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 여행과 각종 여행의 즐거움과 기분을 보충하는 최고의 치료법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음식, 특히 길거리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해외 음식은 한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들의 과거, 현재, 심지어 미래! 우리 모두 같은 음식 애호가라면 다른 전통 음식과 지역 음식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지금부터 최고의 한국 길거리 음식 현지인과 외국인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한국 최고의 길거리 음식과 외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된 음식을 소개 하겠습니다
사진 : Google
김밥
김밥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맛을 낸 밥을 시금치, 단무지, 당근, 달걀, 우엉 등 속재료를 넣고 김으로 말아서 한입 크기로 썰어 낸 음식이다. 주먹밥처럼 이동할 때나 적은시간에 먹기가 편하여 소풍이나 여행, 이동할 때 즐겨 먹는다
번데기
누에나방의 번데기를 식재료로 사용한 음식으로 보통 된소리로 발음해 뻔데기라고 부르며 축제같은 것이 있으면 길거리 음식으로 노점에서 자주 보이는 먹거리이다. 소라라고 부르던 갯고둥과 함께 판매중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누에나방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누에에게 실을 얻는 방법은 누에나방이 변태하려고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을 고치째로 삶아서 고치를 실로 풀어내 분리하여 얻는다. 그 실이 비단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삶겨진 번데기가 남게 되는데, 이를 버리지 않고 식재로 이용하여 만든 음식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이다. 번데기가 되는 누에부터가 질 높은 비단실을 얻기 위해서 끝없이 먹이를 공급받으며 생육에 최적화된 좋은 시설에서 자라고, 또한 고치에서 실을 얻는 과정에서 고열로 삶아내거나 증기로 쪄지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살균처리 또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누에나방은 농약에 민감하고 애벌레인 누에는 먹이로 먹는 뽕나무 근처에 담배연기는 고사하고 근처 땅에 담배 재배만 해도 죽을 정도로 아주 연약한 곤충이기에, 양잠 시설은 약품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로 관리된다. 이렇듯 약품이나 기타 편법으로 키우기가 더 어렵기에 번데기 원재료 자체는 무농약에 살균처리된 안전한 식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번데기는 생각보다 식용으로 이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음식이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따라 활발해진 양잠 산업의 부산물로 발생한 번데기를 처리할 방도를 찾다 조리해서 먹게 된 것이 그 시초이다. 양잠 산업 자체야 고대부터 해왔지만 한국에서 번데기를 식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의외로 짧았다. 6.25 전쟁 이후 먹을 것이 전부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번데기도 식용으로 이용했던 것. 중국에서는 매우 오랜 옛날부터 먹었다. 한 때 간식으로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1978년에 농약이 묻은 번데기를 먹은 국민학생들이 집단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번데기를 사 먹은 학생들은 사망하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사회적인 파장이 컸다. 당연히 도매상 주인 등 유통업자들은 쇠고랑을 찼으며 또한 수요가 급격히 하락해 한동안 다슬기, 냉차, 뽑기, 쫀디기 같은 다른 길거리 식품들 역시 철퇴를 맞고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원인은 번데기 자체가 아니라 도매상에서 번데기를 살충제 포대에 담아 유통시킨 것이 화근이라 번데기를 제공한 양잠가에겐 굉장히 억울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델리만쥬
대한민국의 기차역, 지하철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판대 형식으로 판매하는 길거리 음식의 일종이자 생과자. 보통의 길거리 음식과는 달리 체인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당연히 노점이 아닌 정식 가판대 형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Delicious + 만주의 합성어라 한다 호두과자와 비슷한 냄새와 맛이지만 속에 팥 대신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 있다. 겉면이 커스터드 크림에 비해 빨리 식기 때문에 집어들었을 때는 먹기 딱 좋게 느껴지는 따끈따끈한 온도지만,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입천장과 혓바닥 홀랑 까먹기 좋으니 주의해야 한다. 뜨거운 두부를 그냥 꿀꺽 삼켰을 때 같은 지옥이 펼쳐진다.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사먹어 보면 달콤하니 맛있지만, 단맛이 강한 커스터드 크림의 특성상 몇 개 먹다 보면 질릴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옥수수는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옥수수 모양인지는 불명이다. 커스터드 크림이 옥수수 크림과 색깔이 같아서 그렇거나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넣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가끔가다 진짜 옥수수를 넣은 델리만쥬도 판다. 참고로 옥수수 알이 그려진 쪽에 커스터드 크림이 몰려 있다. 수량에 따라 2,000원, 3,000원, 5,000원 단위로 판매한다. 5,000원 어치는 박스로 판매되고 나머지는 종이 봉투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2,000원 어치는 신문과 잡지, 군것질 거리를 취급하는 승강장 가판대나 스토리웨이에서 온장고에 담아두고 팔기도 하는데, 근처에서 직접 구워 파는 매장의 것을 조달받아 파는 것으로 보인다. 은근히 포만감이 잘 들어서 3,000원 어치 기준으로 우유와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나름대로 괜찮다
피카츄 돈까스
피카츄 모양의 돈가스를 막대에 꽂아 튀긴 음식으로 주로 2000년대에 학교 앞 분식점이나 문방구에서 팔던 음식으로, 2010년 이후로는 판매처가 적어져 세대차이 음식이 되었지만 그래도 파는 곳은 판다. 가끔 2000년대 당시 학생이던 세대들을 타겟으로 하여 추억팔이 마케팅으로 PC방 등지에서 팔기도 한다
두부밥
두부밥은 두부를 삼각형으로 자른 뒤 구운 두부 가운데에 칼집을 내어 그 속에 밥을 채워 위에 양념장을 얹혀 먹는 북조선의 인기 길거리 음식이다. 인조고기밥과 유사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인조고기밥
인조고기밥은 한 뼘 정도 크기로 자른 인조고기를 삶아서 안에 밥을 넣고 고춧가루 등으로 매콤달콤하게 양념한 음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소떡소떡
물떡 (부산의 길거리 음식)
떡꼬치
길거리 음식의 한 종류로 이름 그대로 '떡을 꼬치에 꽂아 만든 음식' 전반을 뜻하지만, 대부분은 재료가 되는 떡이 떡볶이용 가래떡을 기름에 튀겨 소스를 바른 음식을 일컫는다. 어찌보면 산적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떡볶이용 떡을 사용하긴 하지만 의외로 떡볶이만큼 흔하지는 않은 물건이다. 심지어 닭꼬치는 있어도 떡꼬치는 없는 경우도 있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해 손이 많이 가서 안 만들 가능성이 높다. 보통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일단 가늘고 짧은 가래떡 여러개를 꼬치에 가로로 꽂아서 王자형으로 만들어서 튀긴 후 소스를 발라 먹는 유형이 있다. 아무래도 이쪽이 더 많은 듯. 두번째는 굵고 긴 가래떡을 그대로 세로로 꼬치에 꽂아 바삭한 튀김옷을 입혀 튀긴후 소스를 발라먹는 유형이다. 두번째는 매운 닭꼬치 튀김이 붐을 이루었을 때 매운 닭꼬치 튀김 전문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제품으로 튀김옷이 없이 그대로 튀겨서 파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지역에 따라, 혹은 판매하는 장소에 따라 떡을 튀겨주기도 하지만 그냥 튀기지 않고 구워서 제공하는 곳도 존재하며, 간혹 그냥 찌기만 하고 제공하는 곳도 있다. 소스는 보통 떡볶이용 소스와는 다른 개별 소스를 사용한다. 닭꼬치처럼 매콤하면서 달짝지근한 소스를 주로 사용한다. 어떤곳은 대놓고 닭꼬치 소스를 공유하기도... 그 외에 간장 소스를 이용한 간장 떡꼬치도 존재한다. 다만 매운 떡꼬치에 밀려서 많이 보지는 못하는게 현실. 소스를 바르지 않고 튀긴 떡만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다. 한번 먹어보도록 하자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으려면 케찹+고추장+설탕 조금으로 소스 맛을 흉내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먹는 방법은 다르지만 대개 두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떡을 한개한개 개별적으로 뽑아먹든가, 아니면 모든 떡을 평등하게 고기 뜯듯이 먹든가, 아니면 그냥 한 입에 먹든가 떡이라는 음식의 특성상 떡들끼리 찰지게 달라 붙어서 가능한 것이다. 닭꼬치는 그런거 없다. 라기 보다는 그냥 길쭉해서 뜯어먹기가 편한거다 단, 주의할 점은 길거리에서 파는 떡꼬치를 보고 조리법이 간단해 보인다고 아무 생각없이 시중에서 파는 떡볶이용 혹은 가래떡을 그대로 기름에 튀기면 폭발한다. 그 이유는 튀김은 겉표면 전체를 한번에 익히는 방법이기 때문에, 겉부터 익으면 속은 아직 덜 익은 상태에서 겉이 딱딱해져 떡이 밀봉상태가 된 것과 똑같은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계속 튀기면 떡 내부의 압력이 높아져서 결국은 풍선처럼 터지게 되고 떡 파편+기름이 피부에 튀면 심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떡꼬치가 터지지 않는 이유는 저온에 튀기기 때문. 저온에 튀기면 겉표면이 필요이상으로 딱딱해지기 전에 떡이 충분히 부풀어 안전하다. 근데 튀김요리를 자주 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게 떡이 터질만큼 고온인지 저온인지 알기가 힘드니... 튀김요리에 능숙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만 도전하자. 정 먹고싶으면 볶음할 때 만큼 기름을 두르고 떡을 굴려가면서 익혀라. 그러면 튀김과 매우 비슷해진다. 또는 떡에 구멍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생 떡볶이떡을 튀기면 떡이 폭발한다. 그러나 떡꼬치처럼 떡을 꿰어놓는다거나 이쑤시개나 젓가락으로 구멍을 가볍게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떡이 폭발할 위험성이 상당히 사라진다. 여담이지만 일본 요리의 일종인, 간식으로 주로 먹는 단고 꼬치를 떡꼬치라고 파는 곳이 목격되기도 했다. 사실 꽂힌 경단이 일종의 떡이기 때문에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여담으로 15세기 요리책에 기록되어 원조 떡볶이로 추정되는 떡산적이라는 음식이 떡꼬치와 비슷한 형식으로 추정된다. 부산에서는 떡꼬치라 하면 물떡을 지칭한다. 가래떡을 오뎅 국물에 담궈놓은 것으로, 떡꼬치의 파생형이라기보단 같은 이름의 다른 음식. 맛은 "별 맛 없다. 그냥 먹는거다" 라고 한다. 사실 맛보다는 가래떡이 오뎅국물에 적당히 불어 말랑하고 쫄깃해진 식감으로 먹는 것. 주로 간장에 찍어먹거나 가끔 일반 떡과 다른 식감의 떡볶이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떡과 비엔나 소시지를 번갈아 끼워 만들면 소떡소떡이 된다
주먹밥
오니기리(일본어: 御握り) 또는 오무스비(おむすび, 영어: onigiri, omusubi, nigirimeshi 또는 rice ball)는 밥에 양념을 하거나 재료를 넣고 삼각형이나 약간 납작한 구 모양으로 빚은 일본의 주먹밥이다. 보통 손바닥 크기 정도로 만든다. 속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구현할 수 있으며, 간편하게 식사 할 수 있다. 원래 남은 음식의 저장이나 휴대용 식량으로 만들어졌으나 요즘은 평소에도 즐겨 먹는 음식으로 일본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다. 비슷한 음식이 한국에는 삼각김밥으로 알려져 있다. 오니기리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쥐다', '잡다'를 뜻하는 니기루(握る)의 동사의 명사형인 니기리(握り)에 존칭어두인 御를 덧붙인 말이다. 비슷하게 '뭉치다'를 뜻하는 무스부(結ぶ)의 명사형 무스비(結び)와 御를 덧붙인 오무스비(御結び)라고도 부른다. 보통 간토 지방에서는 오니기리, 간사이 지방에서는 오무스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일본에서 오니기리에 대한 자료는 야요이 시대 중순경의 스기타니차노바타케 유적(일본어: 杉谷チャノバタケ)(이시카와현 가시마군 로쿠세이 정(일본어: 鹿西町, 현 나카노토정))에서 1987년 12월에 주먹밥에 관련 유적이 발굴되어서 이 시기에서부터 오니기리를 먹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오니기리는 쌀을 감싸서 삶고 가열하는 치마키(쭝쯔)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오늘날 주먹밥에 가까운 형태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의 돈지키(일본어: 頓食)라고 하는 타원형의 큰 크기에 찐 찹쌀을 이용한 음식으로 추측되고 있다 멥쌀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 무렵부터였으며, 주먹밥에 참김을 감싼 형태는 겐로쿠 시대부터로 보고 있다. 옛부터 전쟁에서 전투 식량으로도 활용되었다. 쌀과 보리를 뭉친 것을 1홉 씩 둥글게 뭉쳐서 1회 당 2개씩 휴대하였다고 한다.
호빵
호빵은 밀가루 반죽 속에 팥이나 채소 따위의 소를 넣고 김에 쪄서 먹는 찐빵이다. 호빵은 분식집에서 판매하던 찐빵을 가정에서 먹을 수 있도록 제품화한 것이다. 찐빵은 증기에 쪄서 익힌 빵으로, 빵 안에 팥 등을 넣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안흥 찐빵이 유명하다. 단팥과 같은 속을 둥글고 흰 빵이 둘러싼 형태로, 일반적으로 추운 겨울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찜통에 찌거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조리해서 먹는다. 속에 단팥이 들어가는 형태가 원조이지만 고기나 치즈, 채소, 고구마 등을 넣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야채호빵, 불닭호빵, 피자호빵, 단호박호빵, 햄치즈호빵 등으로 속재료가 다양해졌고, 모양도 둥근 모양 대신 네모나 꽈배기 형태가 선보이는 등 여러 변형이 등장했다. 할인점과 편의점에서 주로 팔리며, 샤니, 삼립식품, 롯데제과가 주요 호빵 제조업체이다. 호빵은 이전에 분식집에서 판매하던 찐빵을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쪄 먹을 수 있도록 제품화한 것이다.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이 1969년에 일본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개발되었다. 허창성은 일본 거리에서 파는 찐빵을 보고 제빵업계의 비수기인 겨울철에 팔 수 있는 제품으로 호빵을 고안하여 개발한 끝에 1971년에 처음 출시했다. 삼립식품 호빵이란 이름은 임원회의에서 결정됐다. ‘뜨거워서 호호 분다’, 그리고 ‘온 가족이 웃으며 함께 먹는다’는 의미다. 삼립식품의 호빵은 비싼 가격에도 큰 히트를 기록했다. 가수 김도향이 노래하는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삼립호빵 몹시도 그리웁구나”란 가사의 광고 배경곡은 1978년 2월 동아방송 대상과 문화방송 광고대상에서 특별상인 노래 광고상을 받고, 호빵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매출이 정체되었다가, 1990년대에 청춘 스타였던 배우 최수종의 광고 이후 다시 매출액이 늘어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호빵 제품이 다양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라면
라면(拉麵, 문화어: 꼬부랑 국수)은 국수를 후레이크(영어: flake), 스프와 함께 끓는 물에 넣어서 요리하는 국수 형태의 인스턴트 식품이다. 라면은 밀가루와 달걀 그리고 물과 소량의 소금 등을 넣어 반죽하여 면을 뽑고 한 번 삶고 튀겨서 녹말이 알파화한 면이 이후 뜨거운 물에 다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지는 형태이다. 면과 함께 분말스프와 건더기스프로 구성된 제품이 일반적이다. 라면은 중국에서 전투시 비상 식량으로 쓴 것으로 유래된다. 당시 일본이 중일전쟁을 하면서 배워 왔다는 설이 있다. 현재의 라면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발명하였다고 한다.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게 되었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겨 국수 안의 수분이 증발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풀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8월 25일에 현재 닛신식품의 전신인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라면이었다. 초기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형태였으나 이후 1962년에 스프를 분말로 만들고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라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3년 9월 15일이다
도라야키
도라야키(일본어: どら焼き)는 밀가루, 달걀, 설탕을 섞은 반죽을 둥글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소를 넣은 화과자이다. 도라야키는 원래 빵이 한 면으로만 이루어져 그 위에 팥소를 올린 뒤 접는 방식이었으며, 오늘날의 형태는 1927년 도쿄 우에노 지구의 우사기야에서 처음 만들었다. 도라야키의 이름은 과자의 모양이 타악기 징(일본어: どら)과 닮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초의 도라야키에 대한 전설에서는 한 사무라이가 농부의 집에 징을 놓고 갔는데, 농부가 그 징으로 팬케이크를 구웠고 그것을 도라야키라 불렀다고 전한다. 오사카나 나라 같은 간사이 지방에서는 이 과자를 미카사(三笠)라고도 부른다. 이 이름은 과자의 모양이 나라 현의 미카사 산(三笠山)과 닮은 것에서 유래한다.
모나카
모나카(일본어: 最中 もなか)는 찹쌀로 만든 얇게 구운 과자 껍질 사이에 팥소를 넣어서 만드는 화과자이다. 과자 껍질은 벚꽃, 국화 모양을 띄는 것이 많다. 모나카의 원형은 찹쌀 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한 것을 찐 후, 얇게 늘려서 원 모양으로 자른 것을 굽고, 마무리에 설탕을 넣는 건 과자이다. 이것을 사용하여 팥소를 사이에 넣은 과자가 에도 시대부터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팥소를 사이에 넣는 방법을 개량하여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껍질이 만들어졌다. 이 껍질에 팥소를 사이에 넣은 모나카가 일본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각지마다 다양한 종류의 모나카를 지역 명물 과자로 판매하게 되었다. 모나카는 일본의 후식으로, 차와 함께 곁들어 먹는다. 안에 팥소가 차있는 얇은 과자로, 팥 대신에 참깨, 밤, 모찌가 들어가기도 한다. 형태는 네모, 세모, 길다란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모나카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유명한 상점이 많다. 모나카는 문자 그대로 "한 가운데의 달"이라는 뜻이며 음력 보름날 밤의 달, 즉 보름달을 말한다.반죽을 얇게 늘리는 것은 껍질의 원형이 된 과자와 같다. 현재는 밀대로 반죽을 매우 얇게 늘린 후, 일정한 형태로 가지런히 자른 다음, 껍질 전용 구이 틀에 모치 전분이 부풀어 올라 구이 틀에 나올 때까지 양면을 동시에 구워준다. 이렇게 하면 가볍고 씹는 느낌이 좋은 껍질이 만들어진다. 또한, 찹쌀 가루를 물에 넣고 끓인 다음 관을 통해 구이 틀에 넣고, 직접 압력 가열하여 껍질을 굽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다양한 형태의 껍질을 만들 수 있다. 팥소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모나카에 넣는 팥소의 경우, 껍질이 눅눅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수분 함량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설탕 함량이 높아지고 맛이 진해지며 끈기가 강해진다. 이 팥소를 두 장의 껍질로 만들어진 껍질에 틈새가 없도록 담은 후 팥소가 들어간 흡입구를 껍질로 막아서 모나카를 완성한다. 껍질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고자 판매할 때 팥소를 따로 마련하여 먹을 때 직접 채울 수 있도록 만든 상품도 있다.모나카의 원형은 찹쌀 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한 것을 찐 후, 얇게 늘려서 원 모양으로 자른 것을 굽고, 마무리에 설탕을 넣는 건 과자이다. 이것을 사용하여 팥소를 사이에 넣은 과자가 에도 시대부터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에도 팥소를 사이에 넣는 방법을 개량하여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껍질이 만들어졌다. 이 껍질에 팥소를 사이에 넣은 모나카가 일본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각지마다 다양한 종류의 모나카를 지역 명물 과자로 판매하게 되었다.
“수면 위에 비치는 달을 보며 시간을 헤아리니, 오늘 밤이야말로 가을의 한 가운데로구나.
(池の面に照る月なみを数うれば今宵ぞ秋のもなかなりける。)
”
《슈이와카슈》(3권 가을 171장)에 실려 있는 미나모토 시타고의 시구를 알고 있던 헤이안 시대의 문신들이, 궁중에서 행해진 달 구경 연회에서 희고 둥근 찹쌀떡 과자가 나온 것을 보고 대화를 나누던 중, 모나카노 츠키(最中の月, 한 가운데의 달)라는 말이 나오면서 그대로 과자의 이름이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에도 시대에 고안된 모나카의 원형도 이 이야기에 근거하여 "모나카노 츠키"(最中の月)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원형이 변형된 과자가 나오게 되면서 뒷부분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모나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츠동
가츠동 또는 카츠동(일본어: カツ丼 가쓰돈)은 그릇에 담은 밥 위에 돈카쓰를 얹은 일본의 덮밥 요리이다. 이름은 돈카쓰를 사용한 덮밥 요리라는 것에서 유래했다. 1921년 2월 와세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카니시 케이지로(中西敬二郎)가 단골 식당에서 사발에 밥을 담고 돈카쓰를 얹은 뒤 그 위에 소스를 부어서 ‘돈카쓰덮밥’을 만들고, 이를 가게의 메뉴로 판매할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카츠동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한편, 1913년 와세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다카하타 마스타로(高畑增太郎)가 ‘소스돈카쓰덮밥’을 고안한 것이 처음이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음식은 지금도 후쿠이현에서 ‘하이칼라덮밥’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 밖에 나가노현 고마가네시의 등산가가 같은 음식을 최초로 개발하였다는 설도 있다.
오야코동
오야코동(親子丼, 영어: Oyakodon, parent-and-child donburi)은 돈부리의 일종으로 밥에 닭고기나 달걀을 넣어서 먹는 음식이다. 덮밥류 중에서는 가장 재료비가 싸고 조리법도 간단한 축에 끼므로 일본에서는 인스턴트 라면보다는 인간다운 것을 먹고 싶어하는 독신자들의 기본 스킬이자 싸구려 밥집의 필수 메뉴이기도 하다. 비슷한 요리로는 치킨 덮밥인 가라아게동이 있다.
규동
규동(일본어: 牛丼) 또는 규메시(일본어: 牛飯)는 쇠고기에 양파와 함께 달게 끓인 재료를 그릇에 담은 밥위에 올려 먹는 일본의 덮밥 요리이다. 곁들이는 야채로는 붉은색 생강, 7가지맛의 고추가루, 날달걀 등을 기호에 따라서 넣는 경우도 많다. 메이지시대 서구문명의 도래로 쇠고기를 먹는 습관이 퍼진 뒤 대중에게 적합하게 고안되어 나온 규메시(牛めし, 쇠고기밥)가 규동의 원형이다. 1973년부터 요시노야(吉野家)가 패스트푸드의 하나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어 마쓰야나 스키야 등 프랜차이즈들이 일본 내에 자리잡으며 일반화되었다.
텐동
덴돈(일본어: 天丼)은 그릇에 담은 밥위에 덴푸라를 올린 덮밥의 일종이다. 이 중에서 찬합에 담은 것을 텐츄우(天重)라고 부른다. 덴푸라돈부리(天ぷら丼), 텐부라동의 약칭으로 현재는 일반적으로 텐동 혹은 텐돈 등으로 표현한다.
부타동
부타돈(일본어: 豚丼)은 돼지고기를 밥 위에 올린 덮밥 요리이다. 부타동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우나돈
우나돈(鰻丼)은 돈부리의 일종으로, 장어를 밥 위에 얹어 먹는 덮밥이다. 따라서 장어덮밥으로 불린다.
오코노미야끼
오코노미야키(일본어: お好み焼き)는 일본식 지짐으로 양배추, 달걀, 밀가루 등으로 반죽하고 겉에는 삼겹살을 3장 정도 붙여서 지진다. 양면이 구워진 후에는 가쓰오부시와 특유의 오코노미야키 소스, 마요네즈 등을 위에 뿌려서 먹는다. 히로시마, 오사카에서 많이 먹는다. 오코노미라는 명칭은 "당신이 좋아하는"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는 "오코노미"라는 단어와 "조리된 것"을 의미하는 "야키"에서 파생되었다. 오코노미야키 소스는 다코야키 소스와 유사한 맛이지만 다코야키 소스에 비해서 달다
라멘
라멘(일본어: ラーメン)은 일본식 중화 국수 요리이다. 일본의 국민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일본어 "라멘(ラーメン)"은 "납면"을 뜻하는 중국어 "라몐(拉麵)"에서 유래했다. 보통은 가타가나로 표기하지만, 한자로 "拉麺", "老麺", "柳麺"처럼 표기하기도 하며, 히라가나로 "らーめん", "らあめん"처럼 표기하기도 한다. 한국어 "납면", "라면"과는 동원어 관계이다. 다른 동원어로 중앙아시아 국수 요리 이름인 "라그만(лагман)"이 있다. 소바(메밀국수)가 아닌 밀국수(주카멘)로 만들지만, 일본 내에서는 "중화 메밀"이라는 뜻의 주카소바(中華そば)나 시나소바(支那そば)로도 불리며, "난징 메밀"이라는 뜻의 난킨소바(南京そば)로 불리기도 한다.라멘의 기원은 메이지 시대에 개항과 함께 요코하마 등지에 중국인이 대거 유입되고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면서 전해진 중국식 국수 요리로 여겨진다. 1884년 하코다테의 중국 음식점인 "요와켄(養和軒)"에서 낸 광고에 "난킨소바(南京そば)"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현대 일본의 라멘으로 이어지는 국물국수인지는 불명확하다. 최초의 일본식 라멘은 1910년 도쿄 아사쿠사의 중국 음식점인 "라이라이켄(來々軒)"에서 팔았던 "난킨소바(南京そば)", "시나소바(支那そば)"로 여겨진다.
소바
소바(일본어: 蕎麦, そば)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뜨거운 국물이나 차가운 간장에 무·파·고추냉이를 넣고 찍어 먹는 일본 요리이다. 메밀을 면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이다.
차즈케
차즈케(일본어: 茶漬け)는 밥에 차를 부은 일본 요리이다. 요리 이름이 아닌 차를 밥에 부어먹는 식사법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높임말 표현으로는 오차즈케 (お茶漬け)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이쪽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가 아닌 그냥 따뜻한 물(白湯, 시라유)를 부은 걸 차즈케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이런 물밥은 유즈케 (湯漬け)라고 따로 구별한다지어둔 맨밥에 물이나 국물을 부어 말아먹는 방식은 한국을 비롯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이라면 흔히 보이지만, 찻물을 부어 먹는 방식은 일본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차죽이라고 해서, 야마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굉장히 오래된 요리이기도 하다. 요리법에 따라서는 찻물이 아닌 다시 (국물)를 붓는 것, 더 나아가 국물류를 넣은 요리까지도 폭넓게 잡아 '차즈케'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지어둔 맨밥에 물이나 국물을 부어 말아먹는 방식은 한국을 비롯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이라면 흔히 보이지만, 찻물을 부어 먹는 방식은 일본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차죽이라고 해서, 야마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굉장히 오래된 요리이기도 하다 요리법에 따라서는 찻물이 아닌 다시 (국물)를 붓는 것, 더 나아가 국물류를 넣은 요리까지도 폭넓게 잡아 '차즈케'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일본어 사전 《고지엔》에 의하면 '차즈케'는 "밥에 뜨거운 차를 부은 것. 차 담근 밥." (飯に熱い茶をかけたもの。茶漬飯)으로 정의되어 있다. 차즈케에 들어가는 차의 종류로는 녹차, 호지차, 번차 (番茶), 말차 등 일본인들이 주로 마시는 녹차가 해당되지만 최근에는 우롱차 등의 다른 차를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다시마차 등 이름만 '차'고 차나무를 원료로 하지 않는 것들을 부을 때도 있다. 또한 차의 온도가 항상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여름철 같이 더운 날씨에는 냉차를 붓는 경우도 있다. 차가 아니라 아예 국물을 붓고서 '차즈케'라 부를 때도 있다. 특히 쌀밥에 다시 (우린 국물)를 부어 먹는 방법이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방법이다. 이 같은 유형의 '차즈케'는 호쿠에쓰 지방에서 주로 먹기 때문에, 다시를 부은 차즈케는 '에치고차즈케' (越後茶漬け)라는 별칭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다시차즈케' (出汁茶漬け), 더 줄여서 그냥 '차즈케'라 칭하는 경우가 많다. 꼭 다시에 한정하지 않고 갖가지 국물을 부어 먹는 차즈케도 많으며 여기에는 별다른 명칭이 붙어있지 않다. 정리하자면 차즈케는 꼭 찻물만을 붓는 것이 아니라 맑은 국물을 붓기도 하며, 찻물이라면 녹차나 호지차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에도 시대 중반부터는 차즈케 위에 여러가지 고명을 얹는 방식이 널리 퍼졌으며, 오늘날 일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식사법이기 때문에 차즈케라고 하면 이 고명을 얹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명의 종류는 먹는 사람의 취향에 달렸지만, 보통은 우메보시나 쓰케모노(절임), 연어와 노리(김), 쓰쿠다니(조림), 시오카라(젓갈), 와사비, 멘타이코(명란젓), 연어알 등이 올라가며 심지어는 참치 등의 회를 올리기도 한다. 장어구이를 올린 차즈케도 있는데, 나고야의 장어덮밥인 히쓰마부시는 먹는 도중에 차를 부어 차즈케처럼 만들어 먹으며, 이 역시 차즈케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 고명을 얹지 않고 그냥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사법도 존재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차즈케는 언제 어느때나 먹을 수 있는 요리로 자리잡았다. 간편한 조리법 덕에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물론, 호화로운 상차림을 받은 뒤 입가심 요리, 또 산악 등반 시에 먹는 음식으로도 오랫동안 사랑 받고있다. 뿐만 아니라 밥솥에 좀 오래 두었던 밥을 처리해야 할 때, 식어서 딱딱해진 밥을 최대한 맛있게 먹기 위해 차즈케로 만들며, 아예 밥만 따로 퍼서 보온해 놓은 뒤 뜨거운 차를 부어먹는 사람도 있다. 차즈케를 한국어로 '차죽'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차즈케는 이미 지은 쌀에 차나 국물을 부어 먹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물을 부어 끓여 만들어야 하는 죽과는 다른 요리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차죽' (ちゃがゆ)이라고 해서 정말로 찻물로 죽을 쑤는 요리도 있으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차밥'이라 칭하는 경우도, 일본에서는 소량의 찻물에 소금을 뿌려 그걸로 지은 밥을 '차밥' (茶飯)이라 부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명칭이다. 밥에 물이나 탕, 국물을 붓는 식사법은 일본에 벼농사와 쌀 문화가 전파되면서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아스카 시대에 을사의 변을 앞두고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가 궁중으로 향하기 전에 물을 부은 밥을 넘겼다는 일화가 있어,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마쿠라노소시》나 《겐지모노가타리》 등의 문학 작품에서도 유즈케 (물에 만 밥)이 등장하는데, 특히 찬물에 만 밥을 '수반' (水飯)이라고 칭하며《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먹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곤자쿠모노가타리슈》나 《우지슈이모노가타리》에서는 비만 때문에 고생하던 후지와라노 아사히라 (藤原朝成)가 유즈케와 수반을 접하게 된 일화가 전해진다. 후지와라가 의사에게 어떻게 하면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유즈케와 수반을 먹고 식사량을 줄이는 법을 추천하였는데, 은어 나레즈시와 오이말랭이와 함께 수반을 먹었다가 맛이 너무 좋아 오히려 과식해버려 살이 더 쪄버렸다고 한다. 유즈케와 수반을 널리 먹게 된 계기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지은 밥을 나무밥통에 옮겨담아 먹는 것이 보통이었고, 오늘날처럼 밥을 보온하는 기술은 전무하였으며 갓 지은 밥도 일부러 둬서 식혀 먹는 편이었다. 이렇게 찬밥으로 놔두면 녹말이 건조해지면서 갓 지은 식감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식은 밥을 좀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 특히 뜨거운 물을 부어 밥을 데우거나 촉촉하게 만드는 데 있어 유즈케라는 방식이 적합했던 것이다. 상하기 직전의 밥이더라도 일단 온수를 부으면 먹을 만해졌기에 경제적으로도 효과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유즈케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전국 시대 말까지, 특히 겨울철이 되면 무사들이 물에 만 밥을 많이 먹었다고 전해진다. 유즈케와 수반은 비천한 사람만이 먹던 요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쇼군 자리에 올랐던 아시카가 요시마사도 물로 씻은 밥에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우린 진한 국물을 부어 먹기 (요즘으로 치면 다시차즈케)를 즐겨 했다고 전해진다.[8] 또 전국 시대를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 역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유즈케를 좋아했으며, 출진하기 전에 유즈케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952년 인스턴트 식품형 차즈케인 나가타니엔의 '오차즈케노리' (お茶づけ海苔)가 개발되어 시중에 처음 유통되었다. 이 제품은 건조 후레이크 (고명)과 차 (말차가루), 그리고 다시가루를 섞어 작은 봉지에 넣은 것으로, 밥 위에 뿌린 채 그대로 물을 부으면 차즈케가 되는 간편한 제품이다. 겉보기에는 녹차를 부은 것마냥 초록빛을 띄지만 다시국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짠맛이 나며 반찬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후레이크는 노리(김)를 쓰는데 이는 건조제를 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첫 출시 후 후레이크의 종류는 다양해졌으나 노리를 넣는 것만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나가타니엔 이외의 제조사로는 마루미야 식품, 시라코, 하마오토메, 마루하니치로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제품은 나가타니엔 제품을 따라서 노리를 기본 재료로 삼은 경우가 많다. 좀 더 고급스러운 제품 중에서는 동결 건조법을 이용한 것도 있다. 또 모나카 껍질 속에 오차즈케 재료를 넣고 밥 위에 올린 뒤 그대로 물을 부으면 오차즈케가 되는 '오차즈케 모나카', 컵라면과 비슷하게 컵 안에 밥이 들어있어 물을 부으면 오차즈케가 되는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이 같은 인스턴트 차즈케는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간판 상품 중 하나이며, 업계 점유율 1위의 나가타니엔이 전체 유통량 중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스키야끼
스키야끼(일본어: 鋤焼, すきやき 스키야키)는 얇게 저민 고기나 채소 등을 얕은 냄비에 굽거나 삶은 요리를 말한다. 양념국물을 넣어 달고 짭짭한 맛을 내는 요리를 스키야키풍(일본어: すき焼き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규우나베(일본어: 牛鍋)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스키야끼는 얇게 썬 쇠고기에 파, 양파, 쑥갓, 표고버섯, 팽이버섯, 청경채, 미나리. 두부, 곤약 등의 재료(일본어로 자쿠라고 부름)를 첨가한다. 맛은 간장과 설탕으로 낸다. 날달걀을 묻혀서 먹기도 하며 스키야키의 주재료인 소고기의 두께는 샤부샤부(일본어: しゃぶしゃぶ)보다는 좀 더 두껍다고 할 수 있다. 스키야키는 쟁기라는 말과 굽다는 말이 결합된 것으로, 농민들이 농기구인 쟁기에 고기를 구워 먹은데에서 유래했다. 1832년에 쓰여진 '고래고기 조리법'이라는 책에는 '스키야키란 오랫동안 써서 잘 닳은 깨끗한 쟁기를 장작불 위에 올려 놓고 거기에 자른 고기를 얹어서 굽는 것을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에도 막부 말기까지는 불교의 계율 때문에 쇠고기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으나 특별히 스키야키라고 불리는 요리는 존재하였다. 스키야키 요릿집이 처음 생긴 곳은 요코하마로, 1859년 요코하마가 개항되면서 외국인이 쇠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고베로부터 쇠고기를 운송하였다고 한다. 1862년 술집을 운영하던 이세 쿠마가 규우나베 가게를 개업하였고 1868년 외국인을 위한 소 도살장이 도쿄에 생겼다. 이후 도쿄에서도 가게가 성업을 이루면서 소고기 음식은 문명개화의 상징이 되었다. 1877년에 도쿄에만 550개 이상의 스키야키 전문 요릿집이 생겨났다. 1643년에 간행된 '요리 이야기'라는 책에는 새고기 스키야키의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는데, 재료로 기러기나 오리 따위의 야생 조류를 간장과 술에 재워 요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간사이 지방에서는 구운 쇠고기를 설탕·간장·우려낸 국물로 조미하는 스키야키가 만들어지고 점차 스키야키라는 호칭이 정착해 간 것으로 보인다. 요코하마에서는 덩어리 쇠고기를 사용하고 적당한 양의 양념국물을 넣으면서 농도가 짙은 된장을 볶아 삶은 스키야키를 제공하는 유명한 식당들이 있다. 스키야키는 전통적인 전골의 형태의 조리로 육식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는 방식의 요리다. 고기를 가급적 고기가 아닌 것처럼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평가된다. 이것은 튀김옷을 입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개조한 돈가스와 같은 예이다.
잔코나베
잔코나베(ちゃんこ鍋)는 일본의 스모선수나 레슬러가 먹는 냄비요리이다. 스모를 하기 위한 큰 체격을 만들기 위해 냄비요리를 먹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잔코나베이다. 잔코나베는 일본에서는 외식산업의 한 분야로 성립되어 있다. 잔코나베의 가게는 외식산업으로 비교적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주로 오랜 세월동안 명성이 있던 스모 선수들이 은퇴후에 전업한 경우가 많으며 점포의 명칭은 자신의 선수시절의 스모선수 이름, 지명도를 빌리는 경우가 많다. 스모문화와 직결되어 있는 요리이며 스모대회가 열리는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등에 가게가 많다. 최근에는 전 요코즈나였던 와카노하나인 하나타 카츠가 경영하는 드림 아크가 운영하는 가게가 일본전국규모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모츠나베
쉽게 말해서 일본식 곱창전골로 육수에 소 곱창과 양배추, 부추. 숙주나물, 두부와 같은 재료들을 넣고 끓여서 먹는다. 가게에 따라서는 소 양과 같은 내장이 좀 더 들어가기도 한다. 후쿠오카의 음식을 이야기할 때 하카타라멘과 함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음식이다. 후쿠오카 일대를 돌아다녀 보면 모츠나베를 파는 곳이 정말로 정말로 많다. 모츠나베 전문점만이 아니라 큐슈요리 전문점이라면 높은 확률로 메뉴에 모츠나베가 들어 있다. 다만 하카타라멘이 인지도 면이나 전국구급 세력에서는 조금 더 세다. 일본의 전골요리 치고는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한다. 1인분에 1천 엔 대 초반이고 1천 엔도 안 하는 곳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의 푸짐한 양에 비한다면 양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저렴한 편. 혼자 가서 1인분만 먹을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그래서 뒤에도 나오듯이 일본의 거품경제가 박살난 후에 큐슈를 넘어 일본 전역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빵
빵(포르투갈어: pão 팡)은 곡식 가루와 물로 된 반죽을 굽거나, 찌거나, 튀겨 만든 음식이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빵을 밀가루와 물로 만들어진 반죽을 구워서 준비한 일반식”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한국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여 소금, 설탕, 버터, 효모 따위를 섞어 반죽하여 발효한 뒤에 불에 굽거나 찐 음식, 서양 사람들의 주 음식”, “먹고 살 양식”으로 정의한다. 한국에서는 빵을 쌀과 함께 식량과 기아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시어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거의 대부분 밀가루로 만들지만 쌀, 옥수수, 보리, 감자 등 각종 곡식의 가루로도 만들기도 한다. 발효를 하지 않는 케이크나 쿠키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다르다. 빵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들 중 하나이며, 신석기 시대로부터 만들어져 왔다. 최초의 빵은 아마도 곡식과 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요리를 했을 것이며, 우연히 또는 고의로 요리 실험을 하면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곡식 표면에 포함된 흔한 효모 포자는 밀가루 반죽에 자연스럽게 반죽되었다. 이것은 초기의 빵에서 다양한 발효 소스 중 하나였다. 대 플리니우스는 갈리아족과 아베리아족이 술로 얇은 밀가루 층을 만들었던 것을 “가벼운 종류의 빵”이라고 보고했다. 빵은 재료에 따라 먹는 대상이 달랐는데 사람은 일반적으로 밀로 만든 빵을 먹었으며 보리로 만든 빵은 주로 군마(軍馬)가 먹었다.
수프
수프(Soup)는 끓는 물에 채소와 육류나 생선 등을 삶아서 육수가 우러나올 때까지 만드는 서양식 국이다. 전통적으로 수프는 맑은 수프(clear soups)와 걸쭉한 수프(thick soups)로 분류된다. 프랑스에서 맑은 수프는 부용(bouillon), 콩소메(consommé)로 나뉘며 걸쭉한 수프는 포타주(potage)라 부른다. 한국에서 서양식 수프라 하면 흔히 포타주를 일컫는다. 포타주는 퓌레나 루를 어느 정도 넣느냐에 따라 걸쭉한 정도도 달라진다. 크림 수프는 크림이나 달걀, 버터를 넣어서 끓이는 수프이다. 다른 재료로는 쌀이나 밀가루, 곡류를 많이 쓴다. 스튜와 수프는 재료의 크기면에서부터 차이가 있으며 수프는 스튜에 비해서 썰어 넣는 재료의 크기가 작고, 물의 양이 더 많기 때문에 스튜보다 더 걸쭉한 정도, 즉 물을 아주 졸여 먹지는 않는다.soup라는 단어는 빵을 찍어서 먹던 스튜와 수프의 일종을 아우르던 단어인 "sop"에서 유래했다. 근대에 와서 sop의 의미는 수프 따위에 찍어 먹는 용도의 빵을 가리키는 것으로 축소됐다. 가장 최초의 수프 형태는 기원전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양파를 넣어 요리했는데 화로부터 불을 바로 댈 수 있는 용기 제조기술도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9,000년 전 동물의 가죽이나 토기 등을 이용한 요리 기법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흔한 요리법이 아니었다. 한편 단어 레스토랑(restaurant)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싼 수프를 파는 식당의 의미로 쓰이게 됐다. 광고를 통해 이 용어가 점차적으로 퍼지고, 손님을 끌어들이게 됐으며, 1765년 프랑스 파리의 기업가가 레스토랑을 열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현대의 레스토랑 형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수프(Portable soup)는 18세기 양념을 한 고기를 끓여서 말린 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면서 출현했다. 일본의 미소는 수프용 반죽의 일종이다.
베이글
베이글(영어: bagel, 이디시어: בײגל beygl)은 전통적으로 손바닥 정도의 넓이를 가진, 이스트와 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물에 데친 다음 구워서 만든 빵이다. 바깥 면이 바삭거리는 것도 있는데 보통은 노릇한 갈색을 띤다. 안쪽은 마치 가래떡같이 쫄깃한 맛과 보통 식빵에 비해 씹는 맛이 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베이글도 있고 양귀비 씨나 깨를 얹은 베이글도 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모양은 도넛과 유사하지만, 도넛은 기름에 튀기는 반면 베이글은 그렇지 않아 담백하고 버터, 우유,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서 저지방, 저콜레스테롤의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1610년 쯤, 폴란드의 크라코프에서 어느 유대인 제빵사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 인기가 많았다. 최근에는 뉴욕이나 몬트리올 같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 지역에서 아침 식사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리얼
시리얼(영어: cereal)은 옥수수, 쌀, 보리, 밀 등의 원재료를 조리하여 얇은 조각 형태로 만든 식품이다. 보통 우유와 같이 먹으며, 첨가하는 재료를 달리한 많은 종류의 제품이 시중에 나와있다.
북미에서의 시리얼 역사
북부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죽형태의 포리지나 오트밀 종류의 음식을 먹어왔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종류의 음식을 아침 식사로 먹기도 한다.
초기 미국의 시리얼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기 시작하던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로 경작하던 옥수수를 이용하여 그릿츠, 호미니를 만들어냈다. 이것들은 남부 미국인들의 주식이 되었다. 19세기에 미국인들의 과도한 육류 소비를 줄이고자 나선 사람들이 수많은 채식주의 대안을 탐구하였다. 19세기 후반 미시간에 기반을 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그들의 종교적 믿음의 일부로 채식 위주로 개선된 식단을 만들어 그들의 요양원에 제공하였고, 이는 새로운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주도하게 되었다.
반조리 식품 형태의 오트밀
독일 이민자 출신인 페르디난드 슈마허(Ferdinand Schumacher)는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저먼 밀스 아메리칸 오트밀 컴퍼니('German Mills American Oatmeal Company')라는 미국 최초의 상업용 오트밀 제조 회사를 차렸다. 그는 아침 돼지고기를 대체한 제품을 판매하였다. 생산 기술을 개선(강철 절단기, 자기 롤러, 개선된 도정기)하여 빠르게 매출과 이익을 높였고, 1877년 시리얼 중에서는 최초의 등록 상표를 채용하였다.
그래뉼라의 탄생
최초의 시리얼이라 할 수 있는 그래뉼라(Granula)는 1863년 미국의 제임스 케일렙 잭슨(James Caleb Jackson)가 발명하였다. 뉴욕주 댄스빌에서 그가 운영하던 잭슨 요양소에서 쓰일 식품으로 개발되었으며, 이 그래뉼라는 섬유소가 많이 함유된 곡물을 가루로 반들고, 반죽하여 굳혀서 만들었는데, 아침에 먹기 위해서 하룻밤 전에 물에 불려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1879년에는 조지 H.호이트(George H. Hoyt)는 Wheatena라는 시리얼을 만들었다.
켈로그의 설립과 콘플레이크의 탄생
시리얼 초기 역사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영향이 컸으며, 이곳을 통하여 시리얼 상품 개발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존 하비 켈로그가 있다. 켈로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립자 앨런 G. 화이트가 설립한 배틀크리크 요양소에 고용되었는데, 켈로그는 요양소에서 채식 요법을 보완하기 위해 곡물을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하였다. 1891년 그는 특허를 취득하였고, 1895년에 곡물을 이용한 플레이크를 만들어냈으며, 그의 동생 윌 키스 켈로그(Will Keith Kellogg)와 1906년 켈로그사를 설립하게 된다. 1800년대 후반 켈로그의 요양소에 입원했던 사업가인 C.W. 포스트는 요양소에서 실시했던 곡물 다이어트에 감명을 받고, 퇴원 이후 여러 곡물을 실험하여, 후에 포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시리얼 제조회사가 수 백 개 이상 설립 되었는데 특히 켈로그사와 포스트사가 위치한 배틀크리크는 수 십 여 개의 시리얼 회사가 설립되면서 '시리얼의 도시(Cereal City)'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뮤즐리
뮤즐리(뮈슬리)는 스위스의 영양 학자 막시밀리안 오스카르 비르허-베너(Maximilian Oskar Bircher-Benner)가 발표한 아침 시리얼이다. 귀리, 과일, 견과류를 기반으로 한 이 뮤즐리는 비르허베너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의 환자들에게 공급하였다. 현재에는 귀리 외에 여러가지 곡류들을 더 첨가하기도 하며, 말린 과일류 외에 아마란스, 아마씨, 대마씨 등을 첨가하는 등 여러가지 첨가물을 많이 넣음으로서 수십가지의 다양한 종류의 뮤즐리를 판매하고 있다.
웜 시리얼
곡물로 바삭하게 만든 가공 식품에 찬 우유에 말아먹는 일반적인 시리얼 외에 따뜻하게 먹는 시리얼을 웜 시리얼(Warm Cereals)라고 한다. 보통 곡물을 죽 처럼 만들어서 설탕과 꿀, 단풍당밀 등의 감미료를 조리 중, 또는 먹기 전에 첨가하기도 한다.
파운드 케이크
파운드 케이크(영어: pound cake)는 밀가루, 달걀, 버터, 설탕을 1:1:1:1의 비율로 섞어 만든 반죽을 둥근 틀이나 네모난 틀에 채워 구운 버터 케이크(butter cake)이다. 기본 배합이 1파운드(450g) 단위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플레인 케이크(plain cake)와 과실 케이크를 총칭하는 말이다. 네모난 틀에 넣어서 굽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것으로, 과실이나 견과류를 많이 배합해 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에서는 꺄트르 꺄흐(quatres-quarts)라고 부르며, 독일에서는 발상지의 지명을 따, 영국풍 과자라는 뜻으로 잉글리셔 쿠헨(Englisher Kuchen)이라고 부른다.
티라미수
티라미수(tiramisu)는 'tirare(끌어 올리다) + mi(나를) + su(위로)', 즉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의 이탈리어에서 유래한 케이크로서 에스프레소 시럽에 적신 스펀지케이크 시트와 마스카포네치즈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전통 크림 치즈, 초콜릿 시럽 등을 번갈아 가며 켜켜이 쌓고 위에 코코아 가루를 뿌린 뒤 차갑게 굳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형태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에 다른 케이크들과는 달리 티라미수는 티라미수 전용 그릇이나 컵에 담아낸다. 18세기에 이탈리아의 베네토에서 처음 등장한 이탈리아의 정통 케이크이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프랑스로 전해진 이후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에서는 1991년에 일본에 이어 '티라미스'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 때의 티라미수는 케이크로서가 아니라 롯데제과가 내놓은 초콜릿의 이름으로서 유명해졌고,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정통 디저트 케이크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버터케이크
버터 케이크(butter cake)는 버터를 풍부하게 가미해 디저트 뿐만 아니라 식사 대용으로도 사용되는 모든 케이크들을 칭하는 말이다. 세인트 루이스 구이 버터 케이크, 아몬드 버터케이크 등이 이에 해당하며 식감이 매우 부드럽고 입안에서 녹는 듯한 맛이 특징이다. 버터 케이크는 파운드 케이크(pound cake)에서 발전하였다. 파운드 케이크는 은근한 불에서 오래 구워내는 케이크로서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 이름은 달걀, 밀가루, 설탕, 버터 등의 주재료들을 기본배합을 1파운드로 설정해 넣어 만드는 파운드 케이크의 조리법에서 유래하였다. 최근[언제?]에는 특정한 케이크를 가리키기 보다는 플레인 버터 케이크와 이 플레인 버터 케이크에 마른 과일 등을 넣어 만든 케이크들을 총칭하기도 한다.
롤케이크
롤 케이크(roll cake)는 영어로는 Swiss roll이라고도 불리며 원래는 젤리가 든 케이크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서양식 베이커리의 기본품목으로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케이크 시트에 시럽과 생크림 등을 펴 바르고 과일 등 다른 속재료(필링)를 넣은 뒤 시트를 말아서 만드는 기둥 모양의 케이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시폰케이크
시폰 케이크(chiffon cake)는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비단 같다하여 프랑스의 시퐁(Chiffon)에서 온 '비단'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여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시폰 케이크의 탄생은 1940년 말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과 192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보험 판매원이었던 해리 베이커(Harry Baker)에 의해 탄생했다는 설로 나뉜다 폭신폭신한 식감을 가지고 있어서 스펀지 케이크와 비슷한 맛을 내나, 기름과 달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마르거나 딱딱해지지 않는다. 시폰 케이크는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독특한 모양이기 때문에 시폰 케이크를 굽기 위한 전용 틀이 따로 있다. 반죽을 구워낸 뒤에는 그냥 내지 않고 주로 시럽과 생크림 등을 겉면에 발라 장식한 뒤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이트 시폰케이크, 홍차 시폰케이크, 녹차 시폰케이크, 애플망고 시폰케이크 등 첨가하는 재료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무스케이크
무스 케이크(mousse cake)는 거품과 같이 부드러운 케이크로서, 'mousse'는 프랑스어로 비누나 맥주의 거품을 뜻하는 말이다. 과일을 갈아 넣은 퓌레에 거품을 낸 휩트 크림이나 달걀흰자, 젤라틴을 더해 부풀린 것을 스펀지 케이크 시트 위에 올린 형태이다. 완성 후 반드시 냉동시키는 것이 다른 케이크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아이스크림과 젤리의 중간 정도의 식감을 가지고 있다.
스펀지 케이크
스펀지 케이크(sponge cake)는 케이크의 기본이 되는 시트로 쓰이며 많은 케이크의 바탕이 된다. 흔히 일반적인 개념에서 지칭하는 케이크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케이크이다. 아몬드 스펀지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들이 스펀지 케이크에 해당한다. 주로 동그란 케이크 틀에 반죽을 붓고 구워 만드는데, 밀가루, 달걀, 설탕과 같이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들을 사용하며 반죽에 향미료를 간단히 첨가하기도 한다. 이때, 첨가하는 향미료에 따라 아몬드 스펀지케이크, 초콜릿 스펀지 케이크와 같이 이름이 세분화되기도 한다. 완성한 후 카스텔라와 같은 폭신한 베이커리를 만드는데 사용할 경우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으며, 다른 종류의 케이크들의 기본으로 사용될 경우 겉에 잼이나 크림을 발라 당의를 입히거나 과일 등으로 장식하는 등 다양한 재료가 첨가되는 식감이 푹신푹신할 뿐만 아니라 오븐에서 구웠을 때 반죽이 스펀지처럼 부풀어오른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제노바 지방에서 생겨났다고 하여 제누아즈(genoise)라고도 불린다.
컵케이크
컵케이크(cupcake), 다른 말로 페어리 케이크(fairy cake)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는 조그마한 케이크이다.보통의 큰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컵케이크는 스프링클 같은 케이크 장식으로 장식되며, 냉동되는 것이 특징이다. 머핀은 컵케이크의 일종이며, 서구에서는 컵케이크는 보통 아이들의 학급 잔치 등의 축하 의식에 내놓는다. 또한, 오후 차 마시는 시간에 차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 보통의 큰 케이크와는 달리 크기가 작으므로, 한 사람이 먹기 좋고, 주방 기기를 가지고 자를 필요가 없으며, 더 잘게 쪼갤 필요가 없다. 컵케이크는 주로 큰 케이크와 같이 버터, 설탕, 달걀, 밀가루 등으로 재료로 만든다. 버터가 없을 경우 마가린, 크림 치즈, 식용유로 대체할 수도 있다 비슷한 형태이지만 머핀과 컵케이크는 다른 음식이다. 머핀은 컵케이크의 일종이나, 반죽에 견과류나 건포도와 같이 건조된 과일류, 혹은 잼이나 초콜릿 칩등을 넣고 함께 굽는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컵케이크 반죽에는 추가적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구운 컵케이크 위에 생크림이나 녹인 초콜릿을 발라 먹기도 하는데, 대부분 휩트 크림, 버터, 설탕, 약간의 우유 등을 넣고 섞은 아이싱과 함께 과일, 견과류, 초콜릿 등을 얹어 먹는다. 이름 "컵" 케이크 혹은 "계량"(measure) 케이크라는 이름은 표준 크기의 컵을 가지고 요리 재료를 계량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스폰지 케이크의 크기만 작은 버전으로서 컵케이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혼합할 요리 재료는 거의 똑같다. 이것은 쿼터 케이크(quarter cake) 요리법과 동일하다. 쿼터 케이크라고 불리는 이유는 네 가지 재료 (효모 없는 버터, 밀가루, 달걀, 카스터(Castor), 설탕 등)를 동일한 비율로 섞기 때문이다.
케이크
케이크는 빵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간단하거나 정교할 수 있다. 페이스트리, 머랭, 커스터드 및 파이와 같은 디저트들과 특징을 공유한다. 케이크의 기원을 신석기 시대부터 찾기도 하지만 베이킹파우더와 백설탕을 이용해 구워 낸 현대적 개념의 케이크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한국에는 구한말 선교사에 의해 처음 케이크와 빵의 개념이 소개되었다. 결혼식과 생일 등 기념일에 빠지지 않는 케이크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나라별, 상황별로 다양한 전통과 풍습이 존재한다 케이크빵은 밀가루, 설탕, 달걀, 베이킹 파우더, 버터 등이 기본 재료로 구성된 반죽을 모형 틀에 붓고 오븐에 구워 만드는 데 이때 만들려는 케이크 종류에 따라 반죽 재료의 구성비율이나 새로운 재료가 추가되고 굽는 방법도 달라진다. 구워진 빵에 휩트 크림 등의 재료를 발라 케이크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아이싱 과정과 여러 모양의 장식물로 개성 있게 꾸미는 데코레이션 과정을 거쳐 맛과 형태가 다른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만든다. 최근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떡 케이크, 슈가크래프트 케이크 등 주재료로 밀가루가 아닌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새로운 개념의 케이크가 등장하였다.
케이크의 역사
케이크의 어원은 13세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옥스퍼] 영어사전>에 따르면 케이크라는 단어는 고대 노르웨이어의 'kaka'에서 유래됐다. 또한 이 단어가 미국 식민지 시기의 '작은 케이크'라는 뜻의 'cookie'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케이크의 기원
케이크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케이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것은 밀가루에 꿀을 첨가해 단맛을 낸, 빵에 가까운 음식으로 우묵한 석기에 밀가루와 우유 등 기타 재료를 넣고 섞은 뒤 그대로 굳혀 떼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견과류나 말린 과일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케이크는 달의여신 아르테미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가난한 제빵사가 만든거라고 주장한다.
케이크의 발전과정
이후 케이크는 이집트에서 빵 굽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B.C. 2000년경 이집트인들은 이미 이스트를 이용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을 ‘빵을 먹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당시의 회화나 조각작품들을 보면 밀가루로 빵 반죽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집트의 빵 중심의 식문화는 그리스, 로마로 전해져 케이크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스에서는 케이크의 종류가 100여종에 달했으며 로마에서는 케이크가 빵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빵 만드는 사람과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이 구분되어 각각의 전문점과 직업조합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둥글고 윗부분이 아이싱 처리된 현대 케이크의 선구자격인 케이크는 17세기 중반 유럽에서 처음으로 구워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오븐과 음식틀의 발전과 같은 기술 발전, 그리고 정제된 설탕 등의 재료 수급이 원활해진 덕분에 가능했다. 그때에는 케이크의 모양을 잡는 틀로 동그란 형태가 많이 쓰였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일반적인 케이크의 모양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때 케이크 윗부분의 모양을 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탕과 달걀 흰자, 때때로 향료를 끓인 혼합물을 사용해 케이크 윗부분에 붓는 관습이 생겼는데, 이러한 재료들은 케이크 위에 부어져 오븐 속에서 다시 구워진 후에 딱딱하고 투명한 얼음처럼 변했기 때문에 이를 '아이싱'이라 부르게 되었다. 19세기에 와서야 이스트 대신 베이킹파우더와 정제된 하얀 밀가루를 넣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 케이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케이크 역사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케이크의 기원이라 할 만한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밀가루가 주식인 유럽에서 일찍이 케이크 문화가 발달한 것과 달리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동양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케이크나 빵의 개념이 소개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구한말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의 과자가 소개되었고 오븐을 대신하기 위해 숯불을 피운 뒤 그 위에 시루를 엎고 그 위에 빵 반죽을 올려놓은 다음 뚜껑을 덮어 구웠다고 한다.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빵제조업소가 국내에서 생산판매 하였으나 기술적인 면에서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제과, 제빵 재료면에서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적극적인 분식장려정책에 의해 급속한 빵류의 소비증가로 양산체제를 갖춘 제과 회사가 생겨났다. 케이크와 비슷한 것으로 떡케이크가 있다.
머핀
머핀(영어: Muffin)은 컵케이크의 일종이다. 컵케이크가 후식, 간식용인 반면 머핀은 아침식사용이다. 머핀은 컵케익과 달리 크림이 없고 블루베리, 바나나 같은 과일이나 당근같은 채소를 넣고 만든다.
버터쿠키
버터 쿠키, 혹은 버터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이 과자는 사블레나 덴마크 비스킷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설탕과 밀가루, 버터를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팽창제를 넣지 않는다. 가끔 '크리스피' 쿠키라고 분류되는데, 이는 이 과자가 많은 양의 설탕과 버터를 포함해서 나타나는 바삭함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냉동 쿠키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중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많이 먹는다.
팬케이크
펜케이크(pancake)는 납작한 빵의 일종으로, 달게 만든 반죽물을 뜨거운 석쇠 위나 프라이팬으로 구워 만든다. 팬케이크는 수많은 지역 요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변형이 있다. 일부 팬케이크는 이스트로 팽창을 촉진시키거나, 발효한 반죽물을 이용해서 만들지만, 거의 대부분의 팬케이크는 금방 만들 수 있는 빵이다. 와플은 팬케이크에 비해 달걀이 더 많이 들어가며, 전용팬인 와플팬으로 굽는다. 또한 시럽을 끼얹는다는 점에서도 팬케이크는 와플과 차이가 있다. 브레통 갈레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팬케이크는 조리과정에서 한 번에 한 면을 구운 뒤, 뒤집어서 조리한다.
와플
와플(영어: waffle,y 문화어: 구운빵지짐)은 두 개의 뜨거운 틀 사이에 끼며 와플 굽는 틀 속에 밀가루, 달걀, 우유 등을 반죽한 것을 넣어 말랑하게 구운 케이크의 일종이며 독특한 패턴을 가진 외양이 특징이다. 취향에 따라 잼이나 휩트 크림을 발라서 먹을 수 있으며 특히 벨기에 와플이 유명하다. 와플의 어원은 네덜란드어인 ‘바플(wafel)’에서 시작되었으며, ‘바플(wafel)’은 중세 네덜란드어인 ‘바펠레(wafele)’가 변형된 형태이다. ‘바펠레(wafele)’는 고대 고지 독일어의 ‘바바(waba)’, 고대 영어의 ‘웨펀(wefan)’에서 비롯된 단어로 알려져 있어, 독일 등지에서 벌집 모양으로 엮인 빵이 와플의 시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와플과 가장 유사한 형태 혹은, 와플의 시작이었을 것으로 추축되는 팬케이크와 와플이 가장 다른 점은 벌집 모양의 유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우블리(oublie)’라는 빵은 9~10세기 서유럽에서 등장할 당시만 해도 격자무늬가 없었지만 13~15세기경 우블리에 격자무늬가 새겨지며 오늘날과 같은 와플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언급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대 그리스인들은 뜨거운 금속 평판 사이에 오벨리오스(obelios)라는 평평한 케이크를 조리했다. 중세 유럽으로 확산된 이 케이크 믹스는 밀가루 혼합물, 물나 우유, 가끔은 달걀이 포함되었으며 이것이 웨이퍼스(wafers)라 불리게 되었고 긴 손잡이가 있는 철판 사이로 가열 조리되었다. 와플은 9~10세기 중세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시기에 fer à hosties / hostieijzers와 moule à oublies가 동시에 등장하였다.
파이
파이(pie)는 구운 과자의 일종이다. 본디 파이라는 이름은 쇼트 페이스트(쇼트 크러스트)로 만든 접시 모양의 받침에 여러 가지 과일, 견과류, 고기 등을 얹어 구운 음식을 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명칭을 층상 구조를 이루는 바삭바삭한 과자인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에도 적용, 혼용하여 부른다. 퍼프 페이스트리와 파이가 혼용되어 이 과자에 대한 정확한 정의에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인 제조업자를 비롯하여 일반 소비자들까지도 파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져 있어 정정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영국의 퍼프 페이스트리가 일본에 건너가면서 파이로 굳어지면서 나타났고, 그대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굳어졌다 흔히 후식으로 알고 있는 이 과자의 본고장은 영국과 미국이며, 유사한 것으로는 프랑스의 타르트(tart)라는 과자가 있다. 후식으로 먹는 파이는 보통 여러가지 크림이나 과일을 섞은 충전물이나 견과류를 얹지만, 주요리로 먹는 경우에는 고기를 채워서 굽는다. 여기서 접시 모양의 받침대는 깔개용 파이 반죽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구운 것이 파이 껍질이라고 한다.
타르트
타르트(tart)는 윗쪽이 패스트리로 덮이지 않은 파이 형태의 패스트리 양과자의 일종이다. 보통 달콤한 맛이 나게 하여 먹는다. 양파 타르트, 블루베리 타르트, 타르트 타틴, 애플 타르트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파이 도우(dough)는 밀가루, 유지(fat), 물 등을 섞어 만든다. 이스트는 넣지 않는다. 여기서 유지(fat)란 버터, 혹은 마가린을 말한다. 생지는 보통 납작하게 만든다. 잎사귀 두께만큼 두께를 갖도록 만든다. 장식을 위에 두고 혹은 위에 두지 않고 팬에 넣고 굽는다.
마카롱
마카롱(영어: macaron,프랑스어: macaron, IPA: [makaˈʁɔ̃])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당과 제품이다. 머랭을 주재료로 하고 달걀 흰자위, 백설탕, 아몬드 가루와 밀가루 등으로 만든 과자류이며, 보통 모양은 동그랗고 손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조그맣다, 마카롱의 구조는 잘 부서지지만, 약간 딱딱한 꼬끄로 된 위아래 꼬끄와, 그 중간에 머랭이나 잼, 마지팬, 크림등을 넣어 만든 부드러운 중간 부위로 나뉜다. 지역마다 별명도 있는데,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는 제르베르(Gerber), 룩셈부르크와 독일어를 이용하는 일부 지역에서는 룩셈부르게를리(Luxemburgerli)라고도 하며, 마카룬과 혼동되지 않도록 프랑스 마카롱(French macaroon)이라고도 한다 프랑스와 유럽 국가에서 가장 인기를 많이 얻고 있다. 마카롱의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기인하였다. 이 단어가 이탈리아어로 옮겨지면서 'maccherone(마카로네)', 'maccaroni(마케로니)'에서 온 것이다. 'Macaron(마카롱)'과 'maccaroni(마케로니)'는 1650년에 제작된 프랑스어 원본 사전(Les Origines de la Langue Française)에 의하면 '치즈로 뒤덮인 파스타 요리'를 지칭하지만, 이 단어들은 과자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으로도 쓰였다. 1675년에 제작된 어느 프랑스어-영어 사전에서는 마카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다
“...little Fritter-like Buns, or thick Losenges, compounded of Sugar, Almonds, Rosewater, and Musk, pounded together, and baked with gentle fire.
(...설탕, 아몬드, 장미향수랑 사향(麝香)을 밀가루에 넣어 반죽한 뒤 약한 불에 구운, 프리터같이 생긴 조그만 롤빵. 두꺼운 마름모꼴 과자)”
또 다른 이탈리아어 단어인 'Maccare (마카레)', 또는 'Amaccare (아마카레)'에서도 마카롱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라고 하는데, 이는 '섞다', '갈다', 또는 '주무르다'라는 뜻이다. 아몬드를 갈아서 마카롱에 들어가는 아몬드 페이스트가 만들어진 것을 본따 만든 이름인 것이다오늘날 마카롱은 보통 후식으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본래 음식의 한 종류로 여겨졌다. 처음에는 매우 간단하게 생긴 과자였으며, 다양하지 않은 색깔에 두 겹보다 한 겹으로 만들어지던 과자였다. 나중에 20세기 초반때 프랑스의 귀족 요리사 루이 에르네 라뒤레(Louis Ernest Ladurée)의 손자였던 피에르 데퐁탠(Pierre Desfontaines)이 초콜릿 파나체로 마카롱 두 개를 붙여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흔히 알려진 두 겹으로 이루어진 마카롱의 시초였다. 또한, 마카롱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색깔과 맛 종류가 증가하기 시작했을 때인 1790년에는 낭시, 랭스, 아미앵 등의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각 지역별 변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1800년 당시에는 프랑스의 수도원에서 일하던 수녀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자, 건강에 매우 좋다는 이유로 마카롱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낭시에 있었던 어느 신녀 두명이 마카롱 전문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교회의 체계가 붕괴되자, 마카롱을 구워 삶을 연명했다. 이들이 나중에 매우 유명하게 되면서 'les Soeurs Macarons' (마카롱 자매)라는 이름으로 전설으로 남는다. 오늘날, 그들의 가게도 전설이 되어 가게가 위치하는 길의 이름은 그들을 기원하기 위하여 개명되었다. 오늘날 마카롱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과자로 여겨지지만, 본래 마카롱은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과자다. 그러나 마카롱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문헌은 1500년에 시작되었음을 알리지만, 일부 자료들은 중세 유럽에서 마카롱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더불어 이탈리아의 기독교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도 하는데, 또한 어떤 자료들은 791년, 코르메리 (Cormery)라는 프랑스 중부에 자리한 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마카롱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들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카롱의 기원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다. 1453년부터 이탈리아 요리에 본격적으로 아몬드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1500년 마카롱의 주재료인 아몬드 페이스트가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1533년 이탈리아의 귀족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의 왕이었던 앙리 2세랑 결혼할 무렵, 카트린의 요리사들이 카트린의 아버지가 소개한 아몬드 페이스트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마카롱의 탄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귀족들의 통혼으로 인하여 때문에 마카롱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 문화는 본래 이탈리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수입해와 이를 개량하여 성립되었다. 마카롱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작가였던 프랑수아 라블레가 1558년에 쓴 기록이다.
“...petite patisserie ronde aux amandes...
(...작고 동그란 아몬드 페이스트리...)”
마카롱이 다른 귀족들에게 알려져 인기를 얻게된 시기는 서술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앙리 2세의 결혼으로부터 약 한세기가 지난 1660년 즈음이었다. 프랑스 중부의 몬모리온에서 마카롱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여러 행사에서 소비되었다. 마카롱은 루이 14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의 결혼식 축제에서도 제공된 음식중 하나였으며,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한때 마카롱을 섭취하여 굶주림을 피했다는 유사도 있다. 마카롱은 프랑스 귀족들과 왕들도 즐겨 먹은 음식이였다고 하며, 1802년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의 되었을 때부터 루이 16세가 왕이 되었을 때까지 프랑스 왕들에게 마카롱이 간식으로 제공되었다. 마카롱이 처음 요리책에 등장했을 때에는 1653년, 《프랑수아 피에르 데 바렝의 프랑스 음식 요리법》(François Pierre de La Varenne’s Le Pâtissier François)에 처음 나왔지만 마카롱을 요리하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는 요리책은 1692년의 《과자류, 술과 과일 요리하는 특별방법》(Nouvelle Instruction pour les Confitures, les Liqueurs, et les Fruits)에서 나온다. 이 이후로 대부분 프랑스의 요리책들에는 마카롱을 요리하는 법이 나온다
부리토
부리토(스페인어: Burrito)는 토르티야에 콩과 고기 등을 넣어 만든 멕시코 및 텍스멕스 요리이다. 토르티야에 콩과 고기를 얹어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구운 후 소스를 발라 먹는 멕시코의 전통요리이다. 토르티야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 찌거나 살짝 구운 것을 사용한다. 고기는 쇠고기 또는 닭고기를 이용하며, 콩은 다양한 종류를 준비한다. 멕시코에서는 고기와 삶아서 튀긴 콩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쌀, 양배추, 살사, 콩, 과카몰레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하여 부리토 속에 넣으며 크기도 다양하다. 부리토는 스페인어로 "새끼 당나귀"를 뜻한다. 부리토가 음식의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당나귀에 싣고 다녔던 침낭과 모습이 유사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부리토가 개발되기 전 멕시코의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은 고추, 토마토, 버섯, 스쿼시, 아보카도를 채우고 옥수수 토르티야로 식재료를 포장했다 미국 남서부의 푸에블로 원주민들도 현대식 부리토와 비슷한 콩과 고기 소스 충전재를 토르티야로 감싸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는 현대 부리토보다는 단순한 타코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현대 부리토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맥시코계 미국인 사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19세기 멕시코 북부의 바쿠에로스(vaqueros)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의 센트럴밸리, 프레즈노와 스톡턴의 농민들에게서 유래했다고 추측한다. 센트럴밸리의 농산물을 많이 골라낸 농민들은 수제 밀가루 토르티야, 콩, 매운 살사 핫소스로 구성된 재료로 들판에서 점심을 준비한다. 다른 농민들은 가정에서 부리토를 준비하고 포장재로 싸서 햇볕에 놓아 보온할 수 있다. 1895년 Diccionario de Mexicanismos에서, 부리토는 과나후아토의 지역 품목으로 확인되었고, "토르티야 아로야다는 고기 또는 다른 재료들을 안으로 굴려 넣는다. 유카탄에서는 코치토, 쿠에르나바카 및 멕시코시티에서는 타코라고 부른다 "라고 정의되었다. 자주 언급되는 유래로 후안 멘데스(Juan Méndez)라는 남자가 멕시코 혁명 기간(1910~1921) 동안 자신과 음식을 운반하기 위해 당나귀를 사용하여 시우다드후아레스의 벨라비스타 지역에 있는 거리에서 타코를 판매한 것에 있다.[8]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멘데스는 작은 식탁보 아래에 있는 커다란 수제 밀가루 토르티야에 식재료들을 감쌌다. "부리토의 음식"(즉, "작은 당나귀의 음식")이 인기를 얻음에 따라 "부리토"는 결국 이 큰 타코의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1923년 알레한드로 보르케즈(Alejandro Borquez)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소노라 카페(Sonora cafe)를 개업했으며, 나중에 이름을 엘 쵸로(El Cholo) 스페인식 카페로다. 부리토가 미국 식당 메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엘 초로 스페인 카페에서 부터였다. 부리토가 미국의 언론 매체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1934년에 역사가 어나 퍼거슨이 저술한 뉴멕시코의 지역 요리법 모음인 "Mexican Cookbook"에서였다.
케사디야
케사디야(영어: quesadilla 영어: [ˌkeɪsəˈdiːjə/], 스페인어: [kesaˈðiʝa])는 멕시코 요리 중 하나로, 치즈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케소(queso)에서 이름이 파생되었다. 밀가루나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에 치즈와 다른 재료를 넣고 채운다음, 반으로 접어 반달 모양이 되게 만든다 케사디야는 멕시코의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해왔다.
나초
나초(Nacho) 또는 나초스(Nachos)는 멕시코에서 유래한 대중적인 주전부리이자 전채이며, 텍스멕스 요리와도 관련되어 있다. 토르티야 칩이나 토토포에 녹인 치즈를 부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최초의 나초는 1943년 경에 이그나시오 "나초" 아나야가 튀긴 토르티야 칩과 녹인 치즈, 할라피뇨 고추로 만들었다. 나초는 텍사스주 이글패스와 경계를 두고 있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의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서 로돌프 드 로스 산토스가 운영하는 식당인 빅토리 클럽에서 발원하였다. 1942년의 어느 날, 이글패스 가까이에 있는 던컨 요새에 주둔하던 미국 군인들의 부인 10여명이 피에드라스네그라스로 쇼핑을 하러 왔고, 식당이 그날 영업을 끝낸 후에 찾아오게 되었다. 식당 종업원이었던 이그나시오 "나초" 아나야는 그들을 위해 부엌에 남아있던 재료인 토르티야와 치즈를 사용하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아나야는 토르티야를 세모꼴로 자른 후, 롱혼 체더 치즈를 넣고 빠르게 가열한 다음, 얇게 썬 할라피뇨 고추를 곁들였다. 그는 이 요리를 "특별한 나초" (special nachos)라고 부르며 대접하였다. 아나야는 같은 지역의 모데르노 레스토랑으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이 식당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의 조리법을 사용한다. 또한 그는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서 자신의 식당인 "나초의 레스토랑"을 개업하였다. 아나야의 나초 조리법은 1954년 출간된 St. Anne's Cookbook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주전부리의 인기는 텍사스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어 단어 "나초" (nachos)는 1949년 출간된 A Taste of Texas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이트리스 카르멘 로샤는 1959년 로스앤젤레스의 엘 촐로 멕시칸 식당에서 나초를 전파하였다. 연질 치즈와 미리 만들어진 토르티야 칩을 사용하는 변형된 조리법은 1977년 텍사스 주 알링턴의 알링턴 스타디움에서 프랭크 리베르트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팔기 시작하였다. 먼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경기동안 스포츠 중계자 하워드 코셀은 "나초"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고, 그 다음 주에는 이 음식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는데, 모든 관중들에게 나초가 알려져 더욱 대중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그나시오 아나야는 1975년 사망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 청동상이 세워졌으며, 10월 21일을 세계 나초의 날로 지정하였다. 아나야의 아들인 이그나시오 아나야 주니어는 그가 죽은 2010년 전까지 해마다 열리는 나초 경연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였다
타코
타코(taco)란 멕시코의 대표적인 대중적 음식의 하나로, 토르티야에 여러 가지 요리를 싸서 먹는 것을 말한다. 고기, 해물, 채소 등 각종 재료를 싸서 먹을 수 있으며, '살사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고기 타코인 경우에는 기호에 따라 라임 즙을 뿌리기도 한다. '타코'는 음식 이름인 동시에 토르티야로 싸서 먹는 방법을 가리키는데, 멕시코 사람들은 평상시 식사 때에 먹는 음식을 이런 방법으로 즐겨 먹는다
유산슬
유산슬 또는 류산슬(溜三絲)은 해산물과 육류를 채썰어 볶아 만든 중국 요리의 하나이다. 류(溜)는 '녹말을 끼얹어 걸쭉해진 것', 산(三)은 '세 가지 재료', 슬(絲)은 '가늘게 썰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세 가지 재료에는 채소, 고기, 해산물이 포함되며, 보통 죽순, 표고, 새우, 돼지고기, 해삼 등을 넣는다. 팔보채와 재료 및 조리법이 유사하지만 팔보채는 재료가 크게 썰릴뿐 아니라 고추기름이 들어감으로써 붉은 빛이 돈다는 점에서 류산슬과 구별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즉석식품으로도 그 영역이 넓혀졌다
라조기
라조기는 중국의 라쯔지에서 변형된 한국식 중국 음식이다. 토막 친 닭고기에 녹말을 묻혀 튀긴 다음, 고추, 파, 마늘, 생강 등과 볶다가 녹말을 푼 물을 넣어 만든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라조기"의 어원은 중국어 "라자오지"(중국어 간체자: 辣椒鸡, 정체자: 辣椒雞, 병음: làjiāojī)이지만, 중국어권에서 라조기는 보통 라쯔지(중국어 간체자: 辣子鸡, 정체자: 辣子雞, 병음: làzijī)라 불린다. "라자오"와 "라쯔" 모두 "고추"를 뜻한다. "닭"을 뜻하는 한자인 "계(鷄)"의 표준 중국어 발음은 "지"이지만, 한국에 건너온 화교 중 다수가 사용했던 산둥 방언에서는 그 소리가 "기"에 가깝다.
깐쇼새우
깐쇼새우(중국어 간체자: 干烧明虾, 정체자: 乾燒明蝦, 병음: gān shāo míngxiā 간사오밍샤, 한자음: 건소명화) 또는 칠리새우(chili shrimp)는 껍질 깐 새우에 감자녹말과 달걀흰자 등으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 튀긴 다음 매콤한 칠리소스에 볶은 음식이다. 쓰촨식과 상하이식이 있는데, 쓰촨식 깐쇼새우는 더우반장을 사용하며, 상하이식 칠리새우는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든다. 그 외에도 고추기름, 대파, 마늘, 고추, 라임 즙 등을 쓰기도 한다.
깐풍기
깐풍기(건팽계, 乾烹鷄)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입힌 닭고기 토막을 기름에 튀긴 다음 고춧가루, 간장, 식초, 설탕 등으로 양념된 묽은 소스를 끼얹어서 만드는 음식이다. 닭강정이나 탕수육과 조리법이 유사하지만, 고춧가루, 고추, 고추기름등으로 매콤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탕수육, 닭강정하고의 차이점이다.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닭강정은 그 기원하고 유래가 알려지지 않은 음식인 반면, 탕수육은 후난(湖南)지방에서 유래되었고, 깐풍기는 산둥(山東)지방에서 유래된 중국 요리의 일종인 것과의 차이이다.
베이징 카오야
베이징 카오야(중국어 간체자: 北京烤鸭, 정체자: 北京烤鴨, 병음: Běijīng kǎoyā)는 중국의 오리고기 요리이다. 대표적인 베이징 요리이며, 현지에서는 "오리구이"라는 뜻인 카오야(중국어 간체자: 烤鸭, 정체자: 烤鴨, 병음: kǎoyā)라 부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중국어 "카오야(烤鸭, 烤鴨, kǎoyā)"는 "굽다"라는 뜻의 "카오(烤, kǎo)"와 "오리"라는 뜻의 "야(鸭, 鴨, yā)"가 합쳐진 말로, "오리구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북경 오리(北京--)로 불린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베이징이 "베이핑"으로 불렸기 때문에 베이핑 카오야(중국어 정체자: 北平烤鴨, 병음: Běipíng kǎoyā)라는 이름이 쓰였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이를 따 북평 오리(北平--)라고 불렀다.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다. "베이징 카오야" 외에 베이징 톈야(중국어: 北京填鸭, 병음: Běijīng tiányā)라는 이름도 쓰이는데, "톈(填, tián)"은 "메우다, 박아넣다, 채우다"를 뜻하는 말이며, 따라서 "톈야(填鸭, 填鴨, tiányā)"는 "먹이를 강제 급여해 키운 오리"를 일컫는 말이다.
마파두부
마파두부(중국어 간체자: 麻婆豆腐, 병음: mápó dòufu)는 쓰촨성에서 유래한 대표적인 중국 요리이다. 마파두부는 두반장을 베이스로 한 밝고 기름진 매운 소스를 곁들인 두부와 더우츠, 그리고 잘게 다진 고기가 주요 재료이며, 전통적으로 고기는 소고기를 쓴다. 남방개, 양파, 그리고 다른 채소나 목이가 들어가는 변형도 존재한다. 한 기록에 따르면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1254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는 mázi, 麻子에서 따온 것으로, 이것은 마마자국을 의미하며, "파"는 늙은 여성이나 할머니를 의미하는 婆에서 유래했다. 이에 따라 "마파"는 마마자국이 있는 나이든 여성을 의미하며, 때때로 마파두부를 "마마 자국이 있는 할머니의 두부"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훠궈
훠궈(중국어 간체자: 火锅, 정체자: 火鍋, 병음: huǒguō, 한자음: 화과)는 얇게 썬 고기나 해산물, 채소 등을 끓는 밑국물에 넣어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중국 요리이다. 마카오와 홍콩에서는 다빈로(광둥어: 打邊爐)라 부르며, 서양에서는 핫 팟(hot pot)으로도 알려져 있다중국의 훠궈는 진한 밑국물을 끓이며 얇게 썬 양고기를 살짝 익혀서 먹는다. 양고기 대신에 쇠고기나 생선을 넣기도 한다. 또한 야채도 살짝 데쳐서 먹기도 한다. 육수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또는 닭을 우려낸 내장탕에 가까운 것에서 타이식 카레맛 육수까지 다양하다. 훠궈는 사천, 중경 지역에서 발달한 요리이다. 가장 대표적인 훠궈는 중경 훠궈로, 트어라라는 고추를 육수에 넣어 매콤하게 한다. 원앙 훠궈는 육수통을 2개로 나누어 매운 맛과 담백한 맛을 함께 맛보게 해준다. 채소로는 콩나물, 배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사용한다. 소스는 마장이라고 불리는 땅콩소스가 가장 대중적이며, 여러가지 소스가 특색을 내게 해 준다.
차시우
차시우, 차슈, 또는 차소, 차사오(중국어 정체자: 叉燒, 간체자: 叉烧, 월병: caa1 siu1, 한어 병음: chāshāo)는 광둥 요리 중 하나로, 돼지고기 덩어리에 양념을 하여 바비큐 형식으로 구운 요리이다 재료로는 주로 등심이나 엉덩이살이 사용된다. 광둥 요리 중 하나인 시우마이에 영향을 주었다 동아시아권에 퍼져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었으며, 일본에서는 라멘에 넣기도 한다
딤섬
"딤섬"은 광둥어 딤삼(광둥어: 點心, 월병: dim2 sam1, 한자음: 점심)이 영어식 표기인 "딤 섬(dim sum)"을 거쳐 들어온 말이다. 표준 중국어 발음은 뎬신(중국어 간체자: 点心, 병음: diǎnxīn)이며, 한국어 "점심"과는 동원어 관계이다. 딤섬(dim sum)은 광둥을 비롯한 남중국 지역에서 아침, 점심 전후로 간단하게 먹는 음식들이다. 노점이나 작은 식당에서 사서 먹는 경우가 많다. 홍콩의 국민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을 "얌차(飲茶)"라 하며, 딤섬을 만드는 전문 요리사는 "딤삼시(點心師)"라 부른다.
차시우판
차시우판, 차슈판, 또는 차사오판(중국어 정체자: 叉燒飯, 간체자: 叉烧饭, 월병: caa1 siu1 faan6, 한어 병음: chāshāo fàn)은 밥 위에 차시우를 얹은 뒤 간장 등의 양념장을 첨가해 먹는 광둥 요리이며, 홍콩의 향토음식이다.
마라탕
마라탕(중국어 간체자: 麻辣烫, 정체자: 麻辣燙, 병음: málàtàng, 한자음: 마랄탕)은 쓰촨 러산에서 유래한 중국의 음식으로, 맵고 얼얼한 탕 요리이다. 마라(麻辣)라는 얼얼한 맛을 내는 중국 향신료를 이용해 만들며, 마라탕의 혀가 얼얼하게 마비되는 듯한 느낌은 마라에 화자오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멘보샤
멘보샤는 작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식빵 사이에 잘게 다진 새우를 넣어서 샌드위치나 토스트처럼 만든 다음에 기름에 튀겨서 만드는 중국 요리이다. 한국에서는 중국 산둥성 출신 화교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고 세계 각지에 위치한 중국 음식점에서도 가끔 만들기도 한다. "멘보샤"는 중국어 "몐바오샤(중국어 간체자: 面包虾, 정체자: 麵包蝦, 병음: miànbāo xiā, 한자음: 면포하)"가 변한 발음이지만, 중국어권에서 "몐바오샤"는 멘보샤가 아니라 튀김옷을 입힌 새우튀김을 뜻한다. 중국어 "몐바오(面包)"는 "빵", '샤(蝦)'는 "새우"를 의미한다. 중화권에서는 "새우 토스트"라는 뜻의 하도시(광둥어: 蝦多士, 월병: haa1 do1 si62) 또는 샤둬스(중국어 간체자: 虾多士, 정체자: 蝦多士, 병음: xiā duōshì, 한자음: 하다사)로 알려져 있으며, 영어권에서도 "슈림프 토스트(shrimp toast)", "프론 토스트(prawn toast)"로 알려져 있다.
탕후루
탕후루(중국어 간체자: 糖葫芦, 정체자: 糖葫蘆, 병음: tánghúlu) 또는 빙탕후루(冰糖葫蘆)는 과일에 설탕, 물엿 등으로 만든 시럽을 바른 뒤 굳혀먹는 음식이다. 보통 산사나무 열매로 만들지만, 요즘에는 딸기, 키위, 귤, 방울토마토, 바나나, 포도 등 여러가지 과일로도 만든다. 시럽이 발려진 과일들을 약 20cm 정도의 꼬치에 꽂아서 먹는다. 중국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간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국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본래 탕후루(糖葫蘆)는 황궁의 음식이었다. 중국 송나라 때 황제인 광종의 첩이었던 황귀비는 몸이 허약해서 어떠한 약제와 시술로도 병이 낫지 않았지만, 한 한의사가 소화를 돕는 산사나무 열매를 설탕과 달여서 식전에 먹여 황귀비가 나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백성들한테 퍼지자, 사람들은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탕후루(糖葫蘆)라고 하여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자오쯔
바오쯔
만터우
만터우와 자오쯔와 바오쯔
만터우(중국어: 馒头)는 중국의 빵이다. 중국 삼국시대 둥베이 지방 사람들이 많이 먹는 주식이었다. 만터우는 뜨거운 김에 쪄서 만든다. 원래 만터우는 고기나 팥이 들어가지 않고, 주식으로 먹는다. 지역에 따라서 머(饃) 혹은 머머(饃饃)라고 부른다. 만두(만터우)는 삼국지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송나라의 『사물기원(事物紀原)』에 의하면, 촉한의 제갈량이 남만(南蠻) 지역을 정벌하고 오는 길에 노수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며칠 동안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까지 배웅을 나온 남만족의 지도자 맹획에게 이에 대하여 묻자, 맹획은 수신(水神)이 화가 나서 그런 것이며 남만의 풍습에 따라 마흔아홉의 사람의 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내고 이를 노수에 가라앉히면 풍랑이 멎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이 그것은 인의(仁義)가 아니라고 하여 밀가루반죽에 돼지고기와 돼지피[1] 등으로 속을 채워서 사람머리 모양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이를 노수에 가라앉히자 금세 심한 풍랑이 멎고 촉군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명나라의 『망수유고(亡修類稿)』의 기록에서는 처음에는 만두(蠻頭, 만족의 머리)였으나 요리 이름으로는 적당치 않다고 하여 만두(瞞頭, 속이는 머리)를 거쳐서 현재의 만두(饅頭)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만두의 유래를 제갈량을 통한 설을 정설로 보고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만두가 삼국지 이전에도 유사한 종류들이 존재했다는 지적이 있으므로 직접적인 유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만터우의 전신으로 불리는 정빙(蒸餠)이라는 음식은 멥쌀로 밥을 지어 찧어서 반죽하여 만든 떡으로 진(晉)나라 소왕시대(昭王時代:BC 3세기)에 먹기 시작하였다가 진(晋)나라 때(3세기 말경∼4세기)에 ‘만터우’로 보급되었다는 설이 있다. 발효 기술이 없는 초기에는 그냥 익혀내기만 한 밀가루 덩이에 가까웠다. 밀가루 반죽을 익히기만 하는 형태의 음식은 지금도 남아있으며 산시 성 시안의 궈쿠이(锅盔)와 파오모(泡饃)가 대표적이다. 이후에 발효기술의 발전으로 현재의 부풀어오른 형태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대한 언급은 '남제서(南齊書)'에 남제 영명 9년(491년)에 태묘의 제사음식중에 발효시킨 빵인 면기병(麫起餠)이라는 음식이 나오며 송나라 사람 정대창도 '연번로(演繁露)'에서 발효된 밀가루는 부드러워진다고 이 음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국에서 주로 즐겨먹는 속에 고기 등의 소를 넣는 만두(饅頭)는 만터우에서 이름을 따왔다. 실제 한국의 만두에 가장 가까운 요리는 중국의 자오쯔(餃子)이다. 또한 자오쯔(중국어 정체자: 餃子, 간체자: 饺子, 병음: jiǎozi)는 중국의 요리이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고 초승달 모양으로 튀긴 만두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데친 것을 "자오쯔"나 "수이자오(水餃)"라 부르고, 구운 것을 궈톄(锅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운 것을 "교자"라고 부르고, 데친 것을 스이교자(水餃子/すいぎょうざ)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새해에 주로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얇게 민 밀가루 반죽에 고기나 채소 같은 소를 넣고 삶거나 구워 만든다. 새해에 기원하는 소원에 따라 각기 다른 소를 넣는데, 자식을 기원할 때에는 대추, 무사고를 기원할 때에는 두부와 배추, 가족운을 기원할 때에는 땅콩, 장장수 기원할 때 국수면, 승진을 기원할 때 찹쌀떡을 넣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삼국시대때 제갈공명이 남만 정벌을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노수에서 심한 풍랑을 만났는데, 맹획이 풍습에 따라 마흔아홉의 사람의 머리로 제사를 지내야 풍랑이 멎는다고 하자 제갈량이 사람 머리 모양의 밀가루로 제사를 지낸 것이 만두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오쯔(중국어: 包子, 병음: bāozi)는 뜨거운 중국 요리로 만두나 빵과 같이 속이 채워진 유형이다. 이의 만두 모양은 외관상 중국의 만터우와 매우 흡사하다. 바오쯔의 속은 고기와 야채로 채워진다. 중국의 문화상으로는 어느 시간 때에도 먹을 수 있지만, 흔히 아침으로 먹는다 전설에 따르면 제갈량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우리나라는 음식의 나라라고 할정도로 많은 음식 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전세계의 다양한 해외 음식과 다양한 해외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외국의 문화와 외국의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고 한국음식도 전세계로 전파되지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현재 다문화 국가가 되었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길거리 음식 또는 외국에서 전래된 한국음식 한국의 음식 시리즈 외전 이야기를 봐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외국음식과 어떤 길거리 음식을 좋아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