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을 알아야 우리말 달인
Daum카페/ 나나가 수지한테 소개시켜달라고 한 사람.jpg
⑦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에이~ 바보
하루는 TV를 보는데, 한 개그맨이 상대에게 “…를 소개시켜 주시죠”라고 하더군요. 그는 제가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연결 지을 수 있는 몇몇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인데,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 주변에서 ‘-시키다’를 잘못 쓰는 일이 무척 흔한 거 같더라고요. 사역형을 잘 몰라서 그러는 듯합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도 그중 하나죠.
‘-시키다’는 명사 아래에 쓰여 “-하게 하다”라는 것쯤은 다들 아시죠? 그러니까 ‘-시키다’는 ‘명사+하다’ 꼴의 동사에서 ‘-하다’의 자리에 붙어 그 동사가 사동의 구실을 하게끔 만드는 말입니다. 혼자 동사로 쓰이는 ‘시키다’도 접미사 ‘시키다’와 의미는 거의 같습니다. 접미사 ‘-시키다’와 동사 ‘시키다’는 모두 자신이 주체가 돼 하는 일(주어가 표현의 중심이 된 문장)에는 쓸 수 없습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공부하다’와 ‘공부시키다’의 차이를 생각해 보세요. 또 ‘자장면을 해 먹다’와 ‘자장면을 시켜 먹다’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봐도 되겠네요.
“나는 공부했다”라고 하면 공부를 한 사람은 나입니다. 하지만 “나는 공부시켰다”라고 하면 공부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이 됩니다. 자식이나 제자쯤 되겠죠.
또 “나는 자장면을 해 먹었다”라고 하면 자장면을 만든 사람은 나입니다. 그러나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라고 하면 자장면을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중국집 주방장쯤 될 겁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라는 표현은 무슨 뜻이 될까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해 줘” 정도의 의미가 될 듯합니다. 즉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줘’는 “좋은 사람을 나와 맺어 줘”를 뜻하는 반면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줘’는 문장 자체가 비문이고 어거지로 뜻풀이를 하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라는 뜻이 되는 꼴이 되는 거죠.
친구가 믿기 어려운 말을 했을 때 흔히 쓰는 “야, 거짓말시키지 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너 나에게 거짓말하게 만들지 마”라는 뚱딴지같은 소리가 되고 마는 거죠.
‘-시키다’를 잘못 쓴 사례를 좀 더 살펴볼게요. 아래의 예문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것들입니다.
“법원은 개시 결정까지의 기간을 단축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자, 이 문장에서 기간을 단축한 주체는 누구죠? 법원입니다. 누구에게 ‘단축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잖아요. 이럴 때는 ‘단축시킬’이 아니라 ‘단축할’로 써야 합니다.
“깨끗한 선거를 실현시키는 방안이….”
여기서 선거를 깨끗이 치러야 하는 주체는 누구죠? 바로 우리(유권자)죠. 우리가 외국인 등에게 시키는 것은 아니잖아요. 따라서 이 문장의 ‘실현시키는’은 ‘실현하는’으로 썼어야 합니다.
“위원회로서는 김 회장을 해임시킬 수밖에 없었다.”
김 회장을 짜른 주체는 누구인가요? 위원회입니다. 위원회가 다른 기관에 김 회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그 기관에서 김 회장을 자른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해임시킬’은 ‘해임할’로 쓰는 게 맞습니다.
어때요? 어떨 때 ‘-시키다’를 쓰지 말아야 하는지 감이 좀 오시나요? 사실 이거 꽤 복잡한 말법입니다. 이 부분 가지고 논문 하나는 뚝딱 나올 수 있을걸요. 해서 더 깊은 얘기는 블로그에서 전해 드릴게요. 그것도 괜찮죠?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 문법편(엄민용, EBSBOOK,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2.23. 화룡이) >
첫댓글 주체를 잘 알아야 좋은 언어를 사용하는군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는 꽃은
의초 시인님에 시키신 건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