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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고향에서 아는 누가 전화를 했을까 받았다.
은행 안은 시끌벅적하고 휴대폰 너머에서는 누가 전화한 것인지 뭐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일 시 노래를 한다.’는 대명항에 같이 가기로 했다.
인천으로 전화한 문예지 대표를 만나러 갔다. 운전은 내가 했다. 대표는 조수석에서 연기만 날렸다. 나는 신인이다. 시인이 됐다는 거였다. 투고한 원고가 있었지만 홧김에 낸 것이라서 3년도 문청 시절을 안 보낸 일이 시가 될 줄은 꿈도 안 꿨다. 그 원고를 보낸 곳은 집 앞 도서관에 들어온 우수문예지 딱지가 붙은 것을 보고 믿고 ‘고향에서 낸 문예지가 우수 문예지?’ 하고 믿고 냈다. 가을 호에 시가 발표된다고 했다. 문학나무 봄 호에 산문 신인상을 수상했던지라, 그냥 순번에 떠밀려서 밀려갔다.
작가가, 시인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조차 없었다. 여고시절부터 편지 쓰기는 매일의 일상만 같았다. 지금의 의자도 편지만 일 년 써 보내고 받으며 일 년 후 만나 무덤을 팠다. 농사에서 쉼을 얻는 휴식 같은 시간은 일기나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그 일이 연결돼서 시인이 되기까지 의식조차 못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들어간 마이크로 전자 회사에서 입사 동기를 쓴 원고료를 일천 원 신권으로 받은 것이 첫 원고료였다. 한 번은 올림픽공원을 지나가다가 선생님들 같은데 백일장을 하는 듯했다. 그냥 옆에 앉아 5분 정도 끼적여 제출한 것이 오만 원이라는 거금을 탔고 코스모스 상을 탔다. 그 후 송파문화원에 강의를 신청했다. 그들끼리 만나 남한산성에서 미래수필 발기회도 했다. 그들 전부는 아마도 수필가가 됐다. 시인도 여럿 됐다. 저들이 서울시 백일장이라든가, 신사임당 등 자주 백일장에 나갔다. 서울시 여성 백일장에서는 고건 시장이 주는 상을 탔다.
신학교는 두 번 그리고 방송대는 자퇴를 했다.
성남시에 와서는 수필 최우상도 수상했다. 시도 상을 탔다. 경기도에서 상을 탔다. 상금도 컸다. 그런데도 아직도 난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도서관 앞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도서관이었던가? 재미가 붙은 듯 한두 블록 지나 도서관은 자꾸 생겼다. 시골 농사꾼 딸이 처음 다녀보는 사원은 꿈과 별사탕 같았다. 특히 시 창작반이랄까, 문예 창작반이 생긴 일은 아마도 나를 위한 반만 같았다. 강의 시작 전에 예습하고 들어가면 강사는 내가 읽은 시를 가지고 왔다. 이상도 한 일이었다. 한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하고 홀로 철학이라든가 서양미술사 그리스 신화 등 많은 책을 섭렵하고 있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속도를 냈다.
늘 아버지가 시켜서 하는 농사가 싫기만 했는데 처음 보르헤스의 사원을 만나고 책 읽기에 빠지고, 영화를 같이 보며, 그림도 읽으며 점점 어디로 향하는지 사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두 아들 대학 입학 후였다. 의사 맘이 된 후였다. 그 때문에 썼다. 의사 한 명 길러내는 일이 어떤 일인지 사는 것이 힘겨워서......,
3년쯤 되었을 때 화가 나서 던졌던 시가, 시도 아닌 것이 시인 신인상이라고 불러주었다. 누군가의 호명이 거울을 질문자로 만들어 놨다. 나는 처음 그 전화를 받던 그 자리에 자주 간다. 스퍽이 들어와 있어 콜드 블루 한 잔 시켜 마시며 장남이 사준 갤북 자판을 패는 일이 가장 즐거운 소일거리가 됐다. 죽기까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시장 휴대폰에 ‘산책로에, 공원에 의자는 있는데 책상이 없으니 통나무 자른 것 하나씩 박아달라’ 어디서든 쓸 수 있기를 소망하며 커피숍의 주인과 객 사이를 생각했다.
잠실 가장 높은 탑 자락에서도 끼적이고 있으면 지나가는 노구들이 ‘멋있다’고 했다. 저들도 하고 싶다는 표현만 같았다. 어느 문화센터 시 창작반에는 7, 8십 대가 주류다. 모두 시인이면 어떠한가, 상관없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시 한 문장, 보석 같은 수필 한 줄은 우리의 뿌리만 같다.
기형도 시인의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는 시구처럼 나도 이젠 희망을 쓰고 싶다. 시를 하며 공황증세도 낫다. 가을이었다.
가족 중 끼적이는 자유인 한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록자이니까, 증인이니까.
인헌왕후 후예로 태어난 줄을 요즘에야 알았다.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
* 스퍽/ 스타벅스
인천시 강화 출생
2006년 문학나무 산문 신인상 수상
2006년 리토피아 시인 신인상 수상
시집 /네바강의 노래. 하루종일 혀끝에
산문집/ 가면의 거울
한국시인협회 회원
송파 문인협회 이사로 활동 중
홍재문학상 우수상 수상
문학 나눔 노래콘서트 노랫말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