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봄이 왔다' 라고 할 때 그 '봄'은 개나리와 진달래로 상징되어 왔다. 그래서 이들 꽃을 '봄의 전령사'로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
이들의 차이를 안 것은 불과 4년 전이다. 그러나 '생강나무'라는 이름은 모른 채 이 꽃을 과거에 본 적이 있다. 약 20년 전, 안동 길원여고에서 고3 담임을 할 때이다. 저녁을 먹고 야간자습을 하던 무렵 휴식 시간을 이용해 시내에 나갔다가 꽃과 화분을 길거리에 내다놓고 파는 데에서 얼핏 행인을 멈추게 하리만큼 강렬한 향기를 내뿜는 노오란 꽃을 발견했다. 이것은 꽃처럼 보인다기보다는 그저 앙상한 가지 끝에 노란 열매같은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특별히 예쁘다라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지독하게 아뜩하게 하는 향기가 나길래 한아름 사서 교실에 갖다 꽂아 두었다.
"얘들아, 꽃향기가 좋지?" 하며 교실에 향기를 선사한 담임으로서 으스대고 있었는데, 한 이틀 동안 참다못한 학생들이 결국은 "선생님, 머리 아파요!" 하며 호소를 해 왔다. 그 무렵쯤엔 이미 나도 거의 두통을 느낄 정도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내다 버린 적이 있었다.
아...대체 그 큰 교실을 며칠 동안이나 짙은 향기로 다른 냄새를 압도한 그 꽃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 이후로도 문득문득 그 때의 향기 짙고 봄에 보았던 그 노란 꽃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아주 우연히 2년 전에서야 그 꽃이 '생강나무'였음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마치 과거로 훌쩍 뛰어넘어 가 잃었던 혈육이라도 찾아낸 것 같은 반가움이 울컥 일었다. 아, 그 때의 후련함과 통쾌함이라니!
나는 국어선생 노릇을 하면서 몇 가지 문학작품 속에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김유정의 '동백꽃'이다. 이 단편소설의 끝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점순이가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 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① 동백꽃이 노랗다?
② 동백꽃에 향기가 있다?
③ 그 향기가 알싸하고 향긋해 땅이 꺼지듯이 온 정신이 아찔하다?
④ 동백꽃이 산에 있다?
이상했다. 내가 아는 동백나무는 사철나무로서, 겨울 날 저 남녘에 붉은 꽃(분홍 혹은 흰꽃)이 피는 그런 나무이고, 또 이 꽃은 아무리 코를 들이대 보아도 그다지 향기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런데 노란색에다가 짙은 향기에 산에서 핀다니...
이 의문은 '아, 작가들은 워낙 상상력이 풍부하고 또 소설은 허구이니까' 하고는 오랫동안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산수유가 피는 요즘 시기에, 색깔과 모양이 '닮아도 저리 닮을까' 싶게 산수유와 같은 꽃나무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생강나무'였다. 향과 맛이 생강과 닮아서 그리 부른다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향신료 생강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 꽃은 정말 산수유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똑같이 노란 색깔인데다 나무의 모양이 껑충한 게 너무나 똑같다. 그런데 산수유는 향기가 거의 없고 꽃잎이 하나하나 다 풀어져 있는데 비해, 생강나무는 꽃잎이 오뭇하게 모아져 있으며 짙은 향기가 있다. 그 향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어찔어찔할 정도로 어지러워 나중엔 정말로 머리가 핑 돌 지경이다. 그리고 산수유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계곡이나 산자락에서 보이는 것은 어김없이 생강나무이다.
이 꽃을 알아보니 바로 강원도 지방에서는 '동백나무'라 부르고(김유정은 강원도 출신임), 이 동백의 열매를 짜서 머릿기름으로 쓰기도 하는데, 그 기름이 바로 동백나무, 아니 이 생강나무라는 것이다. 어린잎은 따서 작설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큰 잎은 쌈을 싸서 먹기도 한다는데, 가을에 이 나무가 단풍이 들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한다.
하여간에 기어코 어느 날 어렵게 생강나무 두 가지를 구해 와서는 당장 고3 교실로 갔다. "얘들아, 작년에 소설 '동백꽃' 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그 노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꽃을 코에 대 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교무실의 동료 국어교사 2명에게도 책을 갖다 대면서 꽃을 보여 주었더니,
"저는 원래 동백꽃이 노란 줄 알았는데요."
"'그 소설에 그런 것도 있었나요?"
한다. 하여간에 몰랐던 것을 알아냈을 때의 기쁨과 통쾌함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당장 이 꽃을 찾아 나서 보시라. 향기에 질식사할 겁니다.
첫댓글달희님은 어떤분일까? 참 궁금해요 덕분에 은목서를 사랑하게 되었고(실제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사랑에 먼저 빠진..) ...정서가 올바르고 고집이 좀 셀것(?)같은 느낌마저 ..ㅎㅎ 미안해요 그냥 혼자 느껴 봤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그리고 동백이라는 느낌의 알싸함이 달희님에게도 보일듯 하구요...
첫댓글 달희님은 어떤분일까? 참 궁금해요 덕분에 은목서를 사랑하게 되었고(실제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사랑에 먼저 빠진..) ...정서가 올바르고 고집이 좀 셀것(?)같은 느낌마저 ..ㅎㅎ 미안해요 그냥 혼자 느껴 봤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그리고 동백이라는 느낌의 알싸함이 달희님에게도 보일듯 하구요...
영 깨어나지 못하고 눈 속에 동면 하나 했지요. 새 학기로 술렁이는 교실에서, 산 비알 양지 바른 한구석에서 알싸한 동백으로 피어 있었구만요. 그러구 보니 점순이가 달희님 이었남유?
달희님, 생강나무 꽃도 달콤한 폭력~~~ 동백기름은 몽땅 이 생강나무로 짠 것인지요?
동백꽃이 생강나무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지만 역시 꽃가지를 꺾은 것은 못내 가책을 느낍니다. 은목서님,올해는 기필코 은목서, 금목서,목서꽃(세 꽃이 다 색깔이 다름)을 경험하시어 꽃향기의 충격에 젖어 보시어요.
별꽃님,오랜만이에요. 남쪽의 사철나무 동백꽃 기름은 귀한 것으로 양반댁 부녀자들이, 그리고 산에 피는 생강나무(동백나무) 기름은 일반 백성들이 머리기름으로 썼다고 들었어요. 머잖아 곧 꽃향기의 폭력에 젖어들 날을 즐겁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달희님이 바쁜 학기초에 찾아 오시니 기분 좋네요. 저도 이 둘을 구분하기 시작한 게 오래지 않답니다. 생강나무는 가을 단풍도 노오란 게 참 보기 좋답니다. 좀 엉성하긴 하지만요. 좀 자주 보여 주세요.
아, 달희님.. 그러지 않아도 이쪽 이천에서 해마다 있는 산수유 축제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아주.. 기름을 부어 주시네요.. ^^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다시 하네요.. 으.. 보고 싶은 산수유 그 넘들.. ^^ 달희님.. 저도요.. 자주 뵙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