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나를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소프라노 민은홍 제57회 영월 단종문화제 개막공연 미리내색소폰오케스트라 김성진 지휘
https://youtu.be/vzP5ZOTlDGw
지역 축제가 지역 문화제로 자리잡아.. 보기만하던 축제에서 함께 참여하고.. 즐기고 배우는 문화제로서 자리잡은 모습을 경험합니다.
17세의 어린나이로 생이별하고 애달프게 죽음을 맞이한 단종, 왕비에서 노비가 되어 단종을 그리워하며 64년을 홀로 지내며 살아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슬픈 한 여인 정순왕후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제로 하여 멀어지는 단종의 옷자락을 따라 한 여인이 달려가고 그 끝에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단종의 옷자락을 따라"라는 부제로 돌아옵니다. 단종문화제의 정체성을 다시 일깨우고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풍성한 축제로 배움, 추억, 즐거움 이 모든 것이 가득한 제57회 단종문화제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엄씨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단종과 영월 엄씨」는 영월 엄씨(寧越嚴氏)가 단종(端宗)[1441~1457]의 묘소를 마련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경기도 파주시에서 관련 이야기가 채록되었다는 점에서 광포설화의 양상을 지닌다.
「단종과 영월 엄씨」는 2015년에 간행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1-12에 수록되어 있다.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빼앗겨 강원도 영월에 유배된다.
수양대군은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있을 때 열다섯 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단종의 충신들은 유배지에만 다녀오면 죽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런 비극적 상황이 계속되었다. 단종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자기 때문에 죄도 없이 선량한 사람들이 계속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단종은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고, 궁노를 시켜 개를 구하여 오라고 명하였다.
단종은 개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의 아래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밑에 구멍을 뚫고 명주 줄을 밖으로 내보냈다.
밖에 있던 궁노는 명에 따라 명주 줄을 힘껏 당기었다. 그렇게 단종이 죽자 궁노 역시 살 수가 없어 자신도 약을 먹고 따라서 죽었다.
유배지는 외딴곳이라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영월 엄씨는 원래 천한 신분이었다.
엄씨는 ‘나도 한번 양반이나 되어 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밤길에 단종의 거처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단종과 궁노가 죽어 있는데 누구도 수습하는 사람이 없었다.
엄씨는 단종의 목에 감긴 명주 줄을 풀고 옷을 깨끗이 가다듬은 후 시신을 업고 내려왔다. 엄씨가 단종의 시체를 업고 가던 중 노루를 만났다.
당시는 겨울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노루가 펄쩍 뛰는 곳만 눈이 녹아 있었다.
엄씨는 바로 그 자리를 파서 단종의 시신을 묻어 주었다. 궁노는 미처 묏자리를 쓰지 못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7년이 지났다. 전국 방방곡곡에 방이 붙기를 ‘단종 임금님을 어디에 묻었는지 아는 사람은 상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엄씨는 곧바로 관리를 찾아가서 관련 사실을 고하였다.
“그렇게 하여서 소인이 묻은 예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 본 적이 있느냐?”
“못 갔습니다.” “그럼 풀이 많이 났겠지?”
“소인이 가랑잎을 많이 덮어서 그렇게 많이는 안 났을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엄씨를 데리고 가 해당 장소를 확인하였다. 손으로 처리한 결과였지만 잘 묻어 놓은 상태였다.
이어 지관을 써서 그 자리에 단종 왕릉을 앉히게 되었다. 그런 이후에 엄씨에게는 삼품(三品) 벼슬을 주었다.
그렇게 엄씨는 양반이 되었다. 상민 신분이었던 엄씨가 이 일을 통하여 양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단종과 영월 엄씨」 [端宗- 寧越 嚴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