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부터 쭉 올리고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제 닉네임 검색해서 읽어보셔도 좋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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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81년)과 4집(82)년 사이 조용필의 공연활동 자료를 찾아보면
활동이 거의 없었음이 확인된다.
실제로 3집 발매 이후 ~ 4집 발매일 까지 조용필은 방송에서 잠적해 버렸으며
81년 6월, 81년 8월의 두 날짜를 제외하면 공연 또한 없었다.
(4집발매 한달 전에 아시아 뮤직포럼에 참가한 것은 제외. 이 날짜는 최종 마무리 단계이므로)
이는 4집 제작을 위해 조용필이 일부러 활동을 중단한 것에 근거한다.
그리고 82년 5월, 이후 평론가들에 의해 여러번 명반으로 꼽히는 4집이 등장한다.
명반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각자 다르다. 일단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 중에서 찾기 시작한다.
사실 명반의 기준이 규약으로 정해진 것은 없겠지만, 필자의 나름 의견을 적어본다.
1. 음악성
2. 시대성
3. 정체성
4. 영향성
5. 품질성
더 있겠지만 일단 다섯가지만 적어 보는데,
이것만 해도 각 항목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그리고 조용필 4집은 상기 항목에서 모두 상위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음반이다.
단, 상기 항목에서 모두 'TOP'점수를 받았다는 것은 아니다.
항목들이 모두 비슷한 계열이며 상호보완적임은 느껴질 것이다.
1. 음악성
이렇게 애매한 말이 세상에 있을까? 아무도 정의할 수 없고 객관적인 판단도 어려운 음악성.
하지만 음악을 분석하기 전에 딱 들어서
'아마추어'의 느낌과 '프로'의 느낌은 분간이 될 것이다.
조용필 음반은 언제나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음악,
완성도 높은 곡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4집은 성인가요 및 기존곡 몇개를 제외한 모든 트랙을 자신의 작곡으로 채우기도 했다.
2. 시대성
시대성이라 하는 것이 단지 정치계에 한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대상황을 짚는 것은 포함될 것이다.
당시 갓 성인이 된 층이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도 있고
광주대학살의 분노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낸 곡도 있다.
후일 평론가들이 조용필 음악세계의 한계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사회비판의식'의 결여인데
이런 조용필조차 광주대학살의 참사는 그냥 넘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허나 슈퍼스타일수록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일은 극히 제한되며
거의 '금지'수준인 것도 이해해야 한다.
3. 정체성
두 가지가 있다. 아티스트 자신의 정체성, 즉 음악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말하는 뜻도 있고,
아티스트가 속한(이 경우 한국 대중들)분야 사람들의 뿌리 및 고유한 민족성을 뜻한다.
조용필 4집은 첫번째 의미의 정체성과 두번째 의미의 정체성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앨범이다.
필자가 여기서 참고한 자료를 소개하겠다.
대중음악평론가 조원희 씨와 강헌 씨가 공통적으로 고른
한국 대중음악 최고작은 조용필 4집이다.
특히 강헌씨의 선정 근거가 아주 인상적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저는 ‘베스트 100’에서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봐요.
첫째, 해당 앨범이 음악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어떤 계기를 만들었는가. 일종의 역사성이죠.
둘째, 앨범으로서의 문제의식과 완성도.
셋째, 이제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라지는 건데……
저는 우리가 두 겹의 식민 역사를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본과 미국.
그러기 때문에 앨범이 얼마나 한국적인 독자적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나,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전 어떤날에게 1위를 줄 수 없어요.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음악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서태지 음악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준다면 “나는 한국 음악을 달라고 했다” 이러지 않겠어요.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은 중요하죠. 첫 번째 요소 때문에. 하지만 1위는 안 되죠.
마찬가지 이유로 전 들국화도 1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앨범 자켓부터가 비틀즈의『Let it be』야.
안에 들어있는 몇몇 곡도 너무나 비틀즈적이고.
그래서 제가 조용필 4집을 1위로 놓은 거예요.
이건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죠...........
(출처는 네이버 카페 '음악취향Y'의 강헌과의 대담 게시글이다)
4. 영향성
사실 이 영향성이라는 항목은 조용필 뿐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들이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비틀스는 전세계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고인이 된 2pac은 전세계 힙합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계 대중음악계는 서구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들이 영향력을 바다 건너까지 행사한다.
그렇다면 당시 국내에선?
지난 리뷰에서 밝혔던 조용필만의 성과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10년도 넘는 기간을 계속 대중의 인기를 선두주자로 독식해 나갔다.
유치원에서부터 노인정까지 모두 자신의 팬으로 만들었다.
당시 주류였던 서구 팝 위주의 판을 국내 가수 위주의 판으로 바꾸었다.
등장 이후 인기유지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운드의 개혁에 앞장섰다.
대중음악계에서 당시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전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데뷔 4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누구도 넘볼수 없는 콘서트를 갖는 활발한 현역이다.
조용필의 선배 혹은 동료 혹은 후배 아티스트, 누구든 좋다.
출현 당시부터 지금까지 '활발'한 창작/공연을 하는 현재진행형인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예의없는 사람이라 날 욕할 수도 있겠으나 신중현님께서도 이런 사례는 이루지 못하셨다.
윗 사례들을 조용필 외 누가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지 필자는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당시 국내에서 4집의 출현은,
음반제작 방식의 발상을 깬 '활동 중단하고 만든다'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의 전환 및
여전히 '직접 만든'곡이 모조리 히트하게 만들어 버리는 대중을 휘어잡는 영향력 또한 있었다.
잠시 음악에서 벗어나, 패션계에서도 살짝 이 부분이 엿보이는데,
당시 큰 인기를 구사하던 남진, 나훈아 등의 남성적 이미지와는 달리
4집 커버에서도 보이듯 조용필은 퍼머난트 헤어스타일, 살짝 얕은 화장까지 곁들인 메이크업,
그리고 여성용인지 남성용인지 선뜻 파악이 안되는 의상까지
슈퍼스타 전성기의 또다른 그의 특징인 유니섹스적 패션 스타일 또한 보여준다.
요즘 시대야 당연히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옷 스타일까지 관리자가 따로 붙어서
스타들을 철저하게 꾸며 주지만, 1982년 당시에 이런 시스템을 미리 국내에 시도한 점은
조용필이 더욱 앞서나가는 주자였음을 또 한번 확인시켜 준다.
세계에서야 비틀스가 처음 도입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여하튼 한국에서는 국내에 들여온 '전례'로서의 행보가 다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귀엽고 여린 모습으로 다른 남자가수들과는 스타일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던 것이다.
4집의 히트 역시 요즘말로 하면 'ㅁI친 히트'라 불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3집의 명곡 '고추잠자리'의 24주 1위 기록과 대비하면 살짝 아쉬운 성과로 볼 수도 있다.
5. 품질성
의외로 필자가 4집을 여러 번 모니터링하면서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아니, 아쉽지는 않다. 다만 기대를 너무 했을 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당시는 신디사이저의 과도기 상태였고, 그로 인해 현대의 시각에서 다시 들어보면
솔직히 지나치게 이용된 측면이 없잖아 보인다.
그러나 4집이 나온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을 기준으로 얘기할 뿐이다.
오히려 판이 나온지 몇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들어보면 신선하고 거부감이 적은 사운드임은 분명 놀라운 면이다.
조용필 4집이 후일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바로
'명반'의 어떤 조건을 생각해서 적용해도 전부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것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시 천재적인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몇몇 다른 분들도 여럿 있다.
허나 당장 필자가 제시한 단 다섯가지 조건이라도 전부 부합하는 아티스트가 계신지는 모르겠다.
이제, 음반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도록 한다.
그전에, 필자가 CD위주로 분석하는 측면을 여기에서는 좀 달리하고 싶다.
모두 알다시피 당시 포맷은 LP 위주였다.
그 포맷들은 일명 '초판'으로, 조용필이 트랙리스트 짜는 데에 관여했다.
즉, 앨범 전체의 유기성과 흐름을 조용필이 고려한 것이다.
이후 CD포맷으로 낼 때는, 지난 리뷰에서 밝힌 아쉬운 대법원의 판결 부분 때문인지
아니면 '소속회사'의 권력과 상술을 접목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트랙리스트가 바뀌어 버렸다.
필자는 그래도 초판 리스트인 4집 테잎을 학창시절에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이사오면서 테잎을 잃어버리고 CD만 듣고 있다.
그런데 이 CD를 듣노라면 트랙 순서가 상당히 거슬린다. 유기성 또한 고려되지 않았다고 본다.
여러분이 4집을 지금 구하긴 힘들테고, 알기론 돈 주고 음원만 받는 사이트도 있다고 들었는데
궁금한 사람은 반드시 다음 순서대로 폴더에 집어넣으시길 바란다.
01. 못찾겠다 꾀꼬리
02. 생명
03. 보고싶은 여인아
04. 난 아니야
05. 산장의 여인
06. 꽃바람
07. 자존심
08. 비련
09. 따오기
10. 민요메들리
파일 이름의 앞에 숫자를 임의로 넣으면 된다. 순서를 위와 같이 플레이하시길 권한다.
특히 4집은 이 순서로 들어야 당시 조용필의 의도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다.
앞 트랙이 페이드아웃 되고 후 트랙이 슬쩍 등장하는 등의 유기성에 따라 짜여 있다.
고로, 본 리뷰는 예외적으로 이 '초판' 순서에 따른 트랙별 분석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01. 못찾겠다 꾀꼬리 (작사 김순곤, 작곡 조용필)
곡 전체에 깔려 있는 소리. 그렇다. clap소리를 스네어 대신 사용했다.
국내에 샘플링 기반 음악이 들어오기 한참 전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의 얕은 지식이 옳다면 조용필은 당대에 이미 샘플 소스를 활용할 줄도 알았던 것.
여기서 이의제기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조용필의 특징이 원테이크라면서 뭔 말을 하는것이냐? 와 같은.
근데 생각해 보시라. 원테이크가 맞긴 한데
조용필 외 누구의 곡을 들어도 보컬 더블링까지 원테이크 하는 건 아니다.
이건 당연히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clap도 마찬가지로 들어갔을 뿐이다.
고추잠자리를 작사했던 김순곤씨의 가사는 역시 파격성을 이어나가며
조용필 특유의 독창적 컨셉들 중 하나였던 '동심'의 세계와 어우러진다.
의도적으로 clap사운드를 넣었음을 느낄 수 있다.
실제 드럼의 스네어를 clap자리에 넣으면 동심의 세계와는 좀 멀어질 것이다.
당시 갓 성인이 된 20대들은 이 곡을 들으며
자신들의 유년기인 70년대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80년대는 한창 세상이 진보되어 나가며 이사가 잦던 가구도 많고,
그 여파로 당연히 '소꿉친구'는 추억 속에서나 남게 되기 마련인 까닭이다.
70년대는 한창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시기이다.
이렇게 젊은 층을 공략하는 '컨셉'이 곡의 구성 중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곡은 단순한 동심만 자극하는 곡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록 스타일이지만 국악의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이렇게 조용필은 국악 소리를 넣지 않고도 국악이 스며들은 듯한 음악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하다.
이 '한국적인'음악요소는 30~40대 성인층에게도 즐겨 듣는 곡으로 이 트랙이 남는 데 역할한다.
곽경욱 씨가 만들어내는 절정의 컷팅 감각은 곡 전체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김택환 씨가 직조한 베이스 슬랩사운드 또한 중간중간 양념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다.
전주 - A - 간주 이후 슬랩베이스 소리가 B부분을 받쳐 주고 있는 것.
B부분 이후 '얘들아 얘들아'로 이루어진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슬랩베이스의 훵키함이 더욱 고조된다.
하이라이트 멜로디만 보면 결코 들썩거릴 부분이 아닌데도
이 베이스 덕분에 매우 훵키한 느낌이 든다.
보통 하이라이트 부분은 단순한 멜로디의 상향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어 내던 방식에서 탈피,
그 방식을 안 쓰더라도 가사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내어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얘들아(C) 얘들아(A) 얘들아(G) 얘들아(E) 인데, 가성과 두성의 사용이 매우 자유롭다.
아예 두 창법을 화음으로 넣기까지 한다.
사실 일반 가수들이면 첫번째 '얘들아'에서만 가성이 제대로 나올 것이나
여기서는 4곳 모두 가성과 두성을 더빙시킨다. 그것도 화음과 함께.
그리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만 등장하는 신스 음색 또한
음역대와 기막히게 들어맞는 효과를 낳는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이라이트 부분에
못찾겠다 꾀꼬리 부분이 더빙되어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못찾겠다'만 여러번 반복시키며 아웃트로시킨다.
이 기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진짜 '못찾겠다'면서
투덜대는 아이의 모습으로 곡을 마무리짓는 효과를 보인다.
곡의 시작부터 쾌활하게 포문을 열고, 진보와 혁신의 새로운 음악을 선보임을 암시하는 트랙이다.
02. 생명
앨범 시작부터 훵키한 록 넘버로 시작된 앨범의 안정감을 이루어 주는 발라드 넘버.
그런데 대충 발라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후일 공연장에서는 헤비메탈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A-B-C로 이루어 나가는 전형적인 조용필식 작곡방식에 들어맞아 있다.
사실 후일 평론가들은 조용필이 '생명'의 사운드에 100%만족하지 못해
4집 이후 멤버가 전원 교체되었다고 분석하는 경향이 여럿 있다.
실제로 5집에 새로 가세한 송홍섭, 이호준 등의 멤버들은 지금도 전설의 세션들이다.
각설하고, 악곡을 보자. 이 곡의 육필 악보를 보면 꽤 흥미롭다.
Slow Beat라 써져 있으며, 악곡 처음에 4/4박 표시가 되어 있고, 파도소리 표시가 되어 있다.
플랫 하나가 붙어 있고, 악곡의 시작(전주)부분이 2성부 화음으로 표시되어 있다.
레파>미솔 / 파라>파시 / 라도>솔시 / 파라>미솔 (이후 도돌이표 존재)
70년대 조용필은 재즈 뮤지션들로부터 청음, 채보법 등을 학습한 바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도 악보를 꺼내 아이디어 스케치하는 습관은 유명하다.
악보를 보면 조용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음정을 그려 나갔는지 알 수 있다.
'생명'은 장식음을 없애고 최대한 간결하게 만들어져 있다. 클래식 피아노 소나타의 맛이 있다.
실제로 들어 보면 역시 같다. 파도소리와 피아노 전주로 인트로를 시작한다.
전주 이후 A부분. 드럼 없이 파도소리와 피아노 위주로 반주된다.
피아노는 코드를 간간이 쳐 나가면서 간결한 느낌을 유도한다.
A부분을 a, b로 나누면 a부분 이후 b부분부터는 기타 스트로킹,
약한 드럼과 신스 소리가 슬쩍 추가된다.
그리고 베이스도 슬쩍 추가되어 나가며,
곧 신디사이저가 선명히 나타난 뒤 B부분이 등장한다.
클라이막스로 들어가기 전에 음이 강해진다. 드럼 소리도 더 선명해진다.
이후 C부분 들어가기 직전 드럼을 빠르게 때린 뒤 클라이막스가 나오는 식이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신디사이저를 이용, '레미파라' / '도#미솔라'를 각각 한옥타브씩 진행하는데
비장미를 표현하게 위해 이 멜로디의 소리를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이 소리는 클라이막스 시기에 적절하게 등장하며, '생명'의 장엄함을 그려 내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과도기적 시기의 한계인지, 현대의 귀로 듣자면 뭔가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의 코드를 스타카토하게 곁들여 짚어 나가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 밴드에서 신디사이저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현악 세션들을 쓰자면 일단 밴드와 합일을 이루도록 훈련시키는 것 자체가 고역이며
거기에 음반 녹음, 라이브까지 하자면 1인당 추가되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신디사이저 스트링의 등장은 이 요소를 해결해 주면서 사운드도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당시는 신디사이저가 들어온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이 아쉬움은 조용필의 요즘 공연에서 들어보면 확실하게 해소되는데
신디사이저의 제대로 된 웅장함 및 마무리 부분의 헤비메탈적 자연스러운 변화를 맛볼 수 있다.
사실 조용필 공연의 장점 중 하나가 귀신같이 곡의 색깔을 바꾸는 편곡력이니.
신디사이저의 제대로 된 웅장함은 오케스트라 부럽지 않은 장엄한 완성도로 곡을 펼쳐나가며,
특히 대형 스크린의 입체영상을 활용하는 모습은
당시 첫 선을 보인 예당 공연에서 모든 관객의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1부의 마무리로 생명을 넣었는데,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 장내 아나운스먼트가 흘러나와도
온 관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무대만 바라볼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용필이 수년간 진행했던 예당 공연은 웬만한 뮤지컬보다 훨씬 내용이 낫다고 평가받으며
대중음악가수 최초의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진출이라는 기록도 성공적으로 그려내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일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니 그때 짚고 넘어가겠다.
사실 조용필 공연에 대해 소개하자면 음반리뷰보다 더 방대하고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냥 가수의 공연이 아니고 뮤지컬 이상의 무대 완성도를 펼쳐 보이는 까닭이다.
클라이막스 이후 베이스 라인이 둥둥거리며 클라이막스가 끝남을 알리고
조용필의 탄식하는 듯한 '생명이여...'이후 파도소리가 다시 등장한다.
어떠한 간주 리프도 없다. 그저 고요한 파도소리와
어두운 피아노 음색, 그리고 단선율의 신스뿐.
여기서는 신스 2차진행 시 왼쪽에서 좀 더 고음의 화음을 이루는 신스가 추가되는데
보통 낮은 음이 왼쪽에 패닝되고 높은 음이 오른쪽에 패닝되는 편견(?)을 깬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1절과 비슷한 분위기로 2절의 A부분이 다시 시작된다.
그런데, 절의 가사를 한번 짚어야 한다
'저 바다 애타는 저 바다 노을바다 숨죽인 바다 납색의 구름은 얼굴 가렸네
노을이여 노을이여 물새도 날개 접었네' 까지가 a라면
'저 바다 숨쉬는 저 바다 검은바다 유혹의 바다 은색의 구름은 눈부시어라
생명이여 생명이여 물결에 달빛 쏟아지네'까지가 b이다.
a와 b가 한 절에 들어가 대위를 이루는데, 조용필의 철학 중 하나인 '희망'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조용필은 작사가에게 가사를 많이 받으나, 그 가사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반드시 자신이 검토하고 내용 수정을 의뢰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고쳐나간다.
1절과 비슷하게 2절도 진행된다. 그러나 2절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약간 feel이 더 들어가 있다.
클라이막스 직전부터 피아노 두들기는 사운드를 비롯한 장엄함은
발라드의 감성을 완전히 뒤집는다.
실제로 현대까지도 볼 때 보통 발라드와 '생명'은 곡 자체가 많이 다르다.
하긴 곡 자체가 광주대학살의 분노를 은유적으로 그리는 곡이기에 장엄해야 어울릴 것이다.
이후, 1절에서 보인 '생명이여'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기 울음소리를 집어넣어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파도소리와 천둥소리, 그리고 또독또독거리는 효과음까지
모두 악곡의 마무리까지 주제와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후주를 전주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해 나가나 그 스케일은 좀더 넓게 하여 다른 맛을 꾀한다.
03. 보고싶은 여인아 (작사 임석호, 작곡 임석호)
상기 두 트랙의 상반되면서도 일치하는 명곡으로 시작된 4집 앨범,
자칫 잘못하면 보수적인 성인층 대중에게는 낯설음을 느끼게 할 지도 모르는 타이밍에
그들을 위한 성인가요를 3번째 트랙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미워 미워 미워'에서 보이는 진부한 트로트와는 뭔가 그 색깔이 다르다.
이런 고급 성인가요를 '어덜트 컨템포러리'라고 부르는데, 5집 '여자의 정'과 연결된다.
'정에 취해 정에 취해'로 넘어가는 클라이막스에서
조용필의 창법 또한 트롯창법과는 궤를 달리하며
반주 또한 위대한탄생 밴드가 담당하여 각 파트간의 담당이 잘 되어 있다.
1, 2절 모두 A시작 직전 피아노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시작을 알린다.
이건 성인층을 위한 트랙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되어, 길게 분석하진 않는다.
04. 난 아니야 (작사 김순곤, 작곡 조용필)
김순곤 작사 조용필 작곡으로 아예 동심의 끝 '창작동요'가 탄생했다.
유년층을 위한 트랙이라지만 특유의 조용필스러움(?)에 의해 어른들도 많이 듣는 트랙이 되었다.
조용필 특유의 미성과 비성을 제대로 살려 동심을 자극하며,
위대한탄생의 반주 또한 꽃밭에서 함박웃음 짓는 아이들을 제대로 그려준다.
거기에 곡 진행이 약-중-약-강 으로 각 절이 구성되어 있어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중'에서 보이는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부분은
특유의 가성을 악기처럼 더빙시킨 화음파트로 넣어
자칫 잘못하면 동요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를 부분을 기막히게 처리했으며,
이 부분에서 반주간의 화음 또한 단순한 '동심'만 추구하지 않고
화음으로 발생하는 긴장감의 유지와 해소를
적절히 이용해 진행하는 것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2절 이후는 '랄라라라'라는 인간악기(?)를 사용해 마무리짓는다.
고추잠자리가 떠오르는 구간.
이를 단순한 멜로디의 루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요는 단순해야 한다.
05. 산장의 여인 (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
당연히 반야월 선생께서 조용필의 당시 신보 작사작업에 직접 참여했을 리는 없다.
60년대에 이미 히트했던 옛노래를 조용필이 리메이크한 식이다.
이 곡은 진부한 트롯과는 달리 고급스러운 가사와 멜로디 진행이 지금도 촌스럽지 않다.
단순한 악기 편성으로 멜로디의 반주를 극대화하는 편곡력이 돋보이며
조용필은 리메이크를 해도 원곡과 전혀 다른 색다름을 뽑아내는 능력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클라이막스의 고음역에서 펼쳐지는 두성 창법 또한 괜찮다.
06. 꽃바람 (작사 양근승, 작곡 조용필)
A면의 '생명'과 어떻게 보면 연장선을 이룬다고 생각되기도 하는 록발라드 형식의 곡이다.
필자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90년대 편곡버전보다 이 소란스러운(?) 원곡 버전이 더 좋다.
와우페달을 이용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며
B부분으로 넘어가기 이전 신스를 이용한 강조음 또한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이후 C부분(클라이막스)에서는 특유의 무시무시한 두성 창법이 돋보이며
2집의 '세월'과 마찬가디로 클라이막스 이후
약간의 나긋나긋 읊조리는 부분을 지나 간주가 펼쳐진다.
곽경욱 씨로 추정되는 기타 간주는 당시 위탄밴드 특유의 록사운드로 채색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약-중-강의 패턴을 가진 전형적인 조용필식 작법에 의거한 작품이다.
마무리 부분, '이제는 안녕'부분을 반복하며 점차 페이드아웃 시키고
슬쩍슬쩍 들어가 있는 일렉기타 소리 및 클로즈하이햇 소리 또한 곡의 분위기를 잘 그려낸다.
록발라드 곡의 페이드아웃은 이 트랙 이후 등장하는
신명나는 드럼의 출현과 또한 잘 맞닿아 있다.
07. 자존심 (작사 조종순, 작곡 조용필)
당시 A면의 히트곡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히트한 트랙이나, 후일 명곡으로 자리매김한 곡.
일단 악곡분석 이전에, 드러머 이건태씨의 인터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출처-위대한탄생 팬클럽)
Q: 조용필 님이 최종적으로 편곡을 결정지었지만,
이건태 님이 드럼 편곡은 직접 하셨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조용필 3집과 4집 음반에 담긴
국악 리듬과 유사한 드럼 리듬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A: 그건 (조)용필이 형이 '국악을 록처럼 만들어 보라'고 오더를 주길래,
제가 악보를 보고 아이디어를 잡고 연습해서 음악으로 창조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독특한 리듬을 만든 거예요.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거든요. 그때도 드럼으로 국악 리듬을 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국악하는 사람이 장구로 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잖아요.
근데 그걸 드럼 리듬으로 소화한 것은 제 연주가 아마 가장 초창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저보다 먼저 친 사람들도 있겠지만
레코드로 만들어서 선을 보인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후로 제 연주가 거의 교칙본처럼 된 거지요.
이 인터뷰 내용을 보면 조용필이 '국악'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자존심'트랙도 국악의 느낌이 스며든 록이다.
위대한탄생 밴드는 언제나 최고의 세션만을 요구하였고, 당시 드러머는 이건태 씨였다.
이 연주는 후일 드러머 지망생이 드럼 졸업하기 전에
필수코스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훗날 '가장 한국적인 대중가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지면
그 대답은 조용필의 '자존심'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저 한국 악기의 주법을 흉내내는 차원에서 벗어나 창작한 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위에 드럼이야기를 길게 했는 만큼, 인트로에 들려오는 드럼 소리를 한번 들어 보라.
인트로에 나오는 드럼 리듬은, 얼핏 들으면 그냥 단순하게 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막상 고개를 끄덕여 보려 하면 드럼보다 장구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즉, 국악이 아닌 리듬을 국악 느낌이 강하게 나도록 만든 양악 리듬이다.
드럼이 계속 이어지면서 전주를 엮어 나가는 가운데
블루스 일렉 피아노 > 슬랩베이스 > 신디 > 일렉기타 의 순서로
각 악기가 '누적'되면서 전주 리프를 이끌어 간다.
특히 여기서의 베이스 슬랩 주법의 훵키함은
어느 음악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강력한 '자존심'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마지막으로 일렉기타의 지극히 한국스러운 리프가 터져나온 뒤 조용필의 보컬이 시작된다.
A부분이라 하겠는데, 이 곡 역시 보컬-연주-보컬-연주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더 극대화되었다.
시종일관 건반의 작지만 선명하고 경쾌한 타건 또한 리듬을 선명하게 살려 준다.
판소리와 록음악의 완벽한 크로스오버를 보여주는 조용필식 탁성을 여기서 들을 수 있다.
4마디 중 3마디 이하를 보컬, 1마디 이상을 일렉기타에 부여해 A부분을 꾸며나가고
그 다음은 힙합으로 치면 HOOK이라 할 수 있을법한 가성 부분인 '이 마음은 사랑일까'부분이다.
후일 공연장에서는 가성음역은 코러스에 맡기고
조용필 자신은 두성을 써서 훨씬 파워풀하게 선보인다.
듣기에는 신디사이저를 2개 사용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가 않다.
하나는 그냥 키보드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좌측 신스와 우측 신스가 있는데
음향에 관심 없는 분들도 우측 신스의 신명나는 라인은 또렷이 들릴것이다.
그 다음 B부분이 나오는데, 2마디 보컬 2마디 연주리프 식이며,
더욱 다이나믹하게 짜여진 멜로디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아까 후렴구에서 좌측에 있던 신스가 우측으로 이동하여 좀더 선명하게 코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드럼이 변했는데, A부분에선 스네어를 ??리던 부분이 B부분에선 심벌을 때린다.
드럼의 심벌은 분위기 변경 시 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독특한 부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독특한 사용이 국악적인 느낌을 더욱 살려 주는 효과를 낳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B부분은 A부분에서 보컬 이후 등장하는 연주부분이 훨씬 강화되었는데
뜨르릉 띠잉 뜨르릉 띠잉 하는 일렉기타 밴딩 사운드를 위주로
베이스를 비롯한 모든 악기가 강조된다.
기타를 리듬악기로 어떻게 사용하며, 또 국악적인 요소를 국악 현악기 주법을 답습하지 않고도
충분히 리듬감있게 표현할 수 있음을 이렇게 새로운 사운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종일관 경쾌하게 때리는 피아노와 완벽한 화음을 유지하는 베이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후 후렴구가 다시 나온 뒤 곡의 간주가 나온다.
B부분에서 기타밴딩 위주로 반복 강조되던 악기들이 일렉기타를 제외하고 다시 강조되면서
특유의 국악적 록 리듬을 엮어내고, 그 리듬 위에 일렉기타가 리프를 펼쳐나간다.
태평소 연주가 연상되는 이 리프는 일렉기타로 빚어낸 쾌거이며
단순히 기존 국악의 연주나 멜로디 혹은 주법을
답습하지 않고 서양 록의 뿌리를 제대로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우리 민족의 DNA를 자극하여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 탄생된 것이다.
간주 이후 2절이 나온다. 1절의 훵키함을 다시 반복시켜 주어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사실 지루한 절이면 변용을 해야 하는데 여기선 절 하나 자체가 워낙 훵키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반복시켜서 갈증을 해소해 주는 효과도 매우 좋은 진행이다.
다시 말하는데 조용필식 편곡의 미학은 절제미에 있다. 화려함보다는 담백하면서 세련된 것.
2절 이후 후렴구 라인이 한번 더 반복된 뒤 후주가 나오는데,
이때 후주는 B부분의 반주가 아닌
A부분 위주의 반주가 사용되어 지나친 리듬을 낳을 염려를 차단한다.
일렉기타가 마지막으로 반주들과 함께 마지막 불을 토한 뒤 깨끗하게 곡이 끝난다.
자존심은 이후 위대한탄생 밴드의 드러머라면 필히 마스터해야 하며
이 리듬을 위해 당시 위대한탄생 밴드 전체가 뼈를 깎는 훈련을 했음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후일 공연에서 아예 '여백의 미'까지 활용되고 더욱 록스러워지면서 더욱 국악스러워진 편곡은
이 조용필이라는 음악가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섣불리 생각도 못하게 만들곤 한다.
마지막으로, 강헌과 조용필의 대담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강 헌 : 로큰롤이 당신의 음악 영토의 드넓은 자양분이라면 진성과 가성, 탁성과 청성을 오가는
카리스마 충만한 당신의 보컬은 그 영토를 빛낸 꽃과 같다.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는 당신의 보컬이 진정으로 빛나는 것은 그것이 그저 타고난 재능이라거나
시류와 맞아떨어진 사운드 트렌드가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가
독창적으로 제련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80년 〈창밖의 여자〉, 그리고 91년 〈꿈〉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보컬은 끝없이 개화한다. 특히 1980년의 컴백에 성공했을 때
70년대 후반의 활동 금지 기간 동안
뼈를 깎는 독공(?)을 거듭했다는 신화아닌 신화가 퍼지기도 했던
당신만의 보컬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조용필 : 벤처스와 비틀스에 매료되어서 음악을 시작했지만
미8군을 전전하면서 많은 음악을 접했다.
주크박스에선 흑인 음악이 많이 나왔는데 슈프림스나 제임스 브라운, 윌슨 피켓 같은
소울과 리듬앤블루스를 만날 수 있었고
당시 미국 백인 음악을 대표했던 몽키스와 C.C.R.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후로도 많은 이들의 노래를 불렀다.
스티비 원더, 로드 스튜어드, 에어로 스미스, 비지스 등등등이
다양한 사람들의 창법을 흉내내면서 내 것으로 포섭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사람으로서의 정서가 서서히 완성되지않았나 생각한다. 우
리의 전통음악은 훨씬 뒤 내가 활동을 금지당했던 시절에 만났다.
깊이 있게 공부한 것은 아니고 고작해야 홍보전의 구걸하는 장면 정도인데,
악보로 옮기며 공부하다가 그 창법의 고-중-저 바이브레이션에 깜짝 놀랐다.
보컬을 본능적으로 타고났다는 흑인 음악도
대개 선율위에서 바이브레이션을 하는 것에 불과한데
우리의 판소리는 팝 음악하고는 갈래가 다른 리듬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뒤흔들어버리지 않는가?
여기서 배운 창법과 꽹과리의 리듬감을 실현해 본 노래가 4집에 수록된 〈자존심〉이다.
'당신은 저~~만큼'하고 떠는 국악적인 프레이즈에
펑키한 서구적 후렴부인 '이 마음은 사랑일까'를 결합시켜 본 것이다.
08. 비련 (작사 조용필, 작곡 조용필)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와 표절 여부 논쟁이 있던 적 있는데,
이후 신지는 조용필과 사이좋게 공연도 여러번 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니
아마 신지가 조용필 작곡임을 스스로 인정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렇게 친하게 지낼 리가 있는가.
작곡도 본인이 했고 작사까지 본인이 했는데,
조용필은 대중음악계에서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기사 슈퍼스타라는 입지가 말 한번 잘못하면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자리여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질문자의 과장을 걸러 내는 담백한 말투가 그대로 드러나며
꾸밈없이 솔직하고, 그 나이에도 세파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 또한 간직되어 있고,
동시에 슈퍼스타로서 장기간 살아남고 영원한 현역으로 뛰는 강인함 또한 묻어나곤 한다.
조용필은 멜로디 못지않게 노랫말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사람이 직접 작사한 가사답게 진부하지 않고 간결한 노랫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마이너 발라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곡이다.
좌측에서는 일렉기타 클린톤 아르페지오 피킹 및 피아노 왼손
우측에서는 피아노 오른손 반주가 열리며 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심벌즈가 약하게 울리다 점점 강하게 울리며 기타가 나오는데
필자는 이 부분을 최근에서야 캐치했다. 그리고 필자가 예전 작곡할 때의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Hero라고 이름붙인 힙합 비트인데, '스으읍'하는 소리를 만들 줄 몰라서
할 수 없이 크래쉬 심벌을 여러 번 겹쳐놓고 벨로시티를 약>강 순으로 조정했는데
촤르르르륵 하는 질감이 꽤 듣기 좋았다.
'호오 우연이지만 나도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 수 있구나'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몇달 뒤
이미 28년 전의 조용필이 이 소리를 만들었음을 깨닫고
필자의 착각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부끄러웠다.
조용필이 우우웅 하는 소리를 3집에서 넣은 바 있으니 그걸 몰라서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넣은 심벌 소리라고 본다. 긴장 풀고 들어보면 이 차가운 음색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스으읍 하는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타격감과 차가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심벌이다.
그런데 또 가만 생각해보면 '스으읍'하는 효과음도 나름대로 어울릴 듯 하다.
전주 연주 또한 a, b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a에서 b로 넘어가기 전 피아노의 부드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까 성인취향의 트랙으로 소개했던 '보고싶은 여인아'에서
건반 전체를 손으로 쓸어내는 듯한 소리.
이후 b부분은 a부분과는 많이 다르다. 멈추었다 풀어주면서 4번 포인트를 보인 뒤 또 멈춘다.
그 다음, 조용필의 보컬만 등장한다. 이 부분이 아주 유명한 '기도하는'이다.
필자의 친구들 중 '비련'의 제목이 '기도하는'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여럿 된다.
조용필의 한 서린 보이스로 시작한 보컬의 시작은
인트로 전주의 시작과 비슷하게 악기가 편성되었다.
중앙에서 베이스, 좌측에서 일렉기타 클린톤 및 피아노 저음, 우측에서 피아노 고음이 나오는데
패닝을 일부러 이렇게 한 것 같다.
기타 중음과 피아노 저음을 좌측, 피아노 고음을 우측에 놓았는데,
고음주파수가 가장 잘 들리는 현상을 고려,
좌측에 중저음을 같이 넣어 밸런스를 맞추려 한 의도로 생각된다.
B부분 '돌고 도는 계절의'부터 드럼 하이햇 위주의 연주가 추가되어
리듬을 슬슬 이끌어갈듯 말듯 진행하다
B부분이 끝날 무렵 그냥 탁 놓아버려 긴장감을 특이하게 해소해 주고,
중간 조용필 특유의 탁한 '허어'부터 디스토션 일렉기타가 선율을 조금씩 쳐서 간을 더한다.
이후 C부분, 감정이입이 절정에 달한 흐느끼기 직전의 창법으로 '용-서 하오'를 읊조리는데
이 읊조리는 분위기와 걸맞게 인트로 전주의 부분과 같은 악기진행이 보인다.
그리고 C부분도 a, b가 있는데 '물새에게'부터 b부분인 클라이막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a에서 b로 넘어갈 때, 즉 클라이막스의 문턱에 다다를 때 심벌의 촤르륵 펼쳐진다.
분위기 전환이라는 기본 역할을 좀 더 응용하여 접목시켰다.
디스토션 기타가 또 단선율을 조금씩 조금씩 넣어 간을 쳐 주고 있다.
'물어보리라'이후 인트로 전주 b부분과 비슷한
강조형 연주가 한번 이루어진 뒤 연주가 잠시 끊기고
앞서 '기도하는'과 같이 보컬만 '몰아'가 나오고 그다음 '치는'부터 잔잔한 피아노가 펼쳐진다.
그렇게 클라이막스 부분이 강에서 약으로 펼쳐진 뒤
'철새에게 물어보리라'로 중까지 슬쩍 도달한 뒤
다시 강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보컬 대신 간주가 강의 역할을 대신해 단조의 선율을 연주한다.
간주 리프 또한 피아노리프 > 기타리프로 이어지는 누적형 악기 구성인데,
C부분의 마지막이 간단하기 때문에 간주의 도입도 간단하게 이어 놓고
그다음 기타리프를 넣어 간주를 보강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전개되는 효과를 낳았다.
간주 이후 다시 시작된 A부분은 좌측의 신스 소리가 차갑게 유지되면서
2절의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그러나 이 소리는 '포옹하는'부터는 우측으로 소리가 옮겨가며
차가움이 해소되는 음색으로 바뀌고
이 음색의 운용은 A부분 시작시의 떨어트리는 피아노 진행과 비슷하게 떨어져내려가는데
처음의 신스 소리보다는 덜 차갑게 이루어지고 방향도 바뀌어 차가움이 해소된다.
잠깐 신스가 끊긴 뒤 B부터는 다시 왼쪽으로 옮겨가 차가움을 표현하며,
이때 멜로디 변화가 좀 주어졌다.
그리고 1절의 B부분에서 나온 기타소리와 달리 한옥타브 올라간 디스토션 기타가 나와
1절보다는 더 고조된 느낌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악기 운용이라 할 수 있겠다.
C부분까지 간 다음 B부분부터 한번 더 반복된 뒤 곡은 끝난다.
그런데 2절에서 이렇게 반복되면 '몰아치는'부분이 두 번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서 '몰아'의 창법이 각각 다르다.
첫번째 '몰아'보다 두번째 '몰아'에서 더 탁해지며 숨이 끊어질 듯 말듯한 느낌이 강하게 나오는 것.
둘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로 생각된다.
보통 '비련'의 장르가 뭐냐고 물으면 발라드 말고는 달리 답할 데가 없는데
이걸 발라드라고 부르기엔 곡 자체가 좀 이질적이다. 그렇다고 록으로 보기도 좀 그렇다.
어떻게 보면 '마이너 발라드'라고도 하는데,
이 '비련'은 사실 클래시컬한 발라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오페라 악극에서 사용되는 분위기 전환과 멜로디라인 진행 방식이 보이는데
이 때문에 한국 마이너 발라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명곡으로 남게 되었으리라 본다.
후일 조용필은 클래식과 본격적으로 접목한 편곡방식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미 이 시기에도 오페라틱한 장엄한 악곡 전개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은 그의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09. 따오기 (동요)
'난 아니야'가 창작동요였는데, 이 '따오기'는 기존 동요이다.
꽃바람-자존심-비련-따오기-민요 메들리로 이어지는 B면 트랙 전개는
그냥 듣고 있어도 자연스러운데, 필자는 비련 이후에 민요메들리가 들어가도 될 것 같다.
동요이니만큼 단순한 구성을 보여주며, '난 아니야'와 비슷한 창법을 사용했다.
전체적인 음색은 최대한 따뜻하게 흘러가며, 당시 건전가요 차원에서 넣은 것 같다.
필자는 '따오기'보다는 '난 아니야'가 훨씬 더 좋다고 본다.
곡의 마무리는 일부러 민요메들리와 엮기 위해 그렇게 편곡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 돋는 나라'로 점차 음을 끌며 끝낸다.
10. 민요메들리 (81해운대비취 페스티발 실황. 새타령-남원산성-성주풀이-진도아리랑)
당시 장년층을 위한 안배로 실황 민요 음원을 넣었겠지만, 지금 들어도 기막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 같이 능숙한 연주와 보컬은 왜 위탄밴드가 최고인지 여실히 보여 준다.
곽경욱 기타리스트 특유의 절정을 달한 컷팅/뮤팅 스트로크는 상당히 스윙감을 보여주며
여기서 펼쳐지는 조용필의 창법은 전통 국악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국악적이면서도
전통 국악의 지루함은 떨쳐낸, 이른바 국악-록 퓨전 창법을 기막히게 선보인다.
이 곡을 들으면 '자존심'트랙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4집을 접할 당시 '자존심'과 '민요메들리'를 무의식중에 헷갈리곤 했다.
민요를 록 리듬으로 바꾸어 기막히게 편곡한 이 능력은 지금 봐도 신기하다.
새타령에서 특유의 가성 창법을 지나 남원산성까지 하나의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어놓고,
이후 자연스럽게 성주풀이로 넘기는데,
이 코러스는 위대한탄생 세션이 담당한 듯 하여 재미를 선사한다.
'님을' / '잃고' / '님을' / '찾아'를 보면, 숨이 헐떠덕 넘어갈 듯 하면서도
그 짧은 순간에 들이마신 뒤 토해내고
다시 숨넘어갈 듯 하면서 또 토해내는 이 창법이 특히 압권인데
스튜디오가 아닌 라이브 실황에서 이런 경지를 보여줄 정도면 연습량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구슬픈 진도아리랑이 2박의 경쾌한 록사운드로 재해석된 메들리의 끝부분은
사람들이 쉽게 박수치며 따라할 수 있도록 배려한 편곡인 듯 싶다.
이상을 보며 센스있는 독자라면 4집 대부분이 '조용필 작곡'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성인층을 넘버 및 건전가요를 제외한 전체 곡을 조용필이 작곡했으며
서너개의 수록곡이 아닌 앨범 자체를 히트시켜 버린 신기한 현상을 또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4집 발매 이후 1개월 뒤 미국 11개 도시를 순회공연하기도 했고
같은 해 초겨울 즈음 전국 8대 도시 순회공연을 펼친 바 있다.
앨범 제작동안 못다한 공연의 욕구를 이 때 맘껏 풀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2% 부족한 사운드'로 인해서인지 세션 전체가 교체되었는데
이 덕분에 4집 못지않은 완성도로 제작된 5집 앨범의 사운드는
보다 진보된 음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본 앨범도 마찬가지로 유년층, 청소년층, 청년층, 중년층, 장년층, 노년층 모두를 사로잡았으며
그에 못지않게 음반의 완성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훗날 한국 대중음악사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성과를 이루기도 한다.
특유의 음악적 철학 또한 녹아들어가 있는데, 여전히 이 때 '소속가수'였음을 생각해 보면
정말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5집의 멤버들이 4집에 미리 참여했더라면 더욱 나은 사운드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것을 달리 보면 4집과 5집만의 각 색깔이 부각되는 이유일 수도 있으니 꼭 한탄할 일은 아니다.
3집과 더불어 조용필의 초기 정규작 중 반드시 챙겨들어야 할 앨범이며
대중음악 자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필히 챙겨야 할 명반이다.
필자는 어떤 앨범이든 별점 5점을 주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 앨범은 별 5개를 매기도록 한다.
참고자료
- THE HISTORY 책자. 팬클럽 위대한탄생 출판.
- 특별대담 강헌에게 묻다. 네이버카페 음악취향Y.
- 조용필 4집 승훈님 리뷰글
-
첫댓글 조용필 좋아해서 리뷰 써주실 때마다 항상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40주년 공연영상은 몇번을 봐도 멋있네요.ㅎㅎ
그리고 사족인거 같은데 40주년 공연 자존심에서는 용필옹이 후렴구 첫소절 가성부터 나머지 부분 두성까지 전부 직접 하시더라구요. 보는 제가 숨이 차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