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14> 2010년 8월 16일(월)
<개역>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표준역>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정녕,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NIV> 시 126:5.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6.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7월 백두산 여행에 이어 8월 북경 심양을 다녀왔다(8월 9일부터 13일까지). <좋은 사람들>의 멤버들과 우리 집 식구들과의 동행이었다. 십 년 만에 다시 들른 롱칭시아(龍慶峽)은 다시 봐도 아름다웠지만,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던 백화동굴은 10년 전 그대로 더 이상 발전도 없이 퇴화되고 낡아가는 모습이어서 실망스러웠다.
다시 압록강을 돌아보며 지난번에 돌아보지 못한 단교(斷橋)를 걸어봤다. 중국에서는 관광지로 개발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북한은 다 철거해버려서 흔적도 없다. 강 건너 보이는 북녘 땅은 여전히 우리 땅이건만, 갈 수도 구경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토요일(14일)에는 <좋은 사람들>의 총무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했다. 주례하시는 목사님께 신랑 친구라고 인사를 건네자 무척이나 반가워하신다. 신랑이 자기 교회로 나오기로 약속했으니 옆에서 감시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김동완 교수의 생일을 맞이하여 축하 행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밤 12시다.
금년 815주일은 의미가 깊다. 경술국치 100년이요, 광복 65주년, 한국전쟁 60주년에 419학생혁명 50주년,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10년을 주기로 격동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 주일예배 설교를 선교사가 다시 선교지로 나간 후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라 진도를 나갈까 고민하다가 광복절 설교를 하기로 했다. 시편 본문을 두 개로 정했다. 126편과 137편이다. 시편 137편은 포로 시대의 바벨론에서 지은 시로 보이고, 126편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 팔레스타인에서 쓴 시로 보인다. 둘 다 나에게는 특별한 감흥이 있다. 설교를 하며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에 인용되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읊었다.
“오래 전에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안중근이 이또오 히로부미의 암살에 실패,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정복하여 1980년대까지 지배하게 되는 것을 전제로 한 일 년 동안의 주인공의 삶을 소설화한 것이다. 주인공은 조선 시인으로서 조선어로 시를 지어 문단에 데뷔한 사람, 조선어가 미개어로 배우며 익히던 그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전율한다.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에게 있어서 님은 조국이요, 부처요, 자신의 이상이었다. 그 나라 잃은 슬픔을 님은 갔다며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31운동 이후 일제 순경에게 잡혀서 고문을 받으면서 질문을 받았다. 독립만세를 부르면 독립 될 줄 알았느냐? 독립될 줄로 알고 만세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변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용운은 너희 나라가 우리나라에게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 물었다고 한다.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이라면 앞뒤 계산하지 아니하고 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예배 후에는 병문안으로 두 병원을 방문하고 곧바로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한국교회815대성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강대상에 앉은 사람만 3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대단히 큰 행사이다. 마티즈를 덕수궁 돌담길 옆에 주차하고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뚫고 걸어걸어서 강대상까지 올라간다. 동료 목사님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다. 거기에서 우리 학교 전임 총장을 얼굴을 발견하고 눈을 돌린다. 인사한들 뭐하겠는가? 아니 사람으로서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하지 않을 수 없을 바에야 피하고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터. 그가 나를 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인사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역겹다. 이렇게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목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사는 7시가 넘어서야 끝난다. 내리쬐던 햇빛이 구름으로 가려지고 어둑해져서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보든 행사가 마무리 된다. 바쁘게 흩어지는 목사님들 사이를 뚫고 다시 마티즈를 몰고 양평으로 향한다. ACTS Forum이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제 만나도 고맙고 감사한 제자들이며, 친구들이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이번 학기에도 수업 함 시간 배정 받지 못한 나에게 말한다. 신임 총장을 찾아가서라도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내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아니 망설여진다. 구차하게 내 자리 찾자고 비굴해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아니 역겹고도 가증스러운 얼굴들을 마주보며 이 학교에 계속 남아있는 내 모습이 상상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총장실로 전화하여 비서하고 통화만 하고 총장과의 만남을 포기하기로 했다.
기도, 그래 그 기도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기로 한 것이다. 온갖 욕심과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을 조절할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경지를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뿌릴 것인가? 분노와 욕심으로 뿌릴 것인가? 기도와 겸손으로 뿌릴 것인가? 왜 이렇게 약해지셨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십자가는 낮아지고 약해지는 것이라는 대답을 마음속으로 해본다.
201008161417
첫댓글 시편 126장 5,6절의 말씀으로는 장사익의 노래 행복한단을 돈을 주고 살 수 없고 오직 번뇌의 아픔을 계기로 밀알하나가 땅위에서 썩어야 새싹이 돋듯이 구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무슨 일인들 뼈아픈 경험이 있고나서야 새로움에 눈을 뜨고 나니 옛분들의 말씀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각인 시켜주는듯 합니다... 가난을 격어봐야 부에 대한 열망이 생기고 나라를 읽어봐야 조국의 소중함을 느끼듯이 그나라님도 교수직에서 물러나 있으니 그자리의 소중함을 아실테죠...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듯이 좀더 과감해지셔야 하지 않을까요?.. 어쨋든 소신있는 모습으로 강단에 서야 의(義)를 따라 배우는...
여러 학생들을 배출 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허도에서 천자를 유린하는 조조의 간계를 알고 일시적으로 겁쟁이로 전락한 유비의 제스츄어도 때로는 필요한 법입니다... 중원의 주인은 천자와 만백성이지만 눈앞의 칼자루는 동탁이 쥐고 있기에 그의 앞에서 충신으로 둔갑한 조조역시 때를기다리며 동탁을 시해할 준비를 했습니다... 군자가 덕이 없다면 다른 주군에게로 가는것이 인지상정 이지만 원소나 손권에 비해 충언을 잘 받아들이는 조조에게는 훌륭하고 유능한 책사와 장군들이 많이 모여들기 마련이죠... 그렇지만 천하가 모두 통일될 당시에는 이미 조맹덕은 숨을 거두었고 사마중달 일가가 그자리에 앉아있게 되는것입니다...
양산박에 은거하는 두령 조개장군이나 임충, 노지심, 흑승풍 이규, 무송이 되어 은둔할 것이 아니라 급시우 송강처럼 조정에 나가 변혁을 꾀하는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굴할 때가 있습니다... 공자님도 의를 위해 거짓증언으로 목숨을 유지하셨고... 어쨋든 대학강단에 나가 수업은 유지하셔야 할것으로 사료 됩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 간언을 드린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참고해 주셨으면합니다... 그나라님같은 훌륭한 인재가 대학강단에 서지 않는다면 국가와 학계에서도 손실이 이루 막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셨!꾼요와~~요오~ * ^.^ * ( 맹구 페르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