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고 몸을 세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부모를 나타나게 함으로써 끝나는 것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치욕스런 삶 속에서도,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었다. 역사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임종하는 아버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위대한 인류의 문화유산인 "사기(史記)"를 집필한 것이다.
사마천 아버지 사마담이 극성스런 아버지라는 증거는 여럿 있다.
첫째, 태사령(역사를 집필할 수 있는 벼슬, 오늘날 국립 도서관장 해당)의 직책을 사마담과 사마천이 대물림하면서 평소 역사서를 집필하려는 아버지의 간절한 열망(유언)을 실천하였다.
둘째, 사마천이 20세 전후해서 약 3년 동안 천하의 역사 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여, 사마천이 생생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백성들의 모습, 역사현장에서 이야기를 채록하고 그들의 삶, 생활방식과 양식을 직접 채록할 수 있었다.
셋째,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철저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였다. 역사의 지식뿐 아니라 천문과 지리 등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도록 교육하였다.
넷째, 태사령(역사기록가, 국립도서관장 격)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사마천이 어렸을 때부터 역사의 현장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사마천이 이런 역사 현장 방문은 역사 기록에 있어서 중국의 풍물, 전통 문화 등 살아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사마천은 중국의 문명과 문화까지 서술할 수 있는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2. 현재 한국의 극성 아버지 1호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첫째, 그는 자신의 키가 167센티미터밖에 안되니까 아들 손흥민의 키를 키우기 위해서 매일 1000미리리터 이상의 우유를 마시게 했다. 그래서 손흥민의 키가 183센티미터에 이르는 비결의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둘째, 기본기에 충실한 교육, 철저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사마담이 사마천을 교육하는 방식과 같다.
셋째, 대나무의 철학(5년 동안 땅속에서만 자라다가 나중에 하루 70센티미터씩 자라는 대나무의 성장 원리)을 실천하였다. 기본기 충실, 체력 중시의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일찍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서 맹모삼천지교처럼 유능한 지도자가 있는 곳을 찾아 축구 명문학교로 전학을 시켰고, 결국 독일로 축구 유학을 보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 유능한 축구 감독이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시켰고, 축구 명문인 동북고에 입학을 시켰으며 최종적으로는 독일 유학을 보냈다.
다섯째, 모든 운동의 교과서에 해당하는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실천하였다.
김대길 축구해설위원은 “손흥민 아버지가 볼 다루는 기술, 반복적인 연습, 실전보다는 기본기에 절대적으로 투자하면서 보통 한국의 제도권 축구교육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선수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김 해설위원은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렸을 때는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11대 11 경기를 잘 하지만, 성장하면서 기본기 부실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손흥민은 중학교 시절까지 아버지의 집중적인 기본기 교육을 받았고, 고교 때 분데스리가의 체계적 훈련 등을 거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 사마천의 아버지와 손흥민의 아버지가 보여준 자식 교육의 공통점
첫째, 아들이 무엇을 제일 잘 할 수 있는지, 일찌감치 재능과 영특함, 특기와 적성을 정확히 파악했다.
일찌기 아버지 사마담은 역사가의 가문을 빛낼 아들 사마천에게 체계적인 역사공부를 시키기 위해 자신이 계획한 교육 프로그램대로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켰다. 마찬가지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도 손흥민의 축구 재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대로 교육하였다.
둘째, 아들 교육은 아버지가 책임을 지고, 아들의 잠재력과 재능을 극대화시키는데 모든 열정을 쏟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이 역사가의 가문을 이을 정체성을 꾸준히 상기시키면서 자신이 의도한대로 교육을 시켰고, 손웅정씨도 자신이 축구선수로서의 실패 경험과 선수생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아들 손흥민에게 최적의 교육프로그램을 적용한 것이다.
셋째, 목표를 향한 흔들림없는 태도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 최고의 스승이 되었다.
사마천이 억울하게 궁형(생식기를 거세당하고 내시가 되는 치욕적인 형벌)을 당하고도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아버지의 유언과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한 본인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손흥민이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것도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의 '아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겠다'는 마스터 플랜에 의해 피(열정)와 땀(노력)과 눈물(정성)을 흘린 대가이며, 노력의 산물이다.
첫댓글 자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비례하여 성장합니다.
세계적인 선수는 타고난 재능만으론 어렵겠죠..이 이면의 스토리가 감동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