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반영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고들 한다. 인지하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모두가 대응할 것이고, 그에 따라 리스크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블랙 스완만이 위기를 일으키는 원인은 아니다. 방치된 회색 코뿔소가 시장을 들이박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2013년 저축은행 위기가 그랬다. 부동산 시장 침체는 반영되어 있었으나, pf 연쇄부도를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블랙 스완에 대해서만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흑조가 보여주는 충격이 코뿔소 따위가 주는 타격보다는 훨씬 강렬하고, 쓰라리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나, 87년 검은 월요일 당시가 그랬다. 빈도는 적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서론이 길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흑조와 코뿔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부동산 시장에서 위기가 온다면, 어디에서 위기가 올까? 시장의 컨센서스는 PF, 그중에서도 지방 주택시장 미분양에서 비롯된 PF가 주요한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증권사, 건설사, 저축은행이 뇌관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과도한 PF 대출을 일으켰던 회사들의 주가는 박살이 났다. 메리츠증권, 한국금융지주는 시가총액이 반토막이 났다. 메리츠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공매도 비율이 무려 50%에 달한다. 신나게 물어뜯기는 중이다. PF대출은 회색 코끼리이다.
근데 왜 꼭 지방 부동산에서 위기가 터져야 한다는 것일까? 미분양이 지방에서만 많을 것이라는 정확한 근거가 있을까? 지방 위기설의 주요 근거는 2개이다. 먼저 저번 저축은행 사태의 주요 원인이 지방 PF 미분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수도권 분양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고, 지방 건설사들은 개작살이 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평가이다. KIS신용평가, 각종 증권사, 부동산 유튜버들은 이런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수도권의 경우는 항상 수요가 많기에 미분양이 생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더 비싼 집값을 감수할 수 있으며, 인프라 역시 상당히 고도화되었기에 수도권의 집값이 비싸지 않고, 분양 역시 문제없이 착착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이러한 시각을 공유한다. 나는 이들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고 생각한다.
시장 전반에 깔려있는 믿음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자. 정말 지방 부동산이 위험하고, 아크로 리버파크로 대표되는 럭셔리 아파트의 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2013년 미분양 사태 당시, 지방 아파트가 초과공급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위기 전후로 정부는 버블 꺼뜨리기에 열중이었다. 그 유명한 버블 세븐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시기가 이 때이다. 정부가 지정한 7곳의 부동산은 거품이니 투자하면 죽습니다?라고 칼들고 협박하던 시기이다. 정부가 아무리 시장을 억눌러도 시장은 초과이윤을 찾아 나선다. 규제 몇 건 따위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9.27이니 8.92이니 하는 허울좋은 대책들은 버블의 질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방 부동산에 버블이 끼기 시작했다. 6대 광역시를 포함한 비수도권의 주택 매매가격이 수도권의 그것과 거의 차이나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가 이때이다. 정말 지방아파트의 가치가 올라가고 일자리가 늘고, 인프라가 보강되어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것이 아니다. 자본은 투자되어야 했기에, 지방 부동산에 돈이 몰렸을 뿐이다. 실제 거주민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투기 수요가 시장 가격을 움직였다. 하지만 버블은 그저 버블에 불과하다. 이전부터 비수도권 지역은 주택가격에 연연하지 않았다. 집 없는 설움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의 자가 보유율은 40%대에 그친다. 강남의 경우 그 비율을 통계에 따라 30%, 혹은 20% 중반까지 내려간다. 지방은 광역시의 경우 65%의 가구가 자가를 가지고 있다. 기타 시군구는 무주택자의 비율이 20%대에 그친다. 이러니 미분양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수요와 관계없는 투기수요가 몰렸을 때, 건설사들은 주택공급을 할 유인이 생긴다. 하지만 실제 지역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공급이기에 필연적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현재 시장에 적용해보자. 모두가 지방을 혐오한다. 인구소멸이니,미래가 없는 땅이니 하면서 지방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바보 짓으로 생각한다. 반면 수도권의 경우, 모두가 우상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보다 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마지막 비관론자까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건설사들은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경우는 조금 낫다고는 하나, 경기 인천 지방에 막대한 양의 주택 공급이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낙관론자가 다주택자 혹은 갭투기꾼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수요를 벗어난 투기 수요가 시장의 가격을 좌우했다. 그 결론 역시 지극히 명확하다. 잠재수요에 비해 과다 공급이 이루어졌다.
과거 2013년의 미분양 사태가 반복된다면, 모두가 우려하는 대구보다는 경기 인천에서 위기가 시작될 것이다. PF 리스크라는 회색 코뿔소 사이에 흑조가 한 마리 숨어있었다. 흑조의 이름은 수도권 미분양 사태가 될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본다.
하지만 PF 정도로는 한국 경제의 시스템 위기가 온다고 하기 힘들다. 회색 코뿔소이기 때문이다. 진짜 흑조는 PF에서 오지 않는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리스크가 0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은 터진다.
나는 시스템위기의 진원지가 전세제도, 그리고 HUG의 전세보증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읽어볼것
반응좋으면 2편써봄
부동산 좋은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0.25 17:32
부동산의 문제가 전세에서 오는거
이게 진짜 심각한거같음...
부동산, 경제
굳
감사합니다!
부동산 너무 어려움 ㅠㅠ
it 랑 대기업발 임금 상승때문에 폭락이 올까 싶음
상위 소득이면 둘이서 세전 2.5 ~ 3억이라 자산가치 하락이 걱정되서 안사지
이미 수도권도 역전세 나오기 시작해서 하락이 짧게 끝나지는 않을것 같네요
전세 순기능 보면 좋은점이 있지만, 버블이나 위기때는 전세문제가 항상 큰듯
전문가 ㄷㄷ
전세 다들 별로라 하는데 그러면 월세 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