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살아요 / 서경희
한참 수다를 떨다 전화를 끊으며 저쪽이 “사랑받고 살아요!” 하고 덕담 마무리를 한다. 어머, 멋진 사람. 갑자기 주위가 환히 밝아온다. 전화기 한 대가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찬란해진다.
‘예상치 못했을 때 공격하라’는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처럼, 예상치 못한 나를 기습한 그 작전 없는 한마디가 정말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무상으로 들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말 하나로 나는 지금 무상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우쭐거리고 있다.
기분 좋은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지금 나는 여태 하지 않은 착한 일을 막 할 것 같고, 미운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버릴 것 같다. 사람을 천진난만하게 하는 말의 요술에 내가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구나.
아무렴 어떠랴.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낚이게 되어있다. 그러니 나를 낚은 그 인생최고의 말 한마디에 지금 나는 칭찬받은 고래처럼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갈망하는 존재다. 무언가를 향한 목마름에 항상 부족을 느끼며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2%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 하나에 대책 없이 빠져드는 인간의 천진함은 그 영원한 결핍이 낳은 산물인지 모른다. 칭찬받아 기분 나쁜 사람 없다는 평범한 말은 비범한 말이다. 칭찬이 일으키는 불꽃은 때로 오묘한 치유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 더 큰 생산의 불이 되기도 한다.
사람 사이에서는 상투적일지언정 ‘좋은 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새해나 좋은 날들에 주고받는 습관적인 덕담이 은연중 마음의 꽃이 되고, 으레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좋은 말에서는 희망이 살아난다. 사람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온 이 훌륭한 혜안이 오랜 세월 우리의 미풍양속에는 있었다.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섬광(閃光) 같은 좋은 말은 그러나 쉬이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행복에 빠지게 하는 그 아름다운 올가미는 사랑처럼 어렵게 올 것이다. 그래도 주변에는 그런 그물이 항상 널려있다.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의 그물이 아니라 때로 나락의 덫이 될 수도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능히 듣기 좋은 말의 우물에 빠진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 역사에서 대부분 멸망의 역사는 나쁜 사람들이 이런 비법을 터득하여 높은 분들을 사로잡은 경우가 아닐까 한다. 우리 개인에 있어서도 달콤한 아양의 말에 속아 나를 잘못 진단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말의 힘은 크다.
그 어떤 칼보다도 깊숙이 사람의 마음을 베는 것이 말이다. 말 하나에 호들갑을 떠는 내 자신이 나뭇잎같이 가볍다 할지라도 깊숙이 나를 사랑으로 벤 그 아름다운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사랑받는 것이 삶의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내 쉰 세대의 철학을 절묘하게 기습한 ‘사랑받고 살아요!’라는 그 말은 진정 향기로운 말이다.
사랑받고 살아요!
다른 말로 사랑을 베풀고 살아요! 하는 명령과 같다. 온갖 말을 하여도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의 최대치’라는 말이 최적의 정의이리라 본다. 오리 다리가 짧은 것도 학의 다리가 긴 것도 모두 타고난 본성이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처음과 끝이라고 성인은 무겁게 말하지만,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받고 살아요! 사랑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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